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새글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5.13 18:39
연재수 :
82 회
조회수 :
2,207
추천수 :
289
글자수 :
488,512

작성
24.04.10 12:49
조회
9
추천
2
글자
12쪽

두 가지 대답

DUMMY

웬만한 생삼겹살은 맛없기가 힘들지만 이번 삼겹살은 유달리 맛이 좋았다.

날마다 해괴한 사건을 접하는 내 입장에서도 딴 생각을 잊게 할 만큼 입에 맞았고, 육식 선호 어린이 옥,희도 폭풍 흡입을 했다. 그간 많이 다운돼 있었던 미랑마저도 씩씩하게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삼겹살 앞에서 가장 뜻밖의 모습을 보이 건 황묘화 백기철 커플이었다.

일단, 묘화는 옥상에 올라오기 직전에 내가 한 말에 대해서 따지지 않았다. 결혼을 축하한다는 멘트에 뭔 소리냐고 한 번 물었을 뿐이다. 불만이나 의문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 까탈스런 황묘화 스타일이 아니었다.


‘찔리는 게 있으니까 그러겠지.’


그리고 이 커플은 티를 감추지 않았다.

쌈을 싸서 입에 넣어주는 노골적인 애정 행각까지는 자제했지만 많은 음식물들을 제 입으로 가져가지 않고 파트너 앞으로 이동시켰다. 특히 구우면 줄기를 따낸 부분의 동그란 홈에 국물이 고이는 양송이버섯은 모두 황묘화에 의해 백기철 앞으로 갔다.


‘아니, 우리 집에서 내 월급으로 산 버섯인데 왜 모두 저 입으로 가는 거지?’

한 개도 맛볼 찬스를 잡지 못한 내 분노가 이맛살에 드러나자 미랑이 포착했다. 역시, 마누라니까!

“뭐야? 그 버섯 국물이 스태미너에 좋다니까 몽땅 백형사님 주는 거야?”


그렇지. 그건 참을 수 없지.

애써 구워 놓은 음식이 남의 남자 정력만 키워주는 꼴은 눈 뜨고 못 보지. 물론 버섯 국물을 먹는다고 변강쇠로 변신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그냥 재미로 만들어낸 말일 거다.


“안 돼요. 이모. 사장님 그만 줘요!”

“스트레스는 나쁜 거예요. 스트레스 걸리면 안 된댔어요.”


기본 식사량을 다 채운 다음 마당에서 고양이랑 놀다가 더 먹고 싶으면 옥상으로 뛰어 올라오던 옥,희의 경고였다.

물론 스트레스라는 부정적 단어를 알고 있음을 과시하고픈 욕망에서 나온 말. 스태미너라는 정체 모를 단어를 자기들 멋대로 해석한 결과였다.


험험험.

미랑의 지적에도 옥,희의 경고에도 기철이 형과 묘화는 대꾸하지 않았다. 기철이 형은 괜히 헛기침만 했고 묘화는 커다란 상추쌈을 볼이 터져라 제 입에 밀어넣기만 했다.


그때, 불판에서 솟구친 기름이 고기를 굽던 내 팔로 튀었다.

“아, 뜨거!”

미랑이 건네는 찬 물과 티슈를 받으면서 나는 황-백 커플을 노려봤다.


“두 사람 때문에 화상을 입었잖아요.”

“뭔 소리야?”

기철이 형이 삼겹살을 입에 담은 채 불분명한 발음으로 질문했다.


“처녀 총각이 사귀는 티를 너무 팍팍 내서. 눈빛이 불판 위에서 스파크를 내니까.”

“맞네. 고기 위로 불똥이 떨어지니까 기름이 튀지. 두 사람 때문 맞네요.”


미랑까지 맞장구를 치자 묘화가 항변을 했다.

“시선이 화상의 원인이란 건 너무 비과학적인 추론이잖아.”


묘화가 이과 출신이었나?

어쨌거나 일반 과학 이론으론 설명 안 되는 존재면서 과학으로 태클을 거는 건 무리수다.

“문학적 표현을 과학으로 따지는 게 더 비합리적입니다. 별 같은 눈동자라고 말하는데 니 눈깔엔 분화구 있냐? 따지면 똑똑한 게 아니잖아요.”


괜찮았다. 말해놓고 보니 내 논리가 유효타가 된 것 같았다.

이제 백형사의 심문 스킬을 능가할 수준이 된 건가? 뭐라 반박하지 못 하는 커플한테 핵심 질문을 날리고 싶었다. 단도직입!


“두 분 어떤 관계냐고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두 사람은 즉답 대신 서로 마주 봤다. 눈빛으로 대응 수위를 맞춰보는 것처럼. 상대 커플이 눈빛으로 공조하자 내 파트너도 가만있지 않았다.


“요즘에요. 집에 누가 자꾸 심야에 들어오는 것 같던데··· 백형사님 아니에요?”

“우리 집은 땡구가 아직 불편해해서요.”

민완 형사가 곧바로 자백을 해 버리다니. 미랑의 압박질문을 백형사가 물은 거다. 마누라 화력 지원 성공!


“형님 반려견이 묘화 씨를 불편해 하기 때문에 형님이 묘화 씨 집에 와서 취침을 해야 한다. 이거 묘한 논리네요.”

재미난 상황 전개였다. 나는 신이 나서 기철이 형을 몰아갔다. 거울을 봤으면 입꼬리 잔뜩 올라간 내 얼굴이 확인됐을 거다. 백형사는 머쓱해서 또 헛기침.

험험험.


“형사 아내로서 추정을 해보면, 두 사람은 거의 한 천장 아래서 취침하는 사이다?”

아내 추정 다음에는 남편 질문이다.

“혼전 동거에 대해서 쿨한 편이셨어요?”


마주 앉은 부부가 계속 몰아가자 드디어 묘화가 등판했다.

“동거냐 아니냐. 그런 개념 규정 안 해요. 그냥 같이 있는 게 좋으면 같이 있는 거고. 따로 있는 게 좋으면 따로 있는 거고. 언제까지 어떻게 한다 정한 것도 없고.”

“그런데 요즘은 계속 같이 있었다? 같이 있고 싶어서?”


와우! 옥,희 엄마 집요한데!

미랑도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풀고 있었다. 의외라는 표정으로 묘화가 미랑을 볼 때 기철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계시면 두 분이 주로 뭘 하시는데?”

“그런 걸 뭘 여쭤봐요? 남겨가 같이 있으면서 하는 일이 다 비슷하겠지.”

기철이 형은 오해를 풀고 싶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욕망에만 사로잡힌 남녀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것처럼.


“꼭 그렇지는 않아요. 솔로들은 못 하는 소소한 것들도 많이 한다니까.”

그러면서 묘화의 눈치를 봤다. 묘화는 딱히 견제하는 눈초리를 보내지는 않았다.

“묘화 씨가 쿨하긴 하지만 소박한 면이 있다니까. 커플들 하는 짓 따라해보기 같은 거 의외로 좋아해요. 전에 배아프고 눈꼴 시렸던 것들 벤치 마킹이랄까?”

“어떤 건데?”


험험험. 이번엔 묘화가 헛기침을 했지만 기철이 형 입은 이미 발동이 걸려 있었다.

“줄 달린 이어폰 같이 끼고 음악 듣기. 뽁뽁이 맞잡고 같이 터뜨리기. 공원 잔디밭에 무릎 베고 누운 사람 귀 파주기.”

“어, 그건 우리도 못 해 본 건데!”

미랑이 맞장구를 쳐주자 기철이 형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지난 주엔 한강에서 오리배도 탔음.”

“진짜?”

“레알?”

사실 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시크 또는 쿨병 말기 증상의 까도녀 황묘화가 그렇게 유치한 구석이 있었다니!


“남들 하는 걸 못해 본 것들이 꽤 있는 것 같아서···”

묘화는 변명을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 다음엔 기철이 형이 물어보지 않은 얘기까지 스스로 털어 놓았다. 살짝 자랑질 느낌이 났다.

“다음 코스는 안장 두 개 핸들 두 개 앞뒤로 달린 이인용 자전거 타기.”

“어디 가서?”


기철이 형은 강촌 유원지쯤으로 계획중이란 말을 했다.

그때, 강변의 풍경이 뇌리를 스치면서 자연에 얽힌 질문이 떠올랐다. 사실은 기철이 형 커플이 아니라 미랑에게 더 묻고 싶은 질문. 그린 플리즈에 다녀와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


“그런데 말이에요··· 숲이나 자연 공간··· 사람 손이 닿지 않고, 야생 동물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공간을 보면··· 혹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나요?”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는 세 사람의 시선을 느꼈다. 갑자기 뭔 소리 하냐는 거지.

“중간자 분들은 인간 사회가 힘들 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나? 꼭 인간 생활을 해야 되는 건가? 회의 같은 게 생기지 않나? 그런 질문이죠.”


미랑의 답을 듣고 싶어서, 내 눈길이 미랑에게 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미랑은 신나게 뛰어올라와서 고기를 낼름 집어먹고 후다닥 내려가는 옥,희를 보면서 대답했다.

“돌아갈 방법도 없지만··· 세 사람이 인간인 이상 결코 돌아갈 수 없지.”

“세 사람, 누구?”


묘화의 질문에 미랑은 여전히 시선을 계단 쪽에 두고 대답했다.

“쟤네들. 그리고 쟤네 아빠씨.”


음··· 그렇군. 미랑의 대답을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그러자 이번엔 기철이 형이 묘화에게 물었다.

“묘화 씨는?”

“엔씨엔디 NCND.”


외교관도 아니면서 묘화는 있어 보이는 척 대답했다.

확인도 부정도 하지 않겠다는 묘하고 도도한 대꾸. 그리고 묘화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살짝 고개를 틀어 기철이 형을 봤다. 퇴폐적이면서 섹시하다기보다는 좀 기묘한 눈빛이었다.

원래 눈동자 모양 자체가 변하는 고양이 출신이니까 눈빛이 다양한 건지···



묘화의 묘한 눈빛은 삼겹살 회식을 마감하는 일종의 신호가 됐다.

평상 위의 음식들과 불판을 정리하고 가위바위보에서 진 미랑이 설거지를 도맡기로 했다.


나는 잠깐 시간을 내서 기철이 형과 얘기를 하고 싶었다.

실종자 박진모 씨의 아내를 만나고 돌아왔으니까. 김윤희 씨랑 나눴던 얘기를 기철이 형이랑 상의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사건에 대해 파악하는 단계였고 수사 초기의 개념 정립은 중요한 거니까.

그런데 기철이 형은 나랑 대화를 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형님. 잠깐 담배 한 대만 피고 내려가요.”

대답도 없이 영쩜 오초쯤 고개를 흔든 게 다였다. 묘화가 가타부타 별 얘기를 하지도 않았지만 기철이 형은 자석에 딸려가는 쇳가루처럼 묘화를 따라서 내려갔다.

그리고 두 인간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 집으로 들어갔다.


‘저 양반 정신이 저렇게 팔려 있으니 어떻게 수사 계획을 하나?’

내일은 언제 만나서 무슨 얘기부터 시작해야 되나, 백형사와의 수사 플랜을 구상하려 했는데··· 난데없이 엉뚱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묘화가 한 손을 뻗어 기철이 형 가슴을 짚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헤이, 수컷.”


눈이 동그래지면서 동시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수컷. 백기철 형사.

“돌아가고 싶냐고?”

백형사는 뭐라 대꾸하지 못 하고 꿀꺽 침을 삼키고,

“여자가 돌아갈 생각은 꿈도 못 꾸게 하겠다. 그런 의욕을 불태워야 되는 거 아냐?”


그리고 묘화는 휘익 휘파람을 불면서 눈을 흘긴다.

“돌아 버리자고. 둘 다.”

머리를 확 풀어제끼는 묘화. 블라우스의 단추도 풀기 시작한다.



어이쿠! 뭘 상상하는 거야?

나는 세차게 고개를 휘저었다. 형사에게는 상상력이 필요하고 상상은 자유라고 하지만 이런 상상은 바람직한 게 아니었다.

다음 장면까지 상상이 이어지면 뭔가 후유증이 생길 것 같았다. 늘 보는 사이가 살짝 불편해질 것 같은 예감이랄까.


민망한 상상을 멈추자마자, 회상이 시작됐다.

마이산을 닮은 봉우리 앞 숲속에서 업고 온 여인과의 대화. 나는 실종된 그녀의 남편 박진모가 해외에서 출생해서 열아홉 살에 입국했다는 정보를 전달받았었다. 관할 경찰서 협조를 받으러 갔던 기철이 형한테서.


그리고 개를 끌고 실종자를 찾으러 다니는 아내 김윤희 씨를 보자 고박사를 찾으러 수색견을 데리고 산속을 헤매던 기억을 떠올렸다. 수색견은 산 사람도 찾을 수 있지만 시신을 찾는 데도 뛰어났다는 걸 기억했다.

그리고 하나 더 떠올린 것. 중간자들은 사망하면 원래 동물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박진모 씨는 동물 사체가 돼 버렸기 때문에 실종자 수색의 성과가 없을 수도 있었을 거다.

그리고 어쩌면 김윤희 씨는 동물의 사체를 찾으러 다니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었던 거다. 남편분은 어떤 동물 출신이셨냐고.


“반달곰이었어요.”

그랬구나. 카페 반달 주인의 남편은 반달곰이었구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변경 알림 24.01.12 21 0 -
공지 연재 일정 변경 24.01.11 19 0 -
공지 연재 시간 알려 드립니다. 23.12.26 41 0 -
82 공개 난투 NEW 10시간 전 1 0 12쪽
81 손톱을 먹은 쥐처럼 24.05.11 4 0 15쪽
80 덫과 구렁 +2 24.05.08 5 1 13쪽
79 숨거나 덤비거나 24.05.07 7 1 12쪽
78 광풍의 시작 24.05.03 9 1 14쪽
77 이종족 색출 24.05.02 8 1 12쪽
76 멸종된 그늘 +2 24.05.01 9 1 13쪽
75 잠들지 않는 밤 24.04.30 8 1 12쪽
74 씹다 멈춘 껌 24.04.26 10 1 14쪽
73 공무집행 방해 24.04.25 7 1 12쪽
72 사냥 중계방송 24.04.24 7 1 12쪽
71 사냥개들 24.04.23 7 1 12쪽
70 왕따는 선량한가? 24.04.18 8 1 12쪽
69 빈 책상들 24.04.18 11 2 12쪽
68 슴과 소를 지우면 +2 24.04.17 15 2 14쪽
67 다가오는 용의자 24.04.16 12 2 12쪽
66 특이한 부부싸움 24.04.12 11 2 13쪽
65 당신이 왜 그자와 +2 24.04.11 12 2 13쪽
» 두 가지 대답 24.04.10 10 2 12쪽
63 개를 데리고 걷는 여자 24.04.05 9 2 13쪽
62 축소된 말의 귀 +2 24.04.05 11 3 12쪽
61 밴이 찾아왔다. +1 24.04.03 12 3 12쪽
60 아내가 있는 방 +3 24.04.01 12 3 12쪽
59 아이 없는 숨바꼭질 +2 24.03.29 16 3 12쪽
58 베타 테스트 +4 24.03.27 14 3 12쪽
57 두 개의 그린Green +2 24.03.26 11 4 13쪽
56 아빠의 눈물 +2 24.03.22 18 4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