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기연 첫날에 무림이 멸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9.23 06:39
최근연재일 :
2023.11.13 19:20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9,124
추천수 :
455
글자수 :
263,236

작성
23.10.24 19:20
조회
250
추천
6
글자
12쪽

다치실 텐데?(1).

DUMMY

내가 개처럼 도망가면 쫓아오는 쪽도 개처럼 쫓아올 수밖에 없다. 반대로 쫓아오는 쪽이 개처럼 쫓아오면 나도 개처럼 도망칠 수밖에 없다.


새삼스레 그 당연한 이치를 실감한 무곤진인이 다리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무곤진인의 실력을 얕보았다고 생각했는지 여러 명이 한 번에 달려들 기세이지 않은가!


등 뒤에서 암기가 쇄도하고.

욕설이 날아들고.

고수들의 적의와 살기가 뒤섞인 시선이 화살처럼 꽂혔다.


그런 와중에도 무곤진인은 미꾸라지처럼 고수들을 잘 피해다녔다.


중간중간 따라잡힐 것 같은 제자가 있으면 매가 사냥감을 포착하듯이 날카롭게 보고 있다가 달려가서 도왔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이상의 일을 해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을 챙겨야겠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그것도 그 나름대로 쫓아오는 고수들을 경계하고 따돌리면서 가능할줄은 몰랐다.


‘자는 사이에 영약이라도 먹인 건가?’


스스로 생각해놓고도 어이가 없었다.


‘대체 뭐지.’


자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급진적인 성장.


하지만 그런 여유로운 생각을 하고 있을 틈 따위는 없었다.


등 뒤에서 또다시 날카로운 비도가 날아와서 피해야 했으므로.


* * *


“음, 나오질 않는군.”


방사혁은 멀어져버린 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민중의 눈에는 흙먼지나 가끔 병장기끼리 부딪히면서 튀는 불꽃 정도만 희끗하게 보일 뿐이었지만 방사혁의 눈에는 똑똑히 전장의 동태가 보였다.


무당의 장문인과 겸노사의 충돌 이후로 기세가 뒤집혔다.


여전히 도망치는 사람과 쫓는 사람은 명확했지만, 무당의 발걸음은 가볍고 추격자들의 발에는 모래주머니를 달아놓은 듯했다.


하지만 그런 건 방사혁에게 중요치 않았다.


겸노사가 흥분해서 무곤을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 것이다.


태극검보의 소재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 죽느니, 겸노사가 죽는 편이 나았다. 아깝긴 해도 충당할 수 없는 고수는 아니었으니.


사기가 떨어진 것도 상관없었다.


한 순간의 기세로 결과가 바뀌기에는 전력차가 너무 확연하다.

오히려 겸노사 하나의 죽음으로 저들이 경계하며 무당의 제자들을 쫓는다면 시간은 더 걸릴지라도 병력의 희생을 줄일 수 있을지 몰랐다.


문제는 그런 게 아니었다.


“안찰사.”

“예.”


곽자우가 고개를 깊이 숙이며 호명에 응답했다.


“자네가 봤다던 고수가 아직도 보이지 않는군. 아니면 이미 저들 틈에 섞여서 도망치고 있나?”

“아닙니다. 저들 안에는 제가 본 얼굴이 없습니다.”

“음.”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라.


‘이미 무당을 떠난 건가?’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안찰사의 말에 따르면 강호의 은원에 엮이는 것을 기피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방사혁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무당이 할 만한 선택이 아니었다.’


물론 쥐새끼를 구석까지 몰면 제아무리 쥐라도 고양이를 물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방사혁은 분명 쥐구멍을 열어놓았다.


현판은 내리고 절해라.


과잉한 처사였나? 절대 아니다.

방사혁은 단언할 수 있었다.


그가 아는 무당이라면 자존심을 땅에 던지고 짓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제자들을 살리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것이 진정 옳은 선택이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무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자들을 희생으로 몰아넣고.

민중을 외면하고.


그렇게 사갈파와 적대했다.


‘도저히 무당이 스스로 할 만한 선택이 아니지.’


그 고수가 완강한 무당을 어떤 수로 설득했는지까지는 모른다. 어쩌면 별 것 아닌 작은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고수의 존재가 무당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변장이나 축골공(縮骨功)을 익혔을 가능성도 내려놓을 수는 없다. 계속해서 예의주시하도록.”

“알겠습니다.”


방사혁은 전장에서 시선을 떼지도 않은 채 말했다.


어차피 저런 전략으로는 시간은 벌 수 있을지언정 승패까지 좌우할 수는 없다. 거대한 변수가 있다면 그것은 여지없이 정체불명의 고수였다.


사실 그것마저도 좌우사와 방사혁 본인이 나서는 순간 의미 없는 발버둥이겠지만······.


그렇다 해도 변수는 변수.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방사혁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기감을 날카롭게 벼렸다.


* * *


‘잘하고 있네.’


홍광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범인이라면 전장에서 일어나는 모레바람을 보고 보고 ‘저쪽에서 바람이 좀 세게 부나보다’하고 착각할 만한 거리였다.


사갈파가 일부러 근처에 엄폐물이 없는 장소를 골랐건만 홍광에게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행위였다.

아주 멀찍이 둔덕 하나, 하다못해 적당한 바위만 하나 있어도 홍광은 그곳에 숨어서 지켜보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열심히 지도를 뒤지고 사전 답사를 해가며 장소를 선정한 사갈파 졸개의 노력은 그렇게 수포로 돌아갔다.


‘무곤진인도 열심히 뛰고 있고. 나머지도 용케 안 잡히고 있군.’


홍광은 눈썹에 손을 가져다 대고 멀리 봤다.


모두가 분전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무곤진인이 특히 잘 뛰었다.


무곤진인은 실력에 비해 수련해온 시간이 많은 사람이다. 아무리 도를 닦는 데 더 집중했다지만, 그럼에도 시간의 힘은 위대하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무곤진인의 실력은 이미 꽤 높았다.


무려 구파일방이었던 무당의 황금기와 함께 성장해온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 무곤진인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수련이나 연습이 아니다.


실전이다.


지금까지 결여되어 있던 실전의 경험에 힘입어 지금껏 무곤진인이 해왔던 수련의 성과가 발휘되고 있는 거였다.


무곤진인은 분명 이 전투를 치르는 도중에도 성장하리라.


‘슬슬 나가야겠군.’


홍광이 찌뿌둥한 어깨를 휘휘 돌리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무당의 제자들은 도망치느라 멀어져서 아마 이쪽은 보이지도 않을 터였다.


홍광이 도망치는 전략을 제시한 이유는 세 가지 있었다.


하나는 그게 가장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홍광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무당파가 살아남고, 나아가서 적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서는 가장 나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둘째는 목격자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사갈파의 고수들은 도망치는 무당의 제자들을 쫓아가느라 없다. 남은 건 방사혁과 그의 측근으로 보이는 이 셋뿐.

여차하면 도망칠 생각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목격자를 줄이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셋째.


거추장스럽기 때문이다.


옆에서 까불대는 날파리가 있으면 싸우는 데 방해됐다. 무당파 인원의 인간성이나 존엄은 몰라도, 무공은 딱 그정도였던 것이다.


도움은커녕 인질로 잡히거나 초식에 제한이 걸리는 등, 방해만 될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홍광의 손으로 무당파 제자를 제압한다는 것도 본말전도고······.


그냥 처음부터 없는 게 나았다.


‘판은 깔렸다.’


홍광이 원하던 그림대로 사갈파의 최소한만 남았다. 뒤에 민중들이 있긴 했지만 싸움이 제대로 시작되면 어차피 다 도망칠 터였다.


이제부터는 정면승부다.


방사혁은 아주 멀리서부터 홍광의 기척을 눈치채고 이쪽을 똑바로 응시했다.


‘잡아먹겠네.’


중년의 거구가 쏘아대는 눈빛이란 부담스러운 법이었다.

홍광이 느긋하게 걸어서 방사혁의 앞에 섰다.


“왔구나.”


방사혁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홍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왔네요. 결국.”

“오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말하는군?”

“맞아요.”

“맞다고?”

“네. 제 신조가 ‘나대지 말자’거든요. 이런 일에 끼게 되다니 참으로 안타깝네요. 아마 스승님이 보셨으면 통탄을 하셨을 거에요.”

“스승이 어째서?”

“남이 위기에 처했는데 위험해보이면 일단 눈부터 막고, 귀도 막고 입도 막으라고 가르치셨거든요. 고개만 돌리면 피안이라는 말을 살아생전 제일 많이 한 분이셨어요.”


천하의 방사혁이 살짝 당황했다.


“······혹시 스승이 사파나 외도의 인물이었나?”

“아니요.”

“그럼 마교?”

“마교에 사제관계라는 게 있나요?”

“흠.”

“정파였는데요. 그것도 꽤 명문. 실속은 좀 개 같았지만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그랬어요.”

“······그런데 남의 위기를 외면하라고 가르쳤다는 건가? 어째서?”

“말하자면 길어요. 거기까지 가면 입만 아프죠.”


홍광이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방사혁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부터 비장한 싸움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상대방의 의지가 너무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사혁이 이 바닥에서 오래 굴러먹은 사람이다. 금방 평정을 되찾고 평소의 엄숙한 얼굴로 돌아왔다.


‘스승이 막바지에 정파를 관두었나보군.’


살아온 생에 회의를 느끼고 마지막에 신념을 바꾸는 것은 의외로 흔한 일이었다.


납득한 방사혁이 물었다.


“헌데 네놈은 어째서 스승의 명을 거역하면서까지 내 앞에 선 거냐?”

“사부님이 협의를 찾으라고 하셨거든요.”

“······.”

“아, 그리고 저도 몰랐는데. 제가 양심통이 좀 있는 체질인 것 같더라고요. 한동안 위가 쿡쿡 쑤시는게······.”

“혹시 스승이 여러 사람인가?”

“한 사람인데요?”


방사혁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강호에서 대화를 하는데 미묘하게 자꾸 엇나갈 때는 합리적인 의심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죽고 죽이는 사회다보니 광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눈 앞의 청년은 확실히 약간 돌아버린 것 같았다.


홍광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아무튼.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결국 이렇게 여기까지 왔네요. 아쉽게 됐어요.”

“동감이다.”


방사혁이 손가락으로 홍광의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그 광대같은 장난은 뭐지? 웃기지도 않는군.”

“아, 이거요?”


홍광의 얼굴에는 복면이 씌워져 있었다.

천을 기워붙여서 어설프게 만든 티가 역력했다.


“제가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요. 어떤 미친 영감탱이가 용모파기를 그려서 배포한다고 협박을 해서. 신경쓰지 마세요.”


복수록 약간 뒤틀린 놈 같았다.


“······그러지. 일단 죽이고 나서 벗겨 확인하면 될 테니.”

“그렇죠.”


홍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살인멸구 할 생각이었다. 서로 죽이는 것을 원망할 수 없는 것이다.


그제야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산 속에서 마주친 범 두 마리가 서로 노려보고 있는 듯한 냉기류가 형성됐다.


“안찰사.”

“예.”

“저 자가 자네가 본 고수가 맞나?”

“맞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돌아왔다.


복면을 쓰긴 했지만 말투와 행동에서 티가 났다. 곽자우가 이 정도도 알아보지 못하는 머저리는 아니었다.


“직접 맞붙어보지는 못했다고 했지.”

“맞습니다.”

“그럼 봐야겠군.”


방사혁이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가볍게 손짓했다.

전투 지시를 내릴 때와 같은 손짓이었다.


그러자 양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좌사와 우사가 앞으로 나섰다.


‘왜 직접 움직이지 않고?’


비효율적인 짓이었다.


홍광이 의문을 품었으나 딱히 말하지는 않았다.


원래 처음부터 대장이 움직이면 체면이 떨어지는 법이니까. 효율보다는 사파로서의 본능에 따른 판단인 것 같았다.


“다치실 텐데?”

“······.”


좌우사는 홍광에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로 소맷자락에서 무기를 꺼냈다.


왼쪽 사람은 가시가 촘촘하게 돋아 있는 사슬을, 오른쪽 사람은 쌍절곤처럼 끊어져 있는 무기의 끝에 주먹 만한 철퇴가 달린 병장기였다.


“뭐 정 그러시다면야.”


홍광이 항룡십팔장의 자세를 취했다.


긴장이 눈 녹듯이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수련했던 자세를 취할 때면 동굴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후.”


홍광이 숨을 내쉬는 순간.


좌우사의 신형이 사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기연 첫날에 무림이 멸망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감사합니다. 연중 공지입니다. +2 23.11.11 137 0 -
공지 업로드 시간은 오후 7시 20분입니다. 23.09.23 272 0 -
50 혀라도 깨물 수 있다면 좋으련만(2). 23.11.13 75 3 11쪽
49 혀라도 깨물 수 있다면 좋으련만(1). +1 23.11.12 112 0 11쪽
48 다 똑같은 무림인(3). +1 23.11.11 107 3 12쪽
47 다 똑같은 무림인(2). 23.11.08 139 2 12쪽
46 다 똑같은 무림인(1). +2 23.11.07 141 6 12쪽
45 밥알 한 개도 안 남기는 주의(3). +1 23.11.06 163 4 11쪽
44 밥알 한 개도 안 남기는 주의(2). +1 23.11.05 164 5 12쪽
43 밥알 한 개도 안 남기는 주의(1). +1 23.11.04 178 5 12쪽
42 거지로 돌아오셨네요(3). +2 23.11.03 197 7 12쪽
41 거지로 돌아오셨네요(2). +1 23.11.02 188 7 12쪽
40 거지로 돌아오셨네요(1). +1 23.11.01 203 6 12쪽
39 마공(魔功)(4). +1 23.10.30 221 6 12쪽
38 마공(魔功)(3). +1 23.10.29 216 7 12쪽
37 마공(魔功)(2). +1 23.10.28 213 7 12쪽
36 마공(魔功)(1). +1 23.10.27 229 7 12쪽
35 다치실 텐데?(3). +1 23.10.26 232 7 12쪽
34 다치실 텐데?(2). +1 23.10.25 244 6 12쪽
» 다치실 텐데?(1). +1 23.10.24 251 6 12쪽
32 똥구멍에 불 붙은 개처럼(4). +1 23.10.23 264 4 12쪽
31 똥구멍에 불 붙은 개처럼(3). +2 23.10.22 258 3 11쪽
30 똥구멍에 불 붙은 개처럼(2). +1 23.10.21 265 5 11쪽
29 똥구멍에 불 붙은 개처럼(1). +1 23.10.20 277 5 12쪽
28 걱정마세요(3). +1 23.10.19 277 7 12쪽
27 걱정마세요(2). +1 23.10.18 276 7 12쪽
26 걱정마세요(1). +1 23.10.17 293 6 12쪽
25 나도 억울하네(2). +1 23.10.16 293 5 12쪽
24 나도 억울하네(1). +1 23.10.15 308 7 11쪽
23 어찌하시겠습니까?(3). +1 23.10.14 312 7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