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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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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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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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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512

작성
24.04.1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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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다가오는 용의자

DUMMY

미랑이 가버린 다음 나는 그린 플리즈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잘못된 판단으로 미랑을 의심했고 미랑은 나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 노보형 때문에 뱃속의 아이를 잃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미랑은 그 사실에 여전히 고통스러웠고, 나한테도 미안해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나는 미랑을 배신자로 불륜으로 몰아붙였다.

미랑 입장에서는 무지하게 야속할 수밖에 없다. 오리지널 인간들에게 신분을 숨기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 완전한 인간이 되는 미션을 완수하는 것은 힘겹고 오래 걸리는 상황. 그런데 남편마저 자기를 의심한다.

이제는 믿을 놈이 하나도 없다는 막막한 심정일 거다.


나도 막막하기는 했다.

어떻게 사과를 해서 어떻게 마음을 달랠 수 있을지 대책이 서질 않았다. 한 템포만 늦게 행동했으면··· 조금만 차분했으면··· 후회가 밀려왔다. 담배를 꺼내 물었을 때, 덩치 큰 사내가 앞을 가로막았다.

황대호였다. 나는 담배를 도로 담뱃갑에 넣었다.


“미랑 씨는 어디로 간 거죠?”

아까는 내 오해였지만 이 남자가 미랑 얘기를 하니까 기분이 나빴다. 괜한 오기 때문일 수도 있고, 미랑에 대해 내가 모르는 부분을 알고 있는 게 못마땅할 수도 있었다.


“몰라요. 그걸 왜 알고 싶은 건데?”

“아까 변신하는 것 같았는데 그 상태로 밖에 있으면 안 되잖아요.”

황대호 말이 맞았다. 아차 싶었다. 억지로라도 붙잡았어야 되나?


“붙잡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해? 당신들 힘을 이길 수가 없잖아.”

나는 계속 ‘비뚤어지겠다 모드Mode’였다.


“내가 중간자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내 주머니에선 그 순간에도 감지기가 떨고 있었다.

“그냥 압니다. 짭새 눈엔 다 보여요.”


황대호는 한숨을 쉬었다. 진지한 대화를 거부하는 상대가 답답한 모양이었다.

“들어가서 잠깐 얘기 좀 합시다.”


사실 난 황대호랑 얘기하러 온 거였다. 황대호 제안을 따르는 게 맞았다. 그런데,

“얘기 좋아해요? 남의 마누라랑도 한참 얘기하는 거 같더니.”


말하고 나니, 아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유치함의 진도가 너무 나가버린 거다.

황대호가 짜증을 꾹꾹 눌러참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는 내 팔을 잡았다. 따라오라는 신호, 같이 들어가서 얘기하자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손아귀 힘이 강하게 느껴진 게 문제였다. 갑자기 자존심이 상했다. 분명 그에게서 공격 의도는 느껴지지 않았는데 나는 힘을 줘서 팔을 뿌리치려고 했다.

어라, 그런데 황대호의 손이 꿈쩍을 안 하네.


“이거 안 놔?”

“내가 용의자면 경찰을 붙잡는 게 아니라 도망가는 게 맞잖아요? 경찰이 오히려 나를 잡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내 기분은 그게 아니었다.

“알았어. 내가 붙잡아 줄 테니까 놓으라고. 어디 감히 경찰 팔을···”


그래도 황대호의 손아귀는 풀리지 않자 열이 확 뻗쳤다.

내 주먹이 황대호를 향해 날아가자 황대호는 손을 놓았다. 동시에 고개를 돌려서 펀치를 피했다.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쳤다.

억, 나는 충격을 받고 뒷걸음질 쳤다. 파워가 대단했다.


“진정해요. 그만 좀 합시다.”

“경찰을 쳐?”

“아니, 그게···”


싸우지 말자는 상대를 향해서 원투 스트레이트에 이은 미들킥이 날아갔다.

날아갔을 뿐이다. 주먹과 발에 맞은 건 공기뿐이었다.


큰 덩치이지만 황대호는 날렵했다. 그리고 덩치에 걸맞게 힘이 셌다.

내 공격을 피한 황대호의 태클이 신속하게 나를 덮쳤다. 나는 순식간에 황대호에게 눌려서 힘을 쓸 수 없게 됐다.

강력 형사가 대낮 길거리에서 주먹질을 하다가 오히려 깔려 있다니···


“뭐야··· 왜 이렇게 세? 황대호 씨. 호랑이 출신이야?”

“스라소니.”


그랬구나. 역시··· 출신 성분은 전투력의 중요 요소였다.

그의 과거를 알고 나니 투지가 급격히 꺾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급속도로 태세 전환을 했다.

“먼저 주먹질한 건 쏘리.”


그러자 나를 깔아뭉갰던 스라소니 출신 덩치가 일어섰다. 그리고는 내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줬다.

이 아저씨, 뭔가 남자다운 매력이 있는데··· 말없이 돌아서서 그린 플리즈 안으로 들어가는 매력남을 나는 졸졸 따라갔다.



「누군가 나를 해친다면 그린 플리즈는 아니다. 황대호도 아니다. 나는 절대 도망치지 않고, 자살하지도 않는다. 박진모.」

처음엔 유서를 보여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유서 같은 건 절대 남기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박진모가 펜으로 종이에 적은 글 아래에는 지장이 찍혀 있었고, 좀 장난스럽게 느껴지는··· 머리카락까지 붙어 있었다.

머리카락을 누르는 스카치테이프 위에는 붉은 지장이 봉인처럼 묻어 있었다. 친필 여부가 의심되면 머리카락으로 자기 DNA를 확인하라는 뜻이었다.

나중에 누가 주워다 붙인 게 아니라 스스로 붙였다는 건 지장으로 표시한 거다. 재치 있으면서도 꼼꼼한 사람 같았다. 실종된 박진모 씨가.


“진모랑은 오래된 친구 사입니다. 진모가 충청도 그린벨트 개발하려는 걸 반대한 건 위험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 친구는 멈추지 않았어요. 되려 중간자들과 그린플리즈를 노리는 자들을 밝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럼 이 메모는 위험을 느끼고 작성한 건가요?”


황대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덧붙였다.

“그런데 그 곰새끼는 별로 위험하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한숨을 쉬는 스라소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곰새끼한테 곰새끼라고 부를 수 있다는 건 진짜 친한 사이였다는 증거였다.


“그린벨트 개발 반대 운동을 한 다음부터 그린플리즈에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어요. 늑대파 깡패 같은 수상한 회원들도 가입을 하고. 도난 사건, 범인을 알 수 없는 폭행 사건도 일어났죠.”

그랬었구나··· 사실 나도 수상한 회원이지만 황대호 얘기를 진지하게 경청했다.


“진모는 옛날부터 권력에 빌붙은 자들이 중간자들을 이용해서 테러를 저지르고, 이용가치가 떨어진 중간자는 제거해 왔다고 믿었어요. 그린벨트 개발에 반대하는 그린 플리즈에 악재가 자꾸 생기자 놈들이 움직인다고 판단했죠.”


황대호의 말이 점점 그럴 듯하게 들렸다. 내 상관인 멀더와 스컬리는 황대호를 용의자로 보고 그린 플리즈를 악의 온상으로 보고 있는데···


“너랑 그린 플리즈는 계속 개발에 반대해라. 나는 개발권을 따내서 놈들 생각과 다르게 친환경 개발을 하겠다. 그리고 마이산을 닮은 지역에서 중간자 복귀 프로젝트 연구를 한다고 흘리겠다. 그러면 놈들이 정체를 드러낼 거다···”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구나.

왠지 산에서 만난 김윤희 씨와 사라진 그의 남편 박진모 씨가 훌륭한 사람인 것 같다는 내 예감이 맞아가는 것 같았다.


“진모가 실종된 날. 내가 진모를 따라갔다가 못 만난 날 내가 휴대폰을 잃어버렸었어요. 어디 놓고 온 데가 없었는데··· 소매치기라도 당한 것 같았죠. 그런데 사무실 전화로 진모 회사에 전화를 해 보니까 진모는 내 전화를 받고 나갔다는 거예요.

뭔가 위험신호 같았어요. 계속 진모한테 전화를 해 봤지만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만 들려왔어요. 아무래도 어떤 놈들이 진모 폰에도 뭘 심은 것 같다. 스미싱 하는 놈들처럼요.”


이 말이 진실이라면 계획적이고 치밀한 음모가 있었던 거다. 내가 반신반의의 눈빛으로 황대호를 보자,


“폰 잃어버린 거 확인하고 내가 내 폰에 전화를 건 기록들이 있어요. 그 시간대들을 보면 진모한테 전화 건 게 내가 아니란 게 나올 거예요. 그런데 그놈들이 무슨 얘길 한 건지··· 내 목소리처럼 진모를 속인 건지···”

확실한 건 없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런 페이크를 쓸 수 있는 세상이다.


“그날 두 시간 늦게 산에 갔을 때, 결국 박진모 씨는 못 만난 거죠?”

“네. 그런데 숲길에서 이상한 흔적들을 보기는 했어요.”

“어떤···”


황대호는 책상 서랍을 열어서 작은 비닐 팩을 꺼냈다.

그가 건네는 팩을 가까이서 들여다 보니 안에 털들이 있었다. 검은 색과 노란 색의 털들.


“이게 박진모 씨 변신했을 때 털인가요? 반달곰 꺼?”

황대호는 고개를 저었다.

“냄새가 달라요. 오래 안 사이라 난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럴 것도 같았다.


“진모 걸로 보이는 털도 한 뭉텅이 주워 왔어요.”

황대호는 또 다른 비닐 팩을 나에게 보여줬다. 까만 털들 사이에 약간의 하얀 털이 있었다. 반달곰 색깔이 맞았다.


“동물 전문가한테 의뢰해서 어떤 동물 건지 알아 보셔도 돼요. 제 판단이 맞을 거예요. 지형사님이 들고 계신 건 아마···”

나는 다시 비닐 팩을 들여다 봤다가 황대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표범일 겁니다. 아무르 표범.”


아, 참으로 버라이어티하다. 늘 짐승 대잔치가 벌어지고 있었구나. 내 주변에서는.


“색깔로 봐서는 그럴 수 있겠네요. 검정과 노랑.”

“물론 같은 색깔의 고양잇과 짐승은 많을 겁니다. 그런데 옛날부터 표범에 대한 소문은 있었어요. 중간자들을 이용하는 악당놈들 중에 무서운 표범이 있다고. 막강한 킬러. 깡패 늑대 새끼들하고는 상대가 안 되는 자. 그놈들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자.”


노보형 패거리와 싸울 때 늑대인간들의 위력을 체험했었다. 놈들의 두목 이승랑은 미랑이나 묘화가 감히 견줄 수 없는 강자였다.

그런데 더 무시무시한 놈이 있다고라?


“도대체, 박진모 씨가 찾아내려고 했던 놈들은 어떤 놈들인가요? 어떡하면 그놈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진모가 역사를 전공한 거 아시죠?”

“예.”

“마녀 사냥을 가장 강하게 외치는 자들 중에 마녀나 악마가 숨어 있을 확률이 높다고 그러더군요. 중간자들의 정체가 드러나면 중간자들을 박멸하자고 제일 격렬하게 외치는 놈들이 그놈들. 그간 중간자를 이용하고 괴롭혀온 놈들일 거라고요.”

“그럴 듯하네요.”

“고박사 사망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진모는 아무래도 곧 중간자 정체가 공개될 것 같다고 그랬어요. 중간자들의 정체를 감춰 주려고 누군가 고박사를 해친 게 아니다.

고박사를 해친 자들은 중간자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고 마음대로 조작하려는 자들일 수 있다. 그놈들은 중간자 정체가 공개되면 누구보다 강력하게 중간자들의 위험성을 외쳐대면서 자기들과의 접점을 제거할 거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휴우~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렇게 용의자한테 공감해 줘도 되는 건가? 살짝 걱정이 될 때 내 폰이 울렸다.

기철이 형이었다. 나는 황대호에게 눈짓을 한 다음에 사무실 앞 복도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주성아. 지금 어디야?”

“그린 플리즈요.”

“황대호랑 같이 있어?”

뭘까? 기철이 형 음성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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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아내가 있는 방 +3 24.04.01 1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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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베타 테스트 +4 24.03.27 1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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