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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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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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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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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당신이 왜 그자와

DUMMY

당신 남편이 무슨 동물 출신이냐고 물으면 보통의 아내는 뭐라고 답할까?

게으른 남편이면 나무늘보. 냄새 나는 서방이면 스컹크. 혈기왕성한 신체로 한창 깨를 볶을 때면 물개.

댕댕이에 비유하는 아내도 많을 거다. 유명한 훈련사가 출연하는 개 훈련 프로그램을 참고해서 남편을 다룬다는 아내들도 꽤 되니까.


그런데 자기 남편 관련된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가 그렇게 물으면 대부분의 아내는 황당해할 거다. 그리고 진짜 중간자의 아내라면 딱 잡아뗄 궁리를 하겠지.

그런데 박진모 씨 아내 김윤희 씨는 달랐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몸을 떠는 게 보였다. 힘들고 곤란한 상황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김윤희 씨는 워낙에 거짓말을 잘 못 하는 매우 마음 여린 사람 같았다.


“그걸 어떻게···?”

“저도 가족 중에 중간자가 있습니다.”

“아···”

“경찰 조직내 극히 일부이지만 저희 부서에서는 중간자들의 존재를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중간자들이 관련된 사건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윤희 씨는 나를 한 동안 빤히 바라봤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일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줬던 초코바를 씹고 천천히 물을 마신 다음에 박진모 씨의 정체를 밝혔었다.


“카페 이름도 남편분에 맞춰서 지으신 건가 보죠?”

김윤희 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목멘 소리로 대답했다.

“많이 좋아했었어요. 반달이라고 이름 붙인다고 했더니. 재밌어 하고 고맙다고도 했어요.”


많이 좋아했다는 말이 부부가 서로 좋아했다는 의미로 들렸다. 내 멋대로 해석이지만.

피해자 가족이 마음을 열고 있으니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박진모 씨는 어떤 분이셨어요?”

울컥 눈물이 치밀었나 보다. 김윤희 씨는 잠깐 이를 앙다물었다가 얘기를 시작했다.


“솔직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형사님한테 얘기한다면··· 사건과 관련될 가능성 있는 얘기를 해야겠죠. 열정이 있고 순수해서 잘 분노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불의를 보고 잘 안 참는다. 불이익은 잘 참는 선량한 사람들이.


“그이는 건설업자지만 역사를 전공했어요.”

“아, 예···”

“중간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권력을 가진 자들한테 이용당했다고 했어요. 태생적으로 숨겨야 할 약점이 있기 때문에 악당들의 표적이 됐다는 거죠.

그이는 악당들이 조폭이나 깡패 수준이 아닐 거라고 그랬죠. 최근에 알코올 중독자 동물학자가 죽은 사건 뒤에도 권력자가 숨어 있을 거라고요. 실행은 깡패가 했더라도···”


박진모는 고박사가 사망 사건을 알고 있었고 그게 알코올 중독사가 아니란 것도 파악하고 있었다. 정보력을 꽤 갖춘 인물이었다.


“중간자들의 존재가 완벽하게 숨겨질 수는 없다고 그랬어요. 경찰보다 더 높은 사람들, 은밀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중간자들을 알고 있을 거라고요. 그런 사람들이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중간자들을 이용해서 악행들을 저질러 왔다고 그랬어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맞장구를 쳐주자 김윤희 씨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이 한 말을 믿어주는 사람, 남편에 대해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녀는 포옥 한숨을 내쉬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과거에는 숨은 권력자들이 중간자들을 통일운동가나 사회운동가들을 해치는 데 부려먹었다고 했어요. 중간자들의 약점을 알고 비무장지대 같은 대자연으로 돌아가고픈 심정도 알아서 이용했다고요.”


멀더와 스컬리가 한 얘기와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차이점이라면 박진모 씨는 중간자 테러범 배후에 숨은 권력층을 강조했다는 거다. 멀더와 스컬리가 중간자 테러범의 위험성에만 주목한 것과는 톤이 달랐다.


애니 웨이, 멀더와 스컬리 얘기가 단순한 추정이 아닌 게 드러나고 있었다.

진짜였다. 나는 자질구레한 변두리 사건이 아니라 핵심으로 들어온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진모 씨는 이제 숨은 권력자들이 통일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 같다고 말했단다. 자연 녹지 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공격을 받는 경우가 생겼는데 그게 중간자 테러범을 조종하던 자들 소행으로 보인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김윤희 씨는 더욱 남편을 말렸다고 했다. 그린벨트 해제 지역 개발사업에 뛰어들지 말라고.

하지만 박진모 씨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누군가 개발 사업을 해야 한다면 자신이 제대로 개발해서 그들 뜻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보려고 했다는 거다.


그 다음으로 나는 박진모 씨가 그린 플리즈라와 관련이 있냐고 물었다.

김윤희 씨는 남편이 회원이고 그쪽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긴 했지만 특별한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 다음 질문은 특정인에 대한 거였다. 박진모 씨와 다툰 기록이 영상으로 남아 있는 그린 플리즈 녹지보존팀장.


“황대호 씨는 아세요?”

남편이 오래 친하게 지낸 친구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황대호 씨도 남편의 그린벨트 해제 지역 개발 참여를 말렸단다.


“그이 계획대로 진행하면 손해를 볼 수 있고, 돈에 눈먼 다른 업자들한테 밉보일 수 있다고 경고했어요. 깡패 같은 놈들이 많다고 위험할 수도 있다고도 했고요.”


실종자의 아내는 황대호를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그 판단이 맞는 걸까? 아니면 이 여인이 황대호의 가면에 속은 걸까? 내 잠시의 고민을 깨려는 듯 조용히 엎드려 있던 개가 컹컹 짖어댔다.


“이놈 견종이 뭐죠?”

“반반이에요. 중국개 차우차우랑 진돗개 혼종.”

듣고 보니 그래 보였다. 진돗개보다 크고 털이 뭉실뭉실했다.

“그래서··· 짬짜라고 부르기도 하고 반반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그이가요···”


자기 이름을 들어서 그런지 개는 다시 컹컹 크게 짖었다.

개를 바라보는 김윤희 씨의 촉촉한 눈은 그리움에 젖어 있었다. 진돗개도 아니고 차우차우도 아닌 개를 반반일아 부르던 완전한 인간도 반달곰도 아닌 존재. 사라진 남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실린 눈이었다.



김윤희 씨를 만났던 얘기는 결국 아침에야 할 수 있었다.

기철이 형은 출근시간이 되자 뭘 하느라 못 잤는지 피곤한 몰골로 1층에서 나왔다. 마당에서 기다렸던 나는 피로의 이유는 따지지 않고, 실종자 아내에게 들은 얘기들을 전해 줬다.

그리고 우리는 박진모 씨 실종지 부근의 영상 정보를 수집하러 충청도로 달려갔다.


멀더에게 전화를 해서 부탁한 덕에 관할 경찰서와 교통 당국의 협조는 쉽게 이루어졌다. 먼저 2주 전에 박진모 씨 차량이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실종지 부근 CCTV와 교통 정보 카메라 앞을 지나친 장면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박진모 씨 차량이 촬영된 전후로 통과한 차량들을 확인했다.

기철이 형이 불러주면 초딩 때부터 인정받은 타이핑 실력으로 내가 모든 차의 차종과 번호를 입력했다.


그러다가! 박진모 씨 차량 통과 두 시간 뒤까지 톨게이트 통과 차량들을 다 기록하고 그만하려고 할 때! 내가 가진 매의 눈이 포착하고 말았다.

모니터 주시 담당인 기철이 형도 무심히 보고 확인을 마무리하려던 찰나에 보인 초록색 영문!


자동차 뒤편에 붙은 스티커에서 왕눈이 바다표범이 귀엽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선명하게 적힌 초록색 글자, Green Please!!

“스톱! 영상 정지!”


나의 샤우팅에 기철이 형은 황급히 영상을 멈췄다.

나는 낡은 SUV 차량의 번호를 적고 곧바로 조회를 요청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기철이 형까지 두 사람이 샤우팅을 했다.


“황대호!”

황대호의 SUV가 박진모 씨 차량이 통과하고 두 시간 후에 같은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거다.

우리는 신이 나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황대호 차량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박진모 씨 차가 톨게이트 다음에 찍혔던 사거리 교통정보 수집 카메라에도 역시 황대호의 SUV가 촬영돼 있었다. 그 다음 초등학교 앞 사거리 CCTV에도 황대호 SUV가 포착돼 있었다. 박진모 차량과의 촬영된 시간 간격은 똑같이 두 시간씩이었다.


그런데 그린벨트 해제 지역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CCTV에는 황대호의 SUV가 찍혀 있지 않았다. 중간에 다른 길로 빠져나간 거였다.


‘어딜까? 어디로 샜는지 찾아내려면 날밤 새워야 되나?’

신나던 추적이 한 순간 벽에 막힌 기분이었다. 기철이 형도 어쩌면 오늘밤에 고양이 닮은 여인 품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예감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기철이 형이 기지개와 하품으로 짜증을 뱉어내고 있을 때! 내 기억력이 번뜩였다.


“김윤희 씨요!”

“김윤희? 그 사람이 왜?”

“김윤희 씨가 반대편 쪽에서 산을 넘어왔었거든요!”

“뭔 소리야? 차근차근 설명을 좀 해 봐.”


하래서 했다. 어제의 대화를 인용해서 김윤희 씨 이동 코스가 황대호 추적의 힌트일 거라고 주장했다.


* * * * * * * * * * * * * * * * * * *


“너무 피곤해 보이세요. 오늘은 그만 찾으시고 돌아가셔야죠.”

“조금만 더 돌아보고 갈게요.”

“그럼 제가 기다릴 테니까 잠깐만 살펴보고 오세요. 제 차로 서울까지 모셔 드릴게요.”

“아니에요. 저도 차 가지고 왔어요. 반반이 끌고 오면서 버스 탈 수도 없잖아요.”

“이쪽 입구에 차가 없던데요.”

“어제는 여기 차 세우고 쌍바위 앞까지 돌아봤고요. 오늘은 반대편에 세워놓고 넘어왔던 거예요. 마이산 닮은 쌍바위 아래에 동네 사람들이 매바우라고 부르는 데 공터 주차장이 있거든요.”


* * * * * * * * * * * * * * * * * * *


그래서, 황대호도 문제의 매바우 공터 쪽으로 주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기철이 형에게 밝혔다.

문제의 그린벨트 해제 지역으로 진입하는 길이 하나는 아니니까. 그리고 범죄를 의도한 자라면, 의외의 지점에서 대상을 공격하려고 반대편 봉우리를 넘어올 수도 있으니까.


또 그래서, 우리는 매바우로 향하는 도로의 CCTV들도 확인을 했고, 빙고! 황대호의 SUV를 확인했다.



녹지보존팀 사무실에는 황대호가 없었다.

자원 봉사자가 황팀장님은 휴게실에서 손님을 만나고 계실 거라고 알려줬다. 사무실에서 기다릴까 하다가 일단 휴게실로 가보기로 했다. 손님이랑 같이 나가버리기라도 하면 괜한 시간만 버리니까.


CCTV를 확인하고 상경하면서 기철이 형과 나는 황대호를 어떻게 다룰지 논의했다. CCTV에 나온 것만으로 체포하거나 영장을 청구할 수는 없었다. 경찰서로 임의동행한다고 해서 뾰족한 답을 찾을 것 같진 않았다.


“진짜로 범행을 한 놈이라면 변명 거리는 분명히 만들어 놨을 거야. 무식한 놈도 아니고, 우발적인 범행도 아닐 테니까.”

그래서 안면이 있고, 그린 플리즈 가입까지 한 내가 일단 황대호를 만나서 떠보기로 한 거다.


휴게실 앞까지 가니 주머니의 감지기가 강하게 진동했다.

적어도 둘 이상의 중간자가 휴게실에 있다는 신호였다. 뭔가 예상 못한 정보나 사연과 맞닥뜨릴 것 같은 예감과 함께 긴장감이 느껴졌다. 후우~ 심호흡을 한 다음 휴게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이런, 이런, 큰일이··· 어떻게 이런 장면이···

황대호 앞에는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황대호는 한 손으로 테이블 위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손수건을 건네고 있었다. 감정이 북받친 여인이 손수건은 의식도 못하고 계속 눈물을 흘리자 황대호는 직접 그 얼굴을 닦아 줬다.

내 마누라, 미랑의 얼굴을!!!


그리고··· 남편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있는 줄도 모르는 채··· 미랑이 울먹이며 말했다.

“돌아간다면···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 이, 이게 뭐야! 웬 난데없는 사랑과 전쟁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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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 sa*****
    작성일
    24.04.12 09:13
    No. 1

    이거 혹시 나중에 선녀와 나뭇꾼 스토리 되는건가요? ㅎㅎ
    잘 읽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1 신성치
    작성일
    24.04.12 11:18
    No. 2

    독자님 소중한 질문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은 타인의 목욕 장면을 훔쳐보고 옷을 숨기는 변태적 인간과는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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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사냥 중계방송 24.04.24 7 1 12쪽
71 사냥개들 24.04.23 7 1 12쪽
70 왕따는 선량한가? 24.04.18 7 1 12쪽
69 빈 책상들 24.04.18 11 2 12쪽
68 슴과 소를 지우면 +2 24.04.17 15 2 14쪽
67 다가오는 용의자 24.04.16 12 2 12쪽
66 특이한 부부싸움 24.04.12 11 2 13쪽
» 당신이 왜 그자와 +2 24.04.11 12 2 13쪽
64 두 가지 대답 24.04.10 9 2 12쪽
63 개를 데리고 걷는 여자 24.04.05 9 2 13쪽
62 축소된 말의 귀 +2 24.04.05 11 3 12쪽
61 밴이 찾아왔다. +1 24.04.03 12 3 12쪽
60 아내가 있는 방 +3 24.04.01 12 3 12쪽
59 아이 없는 숨바꼭질 +2 24.03.29 16 3 12쪽
58 베타 테스트 +4 24.03.27 14 3 12쪽
57 두 개의 그린Green +2 24.03.26 11 4 13쪽
56 아빠의 눈물 +2 24.03.22 18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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