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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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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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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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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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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3화

DUMMY

“정말 감사해요. 오늘 계속 도움만 받네요⋯.”

“어차피 가는 방향인걸요.”


레이드가 끝난 뒤, 나는 세희 님과 함께 귀가했다.

버스 배차간격이 2~3시간은 가뿐한 섬에 버려두고 혼자 갈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준호 님, 던전에서 보니까 정말 대단하시던데요? 어떻게 그렇게 강하신 거예요?”

“그냥 운이 좋았어요, 특별한 전용특성을 얻어서.”

“회복력도 놀라긴 했지만 무기도 엄청 잘 다루시던데 어디서 배우셨어요?”

“그냥 혼자 연습했습니다.”

“혼자서요?! 완전 천재신데요?”


오래간만에 칭찬을 들으니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괜히 더 높은 등급의 레이드에 참가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셨네요! 준호 님 정도면 제가 본 D급 헌터들보다도 강한 것 같아요!”

“하하⋯ 감사합니다.”


지금의 나는 어지간한 D급 헌터 보다 강한 건 맞는 것 같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실전으로 확인했으니까.


“음⋯ 준호 님, 그럼 혹시 D급 레이드 한 번 참가해 보실래요?”

“네?”

“아는 사람 중에 D급 레이드 파티장이 있거든요. 실력은 제가 보증한다고 하면 받아줄 거예요.”

“부,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나는 그녀의 제안을 덥석 물었다.

지인 소개 찬스라니, 흔치 않은 기회였다.


“네! 오늘 일의 답례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수락하자 세희 님은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누군가와 몇 마디 나누더니 순식간에 허락을 받아왔다.


“좋다고 하네요! 그런데 내일 바로 레이드가 있다는데 일정 괜찮으세요?”

“에, 정말요?! 괜찮습니다, 무조건 괜찮습니다!”


일이 꼬이려니까 아주 지랄을 하더니 풀리려니까 또 이런 식으로 풀릴 수도 있구나.


“그럼 말해 놓을게요. 아, 저희 번호 교환할까요? 아직 시간은 안 정했다고 해서 나중에 확정되면 제가 알려드릴게요!”


운전 중이라 휴대폰을 만질 순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전화번호를 불러줬고 그녀는 내 번호를 저장하다 멈칫하더니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저⋯ 그런데 님 자 붙여서 부르는 거 뭔가 되게 어색하지 않아요?”

“음⋯ 아무래도 그렇죠.”


그렇게 부르는 게 서로 존중하는 것 같아 좋긴 하지만 너무 인위적인 관계라는 느낌이라 이상하기도 했다.


“그럼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친구 하는 거 어때요? 준호 님 24살 맞죠? 저도 24살이거든요.”

“어? 제가 말했나요? 어떻게 아셨어요?”

“파티 모집 어플 아이디에 적혀있는 두 자리 숫자, 태어난 년도 같아서요.”

“아~ 맞다, 아이디를 그렇게 만들었구나.”

“그래서. 어때요?”

“친구는 많을수록 좋죠.”

“예스!”


내가 수락하자 그녀는 기쁘다는 듯 꽉 주먹을 쥐었다.


“그럼 지금부터 친구니까 말 놓는다? 친구끼리 존댓말 하는 것도 웃기잖아?”

“그래, 마음대로 해.”


원래 같으면 이런 전개에 어색할 텐데 지금은 익숙했다.


“그런데 준호는 이제부터 뭐해?”

“집 가서 밥 먹고 쉬어야지.”

“딱히 일정 없다는 거네?”

“그런 셈이지.”

“그럼⋯ 저녁같이 먹을래?”

“미안, 그건 안 될 것 같은데, 선약이 있어서.”

“뭐야! 방금은 일정 없다며! 내친김에 좀 친해져 보려고 했더니 나랑 밥 먹기가 그렇게 싫어?”

“친구랑 저녁 같이 먹기로 한 게 일정까지는 아니지 않나⋯?”

“으음⋯ 그럼 내일, 내일 저녁은 어때?!”

“내일 저녁⋯은 뭐 없긴 한데.”

“오케이! 그럼 내일 저녁 약속은 나랑 잡아, 확정, 대화 끝!”

“어⋯ 어, 그래⋯ 알았어.”


저돌적인 태도에 얘가 왜 이러나 조금 놀라긴 했지만 세희도 그 부분을 인지하고 있는지 내게 말했다.


“⋯내 행동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고 당연히 내가 어색하고 불편할 테지만 내 경험상 이렇게 적극적으로 굴지 않으면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로 남을 확률이 너무 높아지더라고.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다, 고 생각하면 초반에 확실하게 사이를 좁혀두는 편이야. 한 번 확 친해지고 나면 나중에 만나도 별로 안 어색하잖아?”

“확실히 그건 그렇지.”


아무래도 나와의 관계가 그저 언젠가 한 번 만났던 사이 정도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한 세희 나름의 노력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랑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가 뭐야?”

“사람이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데 이유가 필요해?”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그냥 네가 좋은 사람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

“응?”

“아까 던전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나를 구해줬잖아.”

“아~ 그거야 뭐, 특성빨 믿고 그런 거지.”

“그런 거 재고 계산한 다음 도와준 게 아닌 것 같던데?”

“⋯⋯.”


세희의 말대로 확실히 그 당시엔 그냥 위험해 보이니까 반사적으로 도왔지 뒷일을 생각하고 그런 건 아니었다.


“너도 특이취향 아니면 알겠지만 내가 한 인물 하잖아? 인정해 안 해?”

“인정하지.”


거짓말로라도 못생겼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기 잘난 거 스스로 아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데.


“그렇다 보니 옛날부터 나한테 먼저 다가오는 사람도 많았고 덕분에 사람을 사귀기도 쉬웠어. 그런데 그 많은 사람 중에 제대로 된 사람은 몇 없더라. 다들 나한테 뭔가 바라는 게 있어서 다가온 거고 내가 그걸 들어주지 않으면 결국엔 떨어져 나갔어.”

“미인도 미인 나름의 고민이 있다는 거네.”

“장난 아니야,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혼자 다가와선 혼자 실망하고 혼자 배신감 느껴서 뒤돌아보면 칼 갈고 있는 사람이 수두룩하더라니까?”

“어우, 그건 좀 곤란한데?”


원치도 않는 인연이 마음대로 찾아와선 원수가 되어 떨어져 나가기를 반복하면 상당히 피곤할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네가 처음으로 나타난 거야, 나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호의를 베푼 사람이. 어떻게 관심을 안 가지고 어떻게 배기겠어?”

“그런 사연이 있다면 내 역할이 꽤 막중하네.”

“부담가지지는 마, 그냥 좋은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다는 거지 네가 내 마음에 쏙 드는 그런 사람이길 바란다는 건 아니니까. 그래 버리면 나도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마음대로 다가와서 마음대로 실망하는 짓을 하는 거잖아?”

“오케이, 그럼 나도 진짜 편하게 대한다.”


차 안에서 나눈 잠깐의 담소지만 나는 이제 세희를 남으로 느끼지 않을 만큼은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회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진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 내일 레이드 잘 다녀오고 약속도 까먹지 말고!”

“응. 고생했어.”


나는 세희를 집에서 가까운 역 앞에 내려주고 이번엔 아린이를 데리러 여명길드 훈련장으로 향했다.

아이고, 바쁘다 바빠.




***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날, D급 레이드를 깔끔하게 성공시킨 후 파티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행히 나는 D급 레이드에서도 든든히 1인분 몫을 해냈고 파티원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다음 레이드에도 참가하는 것이 확정됐다.

나는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와 기회를 마련해준 세희와의 약속 장소인 강남으로 향했다.


“누구 기다리는데~ 그냥 나랑 놀러 가자니까? 다리 아플 텐데 일단 타서 얘기할래?”

“⋯⋯⋯⋯.”

“하~ 뭐 말이라도 좀 해봐~.”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예쁘게 차려입은 세희가 있었다.

절벽에 핀 꽃 같아서 그 많은 인파 속에서도 눈에 확 들어왔다.

그런데, 그 옆에 누군지 모를 남자가 세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누가 부촌 아니랄까 봐 전신을 명품으로 도배하고 멋진 스포츠카에 기대어 서 있는 남자는 분명 돈은 많아 보였지만 키도 작고 뚱뚱한 데다 얼굴도 박살⋯ 아니, 나쁜 말은 하지 말자.

아무튼 그다지 호감 가는 인상은 아니었는데⋯ 이게 그 말로만 듣던 헌팅인가.


“흐음⋯.”


이런 경우는 처음 겪어봐서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멈칫거리고 있는데 남자의 말을 줄곧 무시하며 휴대폰만 보고 있던 세희가 나를 발견하곤 활짝 웃더니 손을 흔들며 다가와 남자에게 보란 듯 팔짱을 꼈다.


어어⋯.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빼려고 했지만 눈치 좀 챙기라는 듯 세희가 눈을 찡그리며 내 팔을 꽉 붙들었다.


“에이, 뭐야, 쯧, 시간만 버렸네.”


나를 영락없이 남자친구로 착각하고 헛수고했다는 걸 안 남자는 바닥에 침을 뱉더니 갑자기 짜증이 솟구쳤는지 내 얼굴에 대고 한마디 했다.


“그딴 것도 차라고 끌고 다니냐, 거지새끼.”


어, 이 새끼 봐라, 가만히 있는 사람을 치고 가?


“전 차 보단 사람이 더 좋아서요. 우린 이제 밥 먹으러 갈 건데 그쪽은 어디 가세요? 주유소에서 고급유 한잔하시려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세희도 호응하듯 팔을 더 꼭 끌어안으며 내 어깨에 고개까지 기대고 노골적으로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이익⋯!”


돈으로 관심은 살 수 있겠지만 마음은 살 수 없다.

남자는 얼굴이 시뻘게져선 부들부들 떨더니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 와아아아앙!!!


그는 소심한 복수로 일부러 요란한 배기음을 냈다.


- 끼이이익! 쾅!!!


그리고 자신의 차를 과시하듯 난폭하게 옆 차선으로 끼어들며 급출발했는데 사이드미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는지 멀쩡히 주행 중이던 화물차를 혼자 들이 받아버렸다.

와, 이건 저 남자 조상님이 판사라도 무조건 100대 0이다.


“아이고! 아이고, 뒷목이야! 아이고 나 죽네! 보험 불러!!!”


화물차 기사님은 뒷목을 잡고 차에서 내려 세상 사람 다 들으라는 듯이 크게 소리쳤다.

말은 죽겠다고 하지만 수리비에 치료비에 합의금까지 받을 생각에 입꼬리는 귀에 걸려있었다.


“꺄하하하! 꼴 좋다! 못생겼으면 성격이라도 좋아야지!”

“방금 그 발언은 인성 논란의 소지가 있겠는데.”

“난 예쁘니까 성격은 나빠도 괜찮아!”


흠⋯ 그런가?


“그나저나 너도 좀 치던데? 마냥 바보같이 착한 건 아니구나?”

“선빵 맞으면 이야기가 다르지.”

“오~ 할 땐 하는 스타일? 아무튼 덕분에 재밌는 구경했네! 가자, 배고프지? 뭐 먹을까?”

“먹고 싶은 거 골라봐. 덕분에 D급 던전도 다녀왔고 오늘은 내가 살게.”

“어? 진짜?! 그럼 무조건 소고기지!”


세희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잔뜩 들떠서는 거의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주문하시겠어요?”

“저희 꽃등심 3인분이랑~ 소주 한 병 주세요!”

“어, 나 술은 안 돼. 차 가지고 와서.”

“에엥~? 그냥 마셔! 이렇게 좋은 날 안 마시면 언제 마셔?”

“밤에 갈 곳이 있어서 운전해야 해. 미안.”

“바, 밤에 갈 곳이 있다고? 이 다음에 또 약속이 있는 거야?”

“약속까지는 아닌데⋯ 그냥 좀 갈 곳이 있어.”


갈 곳은 당연히 훈련장이었다.

아린이는 내가 데리러 안 가면 집에 돌아가기도 귀찮아서 그냥 훈련장에서 밤을 새워버렸다.

어떻게 택시 타고 집 가는 게 밤샘 훈련보다 귀찮은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건강을 위해서라도 수면을 충분히 취하게 해주고 싶었다.


“야, 박준호⋯ 너 여자친구 한 번도 사귀어 본 적 없지.”


세희는 내 대답이 불만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더니 뜬금없이 그런 걸 물어봤다.

“아, 아니거든?”


사실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이 나이 먹고 연애 경험이 없다고 하는 것도 부끄러워 나도 모르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있었다고? 진짜로? 그럼 언제? 여자친구 이름 뭐였는데? 하나, 둘, 셋.”

“어, 으, 아, 에⋯!”

“짜식이 없으면 없던 거지 뭘 거짓말까지 해?”

“그⋯ 남중남고군대 다음엔 계속 일만 해서⋯.”

“그래도 사귈 사람은 다 사귀던데~.”

“⋯밥 먹자.”


나는 때마침 나온 고기를 불판에 올리며 딴청을 피웠다.

소고기는 금방 익었고 우린 각자 살살 녹는 고기 맛을 음미하며 잠시 침묵을 지켰다.

와, 진짜 맛있다,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소고기냐.


“⋯야, 준호야.”


고기에 정신이 팔려 와구와구 먹던 중 세희가 나를 불렀다.

그녀는 한 손으로 살포시 턱을 괴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너 그럼 여자랑 데이트해보는 것도 처음이야?”

“데잍⋯! 데이트?”

“뭘 그렇게 놀라? 지금 데이트 중이잖아, 우리?”


따, 따지고 보면 그렇긴 하지만⋯.

시선이 갈 곳을 잃고 여기저기 떠돌다 세희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녀는 내 눈을 피하지 않고 맑고 그윽한 눈동자로 나를 찬찬히 바라봐주었다.

나도 꼴에 남자라는 걸까.

가슴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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