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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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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251 회
조회수 :
9,604
추천수 :
452
글자수 :
1,515,958

작성
23.04.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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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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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3화 우연의 법칙 - 21

DUMMY

『말을 안 들으면 나도 멋대로 해줄게. 희한한 놈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더 이상한 녀석이잖아?』


“망할! 너 뭐냐고! 꺼지라고!”


서지터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 화아아아악!


그 순간 조금 전 느꼈던 강한 기운이 숨이 막힐 정도로 밀려 들어오는 걸 느꼈다. 쿵쾅거리며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소리마저 귓가에 크게 들려왔다.


“허억, 하아, 하아.”


턱턱 막혀오는 숨을 간신히 참아가며 서지터는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조금이라도 방심을 하다간 심장이 터져버려 죽을 것만 같았다.


‘마법사라도 숨어있었나? 이런 주문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어. 뭐야 대체.’


『마법사? 난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나는 이 순간부터 너야. 그리고 네 육체와 정신은 내 멋대로 조종할 거야. 나는 너니까.』


“하아, 하아, 하아.”


서지터는 허리를 숙여 입을 벌린 채 힘겹게 심호흡을 했다. 침이 질질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지고 있는 걸 보며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이제 됐어. 걱정하지 마. 힘들진 않을 거야. 아니지? 네 마음을 잠시 들여다보니 동료들은 끔찍하게 생각하던데 제정신이 돌아오면 네 손으로 직접 죽인 친구들을 보며 힘들어할지도 모르겠네?』


“허억, 허억. 닥쳐.”


“이 미친 자식아! 정신 차려!”


서지터의 귓가에 한스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 말에 서지터는 고개를 돌려 한스 쪽을 바라보았다.


“대체 왜······.”


시뻘건 광채를 내뿜는 서지터의 눈과 마주치자 한스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도무지 한스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황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당장에라도 친구를 진정시켜야 할 것만 같았지만 섣불리 서지터에게 다가갈 수 없을 만큼 공포를 느꼈다.


『방해하는 쟤부터 죽이자!』


한 걸음.


- 터벅.


다시 한 걸음.


- 터벅.


하지만 세 번째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서지터는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며 버텨내고 있었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한스와 레일라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면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일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친구들 근처로 가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아, 하아. 미친······!”


『뭐야? 너 아직도 버티는 거야? 이렇게 강한 놈은 처음이네. 네가 그러니까 더 굴복시켜버리고 싶잖아.』


“하아, 하아. 닥치라고 했지.”


- 투두둑. 부스럭.


“끄어어어.”


서지터에게 일격을 당한 모리에튼이 잠시 기절했다가 정신이 들자 밖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서지터의 주먹 한 방에 모리에튼의 코뼈는 부러지고 이빨 몇 개도 날아갔는지 그의 얼굴은 엉망진창의 모습이었다.


『좋아! 그럼 저놈부터 죽이자. 어때? 그건 너도 찬성하지?』


알 수 없는 목소리의 목표가 된 건 모리에튼이었다. 그 말에 서지터는 자연스럽게 모리에튼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 이제 내 말을 듣는구나? 시간은 충분해. 저놈부터 죽이고 생각하자고.』


“끄으윽! 개, 개자식!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머릿속의 목소리와 생각이 일치하고 그의 말대로 움직이자 숨쉬기가 조금은 편해진 서지터가 모리에튼 앞에 섰다.


“하아아, 너 나 알지?”


모리에튼 역시 겁에 잔뜩 질려 바지에 오줌을 지리면서도 최대한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크큭! 그, 그래. 기억하지. 내 팔 하나를 가져간 원수 같은 놈이니까. 그런데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판 건가?”


- 퍼어억!


“크아악!”


서지터는 대꾸도 하지 않고 모리에튼의 가슴을 짓눌러 밟아버렸다. 발 하나일 뿐이지만 엄청난 무게에 짓눌리는 것 같은 고통에 모리에튼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하아, 하아.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해.”


“망할 자식아! 끄억, 죽여버릴 거야!”


『뭘 물어보려고? 빨리 죽이기나 하자. 응?』


“넌 닥쳐. 이멜다 어딨어.”


“크아악! 놔, 놔주면! 놔주면 대답할게!”


모리에튼의 말에 서지터는 순순히 밟고 있던 발을 뗐다.


“흐아아아. 개자식! 그년 찾겠다고 이 지랄을 한 거야?”


- 뿌득! 뻑!


“끄아아아악!”


서지터는 망설임 없이 그대로 모리에튼의 팔을 부러뜨려버리자, 레프 해적단의 본거지는 모리에튼의 비명으로 가득 메워졌다. 부러진 팔꿈치 뼈가 살 밖으로 튀어나오는 걸 본 한스와 레일라는 두려움에 몸을 파르르 떨며 움직이지도 못하고 상황만 주시했다.


“대답해. 이멜다 어딨어.”


“끄으윽! 그년 내가 팔아버렸지. 헤르노아 공국 쪽 노예 상인한테 팔았어.”


“팔아?”


“이제 그년 제대로 걷지도 못해. 뻔질나게 도망치려는 거 내가 발뒤꿈치를 끊어버렸으니까. 크큭!”


고통에 정신을 반쯤 놓은 모리에튼은 줄줄 이멜다에 관한 이야기를 내뱉었다. 모리에튼 그 역시도 이곳 파로안 군도 출신. 그랬기에 기회만 있으면 달아나던 이멜다를 붙잡아 와 이곳의 전통 방식처럼 다리를 못 쓰게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비싸게 팔아먹지 못한 게 지금도 아쉬워 죽겠다고. 크큭!”


“다리를······.”


- 까드득.


서지터는 이가 갈렸다. 죄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 노예로 팔아버리며 다리까지 못 쓰게 만들어 놓는 악행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다 자신 때문에 이멜다가 그런 꼴을 당한 거 같아 눈물이 흘러나왔다.


『뭐야? 너 울어? 이러면 곤란해. 빨리 죽여버리자.』


머릿속의 목소리가 강한 어조로 말하자 서지터의 눈빛이 더욱 붉게 빛이 났다.


- 뿌드득! 꽈득!


“끄아악!”


어쩌면 이멜다가 비슷하게 당했던 것처럼 똑같이 앙갚음해주고 싶었다. 서지터는 모리에튼의 발목을 잡아 그대로 꺾어 부러뜨렸다.


“끄악! 그냥 죽여! 죽이라고! 개자식아!”


『그래, 쟤도 빨리 죽여달라잖아. 죽여! 빨리 죽여!』


“소원대로 죽여줄게. 천천히 고통스럽게.”


- 스릉.


서지터는 검을 뽑아 들었다. 결코 쉽게 죽일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팔다리를 하나씩 자르며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일 생각이었다.


- 와락!


“지터! 안돼! 여기서 더 나가면 돌이킬 수 없단 말이야! 죽이지 마!”


아리엘이었다. 어느새 이상한 눈치를 채고 달려온 아리엘이 서지터 등 뒤에서 그를 안으며 필사적으로 그를 말리려 애를 썼다.


『얘 말 듣지 마. 네가 아끼는 사람에게 고통을 준 놈이야. 죽여야 해!』


“죽이면 다 끝나! 다 끝난다고! 퓨리(Fury) 말 절대 들으면 안 돼! 지터가 저놈을 죽여야 자기 멋대로 할 수 있어!”


『뭐야? 얘 나를 알아? 이놈부터 빨리 죽여! 그다음 이 꼬맹이를 죽이자!』


“퓨리(Fury)?”


지금껏 서지터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목소리의 정체는 분노의 정령 퓨리였다. 광전사를 만들어내는 존재. 약한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어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걸 파멸시키게끔 만드는 존재가 분노의 정령 퓨리였다.


서지터는 몰랐지만 몇 년 전, 라피앤즈에서 벨크와 싸우던 중 약하긴 했어도 퓨리가 서지터에게 들러붙은 적이 있었다. 당시 유일하게 눈치를 챘던 건 당연하게도 정령사인 아리엘뿐이었고, 한스와 카데스에게 잘 지켜보라며 주의를 시킨 적이 있었다.


누구보다 정신력이 강한 서지터에게 퓨리가 나타날 리 없다며 한스는 펄쩍 뛰었지만 지금 그 퓨리가 서지터를 광전사로 만들어 놓기 직전까지 휘두르고 있는 꼴이었다.


“퓨리라······.”


한편 서지터는 퓨리란 존재에 대해 듣자마자 혼잣말처럼 그 이름을 중얼거리며 자신의 허리를 꼭 감싼 아리엘의 작고 가냘픈 손을 내려다보았다. 절대 놓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하듯 꽉 움켜쥔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흐아앙. 지터가, 지터가 이 자를 죽이면 여기 있는 우리도 지터가 다 죽일 거야. 절대, 절대 퓨리가 지터를 지배하게 만들면 안 돼. 제발! 제발!”


『안 돼! 얘 말 듣지 말라고! 넌 당장에라도 이놈 죽이고 싶잖아. 안 그래? 내가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힘을 줄게. 일단 이놈부터 죽여!』


“아리엘, 내가 너를 왜 죽여. 절대 그럴 일 없어. 걱정하지 마.”


서지터는 꽉 움켜쥔 아리엘의 떨리는 손을 다정하게 쓰다듬어주었다.


“응! 응! 지터는 안 그럴 거야! 믿어!”


『무슨 소리야? 이 꼬맹이가 우릴 방해하잖아! 내 힘이 필요하지 않아? 내가 세상 누구보다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게!』


아리엘도, 서지터의 머릿속에서 외치는 분노의 정령 퓨리도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서지터의 몸을 휘감았던 붉은 오로라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하아아, 진짜 쪽팔리네. 내가 퓨리 같은 하급 정령에 지금 이렇게 휘둘린 거야? 이 정도면 집안 망신인데?”


『뭐? 쪽팔려? 죽을 위기에 처한 너를 구해준 건 나라고!』


“웃기지 마. 너 아니었어도 아까 그 자식은 나 혼자서 충분히 이겨.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헛소리 작작 해. 너 따위한테 손을 빌릴 만큼 약하지 않아. 너 사람 잘못 골랐어.”


『그럼 별수 없지! 어떻게 해서든 내가 이 자를 죽여버릴 거야.』


- 찌이잉!


“큽!”


서지터는 머리가 깨질 정도로 아파져 왔다. 기절할 듯 휘청하며 몸이 기울어지는 걸 느낀 서지터는 분노의 정령 퓨리가 끝까지 발악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퓨리 입장에선 오래간만에 발견한 아주 쓸만한 먹잇감을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빨리 모리에튼을 죽여 살육하는 맛을 느끼게 해야 했다. 그런 순간이 지금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고, 주변에 모든 걸 파괴해버릴 만큼 서지터가 강하다는 걸 퓨리도 느끼고 있었으니까.


- 탓!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러면 되는 거지?”


- 푸훅!


“크헉!”


카데스가 서지터의 바스타드 소드를 낚아채 곧바로 모리에튼 가슴에 깊숙하게 찔러넣었다. 아리엘의 뒤를 따라오던 카데스는 그녀의 처절한 외침에 대강 어떤 상황인지 눈치채고 서지터 대신 모리에튼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라피앤즈에서 아리엘의 경고가 늦긴 했지만, 효과를 본 셈이었다.


『아아아악! 망했어! 이 자식이 다 망쳤어!』


- 스스스스.


순식간에 옅어졌던 붉은 오로라가 완전히 사라지며 붉은 광채를 내뿜던 서지터의 눈빛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분노의 정령 퓨리의 마지막 외침에 서지터는 온몸의 힘이 풀리며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아버렸다.


- 털썩.


“하아아, 아리엘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기운 없는 얼굴로 서지터는 아리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냐! 아냐! 원래대로 되돌아왔으면 된 거야. 잘했어. 정말 잘했어. 퓨리를 이겨낸 사람은 없다고. 그런걸 지터가 해낸 거야.”


어느새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아리엘이 기쁜 얼굴로 눈물을 훔치며 안도했다.


“왜 그딴 게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 쿵!


“지터!”


서지터는 말을 채 끝마치지 못하고 그대로 자리에 고꾸라져버렸다. 깜짝 놀란 아리엘이 서지터의 몸을 흔들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일어나. 응?”


“크허어어.”


“괜찮아. 쟤 자는 거 같아.”


“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아리엘이 고개를 들어 카데스를 올려다보았다. 카데스는 살짝 웃어 보이며 당황한 아리엘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흐아앙! 정말!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못 됐어! 흐아앙!”


결국 아리엘은 목 놓아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코를 골며 뻗어버린 서지터가 얄미웠는지 작은 손으로 투닥투닥거리며 그의 등을 때려버렸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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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3화 우연의 법칙 - 20 23.04.20 45 2 14쪽
70 3화 우연의 법칙 - 19 23.04.19 45 2 13쪽
69 3화 우연의 법칙 - 18 23.04.18 41 2 13쪽
68 3화 우연의 법칙 - 17 23.04.17 48 2 12쪽
67 3화 우연의 법칙 - 16 23.04.14 38 2 12쪽
66 3화 우연의 법칙 - 15 23.04.13 42 2 13쪽
65 3화 우연의 법칙 - 14 23.04.12 39 2 15쪽
64 3화 우연의 법칙 - 13 23.04.11 47 2 12쪽
63 3화 우연의 법칙 - 12 23.04.10 39 2 15쪽
62 3화 우연의 법칙 - 11 23.04.07 40 2 14쪽
61 3화 우연의 법칙 - 10 23.04.06 48 2 12쪽
60 3화 우연의 법칙 - 9 23.04.05 40 2 12쪽
59 3화 우연의 법칙 - 8 23.04.04 38 2 14쪽
58 3화 우연의 법칙 - 7 23.04.03 43 3 12쪽
57 3화 우연의 법칙 - 6 23.03.31 61 3 17쪽
56 3화 우연의 법칙 - 5 23.03.30 48 3 12쪽
55 3화 우연의 법칙 - 4 23.03.29 45 3 13쪽
54 3화 우연의 법칙 - 3 23.03.28 45 3 12쪽
53 3화 우연의 법칙 - 2 23.03.27 49 3 13쪽
52 3화 우연의 법칙 - 1 23.03.24 55 3 13쪽
51 2화 보이지 않는 위험 - 25 23.03.23 51 3 12쪽
50 2화 보이지 않는 위험 - 24 23.03.22 47 3 14쪽
49 2화 보이지 않는 위험 - 23 23.03.21 41 3 15쪽
48 2화 보이지 않는 위험 - 22 23.03.20 49 3 13쪽
47 2화 보이지 않는 위험 - 21 23.03.17 48 3 13쪽
46 2화 보이지 않는 위험 - 20 23.03.16 4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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