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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기연 첫날에 무림이 멸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9.23 06:39
최근연재일 :
2023.11.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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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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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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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걱정마세요(1).

DUMMY

“그게 무슨 말인가?”


정군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무당은 지금 사갈파와의 전면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참 모자란 힘을 갈쿠리로 끌어모아도 사실상 제대로 맞붙었을 때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희망을 걸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제일은 홍광의 조력이고, 둘째는 정군자 자신의 존재였다.


홍광이 너무 강해서 울며불며 매달리긴 했지만, 굳이 과장을 보태지 않아도 지금의 무당 정도는 정군자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큰 병력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리겠다니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자네의 강함은 인정하네. 허나 사갈파를 만만히 봐서는 안돼. 내가 직접 사갈파의 사사장이라는 사내와 손을 섞어본 경험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단언이네.”

“그랬죠, 참. 그놈이 독초를 뿌려놓은 장본인이라고.”


정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이곳이 무당의 영봉이었기 때문이네. 이곳은 평생을 뛰논 내 앞마당이니 조금 더 유리했을 뿐이야. 결코 그의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네.”

“그럼 영감님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요?”

“음.”


정군자가 솔직하게 말했다.


“우리 둘이서 사갈파의 머리인 사자장을 합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이유는요?”

“전쟁에서 장수의 존재는 더없이 중요하지. 몸이 아무리 강해도 머리가 없으면 고깃덩이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야. 일단 사사장을 치면 활로가 보일 걸세.”


정석적인 말이었다.

그만큼 설득력이 있었다.


곤양대전에서 유수는 삼천명의 보병과 기병만을 거느리고 사십삼만의 대군을 뚫어냈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유수가 적의 사령관인 왕심의 목을 빠르게 따냈기 때문이다. 사령관이 죽자 대열이 무너지며 우왕좌왕하고 서고 엉켜서 제대로 전투를 이어가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정군자가 이를 설명하기도 전에, 홍광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역시 모르셨네요.”

“뭘 말인가?”

“서균이 마지막으로 말했던, 마도천하의 불문율이라는 거요. 하긴 칠 년 동안 산에 처박혀서 지내셨으니까 모를만도 하죠.”

“······자네도 칠 년 동안 동굴에 있었다며.”

“저는 방금 장문인한테 물어보고 왔어요. 사부님이 언제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정보 수집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과연 개방 방주다운 말이었다.


개방은 단순히 거지들의 모임이기도 했지만 인재를 뽑아서 무공을 가르치거나 한 지역의 분타를 맡기기도 했다.


그렇게 분타를 맡은 거지가 하는 주 업무가 바로 정보처리다.


먹고살기 어려운 거지들은 머릿수가 많은 것만이 장점인데, 그 장점을 이용해서 거지들이 여기저기서 보고들은 말들을 취합해 강호 만인들을 상대로 정보 장사를 하는 것이다.


천하에서 가장 많은 정보가 흘러들어오는 집단이 개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은 다 한 셈이다.


정군자가 답답함에 채근했다.


“그래서, 그 불문율이라는 게 뭔가?”


홍광이 어깨를 으쓱하며 설명했다.


“별 건 없어요. 그 왜, 지금은 황실이 붕괴해서 관이라는 게 사라진 시대잖아요?”

“그렇지.”

“그럼 무림인들이 양민들을 죽여도 아무도 제지해줄 사람이 없다는 말이죠?”

“맞지. 그러니 사갈파 같은 놈들이 득세한 것 아닌가.”

“그런데 잘 생각해보세요. 실정이 이런데 양민들이 감히 싸움 구경이란 걸 하겠어요? 남이 목숨 걸고 칼질하는데 옆에서 팔짱 끼고 구경하는 놈들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는 걸 아는데?”

“음?”


그렇지.

맞는 말이다.


전에는 민가에서 싸움이 나면 구경하기 급급했다.


관의 뒷배도 있거니와, 그 지역의 거파들이 배를 딱 내밀고 잔뿌리를 뻗어놓았기 때문에 소동이 일어도 금방 진압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초들에게 손을 대는 순간 관과 명문 거파의 추적을 한 몸에 받게 됐기 때문에 아무리 시비가 걸렸다고 해도 양민에게 손을 대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싸움 구경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도천하에서는?


칼부림이 났다고 구경하러 가는 놈이 있다면 반드시 멀리해야 한다. 머리가 제대로 된 놈이 아니거나, 곧 상을 치를 놈이니까.


소동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곧장 반대로 튀는 게 상책이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남의 싸움 구경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단 목숨부터 건사하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겠어요?”

“음.”


정군자는 그제야 이해할 것 같았다.


싸움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화나 원한을 풀기 위함도 분명 있지만, 명성을 떨치기 위함이나 서열을 정리하기 위함도 있다.


사갈파의 경우는 명백히 후자였다.


싸움에서 이겨서 얻는 강자로서의 위치야말로 그들이 지금 호북 일대를 지배하고 있을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던가?


애초에 주인이 없어진 땅을 멋대로 점거하고 불합리한 조세를 거둠에도 그 누구도 불만을 제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강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강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소문의 발원지는 직접 두 눈으로 현장을 목격한 이들의 입방아다. 헌데 목격자 자체가 없으면 허망한 싸움만 남는 것이다.


“불문율이라는 게 뭔지 이제 알겠군. 구경꾼들을 모으겠다는 건가?”

“잘 맞추셨네요.”

“불문율이라느니 말했지만 결국은 승자의 편의주의로군.”


마도천하에서는 힘이 곧 모든 것이다.


싸움이라는 것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고, 필연적으로 힘의 고하가 드러난다.


이것을 대놓고 보여주겠다는 것은 패자를 능욕하고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헌데 그 불문율과 내가 가만히 있는 게 무슨 상관인가?”

“상관이 있죠. 영감님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사갈파가 왜 이렇게까지 무당에 집착하는지.”


그 말에 정군자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사갈파의 행동이 이상하다. 그도 부쩍 생각하고 있는 바였기 때문이다.


무당을 없애버리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위상을 더욱 높게 세우겠다는 행동원리가 훤히 들여다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 목적을 위해서 독을 뿌린다?


심지어 그냥 독도 아니고 독초를, 그것도 사갈파의 수장인 사사장까지 직접 행차해가면서?


“음.”


정군자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하지만 독식물을 심었던 것은 무당이 제발로 산을 내려가서 사갈파에게 빌빌대는 모습을 호북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나.”

“왜요?”

“그야 사갈파의 위명을 위해서지······.”


말을 하던 정군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상하죠?”

“그렇군. 위명을 위해서였다면 무당을 힘으로 짓밟아버리는 게 더 쉬운 일이지.”


이름을 드높여 권력을 굳히기 위함이었다면 구태여 사갈파의 수장이 직접, 그것도 몰래 잠입해서 씨독을 뿌릴 필요가 없었다.


식물이 자랄 때까지 적어도 일 년이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효과도 배합해서 만든 독보다 떨어질 테니까.


실제로 정군자가 패배한 뒤로도 몇 개월 동안이나 무당은 잠잠했다.


“하지만 명분을 위함이 아니었던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급작스레 무당을 쳤다면 같은 행동이라 해도 호북민들이 사갈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을 걸세.”

“그거야말로 웃긴 말이죠.”

“어째서인가?”

“영감님은 꼭 심어야만 나무가 자란다고 생각하세요? 나무가 자라면 그때 이유를 찾는 거라고요. 그리고 이유가 정확하지도 않아요. 씨앗이 바람에 날아왔을 수도 있고, 처음부터 흙 속에 파묻혀 있던 게 환경이 갖춰지면서 자랐다고 잡아뗄 수도 있죠.”

“······.”

“하지만 중요한 건 이거에요. 이미 나무가 자랐다는 것. 그리고 뽑아내기는 아주 어렵다는 것.”


명분은 얼마든지 가져다 붙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명분이 살짝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챈다고 해도, 바로잡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상대에게는 힘이 있으니까.


“명분 따위는 만들면 돼요. 그럼에도 사갈파는 그렇게 하지 않았죠.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선택한 거에요. 어째서일끼요? 저들이 정직하기 때문에?”

“적어도 그건 절대로 아니지. 사갈파가 그렇게나 정도를 아는 이들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테니.”

“그럼 답이 나왔죠.”


홍광이 명쾌하게 결론을 일축했다.


“저들은 무당을 망하게 하려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와중에 제대로 된 명분을 챙기려고 하고 있죠. 마치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그리고 저들이 가짜 명분으로 설득할 수 없는, 단 하나가 누구인지는 명확해요.”


정군자가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당사자들······.”

“바로 그거죠.”

“자, 잠깐. 자네 말대로라면 사갈파가 무당의 눈치를 보고 있단 말인가?”

“네.”

“아니······.”


과정은 그럴 듯 했지만 결론이 영 납득할 수 없었다. 차라리 제삼의 세력이 개입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지만 마땅한 세력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갈파의 위상이 강호 제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 쓰러져가는 무당을 치는데 눈치를 봐야 할 곳은 없었다.


심지어 원한다면 이 사실 자체를 은폐할 수도 있는 이들이었다.


그럼 정말 저들이 무당의 눈치를 보고 있단 말인가?


“대체 어째서?”

“왜냐고 물으셔도, 저야 모르죠. 무당에 꿀이라도 발라놓았나? 오히려 저보다는 영감님이 짚이는 점이 있는 거 아니에요? 무당파에 평생을 계셨잖아요.”

“······.”


정군자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동안은 의혹에 불과했던 것을 마침내 입 밖으로 말했다.


“무당에······ 아직 태극검보가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네만.”

“네에?!”


홍광이 갑자기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기겁했다.

정군자는 서둘러 변명했다.


“아, 아니. 이 태극혜검이라는 게 무당에게 있어서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존재랄까. 무당의 정수가 녹아 있다는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무당의 정수 그 자체랄까, 그런 면이 좀 있네.”

“그래서 아직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

“내 추측으로는 그렇네.”

“허.”


홍광은 하늘을 보고 탄식했다.


이제야 모든 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태극검보. 하기야 그 태극검보다.

전설로만 남은 장삼봉 대종사가 직접 손수 만들어낸 검의 정수란 말이다.


탐이 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영감님이 아신다는 건 무당을 잘 아는 누군가 있다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걸테고.”

“······그렇지.”

“마교의 남하 당시 실종된 무당파 인원이 한둘은 아니죠?”

“······그도 맞지.”

“그럼 끝났네요. 앞뒤가 다 맞아요. 여기까지 왔으면 제가 왜 무당에 남아 계시라고 한지 아시겠죠?”

“알겠네.”


무당에 태극검보가 있다.

적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훔치러 오겠지.’


그것도 불문율이니 뭐니 하는 허례허식을 치르는 동안, 무주공산이 된 무당에 좀도둑들을 보낼 것이다.


정군자의 역할은 산문에 남아 그 잡스러운 좀도둑들을 잡는 거였다.


“맡겨두시게. 자랑은 아니지만 겁도 없이 무당의 영역을 침범하는 쥐새끼들을 소탕하는 것은 내 전문일세.”

“그랬죠.”


홍광이 씩 웃는다.


큰 곳보단 급한 곳이 먼저다.

급한 불은 이것으로 어느 정도 꺼졌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큰 불.


본무대였다.


“내가 이곳에 남으면 자네 혼자서 괜찮겠는가? 내가 말하기도 뭣하지만, 지금의 무당파가 전력이 될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않네.”

“그건 걱정마세요.”


홍광이 씩 웃으면서 주먹과 손바닥을 힘차게 부딪혔다.


“그렇잖아도 동굴에서 나온 뒤로는 제대로 된 싸움 한 번을 못해봐서 몸이 근질거리던 차였거든요. 헤헤.”


아무렇지도 않게 정군자의 자존심을 크게 후려치는 홍광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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