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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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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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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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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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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DUMMY

밥부터 먹자는 윤아린 헌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을 굶으면 안 되지.

내가 동의하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부엌으로 도도도 뛰어가더니 냉장고를 열어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다.

모두 배달음식에 쓰이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였다.


“이리 와요! 같이 먹어요!”

“예? 아, 예!”


갑작스러운 식사 대접이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식탁에 앉았고 윤아린 헌터는 일회용기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떡볶이, 닭발, 곱창볶음, 불족발 같은 맵고 짜고 자극적인 배달 음식들이 들어 있었다.

양도 제각각이고 뒤적거린 흔적이 있는 게 전부 먹다 남긴 음식들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음식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다.

내가 식당에서 일해서 괜히 유난 떠는 게 아니라 음식이 바싹 마르고 끈적한 진액 같은 게 흐르는 게 누가 봐도 먹으면 화장실이든 병원이든 어딘가는 꼭 가게 될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아보니 시큼한 냄새가 팍 올라왔다.

상한 것이었다.


“저⋯ 헌터님⋯?”


솔직히 무서웠다.

고등급의 헌터 중엔 전투로 인한 극한의 스트레스로 정신머리가 나간 인간이 많다고 들었다.

순간 설마 윤아린 헌터도 사람한테 이런 걸 먹이는 싸이코 정신병자 같은 취미가⋯?


“네⋯ 이, 이거 먹으면 안 될 것 같⋯죠?”

“안 먹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하지만 다행히 윤아린 헌터도 음식의 상태에 당황했는지 젓가락을 슬며시 내려놨다.


“벌써 상했을 줄이야⋯.”

“언제 드셨던 건데요?”

“던전 들어가기 전이니까⋯ 일주일 조금 넘었을 걸요?”


그럼 벌써가 아닌데⋯.

아무리 냉장고에 넣어 놨어도 그렇지 절임도 아닌 음식이 일주일이나 지나면 맛이 가는 건 당연했다.

자기가 먹던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모자라 일주일도 넘은 걸 꺼내다니,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나쁜 의도는 없어 보이는 만큼 그런 생각은 일단 전부 집어치웠다.


“이건⋯ 버려야 할 것 같네요, 도와드릴게요.”

“네⋯.”


그녀는 음식이 상한 게 속상했는지 시무룩해졌고 나는 상한 음식이 담긴 일회용기를 들고 일어났다.


“이거 어디에 버리면 될까요?”

“아, 여기 버리시면 돼요!”


그녀가 싱크대 옆에 달린 뚜껑을 열자 구멍이 나왔다.

그냥 거기에 음식물을 다 때려 부으면 알아서 처리해주는 모양이었다.

역시 펜트하우스는 펜트하우스구나.


- 쏴아아아.


용기 속 음식을 모두 버린 나는 습관처럼 가볍게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깨끗하게 닦은 플라스틱 용기를 버리려 분리수거 쓰레기를 모아둔다는 베란다로 향했는데 그곳의 모습을 본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이건⋯!”


펜트하우스인 만큼 베란다도 엄청나게 넓었고 뷰도 좋았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다과회를 열거나 바비큐 파티를 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윤아린 헌터의 베란다는 죄다 새하얀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로 뒤덮여 있었다.

겹겹이 쌓인 일회용기 중 가장 높은 것은 내 키만큼 쌓여있는 것도 있었고 발 디딜 틈 없이 일회용기가 쌓여있는 베란다의 모습은 마치 플라스틱 선인장으로 이루어진 화원을 보는 것 같았다.

뭐지? 현대미술의 일종인가?


“⋯⋯!”


뒤늦게 베란다로 달려온 윤아린 헌터의 반응은 딱 아뿔싸! 라는 느낌이었다.

이게 정상적인 광경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도 인지하고 있는지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변명했다.


“워, 원래는 잘 치우는데⋯ 요새 시간이 잘 안 나서⋯.”

“그, 그렇군요⋯.”


입으론 이해하는 척했지만 사실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자기 집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할 수가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 배달음식을 얼마나 시켜 대는 거야?


“평소에 배달음식만 드세요?”


베란다에서 나와 주방을 둘러보던 나는 그렇게 물었다.

그녀는 집에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해 먹는 건지 조리도구도 없고 그 흔한 즉석밥이나 라면조차 보이지 않았다.


“네⋯ 요리는 할 줄도 모르고 귀찮아서⋯.”


내가 의사나 영양사는 아니지만 이런 식생활을 지속해서야 건강에 좋지 않은 건 자명했다.

오지랖이지만 그녀의 건강 상태가 걱정됐다.


“그나저나 어떡하죠? 빨리 뭐라도 주문할까요?”

“⋯저, 헌터님. 혹시 한식도 좋아하세요?”

“한국인인데 당연히 좋아하죠!”

“그럼 혹시 제가 식사를 대접해도 될까요?”

“네?! 좋아요!!!”


세상 비싸고 좋은 건 다 먹고살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내 음식이 통할까, 그런 불안감이 들었지만 적어도 배달음식보다는 더 맛있는 걸 만들 자신도 있었다.

이참에 호감도 작업 한 번 제대로 해보기로 했다.




***




내가 제안한 일이지만 정말 그녀를 차에 태웠을 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그녀의 집엔 기본적인 조리도구조차 없어 우리 가게로 가기로 했는데 이런 똥차로 모셔도 되는 건지, 차라리 모범택시를 부를까 고민했지만 윤아린 헌터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고 가게로 향하는 내내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창밖 풍경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우와~!”


그리고 가게에 도착하자 그냥 흔하디 흔한 낡은 식당일 뿐인데 그녀는 신기하다는 듯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오히려 서민의 식당에 와보는 게 신기한 그런 느낌인가?


“편하신 곳에 앉으세요.”

“아, 네! 그쪽⋯ 아니, 당신⋯? 이것도 아닌데⋯? 그러고 보니 저희 서로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요!”


윤아린 헌터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확실히 나야 일방적으로 그녀를 알고 있지만 생각해보니 워낙 정신이 없어 나를 소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박준호입니다.”

“윤아린이에요! 그럼 준호 씨, 혹시 나이는⋯?”

“스물넷입니다.”


내 나이를 듣자 그녀가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전 스물 다섯인데! 그럼 제가 연상이네요?”

“어⋯ 네, 그렇죠.”


윤아린 헌터는 말하고 싶은 게 있는지 우물쭈물하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호, 혹시⋯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그래! 준호야 반가워!”


윤아린 헌터는 내가 말을 놓아도 된다고 하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난 성격상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 놓기 쉽지 않던데 그녀는 역시 쌀쌀맞기는커녕 오히려 친화력이 높은 편이었다.


“준호도 편하게 말해도 돼!”

“저, 저는 그냥 존댓말이 편해서 괜찮습니다.”

“에이! 앞으로 문제 해결할 때까지 자주 볼 것 같은데 편하게 지내자! 누나라고 해도 돼!”

“누나라니 그건 좀⋯.”


기분 나쁜 데자뷰가 느껴졌다.

모든 나라가 각성자로 이루어진 군대를 꾸려 긴장감이 고조되면 신냉전이나 다름없으니 국제법상 각성자는 입대가 불가능하지만 직업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F급 각성자는 예외였고 그렇게 나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했다.

그래서 갑자기 이 소리를 왜 하냐면 내가 지금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도 군대에서 얻은 경험 탓이기 때문이었다.


‘둘이 있을 땐 편하게 형이라고 해.’


선임부터 간부까지.

군대에서의 경험상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 같이 더 위계질서에 깐깐하고 고압적인 꼰대라 절대 편하게 대하면 안 됐다.

그런 경험이 일종의 PTSD로 남아 있는 나는 누나라는 말이 쉽게 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윤아린 헌터는 내 앞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고.


“아, 아⋯린 누나⋯.”


나는 결국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


대답을 들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씩 웃더니 자리에 앉았다.

뭐야, 저 반응 개무서운데?


“뭐⋯ 뭐 드실래요?”

“말 편하게 하자니까?”

“아, 예⋯ 아니, 응⋯.”


화제를 돌리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나는 끝까지 진짜 이래도 되는 건가 고민했지만 결국 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뭐⋯ 먹을래? 메뉴판에 있는 건 다 되는데.”

“그런데 내가 좀 많이 먹는 편인데, 괜찮아?”

“응, 얼마든지 먹어.”


저 가녀린 몸으로 먹어봤자 뭐 얼마나 먹겠어.

그렇게 생각했다.


- 치이이이이익! 탕탕탕탕탕탕!


하지만 그건 완벽한 판단미스였다.

A급 헌터는 식사량도 A급였다.

나는 거의 피크시간 때와 비슷한 속도로 쉼 없이 요리해야 했다.

혼자 4인분 정도는 거뜬하게 해치운 것 같은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게 이런 기분인가.

음식을 아무리 내어줘도 그녀의 먹는 기세는 줄어들지를 않았다.


“아, 잘 먹었다!”


아린 누나는 이런저런 메뉴를 거의 7인분 정도 먹어 치우고 만족스러워했다.

한바탕 바쁘게 몸을 움직여 땀이 나 세수를 하고 주방에서 나왔다.

역시 주방일이 체질인가 상쾌했다.


“맛있게 드셨⋯ 먹었어?”

“응! 오랜만이야, 이런 음식 먹은 거! 우리 할머니가 해준 맛 나!”


가정식 백반집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할머니가 해준 맛이 난다니 최고의 극찬이었다.

맛없는 음식을 욕하려고 7인분이나 해치울 리는 없었으니 다행히 입에 잘 맞았나 보다.


“A급 헌터는 입맛이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의외네.”


똥개도 자기 집 마당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우리 가게에 있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놓인 나는 그런 말을 던졌다.


“A급 헌터랑 입맛이 무슨 상관이야?”

“어? 아니 그⋯ 평소에 맛있고 고급스러운 걸 많이 먹고 살 테니까. 어제 레이드에서 먹은 도시락만 해도 방금 누나가 먹은 음식 다 합친 것보다 더 비쌀 것 같던데.”

“에이, 그래도 쌀밥 아니면 안 채워지는 게 있어. 그런 건 가끔 별미로 먹으면 맛있는데 자주 먹으면 금방 질리고 또 뭔가 허전한 느낌이 있더라고.”


쌀을 먹지 않으면 식사로 치지 않는 건가.

한국인은 다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무튼 덕분에 오래간만에 정말 맛있는 밥 먹었어! 이제 내가 보답할 차례네!”

“보답?”

“네가 말했던 그 퀘스트! 해결해 줘야지!”


아, 맞다.

애초에 그러려고 윤아린 헌터를 찾은 거였지?

사람이 이렇게 정신머리가 없어서야.


“일단 다른 건 다 걱정하지 마. 던전 클리어는 내가 책임질게! 나만 믿어!”


그녀는 주먹을 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턱 두드렸다.

세상에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데미지 20% 이 부분인데⋯.”


하지만 역시 맹점은 그쪽이었다.

윤아린 헌터라면 던전 클리어는 혼자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핵심은 내가 보스에게 20%의 데미지를 넣어야 한다는 것.


“뭐, 여기 앉아서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겠지, 자! 가자!”

“응? 어, 어딜?”

“훈련장!”

“훈련장? 지금?”


지금 새벽 한 시가 넘었는데요?


“시간 없다며?”


『 경고! [테르고스의 불씨] 흡수 실패! 』

- 테르고스의 불씨 폭주까지 5일 14:23:55


『 경고! [그라고스]가 [테르고스의 불씨]를 가진 당신을 추격합니다! 』

- 그라고스의 던전 생성까지 4일 14:23:55

- 그라고스의 던전은 비밀던전입니다, 최대 2인까지 출입 가능합니다.


하지만 나보다 누나가 내 상황을 더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확실히 데드라인이 일주일도 안 남았고 해결책은 보이지도 않는데 밤낮 따지면서 대비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그, 그런데 훈련장에서 뭐 하게?”

“훈련장에서 훈련하지 뭘 해?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최대한 널 강하게 만들어 줄게.”


자리에서 일어난 누나의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웨펀 마스터에게 1대1 과외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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