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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님의 서재입니다.

해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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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작품등록일 :
2012.11.19 13:33
최근연재일 :
2017.12.22 23:56
연재수 :
3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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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2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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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1쪽

해의 그림자 197

DUMMY

이진은 비명소리에 뒤돌아본 순간 그 자리에서 오래된 콩시루떡처럼 굳어버렸다.


금사담金沙潭 가장자리에 몽깃돌을 내린 거룻배와 바위 틈새에서 무언가 희디 흰 돛이 하늘거렸다. 아니, 애초에 돛을 달지 않는 거룻배에서 돛이 펄럭일 리가 없었다. 돛이 아니라 흰 적삼자락이었다. 얼핏 보니 자신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도령이 얇디 얇은 모시적삼 차림으로 목욕을 하는 참이었다. 불꺼진 암재와 계당 사이로 굼실굼실 흐르는 금사담을 초승달이 어슴푸레 비춘 탓에, 은금빛 물비늘에 잠긴 도령의 팔다리가 잉어의 은비늘처럼 보였다.


오라버니?


도령이 아니었다. 물에 젖은 적삼자락이 몸에 찰싹 달라붙은 탓에 봉긋한 가슴과 오목한 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방금 전에 새된 비명소리로 오라비를 찾은 그 모습 그대로, 계집애였다. 이진은 콧잔등으로 비꽃이 피었는데도, 미처 깨닫지 못할 만큼 어린 계집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너..."

"오라버니! 오라버니! 오라버니!"


이진보다 계집아이가 더 당황해서 자신의 오라비들을 찾았다. 오라비들이 대답할 때까지 몇번이고 소리쳐 불렀다. 금사담의 너부죽한 바위들에 각각 걸터앉아 망을 보던 계집아이의 두 오라비, 민진후와 민진원은 화들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돌아보았다.


"뭐야!"

"뭐야, 뭐?"


속옷차림으로 목욕을 하는 동생의 눈앞에 웬 어린 도령이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비끼고 빤히 동생의 가슴을 내려다보면서 한발한발 걸음을 내딛는 참이었다. 동생은 어깨를 움츠리고 두눈을 찔끔거리면서도 겁에 질린 채로 차마 등을 돌리지도 못하고, 뒷걸음질치다 그만 주저앉았다.


"진려야!"


진후와 진원은 당혹감에 그 자리에서 첨벙 뛰어내렸다. 금싸라기를 머금은 듯한 금사담 물결에 허벅지까지 순식간에 젖었지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방금 누이가 목욕하는 자리에 누군가 나타났다. 지금 누이가 발각되면 큰일이었다. 그들은 물이 첨벙첨벙 튀는 것도 아랑곳 않고 물 찬 제비처럼 허겁지겁 뛰어갔다.


"진려야!"

"진려야아!"


진려는 오라비들이 자신을 부르며 허겁지겁 달려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점벙점벙, 첨벙첨벙 금사담을 가로지르는 소리도 요란했다. 그러자 진려는 순식간에 평정을 되찾고 비장한 눈빛으로 오른손을 가슴에 얹는가 싶더니, 이내 적삼 옷고름에 매달린 은장도를 검집째로 움켜쥐었다. 그 손샅으로 검집에 양각된 봉황의 눈이 노려보는 듯하였다.


검집 옆면에 은사를 꼬아서 접붙인 연화고리 만으로도 충분히 귀한 품격이 느껴지는 신품이었다. 연화고리에는 천도문양의 은방울도 손샅으로 달랑거렸다.


진려는 떨리는 손길로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왼손으로 칼집을 벗겼다. 달빛 윤슬에는 그저 엇비슷한 은빛 그림자가 비쳤을 뿐이지만 허공에선 섬뜩하게 시퍼런 날이 번뜩였다 .


조정에서 내세우는 여인의 미덕은 외간사내의 손길이 팔에 닿으면 그 팔을 잘라야 했다. 하지만, 민간에선 팔까지 자르지는 않았다. 한달 전에 그녀가 목욕을 하는 장면을 몰래 장지문에 구멍을 뚫고 엿보던 머슴 한놈은 독종인 작은오라비한테 두눈을 잃었다. 그러니 이 어린놈이 누구냐에 따라서 아마 처분도 달라질 터였다. 그녀가 죽든, 이놈이 죽든.


진려는 비장한 표정으로 은장도로 자신의 희디 흰 목에 갖다대는가 싶더니, 이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칼끝을 돌려 이진의 눈앞으로 내밀었다.


"뭐, 뭐하는 거야?"


이진은 어이가 없어서 두눈을 깜빡였다.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눈앞의 어린 계집이 그저 허깨비 같았다. 하늘에서 떨어진 선녀인지, 무덤에서 솟아난 귀신인지, 천지간을 떠도는 귀매인지, 방금 전까지 당황하던 눈빛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호수 같이 맑은 눈은 오히려 누구보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뭐야, 얘는?


그냥 외조부의 제자들 틈새에 있던 사내아이가 하루아침에 계집아이로 둔갑한 것이 너무도 요상했다. 꼭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가짜 상투를 틀고, 물에 흠뻑 젖어 가슴을 드러내고, 뭐 이런 괴이한 요물이 다 있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외조부의 행렬 틈새에서 이 아이를 본 것 같았다. 낮엔 도령? 밤엔 낭자? 아무래도 오누이가 교대로 사람을 홀린다는 귀매鬼魅(도깨비)가 틀림 없었다.


"안돼, 진려야?"

"이 자식이...!"


민진후는 헐레벌떡 달려와서 누이동생의 앞을 가로막았다. 누이가 이대로 은장도로 목을 찔러 자결이라도 할까 두려웠다. 정신 없이 진려의 손에서 은장도를 뺏아서 진원에게 건넸다. 그러자 진원은 냉큼 은장도를 받아들더니 대뜸 이진의 왼쪽눈에 갖다대었다.


"내 이 흉악한 놈을 당장..."


진원은 코앞에 비친 이진의 얼굴을 보고 그 자리에서 문인석처럼 굳어버렸다. 살짝 뭉툭한 코에, 움푹하면서도 불룩한 눈두덩, 깊이 있는 동공까지도, 스승을 꼭 빼닮은 얼굴이라니.


이놈...


이진의 멱살을 부여잡은 진원의 두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기껏 남장을 시켜서 데려왔는데, 이깟 남인새끼한테 누이의 속살을 들키다니. 이럴 수는 없었다. 이래서는 안되었다. 흥분한 건 진원 뿐만이 아니었다. 흉악한 놈이란 말을 듣는 순간 이진의 눈꼬리도 확 비틀렸다.


"흉악? 누가 흉악해? 너희들이 더 흉악해!"

"뭐? 이 자식이..."

"낮엔 사내! 밤엔 계집! 뭐야? 뭐냐고! 니들이 더 흉악해! 흉악해! 흉악해!"


이진은 점점 언성이 높아지더니 목이 찢어져라 고함을 질러댔다. 오랫동안 가슴 속에 맺힌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동안 외조부가 없어서 참으로 좋았다. 정말로 좋았다. 진짜로 좋았다. 그런데 다시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일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고모부우! 고모부우!"


이진이 절박한 음성으로 소리쳐 부르자, 민진원은 황급히 이진의 입을 틀어막았다. 발음이 여의치 않자, 이진은 더욱 고모부를 찾아댔다.


"고모부우!"

"조용히 안해? 대로께서 친히 부르신 거란 말야."

"놔! 고모부우!"

"대로 어르신이래도!"

"읍! 읍! 고모부! 놔!"

"아 진짜! 대로 어르신이 저 아이를 왜 불렀겠어! 다 너 때문에...!"


진원은 자꾸만 고모부만 찾아 바둥거리는 이진의 태도에 답답하여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아이를 완전히 제압하려면 형 진후의 도움이 필요했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그 와중에 형은 이미 누이를 일으켜 세우고 암재 뒤쪽으로 빙 돌아서 자리를 피하는 참이었다.


"너, 이리 와."


민진원은 할 수 없이 혼자 힘으로 이진의 머리를 물속에 쳐박고선 계당 쪽으로 이진의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이진이 발버둥을 쳐봐도 소용이 없었다.


"놔! 놔 이거!"


오히려 발버둥 탓인지 금모래가 섞인 물보라가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이진을 끌고 가는 진원보다도, 당장 훨씬 작은 체구로 계당 앞 개울바닥에 질질 끌려가는 이진에게 더 손해였다. 물에 섞인 모래알이 이진의 눈으로 들어가서, 따갑게도 눈을 긁는 느낌이었다.


물은 점점 깊어졌다. 이제는 물이 콧구멍이며 목구멍으로 사정없이 들어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럴수록 이진은 젖먹던 힘까지 내어 어떻게든 소리를 질렀다. 계당 앞으로 힘차게 잡아끌었다. 하지만 이진은 반대편인 암재로 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물빛이 멀건 계당과는 달리 물빛이 짙은 암재는 평소에도 함부로 건너갈 엄두도 내지 못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웨엑! 고모부우!"

"조용히 안해? 네 외조부님께 여쭤보라고!"

"놔! 놔! 고모부!"

"아 진짜! 그 고모분지 이모분지 되게 찾네! 네 고모부, 어르신께 눈밖에 나서 요 암재로 밀려나신 거거든?"


그 순간 이진은 악다구니를 뚝 그쳤다. 이미 암재는 불꺼진 채로 기척조차 없었고, 물속에 반쯤 잠긴 이진의 소리조차 은금빛 윤슬이 잡아먹어버렸으니, 꿈속에 잠긴 암재 안에까지 들릴 리가 없었다.


이제야 포기를 했나 싶어서 진원이 계당과 이진을 번갈아서 돌아보는 순간, 갑자기 오른쪽 허벅지에 불같은 고통이 일었다. 대로 어르신의 외손주 놈이 젖먹던 힘까지 내어 허벅지를 깨물어버린 것이었다.


"으허억!"


진원이 한손으론 깨물린 허벅지를, 또 한손으론 바위 모서리를 부여잡고 허리를 한껏 접다시피 하여 발을 동동 구르는 순간이었다. 이제야 진원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워진 이진은 한두발짝 뒤로 물러나며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허리를 펴지 못한 채로 앙감질을 하던 진원이 이내 자신을 잡아죽일 듯 노려보는 참이었다. 그 눈빛이 너무도 독해서, 이진은 가슴 한구석이 불안해졌다.


"너 이 새끼! 너 죽었어!"

"..."


진원이 두눈을 지릅뜨고 자신에게 덤벼들자, 이진은 화들짝 놀라서 뒤로 한 발짝 폴짝 뛰어 몸을 피했다. 이진의 어깻죽지를 잡으려던 진원은 그 자리에서 몸의 중심을 잃고 갸우뚱했다. 그 순간에도 이진이 바위 위로 뛰어올랐다.


가까스로 몸의 중심을 잡고 선 진원은 어느덧 너럭바위 위로 올라서는 이진을 보았다. 진원은 화가 머리꼭지까지 뻗쳐서 눈시울이 온통 벌개졌다. 요절을 내든 결딴을 내든 할 셈으로 이진의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너 이 새끼!"


하지만 손아귀에 닿기도 전에, 스르르 빠져나가는 모시자락에 더욱 분통만 터졌다.


"이 남인 새끼가! 확 눈을 뽑아버릴라!"


진원은 은장도의 시퍼런 날끝을 내려다보면서 참빗으로 머리를 빗을 때처럼 윗니로 자기 아랫입술을 주르륵 훑었다. 아랫입술이 화끈거렸지만 아랑곳 하지도 않았다. 형과는 달리 평소 참을 성이 없었다. 누가 실수로 팔꿈치로 어깻죽지를 찌르면 자신은 고의로 명치를 찔러서 갚아야 직성이 풀렸다. 아파서가 아니었다. 절대로 당하고는 못사는 성격이라서였다. 눈앞의 상대가 대로 어르신의 외손주라는 사실도 중요치 않았다. 저놈은 그냥 남인새끼일 뿐이었다.


"어매!"


이진은 겁에 질려 화들짝 뛰었다. 고모부가 깨어나길 기다릴 겨를도 없었다. 남인 새끼라고 욕하면서 죽일 듯이, 아니 정말로 눈을 뽑을 기세로 덤벼드는 것을 보니 아무 경황도 없었다. 그저 죽어라고 내빼는 수 밖에 없었다. 5, 6년 전에 외조부가 귀양을 떠날 때까지는 이곳 화양구곡에서 멱도 감고 미끄럼도 타고 놀았으니, 이 부근은 그야말로 자신의 손바닥 안이었다. 네놈이 뛰어봤자 벼룩이라며 계집의 작은오라비가 맹렬하게 뒤쫓아와도 어떻게든 숨을 자신이 있었다.


"거기 서! 거기 안 서? 너 진짜 안 봐준다!"


진원은 연신 이진에게 겁을 주었다. 하지만 이진은 그럴수록 얼굴은 물론 시야까지 더욱 하얗게 질린 채로 내달렸다. 그런데, 이 끔찍한 귀매 같은 서생도 손에 은장도를 휘두르며 달려왔다. 계집이 은장도를 쥐었을 때보다 한층 무시무시했다. 절대로 이대로 잡힐 수는 없었다.


암재로 건너가려 하였지만, 유독 물길이 깊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좀더 위쪽으로 올라가서 징검다리처럼 금사담을 가로지르는 바위들을 건너가야 했다. 그런데 이젠 쫓아오지 않겠거니 싶어 뒤를 돌아보면 이번엔 아예 거룻배의 노 한짝까지 집어들고 또 따라붙은 진원의 두억시니 같은 모습이 등줄기를 덮치려 했다.


"요놈!"


이진은 화들짝 놀라서 꽁지에 불 붙듯이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정신 없이 위로, 또 위로 내달리다 하마터면 미끄러져 그대로 바위에서 떨어질 뻔했다. 겨우 균형을 잡는 순간 어슴푸레한 달빛 속에 검푸른 뭔가가 바위에 낀 것이 두눈에 비꼈다.


고개를 숙이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어스름 탓에 검어보였을 뿐, 검은 더께가 아니라 푸른 이끼였다. 물살이 심한 곳엔 이끼가 끼지 않는다던데, 여기는 물살이 약한 탓에 온통 바위마다 물이끼 투성이였다. 저 위로는 황양목이 우거지고, 커다란 몽깃돌인지 무덤돌인지가 쌓인 것이, 암재를 지나쳐 첨성대까지 온 모양이었다.


"너 이 새끼! 네놈이 뛰어봤자 벼..."


이진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몽그작거리는 순간 갑자기 등뒤에서 드센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어느새 진원이 뒤쫓아 왔는지, 노 한짝이 이진의 등짝을 후려쳤다. 하지만 이진의 등골을 가격하기 직전 진원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발을 헛디뎠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다가 노를 그만 놓치기까지 했다.


그 순간 널찍하고 길쭉한 노가 진원의 손에서 빠져나가 이진의 어깻죽지를 스치는가 싶더니 그대로 짙푸른 물속으로 떨어져버렸다. 이진은 화들짝 놀라서 옆으로 한발 기우뚱거렸다. 겨우 중심을 잡고 발치를 보니 그저 아찔할 뿐이었다.


계당 앞만 해도 금모래 은모래가 훤히 내려다 보일 만큼 수심이 얕은가 싶었지만, 암재 앞은 쪽물을 섞은 듯이 짙었다. 지금 노가 떨어진 쪽은 용소라도 있는 건지, 아예 진한 쪽물 그 자체였다. 게다가 이진의 신장보다도 길쭉한 노가 수직으로 내리꽂혀 그대로 빨려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두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노를 집어삼킨 저 소沼의 수심이 얼마나 깊은 지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


"뭐, 뭐야?"


화들짝 놀란 이진이 그만 발을 헛디뎌버렸다. 두팔을 허우적거리면서 애써 중심을 잡으려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진은 그대로 바위 위에서 미끄러져버렸다. 이진은 그 순간 손을 뻗어 바위를 붙잡으려 했다. 푸르른 물이끼 때문에 손톱끝이 그대로 미끄러졌다. 그럴 수록 이진은 손톱 끝에 더욱 힘을 주고 손가락마디마디가 도드라질 만큼 필사적으로 부여잡았다.


"사, 살려줘..."


이진은 겁에 질려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모기울음 같은 목소리만 입에서 겨우 흘려냈을 뿐이었다. 흉악한 외조부도 평소 배를 타고 건넌 금사담이었다. 그나마 계당 쪽은 수심이 얕은데다 폭이 좁아 개구리 헤엄으로도 건널 수 있지만, 암재쪽은 워낙 험한 바위가 많다보니 수심이 들쑥날쑥에다 물살도 거세서 자칫 발을 헛디디면 자신 같은 어린 아이는 그대로 빠져죽을 수도 있었다. 발밑으로 아무 것도 닿지 않아 더 무서웠다. 손끝에서 힘이 풀리기만 해도, 이대로 미끄러지기만 해도, 자신은 그대로 황천黃泉행이었다.


진원은 화들짝 놀라서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한눈에도 미끌거리는 바위를 남인새끼가 손끝으로 힘겹게 버티는 참이었다. 시퍼런 물이끼가 낀 바위를 손가락끝으로 버티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몰라도, 저 어린놈은 필사적으로 바위를 붙들었다.


"손 잡..."


진원은 이진에게 손을 내밀려다 멈칫했다. 두눈이 헤까닥 뒤집혀서 달려들었지만, 자칫 같이 미끄러져 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꼴까닥 숨이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노라도 놓치지 않았다면, 그 노를 붙잡게 하여 당기면 될 것을, 방금 놓친 노가 너무도 아까웠다.


"기, 기다려...사, 사람들 불러오마."


진원은 더듬거리면서 대꾸하곤 그대로 뒷걸음질쳤다. 같이 물귀신이 되고 싶진 않았다. 괜히 아이를 구하려다 함께 물에 빠지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었다. 여기서 계당이든 암재든 그리 멀지 않으니, 그때까지만 아이가 버텨주면 되었다. 손끝으로 저 바위를 움켜잡는 것만 봐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터였다. 진원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걸음을 한걸음, 두걸음, 계속하여 뗄 때마다 진원의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누이의 목욕 장면을 본 놈이었다. 누이와 혼인을 할 사이라면 모를까, 혼인도 안할 놈이라면 살려두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대로는 혼담을 넣기 전에 요모조모 살피려고 누이를 부른 것일 터였다. 왕이 이렇게 빨리 방면시켜줄 줄 모르고, 일단 자신이 여느 손주들보다 아끼는 그놈과 혼담을 진행시키기 위해 누이를 불러서 살폈을 터였다. 그놈이 다른 남인집안의 여식과 혼약을 맺기 전에 부랴부랴 서인 집안의 여식으로 고르고 골라서 짝지워 주려고 하신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어쩐지 억울했다. 왜 하필 누이인지, 왜 하필 남인 새끼한테 누이를 보내야 하는 건지. 이대로 속살까지 들켰으니 혼인은 기정사실이 된 셈인데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진원의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진원의 눈앞에 금사담을 사이에 두고 암재와 화양계당이 들어왔다. 여기부턴 암재로든, 계당으로든 걷지 않고 헤엄을 쳐야 했다.


하지만 진원은 도저히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암재는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숨이 턱에 찰 것 같이 지대가 높았다. 누군가 성균관 유생이란 자가 말하길, 왕의 침전 축대보다도 지대가 높을 거라 했다. 언제 오르고 올라서 사람을 깨우나 싶었다. 게다가 수심은...발이 닿지도 않을 것 같았다. 똑같은 개울인데, 계당 앞은 물이 맑아 만만한 담淡이니 금사담金沙潭이란 이름이 걸맞았지만 , 암재 앞은 물이 짙어 막막한 소沼이니 차라리 금사소金沙沼란 이름이 어울렸다. 얼마 전에 청풍에 큰비가 내렸는데, 여기도 내렸는지 유난히도 수심이 깊었다.


그러니 차라리 계당이 나았다. 그놈이 철석같이 믿는 고모부는 암재에 있지만서도. 그렇게 진원의 발길은 이진을 목숨걸고 서둘러 구해줄 것 같은 윤증보다, 오히려 앞뒤 재다 더디게 구해줄 것 같은 송시열을 택했다.


헌데, 화양계당, 특히 송시열의 방에서는 이 이슥한 밤에 웬일로 불빛이 어슴푸레 새어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지키고 섰을 겸인들이나 제자들도 이미 잠을 자러 간 건지, 잠시 자리를 비운 건지, 아니면 저 안에 있는 건지, 사랑채 앞엔 아무도 없었다. 진원은 망설이다 거침없이 대청마루로 올라섰다. 흑혜는 물론 버선까지 물에 젖은 탓에 한발한발 디딜 때마다 물이 바닥에 고였다. 진원은 그대로 큰방 앞으로 가서 장지문에 바짝 얼굴을 갖다대었다.


"저, 어르신"

"누구냐?"


송시열의 음성이 날카롭게 흘러나왔다. 제자들이 잠들었으려니 싶었지만, 그래도 장지문에 그림자가 불쑥 비치자 불안해진 탓이었다.


"저는 여흥민씨의 진원이라고..."

"누구?"

"교산蛟山이요..."


진원은 송시열이 자신을 두고 교산 허균에 빗대어 면박을 준 일을 언급했다. 그제야 송시열도 진원이 누군지 기억해내었다. 그리고 짜증섞인 말투로 되물었다.


"아...또 누이의 일이냐? 이게 무슨 무례냐? 어찌 내 허락도 없이 대청을 밟았누!"

"그게 아니고...급한..."

"그리 마음이 급했더냐? 하긴 내년이면 네 누이는 열다섯, 내 손주놈은 열넷이 되니...짝지워줄 때도 되었지."


민진원이 제대로 말할 겨를도 주지 않았다. 이미 송시열은 오라비가 누이의 배필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여긴 탓에, 그저 성가시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송시열의 대꾸는 어쩐지 건조했다. 애틋함이라곤 눈곱 만큼도 없었다. 진심이 담겨 있지도 않았다. 묘하게도 진원의 귀에도 그 음성이 맨숭맨숭하다 못해 부숭부숭하게 들렸다. 정말로 외손주에게 꼭 맞는 색시감을 찾아준다거나, 진려가 손부감으로 마음에 쏙 든다거나, 하는 것도 아닌 느낌이었다. 물론 이제 열일곱인 민진원이 세상을 알면 얼마나 알고, 사람을 알면 얼마나 알까마는.


"이진이가 남인의 핏줄이라 걱정되는 것이냐?"

"아니...저는..."

"거참...네놈은 대체 누굴 닮아서 그리 집요한 것이냐? 그 아이는 남인의 핏줄이기 전에 내 핏줄이란 것을 잊지 말거라. "


송시열의 매서운 꾸지람에 민진원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한쪽볼을 더욱 장지문에 바짝 붙이고 황급히 말했다.


"아니...외손주분...이 물에 빠져서..."

"뭐?"


송시열은 멍하니 되물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외손주가 물에 빠지다니. 손주든 외손주든 많았지만 물에 빠질 만한 놈은 오직...방금 전에 흉악한 놈이라는 얘기 좀 했다고, 발끈해서 뛰쳐나간 이진이 그놈 뿐이었다. 그 더러운 성질머리로 홧김에 물에 뛰어든 건지.


"이진이가? 그게 무슨 소리냐?"

"그게...목욕장면을 훔쳐보고...발을 헛디뎌서 그만 떨어지긴 하였는데..."


목욕이라니? 진려 그 아이 말인가? 당황하나 싶었더니 송시열은 이내 장지문에 비친 진원의 그림자를 심드렁히 쳐다보기만 했다. 하도 얼굴을 바짝 붙여선지 , 또 이놈도 물에 흠뻑 젖어선지, 장지문이 주먹만큼 젖어선 물기가 점점 번지는 참이었다.


"그래서...살았느냐, 죽었느냐?"

"그게... 지금쯤은 아마...괜찮을 수도 있고, 안 괜찮을 수도 있고..."


쭈물쭈물하며 말을 꺼내다가, 이내 어물어물 말끝을 흐리는 진원의 태도에 송시열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무슨 소릴 하는 게냐? 빠진 거냐, 안 빠진 거냐?"

"아직...물에 빠진 건 아니고...그래도 건너오질 못하고 해서..."


지금쯤 외손주의 명운도 저 마른 장지문에 생긴 젖은 얼룩처럼 되었을까. 하필이면 진려 그 아이의 목욕장면을 목도했다니, 그것도 모자라 저들에게 들켰다니, 그저 기가 막혔다. 이제 열세살이고, 열네살이라곤 해도 추문의 상대로 엮일 수도 있었다. 그나마 속살을 보기만 한 것이라면 피차 입을 다물고 없던 일로 하면 그만이었다. 만지기라도 했더라면, 진려라는 계집과 외손주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터였다. 상대가 다른 여아였으면 몰라도 민유중의 여식이었다면, 결코 목숨을 보존할 수 없을 터였다. 갈등에 빠지는데 민진원의 억눌린 목소리가 계속해서 장지문을 적시며 흘러들었다.


"어서 구해주십시오. 지금 저 위에..."

"뭐? 그냥 두고 왔단 말이냐?"

"송구하오나...제자가 헤엄을 칠 줄 몰라서...같이 빠지면 둘다 죽을 일이라..."

"그래, 일단 가자꾸나. 앞장서거라."


더는 진원을 책망할 생각도 없는 지, 송시열은 언성을 누그러뜨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총으로 곱게 짠 사방관을 쓰고, 그대로 장지문을 열고 저고리바람으로 표표히 문턱을 나섰다. 진원은 화들짝 놀라서 송시열에게 그대로 고개를 조아렸다. 장지문을 사이에 두고 대할 때와 치우고 대할 때는 느낌이 천지차이였다. 압도적인 위엄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어쩌면 이진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온 죄책감 탓일지도 몰랐다.


"섬노야! 섬노야!"


송시열은 대청마루로 나서자마자, 겸인을 소리쳐 불렀다. 어린 겸인 한놈이 두눈을 비비면서 행랑채에서 뛰쳐나왔다. 워낙 명망이 있는 상전인지라, 노비들 역시 허투루 대할 수가 없었다. 잠결에도 상전의 음성이 들리면 냉큼 달려와야 했다.


"이진이놈이 물에 빠진 듯 하니 같이 가보자꾸나."

"네? 이진이요?"

"빨리 배를 대령하거라."

"예, 대감마님."


겸인이 얼른 뛰어내려가는 것을 보고, 진원은 어깨를 움츠렸다. 노 한짝을 자신이 잃어버린 일이 생각난 탓이었다. 노 한짝이 없어진 일을 알면 자신을 의심할까 겁이 났다. 어쩌면 이진이 빠진 자리에서 그 노 한짝이 발견되기라도 하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대로에게든, 백부에게든, 아비에게든...그나마 이진이놈이 죽지 않고 무사히 목숨을 건지기라도 한다면, 노가 발견되어도 유야무야 무마시킬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시간을 끈 탓에 이진이놈이 살아날 가망도 희박했다.


"저어, 대감마님, 노 한짝이 없구먼요."


그새 물가로 가서 거룻배를 살피고 노 한짝이 없다는 것까지 알아차리고 와서 고하는 겸인의 재바른 행동에, 진원은 흠칫 놀랐다. 그 와중에도 송시열이 겸인과 얘기를 나누었다.


"아니 그게 왜 없어?"

"모르겠구먼요. 아까 분명히 같이 포개놨었는데..."

"쯧...또 대충 던지다가 빠뜨린 것이 아니고?"

"참말이구먼요. 잘 놔뒀었는데..."

"어서 배를 몰기나 하거라. 노 한쪽으로도 배를 몰 수는 있으렷다?"

"좀, 예, 대감마님."


겸인이 허둥지둥 거룻배에 올라탔다. 진원은 문득 사방이 너무도 조용한 것에 의혹을 느꼈다. 너무 이상했다. 그리 아낀다던 외손주가 물에 빠졌다는데, 아니 물에 빠진다는데, 대로는 그 많은 제자와 머슴들을 부를 생각도 않고 고작 어린 겸인 한놈만 데리고 배를 타려는 것이었다. 왜? 누이 진려의 속살을 본 사실 때문에? 어차피 혼담이 진행되면, 혼인만 성사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이미 누이는 몸을 피했으니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시치미를 떼면 되었다. 일단 중요한 건 외손주의 목숨일 터였다. 헌데도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는 듯이 대로는 달랑 겸인 한놈만 데리고 이진이를 구하러 나섰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어서 타지 않고 뭐하느냐? 네가 앞장서야 우리 이진이를 찾지."


그 순간 진원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그 남인새끼가 살아난다 해도 걱정이었다. 누이가 남인집안으로 시집이라도 가게 되면, 한평생 그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면, 여차하면 연을 끊어야 할 지도 몰랐다. 그리고 아비나 자신들이나 남인과 사돈이 되었다는 꼬리표를 평생 달고 다녀야 하고, 자신들도 마찬가지로 섶을 지고 불로 가는 꼴이었다. 이왕 이리 된 거, 이대로 가라앉아서 남인새끼든 노든 두번 다시 떠오르지 말았으면 생각도 들었다.


"저쪽입니다."


진원은 거룻배에 올라타며 손가락으로 암재 뒤편을 가리켰다. 조용하던 금사담 물결이 암재 뒤를 돌아가면 사납게 돌변하여 휘몰아치는 곳이었다. 헌데, 진원의 손가락은 정확히 이진이 떨어진 첨성대보다는 조금 안쪽을 가리켰다. 자신도 모르게 검지 끝마디를 굽히고 말았다. 남인새끼가 살아나면 누이가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자기들 가문이 남인과 혼담을 맺을까 겁이 나기도 했다.


"찾아보거라."

"예, 대감마님."


송시열이 겸인에게 이르자, 겸인 섬노가 조심조심 배에서 내려서 뱃머리의 초롱을 한손에 들고 휘적휘적 물살을 헤치고 걸어갔다.


"이진아, 이진아..."

"쉿, 조용히 찾거라."


소리내어 이진의 이름을 부르는데, 상전이 뜻밖의 분부를 했다. 섬노는 영문을 모르고 두눈을 멀뚱거렸다.


"어서 찾기나 하거라."


어물댈 틈도 주지 않고 상전이 재촉하니 섬노는 군말 없이 이진을 찾는 시늉을 했다. 어쩐지 대충 찾는 시늉만 해도 될 것 같았다. 걷다 보니 물발이 평소보다 세었다. 없던 용소도 생길 모양이었다. 어느덧 바람도 불고 빗발도 조금씩 떨어졌다. 겸인은 더는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저어, 좀더 불러오시는 게..."

"뭣이? 더 불러오라니?"

"바위가 미끄럽고 물살도 세서...저 혼자서는..."

"네 이놈, 어서 가지 못할까! 팔순을 바라보는 내가 가리, 약관도 안된 이놈이 가리? 우리 중에 적임은 네놈이거늘."


송시열은 계속해서 겸인 섬노를 닦달했다. 섬노는 성가신 기분이 들었다. 이미 빗발이 사정 없이 눈앞을 가리는 터였다. 파천巴串 만큼은 아니지만 첨성대 쪽도 바위도 많고 물살도 세어 위험했다. 이대로 여기를 살피라는 것은 자신더러 죽으라는 얘기였다.


"설마 물에 빠졌을까요. 그냥 어디 간 거 같은데."

"이 빗길에 어딜 갔을라구. 잘 찾아보거라."


송시열의 무심한 명령에 겸인은 가슴속이 홧홧하니 한숨이 목구멍을 넘어 콧구멍까지 치받았다.


도대체 찾으라는 거냐구, 말라는 거냐구!


아랫입술을 한껏 안쪽으로 말고 한숨을 삭이려고 애쓰면서, 겸인은 건성으로 이진을 찾는 둥 마는 둥 했다. 진원의 눈에도 겸인의 낌새가 이상하긴 하였지만, 송시열도 굳이 다그치거나 보채거나 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설마하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외손주가 물에 빠져 죽을 거란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저 암재와 첨성대 사이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지금쯤 외손주가 어딘가를 돌아다닐 거라 믿는 건지.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진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로에겐 제대로 고하지 않았지만, 분명 이진이 놈은 미끌거리는 이끼 투성이의 바위를 손톱 끝으로 겨우 부여잡았다. 지금쯤 손가락에 힘이 다 풀려서 그대로 소沼에 집어삼켜졌을 터였다. 급류에 휘말려서 떠내려갔으면 또 모를까.


그래도 진원은 의구심으로 송시열의 시선을 따라 암재에서 첨성대 일대를 눈길로 좇았다. 말이 첨성대지, 다리 밑에나 받쳐놓았을 법한 받침돌 몇개에다 홍예굽 한개를 저 높은 산중턱에 쌓다가 만 듯한 형태였다. 아니면 삼천년도 지났을 법한 원시적인 돌무덤처럼 대충 쌓아놓은 받침돌 몇개에다 거북의 머리 같은 머릿돌을 비스듬히 얹은 모양이었다. 이상한 건 시꺼먼 사람이 그 첨성대의 머릿돌에 걸터앉은 듯한 그림자였다. 그럴 리가 없었다. 사람이면 저기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귀신이 별구경을 하면 모를까, 사람은 하지 못할 곳이었다.


"왜 그러느냐?"

"귀..."


민진원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풀기 없이 말끝을 흐렸다. 대로 같은 유현 앞에서 귀신이란 두글자를 입에 담기가 민망했다. 겁쟁이란 비난을 들을까봐 겁도 났다. 그저 어깨를 움츠리고 혀끝을 윗니에 대고 헛바람만 흘리고 말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송시열은 미간을 확 찌푸리며 되물었다.


"귀신 말이냐?"

"..."

"거 이상타. 무당들 말로는 나만 오면 귀신이 오지 않는다던데. 옥천이며, 회덕이며, 그 지역 용하다는 무당들은 죄다 나를 피하거든."

"하지만 저기..."


민진원이 손가락 끝으로 첨성대 머릿돌 위를 가리켰다. 송시열은 미간을 찡그리고 두눈에 힘을 꾹 주고서 시선을 옮겼다. 워낙 앞이 어둑어둑하여 눈이 침침한 탓인지 그저 검은 덩어리와 덜 검은 덩어리만 보일 뿐이었다. 윤곽이 모호하니 그냥 짜증만 났다. 기껏해야 짐승이 저 위로 올라갔을 터였다. 기분 나쁘게도 사방에서 올빼미 울음이 들렸다.


정말로 이진이가 급류에 휩쓸렸으면 어쩌나 가슴 한귀퉁이가 자꾸 켕기니 자신도 모르게 윗입술이 안쪽으로 말렸다. 허옇게 튼 각질을 잘근잘근 씹어먹으면서, 송시열은 신경질적으로 첨성대 머릿돌을 쏘아보았다. 흰자위가 시퍼렇게 느껴질 정도로 매서운 눈초리였다. 그런 송시열의 어깨너머로 진원은 첨성대 머릿돌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없었다. 머릿돌 위의 그림자가 이제는 없었다.


진원은 의혹어린 눈길로 첨성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남인새끼가 바위에서 기어올라왔나? 저 머릿돌까지 도망쳤나? 아니면 누가 구해줬나? 그럴 리가 없었다. 모두가 잠든 이 시각에, 이곳 첨성대까지 와서 그놈을 구할 만큼 오지랖이 넓은 자는 적어도 대로의 제자들 중엔 없었다. 그럼 윤증이? 박태보가? 하지만 그자들도 잠든 뒤였다. 누이가 목욕을 하는 동안 자신이 형 진후와 함께 망을 볼 때 보았다. 저 암재에서 새어나오던 불빛이 잦아들고, 아무도 나오지 않은 채로 한참 시간이 흘렀으니 이미 깊은 잠에 빠질 법도 했다.



"살..."


이진은 숨이 턱에 걸려서 목소리를 내뱉을 수도 없었다. 손톱 끝에 온힘을 주어 이끼투성이 바위를 부여잡고 매달린 지 도대체 얼마나 지났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밤에는 육안으로 시간을 알 수가 없었다. 더러 성좌의 움직임을 보고 일경인지 삼경인지 경更 단위로 분간하는 이들도 있다지만, 삼점인지 오점인지 점點 단위까지 분간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나마 물시계나 자명종 같은 물건이 있다고 하지만서도. 벌써 일각은 지난 것 같은데, 자신을 죽이려고 들었던 서생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하기야, 자신의 눈을 찌르려 하고, 또 척추를 부수려 들었던 작자가 자신을 살리려고 사람들을 불러올 리도 없었다. 오히려 죽이려고 사람들을 보내면 모를까. 있는 힘껏 바위를 부여잡으려고 하였지만, 손가락 열마디는 후들거리고, 열손톱 끝은 바들거렸다. 왜 하필 비까지 내려서 바위가 더 미끄러운 건지. 손가락끝에서 힘이 쭉 빠져버리는 것을 느끼고 이진은 두눈을 더욱 크게 지릅떴다.


안돼.


다시 바위를 다잡는 순간, 겁에 질린 이진의 시야는 더욱 좁아졌다. 칠순 넘은 외조부보다도 눈이 밝은 몸이건만, 왜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시야가 옆으로 퍼지지 않고 오히려 돌돌 만 종이 틈새처럼 좁혀지는 건지, 이제는 바위 주변의 황양목이나 첨성대 머릿돌이나, 풀 한포기 돌 한개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 같은 공포가 두눈 앞에 자우룩하여, 머릿속이 그저 까무룩했다.


"너 거기서 뭐하냐?"


갑자기 머리꼭지 위에서 들려온 낯선 음성에, 이진의 눈앞에 자욱했던 안개가 순식간에 걷혔다. 이토록 이슥한 밤에, 이토록 으슥한 계곡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그런데 들렸다. 이진은 두눈을 깜빡였다. 컴컴한 밤중이라 시야도 침침한 탓인지, 목소리의 임자가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윤곽이 흐릿했다. 그래서 두눈에 애써 초점을 모았다. 짙은 피부에 흑옥 같은 눈동자가 눈앞에 있었다. 아니, 얼핏 눈동자에 붉은 기운이 도는 것도 같았다.


"모처럼 단잠을 자는데 말이야."

"사, 살..."


순간적인 기분이었지만, 꼭 도와달라 말해야지 도와줄 것 같았다.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보듯이 천년만년 쳐다만 볼 것 같았다. 그래도 반가웠다. 하필이면 아무도 없어야 할 이곳에 나타났는데도, 좀전에 머릿돌 위에서 몽깃거리는 것을 본 것 같은데도, 그런데도 벌써 눈앞에 바짝 다가왔는데도, 사람이 아니라 귀신 같은데도. 어쩌면 그 두억시니가 자신을 죽이라고 보낸 사람일 지도 모르는데도.


"걱정 마라. 요 아래로 빠져도 구해줄 놈도 내 뒤에 있으니."


석하는 느긋하게 말하며, 자신의 어깨너머를 엄지로 가리켰다. 뒤에선 승윤이 붓통을 열고 가는붓 하나를 만지작거리는 참이었다. 정말로 이 바위 아래의 소沼에 아이가 빠질 경우를 대비하여 대롱을 만들기 위해서, 붓털과 붓꼭지를 뽑을 기세였다.


"빨리 좀..."


물에 빠져도 구해줄 사람이 있다지만, 이진은 당장 물에 빠지고 싶지가 않았다. 바위에 매달린 채로 발이 허공에 뜬 순간의 공포는 엄청났다. 어떻게 버텼는지, 눈앞의 사내가 자신을 죽이려고 들 수도 있는데도 벌써 바위에서 손가락끝이 미끄러지는 터였다.


"자!"


석하가 한손은 뒷짐을 지듯 뒤로 돌리고서 피식 웃으며 이진에게 또 한손을 뻗었다. 이진은 자신이 그손을 잡는 순간 상대가 손을 놓든지, 아니면 같이 밑으로 떨어지든지 할까봐 겁이 났다. 하지만 이진이 그 손을 잡기도 전에, 상대가 먼저 한손으로 손목을 잡아끌었다. 날이 더워선지, 온힘을 다해선지 여릿한 땀냄새를 풍기면서, 상대는 이진의 손목을 쑥 잡아당기더니 쭉 끌어올렸다.


살았다.


너부죽한 바위를 두손이 짚고, 또 두발이 딛고 나서야, 이진은 비로소 자신이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잡을 만한 나무줄기도 없고 가지도 없는데 어떻게 한손으로 자신을 잡고 끌어올렸는지는 몰라도, 상대는 정말로 도깨비 같았다. 오늘따라 도깨비가 왜 이리 많은 건지.


"누구세요?"

"별 보러 온 사람."


도깨비가 싱긋 웃었다. 이진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입을 쩍 벌렸다. 정말로 저 첨성대 위에서 별이라도 봤다는 건지. 사람이 맞나 싶었다. 자신이 여태 고맙다는 말도 안한 채로 상대의 신원 확인만 하려드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서 이진은 계속해서 재우쳐 물었다.


"정말요? 정말 별 보러 오신 거예요?"

"저 위 첨성대에 있었는데, 못 봤더냐?"


이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보기는 봤었다. 발이 미끄러지기 전에, 첨서대 머릿돌 위의 검은 그림자가 보이긴 했었다. 하지만 얼굴까지 본 것은 아니었다. 머릿돌 위에 있던 사람이 눈앞의 이 사내란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고작 열셋의 나이지만, 뭔가 외조부 주변의 기류가 이상하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던 탓에, 이곳 구곡에서 만나는 사람 모두가 수상쩍기만 했다. 사내행세를 하다가 목욕 도중 자신에게 젖무덤을 딱 걸린 계집아이도, 그런 계집을 부른 외조부도, 이곳 화양구곡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첨성대에서 갑자기 출현한 이 사내도, 모두가 요상했다.


"바래다 주마."

"아저씨 남인이세요?"

"아저씨?"


석하는 입맛을 쩝 다셨다. 아저씨 소리를 들을 날이 올 줄은 미처 몰랐다. 자신의 나이가 스물이 넘었고, 반가에선 이 나이에 애가 둘이니, 아저씨라 불려도 따지는 게 우스운 꼴이었다. 게다가 요 어린 것의 입에서 남인 소리를 듣게 될 줄도 몰랐다. 어쩐지 억울했다.


"남인 아니세요?"

"아닌데."

"그럼 왜 같이 안 있구, 여기서..."


이진이 말끝을 얼버무리는데도, 석하는 말뜻을 알아들었다. 자신이 송시열의 제자였으면 저 계당이든, 암재든, 한데 어울려서 묵었을 테지만, 여기 첨성대에서 풍찬노숙을 하다가 이 아이를 만났으니, 남인쯤으로 오해할 법도 했다.


"올빼미梟 새끼가 아니면, 새鳥가 아닌가?"


석하가 냉소로 대꾸했다. 겉뜻이야 송시열의 제자가 아니면 서인이 아니냐는 항의였다. 하지만 속뜻이 은근히 신랄하여 이진은 자라목이 되었다.


올빼미 새끼라니. 올빼미는 새끼가 어미를 잡아먹는다 하여, 불효不孝, 불충不忠의 상징이었다. 마침 희미하게 올빼미 울음이 들려선지, 아니면 외조부를 역신으로 빗댄 느낌이 들어선지, 자신을 구해준 이 도깨비의 눈치가 보였다.


"하긴, 떼보 아저씨도 올빼미 새끼는 아니니까요."

"떼보 아저씨?"

"고모부 조칸데, 고모부가 떼보라 부르세요. 착한 아저씬데."


박태보. 서계 박세당의 차남. 석하는 머릿속에 웬만한 족보는 다 들어있었다. 윤증의 조카이자 떼보라 불릴 만한 이름을 찾다보니 자연히 그 이름 석자가 떠올랐다. 하지만 유순한 성격이 아니었나 싶었다. 박태보, 그 이름 탓에 떼보라 불리나.


석하는 문득 발치에서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물체를 발견했다. 칼집이 벗겨지고 몸집만 남은 은장도였다. 호기심을 느끼고 줏어드니 칼자루가 은입사로 당초문양과 함께 봉황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진 것이, 한눈에도 귀한 물건이었다.


은장도라....


달빛에 비추어 좀더 자세히 살펴보니, 무려 5촌은 됨직한 길이로, 옷고름에나 찼을 법한 패도佩刀였다. 검집이 없어서 고리나 첨자 등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었다. 그래도 칼자루에 새겨진 봉황문양의 기법은 근래에 광통교 일대에 보급된 엽사葉絲(나뭇잎처럼 얇은 금속판을 덧대어 쪼이질을 하고 실을 끼우는 기법)가 아니라 궁가나 사대부가에서 취급하는 고전적인 입사入絲(홈을 파고 실을 끼움)였다. 공조工曹나 상의원尙衣院에 소속된 소은장小銀匠(은을 세공하는 장인)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장의 물건이었다. 칼등에 새겨진 실을재載자를 보니 자신도 족형을 대신해서 거래했던 이덕재의 솜씨였다. 그자를 구워삶으면 은장도의 주인쯤은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 이리 내요!"


이진이 얼굴이 벌개져서 석하의 손에서 은장도를 홱 낚아챘다. 꼭 자기 물건 돌려받는 듯한 동작이라 스스로도 무안했다. 석하는 고개를 비끼고 이진을 쳐다보았다. 이곳 첨성대에선 저 위쪽 와룡암이나 파천은 몰라도, 적어도 저 아래쪽 암재나 계당 정도는 훤히 내려다보이고, 또 뻔히 들여다 보였다. 필시 아까 계당 근처에서 목욕을 하던 어린 계집이 휘두르려 했던 그 은장도가 분명했다. 송시열의 제자들 틈에서 남장을 하고 숨어든 계집이라...


우스웠다. 계당이며, 암재며, 각 방마다 주막의 봉노처럼 빼곡하게 제자들이 들어찬 탓에, 차마 목간통을 들이지 못하고 이렇게 계곡에서 몰래 숨어서 목욕을 했을 터였다. 계집의 몸으로 제자들 틈에 섞인 것이 송시열도 모르는 일인지, 송시열도 아는 일인지, 속단할 수 없어서 가만히 두고 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아끼는 외손주가 물에 빠졌다는데, 고작 어린 겸인 한놈만 데리고 암서재 일대를 수색하게 하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송시열도 계집의 정체를 아는 것이 분명했다.


"혼담이 오가는 처자인가..."

"글쎄요."

"혼담이면 남장 시켜 데려올 리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저 혼잣말일 뿐인데, 아이가 자꾸 되받았다. 그것도 도발적인 말투로. 석하는 관찰하는 눈빛으로 이진을 보았다. 그리고 이진의 대답을 곱씹었다.


"글쎄?"

"그쪽 말로는 제 색시가 될 처자라는데, 좀..."

"그래? 그럼 네가 나중에 돌려주든지. 돌려줄 수 있으면."


석하는 쓰게 웃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를 구했으니, 더는 여기 구곡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속히 아이를 돌려주고 자리를 떠야 했다. 석하는 등뒤의 승윤에게 턱짓을 했다.


"이만 여길 떠야겠다. 이 아이는 노인네가 찾을테니 데려다주고."

"엉? 난 이미 요 잘생긴 얼굴 팔아먹었는데."


승윤이 넉살도 좋게 대꾸했다. 석하는 입꼬리에 헛웃음을 흘리며 뒷눈꼬리로 이진을 돌아보았다. 이진은 저들이 외조부를 마주치기 싫어하는 느낌을 받았다.


"됐어요. 어차피 저도 외조부님 얼굴 보기 싫거든요?"

"뭐?"

"저 그냥 암재로 데려다주세요. 거기 고모부가..."


이진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석하의 어깨너머로 도깨비불이 느릿하게 춤추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깨비불이 아니라 이진 자신을 찾는 누군가의 초롱불이었다. 고작 하나 뿐인 초롱불은 어둠 속에서 빗줄기를 흠뻑 머금고 흐릿하게 반짝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97 뚱뚱한멸치
    작성일
    14.07.21 09:43
    No. 1

    흠흠...

    꺽정이가 보고싶은데 시커먼 서카가 나왔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ANU
    작성일
    14.07.21 18:52
    No. 2

    흠흠...
    숙종이 보고싶은데 시커먼 서카가 나왔쓰~
    =3=3
    고뇌로 늙어가는 젊은 숙종을 보며 뒷골을 부여잡고 글을 쓰시는 작가님이 자꾸 연상됩니다.
    무더위에 건강 상하시지 않게 관리 잘하셨으면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4.07.21 20:55
    No. 3

    흠흠...
    위에 두분...다음화에서 실컷 보시기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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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해의 그림자 207 +3 14.10.02 1,312 22 43쪽
207 해의 그림자 206 +4 14.09.25 2,690 34 43쪽
206 해의 그림자 205 +4 14.09.19 1,624 26 43쪽
205 해의 그림자 204 +3 14.09.12 1,709 26 40쪽
204 해의 그림자 203 +6 14.09.05 1,496 30 39쪽
203 해의 그림자 202 +7 14.08.30 1,732 31 41쪽
202 해의 그림자 201 +4 14.08.21 1,842 42 41쪽
201 해의 그림자 200 +5 14.08.14 1,381 30 42쪽
200 해의 그림자 199 +4 14.08.07 2,036 34 42쪽
199 해의 그림자 198 +5 14.07.31 1,852 41 43쪽
» 해의 그림자 197 +3 14.07.21 1,785 41 41쪽
197 해의 그림자 196 +7 14.07.15 1,845 34 42쪽
196 해의 그림자 195 +3 14.07.11 2,017 32 41쪽
195 해의 그림자 194 +3 14.07.06 1,941 34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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