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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기연 첫날에 무림이 멸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9.23 06:39
최근연재일 :
2023.11.13 19:20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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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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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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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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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혀라도 깨물 수 있다면 좋으련만(1).

DUMMY

우여곡절 끝에 산주 뱀이 산신께 몇 가지 맹세를 더 하는 것으로 홍광은 발걸음을 뗐다.


두 사내가 안으로 들어오자 암벽은 저절로 울음소리를 내며 다시 닫혔다.


충자가 감탄하며 닫힌 암벽을 더듬었다.


“기문진(奇門陣)이군. 그것도 엄청나게 정교하고 세밀한. 이 정도로 치밀한 기문진은 정말 흔치 않은데.”

“그 정도야?”

“그래. 암벽 전체를 움직이겠다는 발상은 웬만해선 못하지. 드는 힘이 장난이 아닐 테니까. 그걸 기관장치만으로 움직인다는 건······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일이다.”

“흐음.”


홍광은 암벽을 쓱 훑어봤다.


여러 장치가 엇물려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봐도 알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물건들만으로 거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장치를 만든다는 발상은 좀 신선했다.


사부는 기문진에 조예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고도의 기문진법은 고수들에게도 충분한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과, 구조를 파악하고 대처하라는 말, 그럼에도 힘으로 때려부수면 대부분은 풀린다는 말을 남기긴 했다.


‘부술 수 있으려나?’


홍광은 암벽을 수박의 질을 확인하듯이 퉁퉁 두들기며 가늠해보았다.


“뭐하느냐? 서두르자.”

“아 참.”


기문진에 정신이 팔렸던 홍광이 퍼뜩 계단을 내려갔다.


이만한 기문진을 볼 기회는 적었지만, 그보다 목숨 개수가 적었다. 뒤에서 만벽서고가 쫓아오고 있으니 한 시라도 빨리 대화를 끝내고 이동해야 했던 것이다.


홍광은 기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채 걷다가 개처럼 코를 킁킁댔다.


“이게 무슨 냄새지?”

“화약이구나.”


충자가 즉답했다.


잠행 정보원으로 활동하면서 몇 번인가 화약 냄새를 맡아본 적 있었기에 바로 눈치챘다.


“류씨세가가 화약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놀라울 건 없지. 원래 화약을 관리하던 관이 비었을 테니까. 아마 주인이 없어진 화약을 모았을 거다.”


본래 화약은 관에서 엄중히 관리하는 품목이다.

뼈를 깎는 고련이 있어야지만 제 힘을 낼 수 있는 병기들과는 달리, 자격 없는 자의 손에서도 무정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유구한 세력이라도 화약을 보유하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엄금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국가가 없었다.


결과, 권력을 잡은 이라면 누구든 관을 털어서 소유권자가 사라진 화약을 독점하기 시작한 것이다.

류씨세가도 그중 하나였다.


가만히 듣던 홍공이 의문을 제기했다.


“사갈파는 이런 거 없었는데?”

“그건 사갈파가 있던 곳이 호북의 북서부라서 그렇다. 호북의 행정과 병력은 전부 남쪽에 몰려 있었거든.”

“아하.”

“그래서 사갈파가 무서웠던 거다. 화약도 없이 벽력탄을 꽝꽝 터트리는 놈들과 맞붙고 있었으니······ 그게 다 방사혁의 무공이 강해서······ 아니 됐다. 네게는 의미 없는 얘기지.”


충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방사혁이고 사갈파고 하는 말은 아무리 나열해도 직접 손을 섞어본 홍광만 못할 것이다.


“여하튼, 그동안 류씨세가가 화약을 이만큼이나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는 없었다. 이런 곳에 꽁꽁 숨겨놓고 있었군. 돌아가면 보고해야겠어.”

“전쟁이라도 준비하나?”

“글쎄.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 방금 산주 뱀 님의 독을 받아간다는 정보도 있었고. 화약과 독. 확실히 둘 다 대량 학살에 뛰어난 무기들이지.”

“······.”


뭔가 일이 커질 것 같자 홍광은 지금이라도 발을 빼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맹세만 쉰 개 넘게 시켜놓고 얼굴도 보지 않은 채 도망가면 자다가 커다란 뱀을 마주칠 것 같았으므로 그만두었다.


이윽고 길었던 계단이 끝났다.


거대한 뇌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뇌옥을 둘러싼 수십 대의 화포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홍광은 보는 즉시 그 모든 화포들이 하나의 기관장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특정 장소에 뻗어져 있는 실을 당기면 즉시 모든 화포가 발파되도록 된 설계였다.


당연히 모든 화포 머리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은 한 군데였다.


그 가운데 산주 뱀이 있었다.


“왔군.”


여전히 귀신 같은 음성.


그윽하게 떠진 황금빛 눈을 마주하자 온 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홍광은 미간에 주름살을 만들었다.


“대체 어떻게 갇힌 거에요? 마교의 주교라도 만나셨나? 혹시 류씨세가에서 어르신을 잡아 가둘 수 있는 고수가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저는 그냥 갈게요. 이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구요.”


홍광은 진지했다.


직접 대면한 산주 뱀은 정말로 강했다. 머릿속에서 본능이 빨리 도망치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어느 정도로 강했냐면, 만약 류씨세가에 산주 뱀을 제압할 정도의 고수가 있다면 적어도 그자는 사부와도 손을 섞어볼 만한 강자라는 말이었다.


그런 이가 떡 버티고 서 있는 세가에서 납치극을 벌일 정도로 홍광의 담은 크지 않았다.


천천히 산주 뱀의 입이 열렸다.


“나는 스스로 이곳에 들어왔다.”

“신신께 맹세하고?”

“맹세하겠다. 내가 아는 한, 그 집단에 나와 무력으로 비견할 만한 인간은 없다. 내가 이곳에 들어온 것은 내 새끼가 먼저 잡혔기 때문이지, 힘으로 제압 당한 적은 없었다.”


홍광이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 말을 수락으로 받아들인 산주 뱀이 자신의 목덜미에서 무언가를 뚝 떼어냈다.


손가락 두 마디 크기쯤 되는 투명한 비닐이었다.


“이걸 주려고 불렀다. 급할 때 쓰도록.”

“뭐죠?”

“갑옷이다.”

“아.”


홍광과 충자는 순간 용린갑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거 겹쳐서 쓸 수 있나요? 몇 개 더 주시면 안 돼요?”

“곤란하다.”


단호하게 말한 산주 뱀은 목덜미를 내밀었다. 비닐이 떨어져나간 자리에 또 비닐이 자라나 있었다. 다만 그 비닐은 혼자만 역방향이었다.


“아.”


홍광과 충자는 역린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알 것 같았다.


“왜 그러지? 무슨 문제가 있나?”

“아무것도 아니에요. 계속 말씀하세요.”

“음.”


산주 뱀은 말을 이어갔다.


“당비연. 열여섯. 류씨세가의 장원 안 어딘가에 있다. 어떻게든 서면산까지만 데려오면 그 뒤부터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손을 번쩍 든 홍광이 물었다.


“질문이 있는데요.”

“뭐지?”

“그 당비연이라는 사람 살아있는 건 확실한가요?”


충자는 입을 떡 벌렸다.


범인에 가까운 충자가 보기에도 산주 뱀은 당장 저 뇌옥을 부수고 나와 자신들을 처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홍광은 자꾸 무슨 베짱인지, 상대를 자극하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무리 합당한 의문이라도 보통 부모 앞에서 ‘자식이 죽었을 수도 있잖아요?’같은 소리를 하면 망말이라며 싸움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산주 뱀은 격노하지 않았다.


되려 당연한 질문이라는 듯이 대답했다.


“살아 있다. 그건 내가 미리 확인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충자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다.


그때 홍광이 다시 손을 들었다.


“그런데 오다가 당비연이란 분이 다치거나 죽을 경우에는 어떻게 되나요? 제가 일부러 그러겠다는 건 절대 아니고, 세상엔 사고라는 게 있으니까요. 선의로 도와드렸는데 책임을 추궁 당하는 건 좀······.”


‘진짜 미친놈인가?’


물론 말이야 바른 말이긴 했다.


최선을 다했는데 당비연이 크게 다치거나 죽으면 억울하겠지. 하지만 보통 그걸 대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차라리 ‘제 능력이 미친하여······’하며 망설이는 척이라도 했으면 상대가 알아서 말을 꺼냈을 터인데, 홍광은 그런 거 없었다.


충자는 산주 뱀이 화를 내면 바로 홍광의 머리통을 붙잡고 바짝 엎드릴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무 일 없었다.


“그것도 괜찮다. 그대들이 정녕 고의로 내 새끼를 다치게 했는지 아닌지를 알아볼 정도의 능력은 내 겸비하고 있으니.”

“그 능력 확실한 거죠?”

“산신께 맹세하겠다.”

“흠.”


옆에서 충자가 질린 얼굴로 쳐다봤지만 홍광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생각에 골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위험하다.’


류씨세가 하나라면 모를까, 시간을 지체하면 만벽서고와 부딪힐 수도 있고 패천회라는 작자들도 충자의 말만 믿고 쉬이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일 하나를 수행하는 데 따르는 위험을 생각하면 영기 하나만으로는 부족했다.


고민을 마친 홍광이 입을 열었다.


“조건이 하나 더 있어요.”

“또 맹세인가?”

“아뇨. 저는 나름 위험부담을 짊어지고 이 일을 하는 거에요. 수지가 맞지 않으면 도와드릴 수 없어요.”

“그래서?”


홍광이 씩 웃었다.


“한 번은 절 도와주셔야겠어요.”


* * *


사천. 류씨세가.


한낮부터 세가의 장원은 오가는 인파로 득시글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사람들은 사천에서 뭔가 하려고 치면 류씨세가를 가장 먼저 찾았다.


단순히 객잔업을 하려 해도 류씨세가의 깃발을 걸고 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상당히 컸다. 류씨세가의 비호 아래 있는 객잔에서는 함부로 난동을 피울 수 없는 것이다.


소작농이 되려 해도 기왕이면 류씨세가의 땅에서 농사를 지으려 했다. 돈 떼먹힐 일이 없으니까.


반대로 사람을 고용하려고 해도 류씨세가의 눈치를 봐야 했다. 장사는 항상 청렴결백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혹시 사업장에 무슨 일이 생긴 다음 류씨세가를 보는 것보다야, 뇌물 보따리 싸들고 미리 얼굴 도장을 찍어놓는 게 훨씬 유리했다.


사천에서 억울한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류씨세가에 찾아왔다.


보고할 일이 생겨도 류씨세가에 왔다.


뿐만 아니라 세가 자체에서도 필요한 식재료나 생활 자재 등을 옮겨야 했고, 분가에서 오는 소식이나 타 무림 세력에서 보내는 상소문도 있었다.


이 모든 일을 처리하기 위해 류씨세가의 장원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단, 한 사람의 방을 빼고.


“길을 트시오. 류지산 삼공자님 행차요!”


수행인이 크게 소리쳐 드글대던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잠시 장원이 조용하게 가라앉았다가 수행인의 앞으로 길이 벌어졌다.


그 길로 류지산이 느긋하게 걸었나왔다.


미간이 보통의 두 배는 넓은 얼굴에 피둥피둥 살찐 몸뚱이를 가진 삼공자를, 사람들은 몰래 ‘두꺼비 삼공자’라 욕했으나 감히 면전에 대고 말하지는 못했다.


류씨세가가 가진 힘을 생각하면 그 집안의 직계를 욕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류지산은 자신의 등장에 조용해진 장내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술을 한 차례 핥고는 어딘가로 직행했다.


이윽고 시끌벅적한 입구에서 한참 걸어 도착한 작은 전각은, 다른 큰 전각으로 가로막아서 쉬이 찾을 수 없는 구조였다.


류지산은 음흉하게 웃으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비연아, 오라비가 왔다.”


작은 집 안에는 당비연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시끌벅적한 류씨세가의 장원에서 유일하게 조용한 곳.

그곳은 당비연의 처소였다.


당비연은 두꺼비 공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류지산은 그걸 보고 더욱 만면에 웃음을 품었다.


“흐흐흐, 언제까지 네가 날 그리 대할 수 있겠느냐? 곧 대계가 시작되면 네 쓸모도 다한다. 그때는 내 가랑이를 붙들고서라도 빌어야 할 텐데?”


류자산이 다리를 쩍 벌리며 신나게 이죽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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