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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기연 첫날에 무림이 멸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9.23 06:39
최근연재일 :
2023.11.13 19:20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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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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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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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마공(魔功)(2).

DUMMY

승산이 없는 싸움.


허겸은 누구보다 그 허무한 말로를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은 결과로 말하는 법.


무당은 중원을 지키기 위해 싸웠지만 패했다. 패한 무당에게 중원은 소금 한 주먹 내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가장 가까웠던 호북민들조차도.


‘그런데 나는 지금 왜 이곳에 있는가?’


단순히 양민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에?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아니면 누가 서겠는가.’


패배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무당의 선조가 남기고 간 교훈이었다.


몰락한 세대의 남겨진 후인으로서 한 순간이나마 그들의 희생을 헛되다 생각한 적이 없다면 거짓이었다.

원망도 수없을 만큼 했다.


하지만 끝내 그들의 의기마저 무의미했노라고 부정할 수는 없었다.


허겸은, 허겸만은 그 희생을 헛되다 말할 수 없었다.


그 죽음들에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면 너무나도 비통하지 않은가?


허겸이 그 비통함을 가장 잘 안다.

그러니 스스로가 해야 한다.


그것이 그가 지금 곽자우의 앞에 선 이유였다.


허겸은 이를 악물었다.


활로는 있었다.

도망치면 된다.

이 한 달간 허겸은 싸우는 게 아니라 도망치는 걸 수련해왔다.


하지만.


도망칠 수 있더라도.

도망치는 편이 현명하더라도.


그럼에도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한다.


‘여기서 도망치면 다시는 무당의 이름을 댈 수 없다.’


승산이 없는 싸움.

무당은 이미 한 번 그런 싸움을 겪었다.


그 마교를 상대로.


누가 봐도 이길 리 없는 싸움.


그럼에도 선대는 목숨을 던져 항거했다.


그런데!

고작 사파 나부랭이를 상대로!


승산이 없기 때문에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지 못하면!


“어찌 무당이라 하겠는가!”


설령 빛바란 이름이라 해도.

아무리 낡아빠진 가치라 해도.


허겸이 부러질 듯이 검파를 쥐었다.


꼬마 시절부터 수련했던 무당의 기본검이 딱히 다를 것 없는 위력으로 펼쳐진다.


요행도 경지의 문을 두드리는 자가 바라는 것이다. 허겸의 수준으로는 조금 더 내력을 불어넣고, 조금 더 강하게 휘두른다 해서 격변을 기대할 수 없었다.


“쯔즛.”


그에 반해 곽자우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귓전을 앵앵거리는 파리라도 쫓는 듯했다.


가냘픈 허겸과는 무기도, 휘두르는 사람도 중량이 다르다.

결정적으로 실력의 차이가 너무 크다.


사력을 다했음에도 허겸은 수세에 몰렸다.


매섭게 찔러오는 곽자우의 귀두도를 겨우 빗겨내거나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하체를 단련하지 않았더라면 무너졌을 것이다. 지금도 허벅지 근육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허겸은 검을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한 발짝 진각을 밟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물러나라 이 악적놈!”


고작 몇 번 합을 나눴을 뿐인데 넝마가 된 허겸이 소리치며 검을 떨쳐냈다.


“애를 쓰는구나.”


곽자우가 무심히 검을 퉁겨내며 말했다.


“네가 하는 짓은 자살이다. 그렇게 내력을 끌어쓰고나면 다음에는 어떻게 되겠느냐? 네 목숨이 얼마나 버틸까?”

“닥쳐라!”

“쯧. 병신같은 놈.”


곽자우가 바닥을 차고 크게 물러났다.


약간의 상처를 감수하면 당장이라도 허겸의 목을 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허겸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전장에서 부상은 아무리 작더라도 치명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굳이 부상을 감수하지 않아도 내버려두면 알아서 쓰러질 적에게 매몰될 필요는 없었다.


곽자우가 멀어지자마자 허겸이 소리쳤다.


“지금이오! 도망가시오!”

“예, 예!”

“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민중들이 허둥지둥 달아나기 시작했다.


허겸이 눈을 살짝 돌려서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저들은 기억할까?’


무당이 자신들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을.


허겸이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무당은 이미 호북민들을 수십 번, 수백 번을 구했다. 이는 구전되고 전승되어 호북의 어른이라면 모두가 아는 내용이었다.


때문에 호북의 아이들은 무당파의 기명제자로라도 들어가기를 꿈꿨고, 허겸 또한 그렇게 무당에 입문한 것이 아닌가.


저들은 이미 무당이 자신들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무당에 찾아와 시위한 것이다.


헌데 허겸이 한 번 더 구해준들 무엇이 바뀌겠는가?


‘잊혀지겠지.’


또다시 잊혀질 것이다.


저들은 기억하면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허겸의 숨이 가빠온다.


무리하게 내력을 운용한 탓에 망가진 기맥으로 생명을 지탱하던 내력마저 새어나간다.


거리를 벌린 채 기다리던 곽자우가 천천히 걸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 곽자우의 모습마저 흐릿하다.


후회는 없다.


‘다만, 끝까지 듣지 못했구나.’


네가 하는 일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설령 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너는 분명히 옳은 일을 했다고.


마지막으로 그 말을 듣고 싶었는데.


“끝이다.”


허겸의 머리 위에 들어올려진 귀두도의 그림자가 진다.

곽자우가 귀두도를 내려찍는 순간, 허겸은 눈을 감아버렸다.


의외로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죽은 건가?’


이곳이 사후세계인가 싶어 눈을 떴다.


그러나 눈을 뜬 허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신선향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옥도 아니었다.


“훌륭했다.”


인자한 목소리.

누군가의 손이 가볍에 허겸의 머리칼을 헝클었다.


코앞까지 다가왔던 곽자우의 목은 이미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시간차를 두고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던 머리통이 떨어졌다. 치켜들었던 귀두도도 떨어져서 지면에 깊게 박혔다.


곧이어 곽자우의 몸이 허물어졌다.


허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목소리가 들려온 옆을 봤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노인이 서 있었다.


눈에 큰 상처가 있는 노인이었다.


“더없이 훌륭했다. 줄곧 네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너무 늦었구나. 선조들께서 보셨다면 틀림없이 기특타 칭찬하셨을 게다.”


노인은 눈도 없으면서 빙긋 웃으며 말했다.


허겸은 순간 감정이 복받쳐올랐으나 내색할 수 없었다.


웃고 있는 노인의 얼굴에서 그보다 많은 감정이 감정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고통이나, 슬픔, 미안함 같은······.


허겸으로서는 왜 노인이 저런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었으나, 노인에게서 왠지 익숙함이 느껴졌다.


설마.

허겸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노인이 허겸의 명치를 툭 밀쳤다.


순간 허겸은 자신의 몸에 내력이 훅 불어오는 것을 느꼈다.


‘몸이······.’


바닥까지 드러났던 허겸의 내력이 다시금 충만하게 차올랐다.


“너는 사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

“날뛰고 있는 괴물은 나와 저 아이 둘이서 정리하겠다.”

“······가능한 일입니까?”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보일 것이다.”


허겸은 주저했다.


하지만 끝내 말리지는 못했다.


노인은 곽자우를 한 번에 베어버린 실력자였고 홍광도 결코 범접할 수 없는 고수였다.

어차피 돕는다고 해도 방해만 될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말거라.”


노인이 싱긋 웃고 등을 돌려서 가볍게 뛰어나갔다.


발놀림은 가벼웠으나 땅을 주름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점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홍광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본 적 있는 신법이었다.


“제운종(梯雲縱)······.”


그것은 분명 소실되었던 무당의 신법이었다. 허겸은 죽은 무당파 고수들이 이 신법을 쓰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이제는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두 눈으로 다시 보게 됐다.


뺨을 꼬집고 싶은 심정이었다.


‘모든 것이 변했다.’


차근차근 몰락의 길을 밟고 있던 무당파에 발아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허겸의 눈이 저 먼 곳을 쫓았다.


홍광이 검은 마기를 흩뿌리는 방사혁으로부터 달아나고 있었다.


‘홍 소협이 나타났을 때부터.’


저 소년이 모든 것을 뒤집어놓았다.


독초에 중독되었던 막내를 주해주고, 사갈파와의 싸움에서 타개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제는 대적을 처리하려 하고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가 바꾼 일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사자 같구나.’


홍광을 바라보는 허겸의 시선에는 경외가 가득했다.


* * *


정군자는 가공할 속도로 도망치고 있는 홍광과 가까워졌다.


추격전이 다 그렇듯이 일직전으로 뻗어나가지 않고 구불구불하게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꽤 지쳤을 정도로 방사혁과 홍광은 빨랐다.


“자네!”

“어? 영감님?”


멀찍이서 정군자를 알아본 홍광이 계속 도망치면서 웬일이냐는 듯이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산문은요?”

“다 끝내고 왔지!”


정군자도 평행선으로 달리면서 답했다.


“오? 생각보다 상대가 엄청 허접했나보네요? 얼마나 약했으면 벌써 끝났지?”

“······.”


홍광은 전투중에도 여전했다.


‘누굴 약 올리는 건지.’


그렇게 말하면 정군자가 약한 놈들을 상대한 약한 놈이 되지 않는가.


‘내가 깨달음을 얻어서 그렇다’고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정군자였지만 참았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뭘요?”

“뒤에서 쫓아오는 놈 말일세. 계획이 있나?”

“그런 거 없는데요?”

“그래 괜찮다. 자네도 정신이 없었겠지. 그럼 지금부터 내가 지시하는대로······.”

“영감님.”


정군자가 생각을 말하려고 했지만 홍광이 가차없이 말을 끊었다.


“뭔가? 지금 급하네만.”

“혹시 미치셨어요?”

“······.”

“아니면 뒤늦게 노망이 드셨나? 아니 무슨 개소리를 그렇게 사람 말처럼 해요? 저걸 잡자고요? 저걸?”


홍광이 뒤를 가리켰다.


광기로 눈깔을 번들거리면서, 방사혁이 손도를 높이고 있었다.


“저거 안 보여요? 영감님 눈 멀었어요? 아, 이미 멀었구나. 아니, 그래도 그렇다고 이러시면 안 되죠!”

“······.”


솔직히 좀 힘들어 보이긴 했다.


둘이 덤빈다고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못 이길 가능성이 좀 더 높아 보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어차피 저 괴물을 처리 못하면 무당은 망하네!”


정군자가 진심을 담아서 외쳤다.


하지만 홍광에게 닿을 리 없었다.


“이 김에 해체하세요 그럼!”

“뭐?”

“저놈 찾는 게 뭔지 알았잖아요! 태극검보! 그럼 장문인한테 말해서 저 괴물놈한테 태극검보 줘버리면 잠잠해질 거 아니에요?”

“······어?”


순간 설득 당할 뻔한 정군자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다고 상식적으로 사갈파가 사용 가치를 다한 무당을 가만 두겠는가?”


그러자 홍광이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니까 해체하시라고! 무당이 없으면 되잖아요! 무당 없다고 제자들 죽어? 죽냐고요!”

“······어?”

“막말로 그렇잖아요! 영감님이 배분도 제일 높죠? 장문인한테 빨리 뛰어가서 정체 밝히고 전해요! 태극검보 주고 무당 해체하자고! 이만하면 정말 할 만큼 했다고요!”

“······.”


상상도 못해본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만 그걸 떠올리는 사고방식 자체가 정군자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태극검보를 준다고?


무당을 무너뜨리려는 사파에게 태극검보를 넘긴다고? 그것도 마공을 익힌 마두에게 무려 무당의 태극검보를 자신의 손으로 건네라고?


‘차라리 칼 물고 엎어지고 말지!’


하지만 정군자의 마음은 기묘하게도 일렁였다.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게만 하면 제자들을 살릴 수 있었다.


아니, 정말 살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괴물놈과 정면으로 맞붙는 것보다 가능성은 높았다.


정군자가 잠시 침묵한 순간.


“아이 씨! 말하느라 따라잡혔잖아요!”


뒤에서 파도처럼 덮쳐오는 권력(拳力)에 홍광이 몸을 비틀었다.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라서 각법으로 쳐낸 것이다.


헌데 공격을 쳐낸 홍광의 표정이 변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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