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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기연 첫날에 무림이 멸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9.23 06:39
최근연재일 :
2023.11.13 19:20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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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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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3,236

작성
23.11.0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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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거지로 돌아오셨네요(2).

DUMMY

허겸에게 있어 홍광은 우상에 가까웠다.


자신보다 우월한 또래를 보면 호승심이 들어야 하지만 허겸은 홍광에게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다.


경쟁 상대로 느끼기에는 너무 멀었던 것이다.


무공 실력 때문이 아니다.

물론 홍광의 강함이야 말할 필요가 없었지만 허겸이 진짜 그를 존경하게 된 것은 다른 이유였다.


‘내가 저만큼 강했다면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무공이 강하다고 해서, 자신과는 전혀 관련 없으면서도 승산이 희박한 싸움에 목숨을 걸고 돕지는 못했을 것이다.


평생 무당에서 자란 허겸조차 사문을 원망한 적이 있었고, 사문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 헌데 생판 모르는 남 일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보고도 못 본체 했겠지.’


허겸이 이기적인 게 아니라 그게 정상이었다.


특히나 이 마도천하에서 남을 돕는다는 행위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기적에 가까웠다.


그 증거로 허겸과 제자들이 무당의 이름으로 돌아다니며 애걸해도 먼지 한 톨 얻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홍광은 달랐다.


핑계를 대가면서 무당을 도왔고 결국은 해냈다.

영웅호걸이라는 말은 닳고 닳았지만, 그 말이 진정으로 지칭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홍광이 아닐까?


허겸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저는 홍 소협을 위해서 목숨 거는 일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아······ 그래.”

“장로님과 함께 매년 영봉으로 찾아가겠습니다. 달리기 수련을 더 열심히 해야겠군요. 그때는 지금보다 도움이 될 만한 검객이 되어 있겠습니다.”

“어, 으응.”


홍광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이놈은 매사에 너무 진지해서 아직 좀 껄끄러웠다. 아직 뭔 일이 터진 것도 아닌데 다짜고짜 무슨 목숨부터 건단 말인가.


멋쩍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힘내, 너는 재능이 있으니까 할 수 있을 거야.”

“재능······말씀이시군요. 예. 홍 소협께서는 참으로 친절하십니다.”


허겸이 다 안다는 듯한 얼굴로 웃었다.


“어? 아니 진심인데.”

“그러시겠지요. 홍 소협의 진의를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다. 배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진짜라니까??”

“아무렴요.”

“아니······.”


홍광은 뭘 더 말하려고 입을 우물거리다가 말았다.

어차피 안 들어먹게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이 훈훈한 분위기에 ‘지금까지 네가 수련한 사문의 환경이 너무 개떡같았다’고 말해서 찬물을 끼얺기도 좀 그랬다.


아무리 무당의 이름을 버렸다지만 하루아침에 문파에 대한 애정을 털어내지는 못했을 터.

괜히 나쁜 말을 해서 좋을 게 없었다.


‘상관없지. 어차피 영감님 밑에서 수련하다보면 스스로 알게 될 테니까.’


이 주제에 관해서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


“명완.”


허겸이 뒤편을 보며 막내를 불렀다.


공명완.

처음 무당으로 와서 홍광이 중독 증세를 고쳐준 아이의 이름이었다.


“너도 할 말을 하거라.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감사 인사도 하지 못했잖느냐.”

“예, 사형.”


앞으로 나온 것은 다부진 아이였다.


물론 병세를 앓던 게 고작 한 달 전이라서 아직 말랐다는 느낌을 지우지는 못했지만, 눈빛과 자세가 곧 떨치고 일어나리라는 느낌을 줬다.


하긴 그 시체같던 상황에서 독기를 이겨낸 아이니까.

해독약을 먹었다 해도 환자의 쇠심줄같은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독심이 있는 아이리라.


공명완이 대뜸 인사했다.


“제 목숨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근데 나는 방법만 알려준 거고, 살린 건 너희 사형제들이 살렸지.”

“그게 그겁니다.”


공명완이 포권지례를 거두고 가슴을 폈다.


홍광은 열다섯도 안 된 어린애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잠시 침묵했다.


‘어른들 말씀 잘 듣고, 골고루 잘 먹고, 무공 수련 열심히 하고, 나쁜 친구들이랑 놀지 말라고 해야 하나?’


사부에게 익숙해져서 정군자같은 노인은 쥐 잡듯이 잡는 홍광이지만 반대로 아이에게는 취약했다.


상대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 것이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공명완이었다.


“저는 장문인이나 장로님과는 함께 가지 않을 겁니다.”

“그, 그래?”

“예. 이번 일로 세상이 무당보다 넓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보호를 받는 입장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렇잖아도 힘든 사문에 독초를 먹고 중독이라니······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린 아이지만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어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공명완이 깨어나고 처음 들은 소식은 사형들이 자신을 위해 하산해서 구걸을 다녔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허겸과 공진은 죽을 뻔했고.


그 결과 해독법을 아는 한 사람이 겨우 도움을 줬다고.


심지어는 이 일이 사갈파와 전쟁을 벌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라지 않는가.


그 말을 들었을 때 공명완의 기분이 어땠겠는가?

자괴감에 머리를 처박고 다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상황이 그랬다보니 도움 받지 않고 독립해서 살아갈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저는 이 년 뒷면 열다섯 살이 됩니다. 그날이 되면 사형들의 품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열다섯이면 충분하지.”


홍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이 사부와 수련을 시작했던 것이 열두 살이었다.

열다섯이면 결혼도 할 수 있는 나이, 여정을 떠나기엔 차고 넘쳤다.


‘충자놈은 그 나이에 코흘리개들 돈이나 뜯고 다녔지만.’


공명완이 계속 말했다.


“떠나면 낭인으로 살아갈 겁니다. 때로는 어딘가의 용병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짐마차의 호위무사가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착하지 않고 떠돌 생각입니다.”

“어째서?”

“세상을 보고 싶으니까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말이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

세상을 보라던 사부의 말과 같았다.


홍광이 살짝 웃어줬다.


“어딘가에서 만날지도 모르겠네.”

“예. 그때는 제 협객단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협객단 만들려고?”

“할 수만 있다면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이런 세상이지만, 강호 어딘가에는 홍 소협 같은 협사들이 남아 있을 거라고 믿으니까요.”

“어려운 길일 텐데.”

“그래도 걷겠습니다.”


공명완은 이미 생각을 굳힌 것 같았다.


스스로 개척하겠다고 생각한 이에게 가타부터 할 말은 없었다.


아직 어린 네 잘못이 아니었다는 말도, 굳이 어린 아이가 아니더라도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도 아꼈다.

이미 들었을 테고, 듣고도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아, 한 가지 있지.’


홍광이 말했다.


“죽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사부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세상에 나가는 후학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사실은 몇 없었다.

생이라는 건 도움도 받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이지만, 결국 나아갈 때는 자신의 다리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기에.


그저 도중에 쓰러지지 말라는 말 밖에는, 그래서 죽지 말라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만약 제가 협객단주가 되는 날이 오면, 협객단 이름은 소협의 존명대성을 따서 홍은단(洪恩團)으로 하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홍은단.


홍광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뜻이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하해와 같은 은혜로 뭉친 집단이라는 의미였다.


정체를 숨기고 싶어하는 홍광을 배려해서 이중적인 해석이 가능하게 만든 이름인 듯했다.


“······그 정도야 뭐.”

“감사합니다.”


공명완이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이 꾸벅 인사했다.


“아 참, 영감님.”

“뭔가?”

“혹시나 싶어서 여쭤보는데요. 제가 방금 전에 어쩌다보니 방사혁한테서 마기를 흡수했거든요?”

“······음?”

“그래서 말인데 혹시 부작용이······.”

“아니, 아니아니 잠, 잠깐 기다리게!”

“예? 왜요?”


왜요?

왜요오오오오?


왜냐니, 정군자가 되려 묻고 싶었다.


마기를 흡수했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면서 대체 왜 저렇게 태연하게 지나가는 거지? 방금 먹은 점심식사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마치 ‘제가 방금 어쩌다보니 역모에 성공해서 황제가 됐는데요’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정군자는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마기를 흡수했다고?”

“네.”

“마기를?”

“네.”

“그 시꺼멓고 불길한 걸?”

“그거요.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부작용······.”

“대체 어떻게?!”


방사혁도 똑같은 질문을 했지만 홍광으로서는 대답할 말이 궁색했다.

결국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수밖에.


“사부가 이르기를······.”


홍광이 설명하자 정군자의 표정이 약간 미묘해졌다.

방사혁과는 또다른 반응.


“음, 아. 이런. 허어. 그렇게······ 하지만, 으음. 그럴 수가.”

“뭔가 아시겠어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는데.”

“당연히 모르지.”


정군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용두방주께서도 처음 본 일 아닌가? 내가 알고 있을 리가 없지.”

“그렇긴 하죠.”

“다만, 확실이 마기를 계속 흡수하다보면 아무리 그릇이 넓다고 해도 위험하겠군. 꼭 마교와 부딪히지 않아도 마인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이번 기회에 알았으니 말이야.”

“그렇죠.”


정군자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든 이 젊은 영웅을 돕고 싶었다. 만약 홍광이 마기에 침식되어서 나중에 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그땐 정말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으니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홍광의 단전에 난 구멍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정군자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게 옳은 선택인가? 정말로?’


용두방주께서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구멍을 메울 수 있었을 것이다. 구멍이 뚫린 즉시 기력이 새어나가서 죽었다면 모를까, 홍광은 멀쩡히 살았으니까.


그럼에도 남겨놓은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 이유를 정군자도 알 것 같았다.


‘더없이 위험하지만, 그마큼 무한한 지평이 열렸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군자는 더욱 깊게 고뇌했다.


마기를 억누를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어쩌면 영기(靈氣)가 정답일 수도 있겠군.”

“영기요?”

“신선들이 다루었다고 전해지는 신비한 기운이네. 아니, 자네에게 도를 닦으라는 말이 아니니까 진정하게. 아직 말이 끝나지도 않았잖은가.”


홍광의 손이 슥 올라가자 정군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자네는 내게 유독 거친 면이 있어.”

“또 말같지도 않은 헛소리 하시는 줄 알았죠. 그래서 뭔데요?”

“영기는 내공의 가장 정순한 부분만을 모은 기운이지. 신선이 아니고서야 인간이 이걸 만들어낸다는 건 불가능하네.”

“그렇죠.”

“하지만 영물은 가능하지 않은가?”

“아!”


영물은 즉 영기를 몸에 품은 생물이다.


영기가 짙은 곳에서 살거나 우연히 영약을 먹어서 탄생한다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정확하게는 누구도 기원을 모르는 신비로운 동물.


기본적으로 덩치가 커지고 힘이 세진다는 특징이 있는데, 개중에서도 뛰어난 개체는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준의 지성을 가진다고 동화처럼 구전된다.


그러나 이런 불분명한 정보들 안에서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영물들은 모두 몸에 내단이라 불리는 영기 덩어리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은, 영기도 마기만큼이나 강력한 기운이라는 점이네. 마기가 혼탁해서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면, 영기는 너무 깨끗해서 문제지. 만약 두 기운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게 아니라 단전에서 부딪혀 터지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런데 홍광은 갸웃했다.


“영감님, 잘 생각해보세요.”

“??”

“터져요? 제 단전이?”


홍광이 배를 살살 문지르며 물었다.


“아······.”


정군자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23 별랑(別狼)
    작성일
    23.11.05 05:35
    No. 1

    ㅋㅋㅋㅋㅋ 이 폼만 유지하면, 독자들은 유입이 될 수 밖에 없을듯
    마기를 영물의 영기로 상쇄한다라 ㅋㅋ 머리좀 쓰셨네요.

    그 가이-> 그 사이.

    오탈자를 줄이고 비문, 영어사용만 안한다면 이 소설은 사람을 매료시킬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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