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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님의 서재입니다.

해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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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작품등록일 :
2012.11.19 13:33
최근연재일 :
2017.12.2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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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0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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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2쪽

해의 그림자 213

DUMMY

오지 말라고 숙종은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훌쩍 다가오고 말았다. 아까부터 줄곧 안절부절하는 그 자신의 모습을 의아히 쳐다보면서.


"무슨 일이..."

"글쎄요. 무슨 일일까요?"


대비 김씨는 비웃듯이 장고 문짝의 문고리를 잡았다. 경첩이 삐꺽 소리를 내며 장고 문짝이 딸깍 열렸다. 대비 김씨는 기세 좋게 문짝을 열고 아들을 돌아보았다. 아들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하였다. 대비 김씨는 입꼬리를 비틀어 웃더니 한발한발 장고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가지..."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내뱉다가 삼키는 아들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자신에게 건네는 말인지, 며느리한테 건네는 말인지 헷갈렸다. 계속해서 걸음을 내딛는데, 더는 말리지 않는 것을 보니, 자신에게 하는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역시 며늘아이한테 했던 말이던가.


대비 김씨는 미친 듯이 치미는 울화를 겨우 삭였다. 그래도 혹시라도 말려주길 바라며, 대비 김씨는 계속해서 문턱을 넘어 발치의 전돌바닥을 밟았다. 하지만, 아들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안으로 들어서길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서너걸음 더 안으로 들어선 순간 그녀는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며,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장고의 맨윗단에는 장고상궁이 커다란 오지독에 기대어 앉아서 두눈을 내리감고 미동조차 없었다.


"주...."

"들어가지 마시..."


대비 김씨는 파르르 떨리는 손끝으로 장고상궁을 가리키려다, 아들의 음성을 듣고 흠칫 놀라서 자신의 복장뼈 밑을 꾹 눌렀다. 누구에게 말한 건지...한순간에 현기증이 확 일어서 그녀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한두걸음 뒷걸음질 쳤다. 뒷걸음질 치다 보니 발뒤축이 누군가의 앞코에 닿았다. 허리쪽엔 누군가의 손등도 닿는 듯 하였다. 대비 김씨가 곁눈으로 돌아보니 붉은 치맛자락이 보였다. 시어미와 부딪힐 뻔 하자 바로 복중태아를 보호하겠다고 복부를 감싸안다보니 손등이 닿은 것이었다.


"어마마마?"

"아..."


휘청거리는 시어미의 모습에 놀랐는지, 진홍의 팔꿈치를 잡은 숙종의 손가락이 살짝 풀렸다. 진홍은 영문도 모르고 황망히 다가들어 시어미의 팔꿈치를 잡고 부축을 하였다. 시어미가 한번 쓰러진 몸으로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무리였다. 문을 열다가 가슴 쪽이 뻐근할 수도 있었다.


"괜찮으시옵니까?"

"좀 놀란...것 뿐이다."


대비 김씨는 자신도 모르게 거칠어진 숨결을 고르며, 힘겹게 대꾸했다. 벌써 며느리를 보호하겠다고 아들과 두광이놈이 다가서는 참이었다.


"예?"


진홍은 의아히 고개를 돌려서 장고의 기단쪽을 돌아보다가, 맨윗단의 대형 푸레독에 기댄 장고상궁의 시신을 보았다. 한손엔 마른 걸레를 힘없이 잡고서, 두눈을 감고 무릎꿇고 앉아서 앞이마를 대형 푸레독에 기댄 것이, 장독을 닦다가 깜빡 잠든 것 같기도 하였고, 워낙 연로하여 혈압이 솟거나 하여 의식을 잃은 것 같기도 하였다.


"어의를..."

"보지 마시..."


진홍은 자신도 모르게 본능처럼 두손으로 복부를 감싸쥔 채로 숙종을 돌아보았다. 불안한 탓인지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의를 불러달라는 말이 혀끝에서 맴돌았다. 그 모습을 보자, 숙종은 진홍이 아픈 줄 알고 놀라서 얼른 바짝 다가섰다.


"왜 그러오, 배가 아프오?"

"제가 아니라, 저기 장고상궁이..."

"장고상궁...?"


숙종은 미간을 확 찡그리고 기단쪽을 돌아보았다. 맨윗단 커다란 푸레독에 정말로 장고상궁이 무릎을 꿇고 웅크리고 앉아서 죽어 있었다. 얼핏 죽은 것 같기도 하고, 잠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멀쩡히 잠들어 있을 리가 없었다. 숙종은 서둘러 진홍의 두팔을 잡고 자신의 어깨로 시야를 가리려고 애쓰면서 두광에게로 두눈을 부랴렸다.


"시신을 정리해라."

"예, 전하."


두광도 신속하게 장고상궁의 시신 앞으로 다가섰다. 손가락을 장고상궁의 코끝에 대어보는 것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장고상궁의 시신을 한단 끌어올려 푸레독 뒤로 돌려놓을 뿐이었다. 하지만 두광이 진홍의 눈앞에서 송장을 치우는 것보다는 진홍의 눈앞을 가리는 쪽이 더 빨랐다. 숙종은 오른손을 뻗어 진홍의 두눈을 가렸다. 그런데 우묵한 손바닥에 진홍의 수북한 속눈썹 끝이 닿았다. 두눈을 깜빡이는 그 감촉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전하, 어의를...두광아 뭐하느냐, 장고상궁을 내의원에..."


진홍은 숙종과 두광을 보채다 말고, 분위기가 이상하여 두눈이 커다랗게 홉떠졌다. 이제는 지아비가 두손으로 자신의 두눈을 가리는 참이었다. 너무도 놀라서 그저 말도 잇지 못하고 두눈을 파르르 깜빡일 뿐이었다. 시어미도, 지아비도, 두광도, 장고상궁을 보자마자 이미 보나마나 뻔한 듯이 산사람이 아닌 죽은사람 대하는 태도였다. 어째서, 그래도 숨은 붙어 있을 수도 있는데...


"이상한 일이군요. 열쇠는 중궁한테 있는데, 장고상궁이 장고 안에 갇혀서 죽어 있다니요."


카랑카랑한 시어미의 목소리가 진홍의 귓속을 후벼파는 듯 했다. 진홍은 두눈을 크게 뜨고 시어미를 쳐다보았다. 시어미는 자신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아비만 비웃듯이 쳐다보는 참이었다. 기분 탓일까. 방금 시어미는 자신에게 혐의를 두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진홍은 뭔가 느낌이 이상했지만, 시어미의 의중을 파악하는 대신 지아비와 두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두광은 두광대로, 한손으론 장고 열쇠 두개를 꼭 쥐고, 또 한손으로는 품속을 더듬으며 대비 김씨를 슬며시 흘겨보는 참이었다. 장고상궁에게서 압수한 장고열쇠, 그리고 지금 중궁에게서 인수한 장고열쇠...그렇게 두벌의 장고열쇠가 모두 자신의 수중에 있었다. 두광은 품속의 열쇠를 꼬옥 쥐고서 숙종의 눈치를 보았다. 숙종 역시 어미가 진홍에게로 혐의를 돌리는 것이 거북한지, 미간을 찡그리는 참이었다.


"두광아, 중궁을 데리고 어서 장고를 나가라."


숙종은 한결 빨라진 목소리로 두광에게 명하였다. 손끝 발끝이 모조리 피가 차갑게 식은 느낌이라, 그 스스로도 자신의 목소리에서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예이, 전하."


두광도 냉큼 대답하고 문간으로 다가가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진홍에게 어서 납시라는 듯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이미 장고상궁의 시신까지 보았으니 중궁의 충격도 어마어마할 터였다. 어서 중궁이 여기서 나가야지 뱃속의 아기씨를 보전할 수 있을 터였다.


"전하..."


진홍은 그 자리에 오도카니 서서, 숙종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된 내막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장고상궁은 죽었다. 시체를 확인하지도 않고, 그 죽음을 다들 이상하리 만치 확신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자신을 서둘러 내보내려는 것이었다. 그래선지, 왠지 장고 문턱을 넘는 것이 불안했다.


"어서! 나가시오."


숙종이 무섭게 내리깐 음정으로 한마디한마디를 도끼로 찍어서 쪼개듯이 독촉했다. 어쩔 수 없이 진홍도 장고를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문쪽을 향해 돌아서기 무섭게, 시어미의 신랄한 목소리가 등줄기를 파고들었다.


"왜요? 중궁도 알 건 알아야지요. 장고상궁이 여기서 갇혀 죽었고, 그 열쇠를 가진 사람은 중궁 뿐이니, 주상께오서도 떠본 것이 아니십니까? 중궁이 의심스러워서."


복부를 한손으로 감싸고 조심스레 전돌바닥을 딛던 진홍의 발걸음이 그대로 굳었다. 바닥에 전돌이 깔린 덕에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문턱의 높낮이 때문에 한순간에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했다. 진홍은 문설주를 붙잡고 겨우 중심을 잡았다. 놀란 지아비의 음성이 날아왔다.


"중궁! 괜찮소?"


진홍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걱정어린 지아비의 음성이 들리는데도, 갑자기 자신의 귀에 물이라도 찬 것처럼 윙윙거렸다. 지아비가 자신을 떠본 거라는 시어미의 말은 틀리질 않았다. 야속하게도 지아비는 의심을 품고서 자신을 떠본 것이 확실했다. 처음부터 지아비에게 불신과 경계를 겪을 만큼 겪었지만, 최근 몇년간은 깊은 신뢰로 묶였다고 믿었던 탓인지, 어쩐지 지금은 너무도 뼈아팠다. 그런 자신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려는 건지, 시어미는 또 다시 지아비에게 재우쳐 물었다.


"내 말이 틀립니까, 주상?"


어미의 시선이 숙종의 동공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숙종은 바로 대꾸하지 않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어쩐지 어미가 자신과 중궁 사이를 이간질하는 느낌이었다. 섣불리 답하면 어쩐지 후회만 들 것 같았다.


"그러게, 또 하나의 열쇠는 소자한테 있었는데 말입니다."


숙종은 손을 뻗어서 여전히 품속을 더듬는 두광의 오른손을 꽉 붙들었다. 그리고 확 잡아당겨서 빼내어 보였다. 감출장藏자가 똑똑히 새겨져 있었다.


두광은 아차 싶은 눈빛으로 숙종을 쳐다보았다. 지금 열쇠의 존재를 드러내선 안되었다. 하지만 저 지랄맞은 성미가 문제였다. 왕은 중궁에게 의심이 쏠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열쇠의 존재를 밝혀버린 것이었다.


두광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대비 김씨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의심하는 것은 대비 김씨였다. 그런데 대비 김씨가 빠져나갈 구멍만 더 만들어준 느낌이었다. 대비 김씨의 입가가 실룩였다. 하지만 그리 놀란 눈빛은 아니었다.


"주상도 열쇠가 있었단 말입니까?"

"예, 그리고 장고상궁이 죽은 곳도 여기 장고가 아니라 저기 내옥이었사옵니다. 내수사 전수 말로는, 장고에 시신을 유기한 죄로 내옥에서 조사를 받던 중에...갑자기 죽었다고 하더이다."


숙종은 간단히 설명하고선, 벙찐 얼굴로 자신을 보는 두 여인의 시선을 가만히 받아냈다. 장고열쇠가 있었는데도, 여태 없는 척 자신들을 속이고 미끼를 던진 숙종의 행동에 배신감을 느꼈을 법도 했다. 숙종은 두눈에 초점을 잃고 자신을 보다가 점점 짙어지는 진홍의 시선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얼른 시선을 비꼈다. 사과는 쉽사리 나오질 않았다. 저 커다란 눈망울에 일렁이는 실망감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진홍의 시선을 피하고 어미의 시선을 똑바로 맞설 뿐이었다.


"허면, 중궁을 시험했단 말입니까?"

"어찌 소자가 중궁만 시험했겠나이까."

"뭐라구요?"

"소자가 이리로 어마마마를 왜 모셨겠나이까."


대비 김씨는 숙종을 마냥 낯설게 쳐다보았다. 참으로 고약했다. 눈앞의 이 어린 사내가 정녕 자신의 아들이 맞나 싶었다. 열달 품어서 낳고, 스무해를 기른 아들이 맞는 건지, 씨도둑을 못한다지만, 밭도둑이야말로 못하는 법이었다. 엄연히 자신이 배 불러서 낳은 아들이었다. 낳고 나서 누군가, 혹시라도 지아비가 다른 계집에게서 본 씨앗과 바꿔치기를 했으면 몰라도, 온몸이 뻐근하니 뽀개지는 듯이 무시무시한 산고를 겪으며, 온힘을 다해서 세상의 문을 열어준 자신의 핏줄이었다. 아주 잠시, 얼토 당토 않는 망상이 뇌리를 스치는 것을 느끼고 대비 김씨는 고개를 저었다.


내 아들...


아들이 맞았다. 그저 이 계집과 살을 섞다 보니, 얼도 잠시 섞인 모양이었다. 며늘아이만 사라져 주면 원래대로, 한치도 틀림 없는, 추호도 어김 없는 자신의 착한 아들로 돌아올 터였다. 며늘아이만 없어져 주면 되는 일이었다.


"중궁은 홀몸이 아니니 이만 들어가시오."


며느리를 보채는 아들의 음성을 귓결에 들으며 대비 김씨는 원독 어린 눈길로 진홍의 복부를 쳐다보았다. 갓 불러오기 시작한 배를 보니, 이제는 저 안에 손주가 든 것이 느껴졌다. 미우나 고우나, 복중태아는 자신의 핏줄이 닿은 손주였다. 하지만 탯줄은 닿지 않은 손주일 뿐이기도 했다. 최석정의 말마따나, 도끼자루를 몰래 밥상 아래로 감춘다거나 한밤중에 우물물 위로 얼굴을 비춘다거나 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은, 기실은 기가 허한 딸은 일찌감치 떨구고 아들만 낳고자 하는 통념이 반영된 것이 맞을 지도 몰랐다. 인정하기 싫어도, 부정하지도 못하니.


"하오면 이만..."


진홍이 대비 김씨 자신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살금살금 물러가는 옆모습을 보면서도, 숙종은 진홍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대비 김씨는 발뒤꿈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숙종의 눈엔 마냥 계란처럼 고운 얼굴이었지만, 대비 김씨의 눈엔 그냥 계란처럼 깨지기 쉬운 발뒤꿈치였다. 발뒤꿈치가 정말로 깨질까봐 불안한 게 아니었다.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정말로 혼은 물려줄 수 없어도, 한은 물려줄 수 있는 건지, 며늘아이만 보면 속절 없이 가슴 밑바닥에서 시척지근한 신물이 올라왔다. 물론 아들이야 자신과는 반대로 달착지근한 단물이 올라오겠지만.


눈앞에서 장고 문이 닫히고, 아들과 단둘만 남자, 대비 김씨는 사나운 눈길을 숙종에게 던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했다. 이 드높은 담벼락 만큼이나 오래된 장고에서 언제 죽었는지도 모를 백골사체 한구 쯤 나왔다고, 이 소동을 벌였단 말인지. 그것도 말로는 중궁과 자신을 똑같이 의심했다지만, 정말로 똑같이 의심하긴 했는지도 미심쩍었다.


"똑같이 시험을 해요? 똑같이요?"


좀전에 아들이 했던 말을 곱씹으며, 기어이 따져묻고 마는 대비 김씨였다. 아들이 자신과 며느리를 똑같이 의심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공평이라고는 모르는 아들이었다. 아들의 속은 아래로 한껏 기울어진 거룻배인지 용두레인지와 같아서, 물이 고이다가도 어느 순간 흘러내렸다. 그게 아들이었다.


아짓거리면서 걸음마를 할 때도, 어미의 손보다는 아비의 손을 더 잡고 걸으려 들었고, 한번 아비의 손을 잡으면, 손바닥에 땀이 고여 손금마다 찐득하게 끈적거릴 때까지도 놓지 않았다. 사람을 믿으면 계속 믿고, 또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그저 믿기 위해 시험했을 뿐이옵니다."


숙종은 어미와 긴말을 나누고 싶진 않은지 짧은말로 대꾸했다. 하지만 눈빛은 그저 담담하고 당당했다. 대비 김씨는 자신도 모르게 입이 반쯤 벌어졌다. 뭘 잘 했다고 저리 뻔뻔한 건지,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믿기 위해 의심을 했다니. 대비 김씨는 입가를 실룩이며 비식비식 비웃었다.


"믿기 위해 시험을 한 거나, 시험을 하면서 믿는 거나...뭐가 다릅니까? 그게 의심이지."

"..."

"내 속으로 낳은 내 아들 속을 내가 모를까. 주상은 원래가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지요. 이 어미도 못 믿는 주상이, 어찌 아내를 믿겠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대비 김씨의 모진 발언은 그대로 정곡을 찔렀다. 숙종은 움찔하는가 싶더니, 지지 않고 대꾸했다.


"중궁을 믿기 위해 시험한 것이 아니라, 어마마마를 믿기 위해 시험했을 뿐이옵니다."

"뭐라구요?"

"중궁이야 아직은 의심하고 싶어도 의심할 수가 없을 만큼 순박하지요. 그건 어마마마께오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뭐요? 무슨 소릴..."

"여기 장고에서 손뼈가 하나 나왔습니다. 누구 소행이겠습니까?"

"이 어미라...그리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

"중궁은 누굴 죽일 아무 이유도 없는 사람입니다. 누굴 죽여야 할 이유가 어마어마하게 많으신 어마마마와 달리."


숙종은 지랄맞은 성미 만큼이나 대꾸도 신랄했다. 어미가 자꾸만 자신을 자극할 수록 말투는 더욱 고약해졌다. 그럴수록 대비 김씨는 울화가 치밀어서, 낯빛은 물론 눈빛까지 시뻘겋게 물드는 듯 했다.


"중궁이 사람 죽일 이유가 없어요? 없어요? 하! 왜 없습니까? 무려 네차례나 제 속으로 품은 아기들을 잃어서, 그 속이 시뻘겋게 헐었는데. 왜 없습니까? 그렇게 만든 작자들을 하나둘씩 다 주상의 손을 빌려 응징해온 것이 중궁인데. 왜 없습니까? 중궁의 차에 반하를 타서 난산을 시킨 것이 상아인데. 주상은 모르십니다. 새끼 잃은 어미의 한이 얼마나 독한지."

"상아요?"


뜻밖의 이름이 어미의 입에서 나오자, 숙종은 흠칫하여 어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손끝부터 발끝까지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김석주가 상아를 시켜 진홍의 그림을 빼돌린 것을 이미 알기는 했었다. 당연히 어미도 상아의 배신에 관여했을 터였다. 그래서 굳이 상아에 대해서 문제를 키우질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어미가 갑자기 상아의 이름을 언급했다. 그것도, 중궁의 음식에 반하를 타서 난산을 시킨 것이 상아라며.


"반하요?"

"아, 비소였나."


대비 김씨는 머뭇하며 바로 말을 정정했다. 워낙 흥분해서 말이 헛나왔던 건지, 아니면 숙종을 떠보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중궁의 세번째 회임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잘못되었을 때, 내의원에서 파악했던 중궁의 태루복통 원인은 그저 중궁의 자궁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암암리에 백어의가 파악한 원인은 비소중독이었다. 물론 그저 비소중독이라 어림짐작했을 뿐, 백광현마저도 단언하진 못하였다. 뭔가 비소 같은 약재가 중궁의 복중태아에게 영향을 끼쳐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죽은 것이라고 추측하는 정도였다. 진홍 역시 비소 중독을 제일 먼저 의심했었다. 숙종은 눈시울을 실룩이며, 자신의 어미를 곁눈으로 흘겨보았다.


"상아가 중궁의 차에 비소를 탔다구요? 무슨 근거로 그리 믿으시옵니까?"

"예?"


대비 김씨는 잠시 멈칫하며, 두눈을 깜빡이지도 못하고 숙종을 쳐다보았다. 중궁이 저번 회임 때 태루복통을 일으키고, 난산 끝에 겨우 태어난 공주가 다음날로 죽은 것을, 왕도 백광현도 중궁의 측근인 상아나 우희를 한번도 의심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의심하는 법인데도.


"주상께오서도 의심을 하셨으니 내보낸 것이 아닙니까?"

"상아는 외간사내와 눈이 맞은 죄로 내보냈사옵니다. 원래는 교형을 시키려다, 중궁의 본방나인일 뿐인데다, 중궁의 간곡한 부탁으로 선처한 것이지요."


숙종은 서늘한 눈초리로 어미의 눈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면서 대꾸했다. 대비 김씨는 움찔해서 두눈을 깜빡였다. 외간사내라는 넉자가 심상치 않게 들렸다.


"외간사내?"

"상아가 드나들던 서화전書畵廛에서, 상아가 외간사내와 밀회를 가졌다는 얘기가 있었사옵니다. 하여 서화전주를 비롯해서, 거기 드나드는 화공, 화객들을 모조리 족쳐볼까 하다가, 중궁이 일을 키우길 원치 않아서 참았사옵니다."

"..."

"인내심 짧은 저로서는 참으로 힘들었사옵니다."


숙종이 생색을 내듯 곁눈으로 대비 김씨를 돌아보며 한마디 쐐기를 박았다. 대비 김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좀더 턱을 치켜들고 윗눈꺼풀을 꿈틀거리면서 밑눈으로 숙종을 쳐다볼 뿐이었다. 하지만 내심 켕기기는 하였다.


서화전주와 화객들을 족치겠다?


서화전은 물론 재산루까지 들쑤시겠다는 선전포고 같았다. 서화전의 누군가가 상아를 꼬드겨서 중궁을 배신하게 하였으니, 그 누군가를 잡아내겠다는 얘기였다. 그래봤자 결국엔 재산루까지 들쑤셔서 벌집 건드릴 꼴이 되고 말 터였다. 사촌오라비 김석주는 결코 앉아서 손놓고 당할 위인이 아니었으니.


"소자, 이만 윤대가 있어서 물러가옵니다. 어마마마께오서도 보중하시옵소서."


숙종은 공손히 허리를 숙여보이고서 문앞으로 다가섰다. 대비 김씨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 더운 한여름에 손끝이 아릿했다. 아들을 낳고 산후풍을 앓느라 간혹 한여름에도 손가락 마디마디가 시리고 저리긴 하였지만, 지금은 아들의 모진 태도 때문에 입은 심적 타격 탓이 컸다.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며느리 편만 들 수가 있는 건지. 게다가 여차하면 자신의 사촌오라비까지 건드릴 태세라니. 아니, 이번엔 정말로 해치려 들었다. 자신이 아끼는 최석정을 건드렸다는 이유 만으로.


대비 김씨는 문득 혀끝이 너무도 맵게 느껴졌다. 혀뿌리가 당길 정도였다. 아비도 허망하게 손놓고 보냈는데, 가문의 장손인 사촌오라비마저 속절없이 잃을 수는 없었다. 아니, 사촌오라비가 아니라 자신이 더 위태위태했다. 아들은 몰랐다. 지금 어미의 연못에 물이 불어서 턱밑까지 차오른 것을 몰랐다. 지금 어미가 어떤 지경인지 알면, 이렇게까지 어미의 손발을 다 잘라내려 들지는 않을 지도 몰랐다. 지금 아들이 지켜야 하는 것은 자기 아내가 아니라, 어미였다. 그걸 왜 모르는지 답답했다.


- 주상은 모르십니다. 새끼 잃은 어미의 한이 얼마나 독한지.


숙종이 통명전에 돌아오니, 월대 왼쪽에 떡하니 놓인 청동드므의 고리 하나에 고삐가 묶인 채로 가운데 섬돌까지 와서 느른하게 엎드려 조는 삽살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새끼손가락 만한 굵기의 왼새끼줄을 목에 두르고도, 처마 밑까지 와서 팔자 좋게 쉬는 모습을 보니 숙종은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걸음이 멈칫했다.


"왜 또 이놈의 개가 섬돌까지 온 거냐?"

"그야...줄이...."


먼저 와서 월대를 서성이던 두광은 숙종의 눈치를 보며 답하였다. 연회 때 차일을 세우기 위한 용도로 월대 바로 밑에도 박아놓은 차일고리에 김석하가 고삐를 묶어두었는데, 줄이 너무 길었다. 섬돌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면 가새로 싹둑 잘라서 절반으로 줄여야 할 것도 같았다.


"그럼 줄을 줄이든지! 딴데 묶든지! 섬돌에 오지 못하게 하란 말이다."

"예? 예..."


낮게 깔린 목소리로 한마디 언질을 주고 숙종은 통명전 섬돌을 올랐다. 하지만 눈에 들어온 서온돌을 보니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어미가 내던진 말들이 고막에 꽂혀서 그대로 뇌리를 찔러들었다. 애써 무시하려 해도, 한마디 말이 유독 생선등뼈처럼 울대에 걸렸다.


새끼 잃은 어미의 한이라...


자신도 알았다. 밤마다 고양이울음에 진홍이 홀린 듯이 서온돌을 나와서 버선발로 섬돌을 딛고 내려서는 것을, 어디선가 아기울음이 들린다며 괴로워 하는 것을...똑똑히 기억했다. 그래선지 어미가 남긴 말이 고막을 찌른 채로 뽑히지도 않는 느낌이었다.


"전하 발 좀..."


섬돌을 디딘 채로 발꿈치를 들지도 않자, 두광이 낑낑거리며 불렀다. 하지만 숙종은 대답이 없었다.


"전하, 발 좀..."

"..."

"즌하..."


두광은 계속해서 몇번이고 부른 끝에 겨우 왕의 주의를 끄는 데에 성공했다. 호칭을 바꾸어 부르니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는지, 왕의 턱선이 꿈틀했다.


숙종은 여전히 넋나간 얼굴로 발치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한참 쳐다보고서야 두광이 자신을 자꾸만 부르는 이유를 알아차리고 발꿈치를 들어주었다. 하지만 두광이 목화를 미처 벗겨내기도 전에, 숙종은 바로 대청 툇마루로 올라서서 서온돌을 돌아보았다. 지밀나인들이 황망히 서온돌 방문을 열었다. 방안에서 서안 위의 책자를 들추던 진홍이 흠칫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무릎맡엔 웬 검은 삼베보따리가 반쯤 접혀 놓인 채였다.


"두광아, 장고열쇠는 돌려주었느냐?"

"예? 아..."


두광은 깜빡 잊었다는 얼굴로 품속을 더듬어 열쇠를 꺼냈다. 두광이 열쇠를 바치려 진홍에게로 엉금엉금 다가왔다. 문갑을 열고 직접 넣어야 할 지, 아니면 이대로 중궁의 서안 위에 올려둬야 할 지, 갈피를 못 잡아서 꾸물대는 모양이었다.


"이리 다오."


진홍은 두광에게 무심코 서안 위를 가리켜 보였다. 두광이 문갑에 넣어두기 전에 장고열쇠를 한번 더 살피려는 건지, 아니면 두광이 문갑 속을 들여다 보는 것을 꺼리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배려하는 건지, 그 이유도 스스로 몰랐다. 두광 역시 별 생각 없이 장고열쇠를 들고 서안 앞으로 다가들었다.


"여기 있사옵니다."


두손으로 공손히 장고열쇠를 바치며 시선을 내리깐 두광은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그저 두눈에 늘 보던 것들이 보였을 뿐이었다. 두루마리나 종이들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도록 양쪽 가장자리가 꺾인 듯한 모양새의 왕의 서안과는 달리, 혹시라도 복부를 찌르거나 할 위험이 없도록 가장자리가 오히려 뭉특하게 다듬어진 중궁의 서안엔 그저 연꽃형태의 연적과, 마찬가지로 연꽃문양이 새겨진 남포벼루, 그리고 중궁의 서안 위에 늘 올려져 있는 서책들...뒤로 물러나기 위해 엉덩이를 쳐들던 두광의 두눈에, 서안 위의 책자가 퍼뜩 눈에 들어왔다.


이건...


두광의 눈가가 세차게 꿈틀거렸다. 우물정井자로 칸이 쳐진데다, 이민서李敏敍, 김석주金錫胄, 최석정崔錫鼎처럼 익숙한 한자이름들이 칸칸이 나열되고, 수결까지 된 것이, 심지어 부진不進이란 직인까지 찍힌 것이, 한눈에도 옥당 공좌부였다.


이럴 수는 없었다. 두광은 두눈을 의심하고 두눈을 지릅뜨고 옥당 공좌부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눈빛으로, 동공이 활짝 열린 눈으로 진홍을 멍청히 보았다.


"중전마마..."


진홍은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오른손으로 옥당공좌부 지면을 가리려다 멈칫했다. 진홍은 당황한 기색으로 옥당 공좌부와 두광의 얼굴을 번갈아서 쳐다보았다. 두광을 보는 그 두눈에는 잠시 당혹스런 감정이 휘몰아쳤지만, 이내 더 짙은 탐색의 빛을 띠고, 진홍은 두광의 얼굴을, 그 등뒤의 지아비의 얼굴을 물끄러미 살폈다.


두광은 두눈동자가 어지러이 미동하는가 싶더니, 등줄기도 요동쳤다. 어떻게 이 물건이 중궁의 서안 위에 있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 그저 등뒤의 숙종을 신경쓰느라 어쩔 줄을 몰랐다.


워낙 당황하는 티가 났다. 숙종은 미심쩍은 눈길로 두광의 등줄기를 훑고, 이어서 진홍의 서안 위를 내려다보았다. 두광의 어깻죽지에 가려서 보이지가 않아서, 숙종은 손을 뻗어 꾹 누르고, 다시 상체를 세우는 두광의 어깻죽지를 또 누르고, 그렇게 시야를 확보했다. 그런데, 숙종의 두눈에도 낯익은 책자가 들어왔다.


우물정井자로 칸이 쳐진 것이, 첫눈에도 책자가 아니라 장부였다. 그것도 숙종의 두눈에 가장 친숙한 최석정崔錫鼎이란 이름 석자부터 한눈에 들어왔다.


"최석..."


숙종은 허겁지겁 덤벼들어 옥당 공좌부를 집어들었다. 두광이 화들짝 놀라서 한발 옆으로 비켜서며 숙종을 돌아보았다. 옥당 공좌부를 펼쳐들고, 마치 세차게 싸리비를 휘두르는 듯한 시선으로, 숙종은 옥당 공좌부를 훑어보았다.


역시나 옥당 공좌부였다. 그것도 권언적의 이름이 빠진데다, 최석정이 손가락을 쪽쪽 빨며 넘긴 티가 귀퉁이에 남은, 틀림 없는 진본이었다. 충격으로 숙종의 동공이 요동쳤다.


"이게 왜..."

"왜 그러시옵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눈망울로 되묻는 진홍을 보니 숙종은 기가 찼다. 서안 위에 떡하니 옥당 공좌부를 올려놓고, 그 이유를 몰라서 되묻다니. 그는 입가로 새어나오는 헛웃음을 참으려고 억지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몰...몰라서 묻소?"


숙종은 충격으로 양쪽 눈시울이 파르르 떨렸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게 찾던,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던 옥당 공좌부가 하필이면 중궁의 서안 위에서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두광을 시켜 문갑 첫칸에서 칠보목함을 꺼내게 할 때, 맨밑에 검은 삼베보자기에 싸인 물건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삼베보자기가 놓여 뒹구는 것이, 어쩐지 께름칙했다.


자꾸만 걸리적거리는 검은 삼베보자기를 내려다 보고서, 숙종은 고개를 들어서 진홍을 쳐다보았다. 진홍을 보는 그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해쓱한데, 두눈엔 시뻘겋게 핏발이 섰다.


"대체 왜..."


숙종을 보는 진홍의 두눈에 동공이 커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 가지면 안될 물건을 가졌다는 사실, 그것 만큼은 확실히 알았다.


"누군가 신첩에게 맡긴 물건이온데..."


숙종의 눈빛이 다시금 요동쳤다. 이상했다. 하필이면 지금 진홍이 저 공좌부를 꺼내서 살펴보는 것도, 그리고 어미가 저걸 맡긴 것도, 두눈으로 보고도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확실한 건 지금 저 옥당공좌부가 진홍의 손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설마...어마마마께오서...?


물어보기도 겁이 났다. 이제는 어느쪽도 도저히 의심할 수가 없었다. 어느쪽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이 와중에도 진홍은 결백하다고 믿고 싶었다. 정말 믿고 싶었다.


어미 짓이었다. 봉숭아물을 들인 어미의 손끝만 봐도 분명히 어미 짓이었다. 하지만 옥당 공좌부는 진홍의 손에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번에도 어미가 중궁에게 떠넘기려고 한 건가? 그것도 반하독이 묻은 걸 뻔히 알면서? 미쳤다고, 손주를 품은 며느리한테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지. 어미가 그렇게 미치지는 않았다. 봄볕엔 딸을 쬐이고, 갈볕엔 며느리를 쬐인다지만, 이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진홍이 이런 일을 꾸밀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흔들리는 숙종의 두눈을 보면서, 진홍 역시 두눈이 사정 없이 흔들렸다. 이미 시야가 온통 뒤흔들리는 참이었다. 웬 검은 삼베보자기를 들고 와서 성의를 보여달라고, 시어미는 나긋하게 웃으면서 지긋하게 강요했다.


- 내 중궁에게 한번 더 믿음을 줘 보지요. 이 물건을 이 시에미를 대하듯이 간직해 주세요.

- 이건...무엇이옵니까?

- 중궁의 마음이지요.

- 제...마음이요?

- 아무에게도 엿보이지 않고, 중궁 혼자 깊이 간직하는 마음이지요.


이상한 말이긴 해도, 그냥 넘어갔었다. 그때만 해도 시어미가 또 몹쓸 부적 같은 물건을 가져왔나 했었다. 지니고 있으면 딸이 아들로 바뀌는 주술에나 쓰일 법한 물건이 아닐까 했었다.


하지만 시어미가 장고상궁이 죽은 장고로 자신을 불러서, 자신에게 장고열쇠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 혐의를 덮어씌우려던 것을, 진홍은 이미 겪었다. 자신을 궁지로 내모는 시어미의 태도를 보니 어쩐지 불안했다. 시어미가 맡겨둔 물건도 불길했다. 시어미가 궁지에 몰리자, 그저 엉겁결에 자신에게로 적당히 떠넘기려 한 것인지, 그래서 지아비가 덮고 넘어가주길 바란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처음부터 자신에게 덮어씌우려고 한 것인지, 그 속셈을 파악해야 했다.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이 검은 삼베보자기부터 열어보았다. 도대체 뭐가 들었는지, 어떤 물건인지, 꼭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마침 지아비가 들이닥쳤으니...


"어디서...났소?"

"..."

"말해보시오. 어디서 났소?"


옥당 공좌부를 움켜쥔 손을 덜덜 떨면서 진홍의 눈앞에 내밀고 추궁하는 지아비의 눈빛에 눌려서 진홍은 할 말을 잃었다. 무서웠다. 이렇게 무서운 눈빛을 본 기억이 없었다. 아주 예전에 비슷한 눈빛을 본 것 같긴 해도, 지금은 정말 심장이 뚫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


무어라고 말을 하려다가 입술만 달싹일 뿐, 진홍은 또 말을 잇지 못했다. 시어미라고도, 시어미가 아니라고도 거짓말로 둘러댈 수도 없었다. 결국은 제 풀에 지아비에게 이 물건을 바치게 된 셈이었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분위기가 워낙 험악하여 불안했다. 시어미는 진홍 자신이 덮어써도 안전할 거라 믿었는지 몰라도, 진홍은 그래서 더 불안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야 뱃속의 아기를 지킬 수 있는 법인 만큼, 한방울의 오물도 덮어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은 이 물건에 대해 지아비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헌데도 지금은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았다.


"말 안할 거요?"

"신첩은 도대체 뭐가 뭔지..."


진홍의 눈동자가 계속해서 어지러이 흔들렸다. 물론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숙종은 누가 옥당 공좌부를 진홍의 손에 넘겼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미 어미가 발간 손가락 끝을 감추려고 벌건 봉숭아물을 들였으니...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어미는 제꾀에 제가 넘어가는 일을 여러번 벌였다. 복창군과 복평군을 수렁으로 밀어넣겠다고, 고작 홍수의 변을 일으킨 어미였다. 낳지도 않은 애를 낳았다고, 외조부를 추동하여 불륜을 고변하는 차자를 자신에게 올리게 했다. 그리고 철저히 증좌를 우선하는 자신은 허술한 고변을 한 외조부가 아니라 복창군 형제의 손을 들어주었다. 적어도 그때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자신이 적당히 외조부의 손을 들어줄 줄로 알았던 어미의 출혈은 너무도 컸다. 오히려 왕족을 근거 없이 모함한 죄로 반좌율反坐律에 의거하여 오히려 목숨을 잃을 위기로 외조부가 내몰리자, 어미는 체면이고 체모고 모두 내던지고 야대청에 끼여들어, 어미 자신이 증인이라며 아비를 두둔하고 나선 끝에, 복창군 형제를 숙종의 손으로 귀양보내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외조부는 자신이 끝내 외면하여 화병으로 급서했다.


그뒤로도 집요한 어미는 외종숙과 차근차근 함정을 파서, 기어이 복창군 형제를 역모의 길로 유인했고, 결국 숙종 자신의 손에 칼까지 쥐여주었다. 이래도 살려둘 거냐? 하는 검질긴 손짓에 숙종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그때는 이미 복선군도 가슴 속에 한줌 역심을 품었으니.


그런데...이제는 중궁 차례라고?


숙종은 오한이 어깻죽지를 휘감치는 것을 느끼고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도 못하고 얼어붙었다. 이번엔 어미의 독수가 중궁에게로 뻗친 건지, 아니면 그저 중궁에게 덮어씌우고 홀로 발뺌하는 건저, 어미의 의중을 가늠할 길이 없었다.


"말도 안돼..."


숙종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힘없이 가로저었다. 벌써 새벽 이내가 걷혔는데도 머릿속이 온통 희푸르스름했다. 어미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어질어질했다. 최석정을 모함하여 끌어내리려 하였고, 자신에게 불리해질 것 같자 또 다시 중궁에게로 덮어씌우려 들었다. 이게 말이 되나. 차라리 중궁의 소행이라 믿어야 하나.


"전하?"


숙종은 대꾸도 못하고 손을 휘젓고서 한발한발 떼었다. 모래 위를 걷는 건지, 물위를 걷는 건지, 발이 푹푹 빠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발끝에 문턱이 걸려서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휘청이며 서온돌을 나서는 지아비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진홍도 동공이 흔들렸다. 자신이 잘못했나 싶었다. 지아비가 이렇게까지 당황할 줄은 몰랐다. 차라리 그녀 자신을 의심하고 싶어진 건가 싶기도 했다. 도대체 시어미가 무슨 일을 벌이는 건지, 알아봐야 했다. 조보에도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전하께오선 윤대가 있으시어..."


두광이 엉거주춤 뒤따르다, 진홍을 돌아보고 겨우 덧붙였다. 맞는 말이었다. 윤대가 있으니 더는 지체 말고 서온돌을 나서긴 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도망치듯 지아비가 서온돌을 나서니, 진홍의 가슴 속은 소용돌이가 맴도는 듯 하였다.


홀로 서온돌에 남은 진홍은 오도카니 서서 서온돌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회초리처럼 무섭게 자신을 후려치던 지아비의 눈초리가 지금도 그녀의 뇌리에 박혔다. 온몸이 얼얼하고 속도 얼근했다. 지아비의 두눈에 묻어난 감정은 확실히 불신 같았다.


날...의심해...?


진홍은 괜히 눈이 매웠다. 정말로 의심받은 기분이었다. 처음 한동안은 자신을 그리도 경계하고 불신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그녀 자신을 오롯이 품어주던 지아비가, 지금은 그리도 흔들리는 눈빛으로 보았다. 그래서 더 뼈 아팠다. 원래 한번도 맛보지 못한 당과를 남이 맛나게 핥는 모습보다, 한번 손안에 들어온 당과를 뺏긴 순간이 더 서러운 법이었다. 하물며 당과도 아니고 당저當宁라서 좀체 남을 믿지 못하는 지아비의 신뢰라면 더더욱.


어쩐지 버림받은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신경이 대청마루 건너편으로 자꾸만 쏠렸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만 해도 시선이 자꾸만 건너갔다. 시야가 장지문에 가로막혀도, 신경은 쏜살같이 뚫고 날아갔다.


차라리 빈양문賓陽門으로 대전과 내전이 나뉘는 편이 좋았을까. 반가에서도 중문 하나로 사랑채와 안채가 나뉘었다. 가끔은 고작 대청 하나로 분리된 부부의 공간이 오히려 신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시어미가 가끔씩 지아비에게 도로 거처를 옮기라고 강권하기도 했다. 특히 아내가 임신을 하면 남편이 합방을 않고 거처를 옮겨야 하는 법이라며. 하지만 아직 후사도 제대로 얻지 못한 것을 감안해서, 신료들도, 시어미도, 차마 더는 강요하지 못하는 참이었다. 그런데...그들보다 더 무서운 불신이 자신과 지아비를 갈라놓을까봐 갑자기 더럭 겁이 났다.


다시 동온돌이 열리고, 지아비가 두광을 데리고 대청마루를 나서는 기척이 진홍의 고막에 잡혔다. 자신의 측근나인들이 장지문을 열려다가 지아비에게 제지를 당하는 소리도 들렸다. 지아비는 뭣이 그리 급한지 서둘러서 통명전을 나섰다. 진홍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서온돌 장지문을 나섰다. 진홍이 직접 문고리를 잡자, 지밀나인들이 황망히 문을 연답시고 당기다가 그만 진홍의 손가락끝이 문틈에 끼기까지 했다.


"아..."


진홍이 문에 끼인 오른손 손가락을 부여잡고 괴로운 얼굴이 되자, 문을 열던 지밀나인들이 놀라서 두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시뻘겋게 부어버린 손가락을 보니 그저 겁이 더럭 났다.


"중, 중전마마! 괜찮으시옵니까?"

"괘, 괜찮다..."


진홍은 손가락에 불이 나는 듯한 고통에, 입가에 대고 호호 입김을 불어서 화기를 달랬다. 혀끝이 살짝 손가락끝에 닿으니 조금 시원해졌다. 진홍은 자신도 모르게 혀끝으로 손가락 끝을 축였다. 그런데 두번, 세번 혀끝으로 핥다보니, 이상하게도 오한이 어깻죽지를 엄습하며, 뱃속에서 불이 이는 것 같았다. 독하고 매웠다. 진홍은 자신도 모르게 신경이 쭈뼛 곤두섰다. 느낌 탓인 걸까. 이상했다. 꼭 우희가 떠온 우물의 열천을 잘못 마시고서 자신의 두번째 회임이 잘못되던 그날처럼...


"아..."

"중전마마?"

"아니다...아니야..."


지밀나인들이 걱정스레 부축하는 것도 뿌리치고, 진홍은 한발한발 걸음을 옮겨서 대청마루에서 내려섰다. 이렇게 추울 때는 차라리 햇볕을 쬐는 편이 나았다. 섬돌을 딛고, 발치에 어리는 햇살이라도 봐야 했다. 그런데 섬돌에 걸터앉아, 복부에 무리가 가지 않게 가만히 상체를 뒤로 젖히던 진홍의 두눈에 청동 드므 위로 삐죽 솟은 삽살의 은금빛 귀가 보였다. 삽살은 정오의 햇살에 목이 타는지, 물이 가득 든 청동 드므 주변을 헤매면서 어떻게든 그 안의 물을 핥아먹겠다고 안간힘이었다. 하지만 아까보다 줄이 짧아진 건지, 삽살은 가엽게도 청동드므의 수면에 혀를 담그질 못했다. 당연히 목도 축이질 못했다.


"여봐라. 저 삽살의 고삐를 좀 늘려주어라."

"예?"


통명전 앞을 지키는 금군은 움찔해서 진홍을 쳐다보았다. 방금 전에도 왕은 삽살의 줄이 길다며 두광이놈을 한껏 타박했었다. 그런데, 중궁은 반대로 고삐를 늘려주라니.


"하오나 전하께오서..."

"전하께오서 왜?"

"섬돌까지 못 오게 하라고...하시어..."

"그래?"


진홍은 힘없이 입을 닫았다. 아무래도 저 삽살이 섬돌 주변을 맴도는 것이 지아비의 신경에 거슬린 모양이었다. 귀한 가죽으로 지은 당혜며, 목화를 삽살이 핥거나 밟거나 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탓일 법도 했다.


하지만 이내 계속해서 낑낑대며 드므를 맴도는 삽살을 보니 딱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청동드므의 물을 마시겠다고 용을 쓰던 삽살은 마침내 축 늘어졌다. 보다 못한 진홍은 마침내 섬돌에서 일어서서 삽살에게로 다가섰다. 그리고 월대 밑의 차일고리에서 고삐를 풀어서 도로 계단을 올라서 월대로 왔다. 지쳐서 축 늘어진 삽살은 자신의 목둘레에 채워진 고삐가 조금 당기는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살짝 들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진홍을 따라서 계단을 한발한발 올라왔다.


"중전마마!"


금군이 놀라서 소리쳐 불렀지만 진홍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고삐 끝을 청동드므 손잡이에 묶기 시작했다. 봉이가 화들짝 놀라서 다가들었다.


"마마, 소녀가..."

"내가 직접 해야 할 것이다."

"하오나..."

"비켜라. 이건 내가 해야 탈이 없으니."


진홍은 한사코 봉이의 손길을 마다하고, 계속해서 청동드므 고리에 고삐를 묶었다. 묶다 보니 기분이 묘하였다. 이건 자신이 아기를 낳을 때면 산실청 문짝에 걸어놓던 그 금줄이었다. 그러고 보니 장고 정문에도 걸려 있던가. 묶다보니 어쩐지 새끼줄이 중간에 이어진 것이 보였다. 새끼줄이 짧았는지, 또다른 짚을 덧대어 이은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어진 부분이 어쩐지 얼룩덜룩했다.


이건...


물끄러미 쳐다보니 배배꼬인 새끼줄에 뭔가 시꺼먼 점들이 보였다. 몇가닥의 볏짚을 배배꼬아 만드는 건데, 아무리 볏잎이 병들어 흑점들이 생긴 볏짚으로 새끼줄을 꼬았어도 이렇게까지 점이 굵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진홍은 두눈에 새끼줄을 좀더 가까이 대었다. 뚫어져라 쳐다보니, 볏짚 사이에 빛깔이 비슷한 누런 종이가 낀 것 같았다. 손톱 끝으로 문질러 보니 살짝 해어지는 것이, 역시나 종이였다. 진홍은 의아한 눈길로 새끼줄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새끼줄을, 아니 금줄을 풀어봐야 알 것 같았다. 누군가, 이 새끼줄에 글을 남긴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 누군가는 김석하일 것 같기도 했다.


그자가 왜?


진홍은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이 금줄을 풀어헤치기엔 여기는 보는 눈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금줄 속에 숨은 글자를 읽고 싶은 생각은 굴뚝 같았다.


"정말로 귀신을 보고 세번씩 짖느냐?"


진홍은 발치의 삽살을 내려다 보았다. 삽살이 제 다리에 고개를 묻은 채로, 고개도 제대로 들질 못했다. 그저 순한 눈망울로 진홍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정말로 귀신이 보여?"


삽살이 뽐내듯이 고개를 조금 더 치켜들었다. 그리곤 이내 귀찮다는 듯이 도로 엎드려서 제 다리에 고개를 파묻었다. 진홍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서 섬돌에 걸터앉았다. 지아비의 목화가 있던 섬돌엔 지금은 그녀의 당혜만 있을 뿐이었다.


"허면, 귀신이 어디에 있는지 가서 알려주겠느냐?"


진홍과 삽살의 눈길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삽살은 긴털과 함께 축 늘어진 눈꺼풀을 크게 뜨고 진홍을 쳐다보았다.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려는지 의심스러운 모양이었다. 물론 진홍은 귀신을 찾는 척 삽살을 데리고 연당을 지나서 좀더 후미진 뒷마당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우물가 앞에 이르러, 그녀는 책의 침눈에 꿰는 실처럼 가느다랗게 말린 종이를 고삐줄 틈새에서 빼내어 손끝으로 문질러 펴보았다. 거기엔 깨알 같은 글씨로 고작 여덟자만 적혀 있었다. 그것도 그녀도 익히 아는 구절이었다.


善者不來 來者不善

선자불래 내자불선

좋은 이는 오지 않고 , 오는 이는 좋지 않다.


작가의말

미세먼지는 저의 적...ㅠㅠ

오랜만에 슬럼프 탈출인가 싶었더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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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해의 그림자 220 +2 14.12.10 1,492 28 43쪽
220 해의 그림자 219 +1 14.12.05 1,624 21 43쪽
219 해의 그림자 218 +3 14.11.30 1,350 29 41쪽
218 해의 그림자 217 +1 14.11.25 1,618 23 43쪽
217 해의 그림자 216 +2 14.11.20 1,573 28 43쪽
216 해의 그림자 215 +3 14.11.14 1,713 30 43쪽
215 해의 그림자 214 +3 14.11.10 2,369 30 35쪽
» 해의 그림자 213 +3 14.11.06 1,318 27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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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해의 그림자 206 +4 14.09.25 2,690 34 43쪽
206 해의 그림자 205 +4 14.09.19 1,624 26 43쪽
205 해의 그림자 204 +3 14.09.12 1,709 26 40쪽
204 해의 그림자 203 +6 14.09.05 1,495 30 39쪽
203 해의 그림자 202 +7 14.08.30 1,732 31 41쪽
202 해의 그림자 201 +4 14.08.21 1,842 42 41쪽
201 해의 그림자 200 +5 14.08.14 1,381 30 42쪽
200 해의 그림자 199 +4 14.08.07 2,036 34 42쪽
199 해의 그림자 198 +5 14.07.31 1,851 41 43쪽
198 해의 그림자 197 +3 14.07.21 1,783 41 41쪽
197 해의 그림자 196 +7 14.07.15 1,844 34 42쪽
196 해의 그림자 195 +3 14.07.11 2,017 32 41쪽
195 해의 그림자 194 +3 14.07.06 1,941 34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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