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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기연 첫날에 무림이 멸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9.23 06:39
최근연재일 :
2023.11.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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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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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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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다 똑같은 무림인(1).

DUMMY

호북의 북서부와 중경(重慶)은 지도상으로 딱 붙어있는 곳이다. 따라서 홍광과 충자가 중경에 발을 들이기까지는 이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중경은 살기 좋은 땅이다.


장강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추운 겨울이 비교적 빨리 지나가거나 거의 없다.

작물도 잘 자라고 가축을 기르기도 적합하며, 위치상으로도 강호의 가운데 있기 때문에 교역을 하기도 수월하다.


이렇다보니 중경은 면적이 작은 땅임에도 비옥하여 인구가 많았다.


마도천하가 오기 전에는 그랬다.


거친 초야를 걷던 홍광이 주변을 쓱 둘러보곤 말했다.


“해골이 널렸네.”

“원래 사람이 많은 곳이었으니까 그만큼 죽은 사람도 많다. 딱히 치우는 사람도 없어서 완전히 시체 밭이지.”


호북을 벗어나 중경에 발을 들이자마자 을씨년한 살풍경이 펼쳐졌다.


중경에 들어온 뒤로 고작 한나절 걸었을 뿐인데 대체 몇 구의 시신을 눈에 담은 건지 모르겠다.


심지어 해골만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홍광은 수리들이 모여서 뜯어먹고 있는 고깃덩이를 가리켰다.


“······저건 한 달도 안 된 것 같은데.”

“강도들이 많으니까. 강호가 망했으니 오히려 비옥한 땅에 사람들이 더 몰린다. 그걸 노리고 마적이나 강호들도 기생충처럼 아예 살림을 차리는 거지.”


중경은 호북과는 또 달랐다.


호북의 모습은 부당 착취를 당하는 노역의 현장이었다면, 중경은 살인, 약탈, 강도가 성행하는 무법지대였다.


심지어 방금 전에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신의 주머니를 뒤지던 여인까지 있었다. 홍광이 먹을 걸 좀 건네주려고 다가가자, 여인은 식겁하며 멀리 도망쳤다.


충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저게 보통이다.”


타인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 정도는 기본적으로 어딜 가나 일상이었다. 특히 고수처럼 보이는 면모가 있다면 심한 경우 바로 칼을 뽑거나 반대로 엎드려 부복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동굴에서 나온 뒤로 제대로 된 민생을 보지 못했다보니 홍광은 꽤 충격을 먹었다.


과거 사람이 살았을, 반파된 초옥들을 보니 충격은 배가 됐다.


사람 없이 집들만 남은 마을이었다. 사람이 적어지니 모두 거주지를 옮겨서 노동력이 있는 새로운 민가로 이동하거나 이곳에서 죽은 것이다.


집안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가족들을 모두 잃고 자결한 흔적도 보였다.


‘정말 강호가 망하긴 했나보다.’


새삼스레 실감이 났다.


“서면산까지는 얼마나 남았어?”

“좀 걸린다. 이제 막 중경에 들어왔지 않았느냐? 적어도 열하루는 걸리겠지.”


열하루면 나쁘지 않다.


홍광이 마음껏 경공을 전개할 수 있었다면 세 배는 단축했겠지만, 충자가 아예 경공을 쓰지 못했더라면 한 달은 족히 걸렸으리라.


단전이 부서지고도 내공을 쓸 수 있다니, 그 고역을 해가며 패천회에서 잠행술을 익힌 보람이 있는 셈이었다.


문득 궁금해진 홍광이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방사혁이 죽었으면 그 소식이 패천회에 금방 들어갈 텐데 넌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생환했으면 보고를 먼저 올려야 하는 거 아닌가?”


당장은 죽은 줄 알고 사망자처리 하더라도 나중에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말이 나올 수 있었다.


‘왜 즉각 귀환하지 않았나’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뭘 하고 있었냐’ ‘다른 세력에 붙었던 게 아니냐’는 얘기쯤 되면 위험한 것이다.


간자는 결국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에 배신하면 타격이 크다. 특히 패천회처럼 암중세력인 경우에는 본진이 탄로나는 순간 돌이킬 수 없어진다.


같은 편이라 해도 간자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애초에 내가 패천회에 들어간 조건이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널 찾게 해준다는 거였으니까. 널 찾았다는 걸 알면 회주께서도 납득하실 거다.”

“······어 그래.”


홍광은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하며 대충 무시했다.


무슨 오해가 있었던 건지는 알겠는데 충자놈이 이러니까 개꼴깞을 떤다는 생각이 들어서 순간 뒤통수를 후릴 뻔했다.


그때 폐건물쪽에서 우악스러운 실랑이가 들렸다.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

“그쪽 잡아라. 애새끼 못 도망가게 확실하게 감시하고. 또 구경하느라 한눈팔면 이번엔 정말 너부터 뒈진다.”


중간중간 높은 비명이 새어나왔는데 사내들은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전혀 신경쓰지 않고 저들끼리 대화했다.


홍광은 뛰어난 기감으로 현장의 일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봤다.


사내 넷이서 여인 하나를 잡아놓고 겁탈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옆에는 어린 아이도 있었는데 조용했다. 아무래도 사내들이 겁을 줘서 침묵 시킨 것 같았다.


“조용히 해라. 안 그러면 네 애새끼랑 같이 입을 찢어주마.”

“흡······.”


이윽고 소리지르던 여인도 조용해졌다.


몸부림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반항하는 건 포기한 듯했다.


그 다음부터는 눈물만 줄줄 흘렸다.


폐건물과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충자도 이것을 느꼈는지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동굴에서 수련만 했던 홍광과 달리, 충자는 이런 일에 무뎌질대로 무뎌졌다.


충자는 평정을 잃지 않고 말했다.


“어딜 가나 일어나는 일이다.”


홍광은 대답하지 않았다.


강호가 망하기 이전에도 길바닥은 여인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개방에서도 여자 거지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관이 없어진 마도천하에는 당연히 더 심해졌으리라.


홍광은 중얼거렸다.


“예전에도 저런 놈들이 있었지.”

“······.”

“그땐 힘이 없었는데, 지금은 아니네.”


거지였을 때 홍광을 괴롭게 했던 건 굶주림과 추위와 더위, 그리고 폭력이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불쾌하다는 감정을 느낀 때는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무도한 일을 지켜보기밖에 할 수 없을 때였다.


어느 거지가 멀쩡한 어린아이의 다리를 부러뜨린 뒤 앵벌이를 시키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음습한 골목길에서 그 모습을 마주쳤을 때, 어린아이가 홍광에게 보냈던 시선을 기억한다.


구해달라고 간절히 외치는 듯한 그 눈을.


홍광은 그 눈을 외면하고 말없이 골목에서 빠져나가야 했던 날을 기억한다.


지금은 다르다.


홍광은 폐건물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충자가 피식 웃으며 뒤따랐다.


* * *


홍광은 박수를 짝짝 쳤다.


“자, 주목. 하던 거 멈추고 여기 보세요.”


반쯤 전라가 된 여인과 바지춤을 내리려던 사내들의 시선이 한 순간에 집중된다.


여인을 붙잡고 있던 사내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부하들에게 불었다.


“저건 웬 미친놈이냐?”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것 같은뎁쇼?”

“회까닥 한 놈 같습니다.”


사내들이 뭐라고 떠들든가 말든가 홍광은 할 말을 했다.


“자, 여기서 혹시 본인에게 믿음직한 뒷배 세력이 있다. 혹은 다치면 나서줄 고수가 있다. 거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홍광은 혹시 몰라서 재차 확인했다.


“진짜 없죠? 충자야, 어때.”

“······이 근방에 사갈파쯤 되는 세력은 없다. 설령 본거지가 있다고 해도 잡스러운 놈들이겠지.”

“확실해?”

“확실하다. 그리고 애시당초 뼈대 있는 세력에서 저런 놈들을 쓸 것 같지도 않구나.”


홍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시 사갈파 같은 세력과 얽혀드는 일은 되도록 사양하고 싶었다.


“저것들이 지금 뭐라고 씨부리는 거냐?”


사내들은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알아듣지도 못할 대화 내용보다는 홍광과 충자가 사갈파에서 챙긴 술이며 식량들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대장으로 보아는 사내가 홍광의 허리춤에 매달린 술통을 물끄러미 보다가 흐르는 침을 닦았다.


“크흐흐흐. 여자에 술에 음식이라, 얼마만의 푸짐한 풍류냐? 가져와라. 오늘은 성대하게 즐겨보자꾸나.”


대장이 턱짓했다.


그러자 나머지 세 명의 사내가 히죽 웃으면서 두꺼운 박도를 뽑아들고 다가왔다.


“기특한 놈들. 술 들고 오느라 고생했다.”

“마지막으로 그것들 어디서 났는지 말하면 편히 보내주마.”


사내들이 홍광을 죽일 듯하자 사로잡힌 여인과 아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홍광은 그 와중에도 사내들의 튀어나온 바지춤이 거슬렸다.


“충자야, 칼 있지?”

“여기 있다.”

“줘봐.”


사갈파에서 충자가 호신용으로 챙겨온 단도였다. 내공을 거의 쓸 수 없는 충자는 날카롭고 전달력 좋은 단도가 병장기로 딱 알맞았다.


그리고 지금 같은 경우에도 요긴했다.


단도를 건네받은 홍광이 나타난 곳은 사내들의 등 뒤였다.


사내들은 순간 뒤돌았지만 이미 늦었다.


빳빳하게 고개를 처들고 있던 바지춤 속 양물들이 모두 잘려나간 것이다.


사내들의 가랑이에서 피분수가 터졌다.


“끄아아아아아악!”


홍광은 사내들이 쓰러지기도 전에 목울대를 베어버렸다. 끄륵거라며 피가래가 끓는 소리 외에는, 더 이상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뒤늦게 사태를 눈치챈 대장 사내가 이빨 빠진 도를 위협적으로 꼬나쥐었으나, 그가 도를 휘두르기도 전에 본 것은 코앞까지 다가온 홍광의 얼굴이었다.


홍광이 가볍게 칼을 내리긋자 사내의 양물도 몸과 분리되어 뚝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목에 단도를 박아넣고 날붙이에서 손을 뗐다.


사내의 몸이 나무꾼 만난 나무처럼 이마부터 박으며 쿵 쓰러졌다.


깔끔하게 모두 죽였다.


“······.”


두 모자가 주저않아 껴안고 오들오들 떨었다.


여인은 젊었고 사내아이는 열 살도 안 된 것처럼 보였다.


홍광은 벗겨진 여인의 옷을 주워다가 덮어주었다. 그제야 모자는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홍광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이제 보니, 방금 전 시신을 뒤지던 그 여인이었다. 음식을 주려는 홍광에 식겁해서 도망쳤는데 이놈들을 만난 것 같았다.


홍광은 품에서 건량을 꺼내 내밀었다.


여인이고 아이고 곧 말라죽게 생겼다.


“좀 드세요.”

“······.”


며칠을 굶었지만 여인은 바로 음식을 받지 못했다.


순진하게 주는대로 받아먹기에는 그동안 여인이 경험한 것이 적지 않았다.


먹을 걸 줬으니 어떻게든 갚으라는 식으로 나올 수도 있고, 음식 자체에 무슨 짓을 해놓았을지 모른다. 자칫하면 길거리에 널린 해골들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방금 죽은 사내들이나 홍광이나, 모녀의 눈에는 다 똑같은 무림인인 것이다.


무림인.

잠깐 친절해보여도 무슨 속내가 있을지, 혹은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는 족속들. 조금만 성질을 거슬리면 사람을 무심하게 죽여버릴 수 있는 족속들.


하지만 반대로 거부할 경우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었다.


여인은 꽤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내민 음식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이 먼저 한 입을 작게 먹고 아이에게는 주지 않았다.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토할 준비도 했다.


잠시 뒤 건량을 먹고도 몸이 멀쩡하자 여인은 그걸 쪼개서 아이에게도 줬다.


아이는 받은 건량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대하듯 아껴서 오물오물 씹었다.


그때까지도 홍광과 충자가 말이 없자, 여인은 경직이 살짝 풀렸다. 적어도 이상한 목적이었다면 진즉에 뭐라도 했을 테니까.


여인이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건넸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맹하련이라 합니다. 아이는 을금. 아홉 살입니다.”

“홍광이에요.”

“충자.”


홍광은 굳이 이것저것 묻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복잡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당파가 남기고 간 교훈이 있다면, 함부로 깊게 파고들지 말라는 거였다.


‘괜히 신경 쓰이니까.’


“그럼 이만 가볼게요. 서두르는 중이라.”


홍광이 짐짓 시선을 떼고 몸을 돌렸다.


폐건물을 나와서 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제야 여인과 아이는 옷가지며 짐들을 추슬렀다. 죽은 사내들의 시신을 뒤져서 먹을 걸 좀 챙긴 뒤에 폐건물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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