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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친님의 서재입니다.

용사가 검을 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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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6.20 20:48
최근연재일 :
2019.10.23 07:00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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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32
글자수 :
24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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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2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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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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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시작의 마을

DUMMY

나는 용사가 아니다 01



이 마을이 ‘시작의 마을’로 불리게 된 계기는, 정말로 이 마을에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우거진 산속에 자리한 이 마을에는 신기하게도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바위 언덕이 하나 있다. 바로 그곳에서, 인간을 구원한 첫 번째 용사가 머리 없는 용이 하사한 검을 뽑았다고 한다. 그 후, 용의 힘을 얻은 인류는 마을을, 도시를, 그리고 왕국을 만들어나가며 이 세계를 점령하였다.


“자, 얼마 안 남았으니까 다들 힘내라고!”


시작의 마을을 관리하는 촌장이 손뼉 치며 소리쳤다. 내일은 ‘용사 탄생’ 축제가 시작하는 날이었다. 전세계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바위에 꽂힌 용사의 검을 뽑아보며 자신이 용사인지 확인하는 이 축제가 열릴 때면 용사의 길 순례도 돌 겸 수많은 사람이 시작의 마을을 들렸다. 덕분에 산골 깊은 곳에 있는 이 마을은 축제 때 번 돈으로 다음 축제 때까지 편하게 놀고먹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물론 그것은 소문에 불과했다. 이미 이 마을은 평생을 놀아도 될 정도의 부를 축적했다. 285번째부터 287번째 용사들이 너무 빨리 쓰러져 ‘용사 탄생’ 축제가 몇 년에 걸쳐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앞으로 어느 용사가 의무를 저버리고 평생을 안전한 곳에서 숨어지낼지 모르는 일이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시작의 마을은 언제나 축제에 온 힘을 다했다.


“촌장님은 검 안 뽑아보실 거에요?”


관광객들에게 팔 용사의 검 모조품을 만드는 대장장이 패트릭이 진짜 용사의 검을 가리키며 물었다. 촌장은 코웃음을 쳤다. 용사의 검에 자신이 몰랐던 디테일을 발견해 가짜 모조품을 판매할 수 없다며 난동을 부린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다. 다행히 이는 몇 날 며칠 밤샘 작업을 하던 그의 눈이 환각을 일으켰을 뿐이었고, 촌장은 패트릭에게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용사 되면 힘들어! 로엘! 저 얼룩 좀 지워봐.”


촌장은 화려하게 준비한 시상대 밑 언저리에 진 얼룩을 확인하고는 주변의 나무를 정리하고 있던 로엘이란 청년을 불렀다. 로엘이 어깨를 으쓱이며 청소도구를 가져왔다.


“캬아, 288번째 용사가 칼을 뽑았을 때 정말 멋있었는데!”


대장장이는 피시시 웃으며 용사의 검에 기댔다. 그리고 그때의 영광을 재현하듯 용사의 검을 잡고 칼 뽑는 시늉을 하였다.


“얼레리요?”


대장장이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자신의 손에 이끌려 아주 쉽게 바위에서 뽑힌 용사의 검을 보았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검을 다시 바위에 꽂았다.


촌장이 입을 벌렸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바위에 다시 꽂힌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 다들 아무것도 못 본 거다?!”

“하지만 촌장님...!”

“어허! 다들 할 일이나 해!”


촌장이 소리치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분주하게 하던 일을 계속하는 척을 한다. 하나, 둘, 셋... 대장장이가 검을 뽑는 모습을 본 사람들을 유심히 확인한 촌장은 진정하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돌연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하늘이 준 기회였다.


‘용사 탄생’ 축제는 바위에서 칼이 뽑힐 때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운이 나쁘면 1년 동안 이어질 때도 있고, 어쩔 땐 3일 만에 용사가 발견되기도 한다. 용사를 찾는 데 오래 걸리면 힘든 건 용사를 기다리는 변방의 마을 이야기. 시작의 마을은 축제를 오래 할 수 있을수록 이득이었다.


“크흠, 패트릭! 이리 와보게~”


촌장이 인자한 목소리로 대장장이를 부른다. 아직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자신의 양손만 바라보는 대장장이에게, 촌장은 친하게 어깨에 팔을 둘렀다.


“로엘, 검이 다시 잘 꽂혔는지 확인해 봐. 패트릭은 잠시 나와 이야기 좀 하세.”

“네, 촌장님.”


놀란 눈으로 대장장이를 보고 있던 로엘이 급하게 검으로 달려가 온 힘을 다해 검을 뽑아보았다. 아무리 뽑아도 꿈쩍하지 않는 검을 확인한 촌장님이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138번째 용사가 실수로 뽑힌 것 같다며 다시 검을 바위에 꽂았을 때, 그가 아닌 다른 누구도 바위에서 검을 뽑을 수 없었던 적이 있다. 그러니 저 검도 패트릭이 다시 뽑을 때까지 바위에 꽂혀있겠지.


용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마을에 퍼부을까! 그는 행복한 표정으로 패트릭의 등을 토닥이며 밖으로 인도하였다.


“그래도 용사가 되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라네, 276번째 용사가 어땠는지 알고 있나? 하하하-”


몇 달, 아니 몇 년 동안 ‘용사 탄생’ 축제를 할까? 촌장은 행복을 주체할 수 없어 콧노래를 부르며 여전히 좌절 중인 대장장이를 이끌었다.


그리고 축제의 첫날. VVVIP 티켓을 구매한 왕족들과 고위급 관료들을 필두로 용사의 검 앞에 레드 카펫이 깔렸다. 용사라는 존재는 국가를 막론하고 어마어마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보니 자신의 나라에서, 특히 자신의 가족 중에 용사가 나왔으면 하는 귀족들이 상당했다.


그런 그들이 줄을 기다릴 필요 없게 만든 무지하게 비싼 VVVIP 티켓은 134번째 용사가 뽑힐 때부터 내려오던 전통적인 이익수단이었다. 점점 앞의 V가 더 붙기 시작했지만, 귀족들은 이런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멋진 옷을 입고 힘이 들어간 귀족 자제들이 차례대로 줄을 서는 모습에 촌장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누가 용사인지 알고 나니 모든 게 장난 같아 보였다. 혹시나 자신이 용사가 되지 않을까 상기 된 표정으로 긴장하는 이들이 웃겼다. 이전엔 누가 용사가 될지 몰라 모두에게 잘 대하며 조심했었던 촌장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눈치를 안 봐도 되었다.


검을 뽑은 이번 대의 용사, 대장장이 패트릭은 촌장의 극진한 대접을 받고 따뜻한 남부의 한 별장으로 이동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편히 쉬게 해놓고 사람들이 용사를 기다리기 지칠 때쯤 그를 마을로 부를 심산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그럼 축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상대에서 촌장이 소리쳤다. 수많은 사람의 환호성이 산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용사의 검이 꽂힌 바위 언덕에 달려 있던 리본이 스르륵 땅으로 떨어지면서 높으신 분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레드 카펫이 휘리릭 길을 만든다.


제일 처음 검을 뽑아볼 자는 최고의 권력을 가진 북의 나라, 베르티스 황국의 황태자 켄드릭 베르티스였다.


검은 가죽에 금장식을 덧댄 화려한 장갑을 낀 손으로 여유롭게 인사한 황태자는 레드 카펫을 따라, 용사의 검 앞에 섰다. 주변에서 환호성이 멈추지 않았다.


수려한 외모와 권력, 재력, 두뇌까지 모두 갖고 있던 그였다. 그런 자신이 용사가 아니면 과연 누가 용사란 말인가. 지켜보는 이들도 그렇게 생각했고, 황태자 본인도 그리 믿었다.


황태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모두가 긴장하며 환호를 멈췄다. 너무 조급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은지 황태자는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쭈욱 보았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아주 천천히 검을 뺐다.


스르릉-


바위에 깊게 박혀있던 검이 천천히 바위에서 뽑혔다. 황태자는 검을 높게 들었다. 본인도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빨리 정신을 차리고 크게 소리쳤다.


“짐이 선택받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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