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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기연 첫날에 무림이 멸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9.23 06:39
최근연재일 :
2023.11.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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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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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똥구멍에 불 붙은 개처럼(4).

DUMMY

첫 격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전장에서 처음으로 부딪힌 자들의 승패는 각 세력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패배한 진영에는 자신도 똑같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심어진다. 심지어 패한 사람이 평소 알고 지내던 이라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승리한 쪽에는 자신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주어진다. 열세에 몰렸다면 희망을 얻고, 승전중이었다면 거친 파도와 같은 기세를 얻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전쟁에서는 전투를 개시하기 전에 장수들끼리 먼저 나와서 생사결을 벌이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그 별 것 아닌 승패가 전쟁의 향방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장수들의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이나.


시선이 모인다.


무곤진인은 주변의 모든 눈짓이 자신과 겸노사를 한 번씩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저 멀리서 전쟁을 관망하고 있는 방사혁이나 그의 측근들, 그보다 뒤의 안력이 좋지 않은 민중들조차 인상을 써가며 이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전쟁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본능적으로 이 전투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카가가가가각!


힘겨루기를 하던 겸노사와 무곤진인이 서로 병장기를 퉁겨내고 한 발짝 물러났다.


“어서 가거라!”

“예, 예!”


무곤진인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제자가 덜덜 떨리는 다리를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장문인!”

“내 걱정은 말고!”


제자는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마저 도망치기 시작했다.


“음······.”


그 모습을 보며, 겸노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입술을 핥으며 침음했다.


어린 제자를 놓친 것 때문은 아니었다.

풋내나는 어린 놈쯤이야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 다시 쫓을 수 있었다.


겸노사가 인상을 쓴 것은 다른 이유였다.


무당파에서 가장 부딪히고 싶지 않은 이가 있다면 그건 두말할 것 없이 장문인인 무곤이었던 것이다.


가장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아니다.


겸노사가 무슨 절정에 이른 고수까지는 아니었지만 상대를 보면 수준을 파악할 정도는 됐다.


무당의 장문은 약하다.

과연 자신이 아는 그 무당의 장문인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헌데 어째서 껄끄러운가?


‘이놈을 잘못 건드리면 방사혁이 가만 두지 않겠지.’


겸노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인들은 그를 보고 잔학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겸노사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은 일격에 상대의 목을 깔끔히 거둬주지 않는가?


그런 면에서 겸노사가 아는 한 가장 잔학한 사람을 꼽자면 바로 사갈파의 사사장인 방사혁이었다.


그는 공포를 이용할 줄 아는 사내다.


배신자가 있으면 여지없이 처단했고, 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자는 눈이 많은 곳에서 느긋하게 벌레처럼 찌부러뜨렸다.


발로 머리를 천천히 눌러 죽임에도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는 이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뇌가 짓뭉개지면서도 고통에 발버둥치는 자를 보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아, 절대 반항하지 말아야겠다.


반항심의 씨가 마른다.


‘어찌해야 할까.’


겸노사는 쉬지 않고 가늠해보았다.


자신은 무곤보다 확연하게 강하다. 그러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제압할 수 있다고 확신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무곤과 겸노사 둘의 생사결이 아니었다.

전쟁이다.

전장은 언제고 혼잡하며 혼란하다.


도저히 치명상 없이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되면 살짝 뒤로 빠지기만 해도 그 대신 무곤을 상대할 사람은 차고 넘쳤다는 말이다.


게다가 사갈파의 수장, 방사혁은 신상필벌을 잘 아는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더 없이 잔인해질 수 있지만 공을 세워온 이를 치하하고 상을 내리는 것도 잊지 않는 사내였다.


애초에 당근 없이 채찍만으로 사갈파를 이끌었다면 세력이 이렇게까지 강성해지진 못했을 것이다.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하군.’


무곤을 제압해서 끌고 가면 상으로 살이 연하고 고운 유아를 다섯 명쯤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결심을 굳힌 겸노사가 허리에서 낫을 하나 더 꺼냈다.


“이봐! 합공을 하지 않겠나?”


전투에 앞서 겸노사가 주변의 사갈파 고수들에게 소리쳤다.


수적 우위가 있으니 그 혼자라면 몰라도 여럿이서 무곤을 합공하면 큰 상처 없이 제압하는 것도 수월할 터였다.


“······.”


하지만 역시 나서는 이 하나 없었다.


공을 세울 기회가 있다면 나누어 먹기보다는 독차지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 아니겠는가.


거리를 두고 물러난 자들은 무곤과 겸노사가 싸우다가 둘의 체력이 적당히 빠지면 난입해서 장문인만을 낼름 데려갈 생각인 것 같았다.

실제로 입장이 바뀌었다면 겸노사도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니 당연했다.


그래도 효율을 추구하는 누군가 나서주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는 있었는데 확실하게 무산됐다.


“쯧.”


겸노사는 혀를 한 번 차고 눈 앞의 적에게 집중했다.


‘길게 끌어서 좋을 게 없다.’


주변에서 날파리 같은 놈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최대한 짧고 굵게.


빠르게 무력화 시킨 뒤에 칼을 들고 있는 손목을 잘라버리면 끝이었다.


“흡!”


겸노사가 도약했다.


괴팍한 성정과는 달리, 그의 쌍겸은 바람결에 흔들리는 버들처럼 유려하게 움직였다.


낫끝이 무곤진인의 목을 노리고 날아든다.


‘환묘하군.’


과거 무곤진인은 도를 닦는 이였다.

그러나 폐쇠적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무당이 구파일방이라는 드높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니 다른 문파들과 교류하는 장소에 이따끔 무곤진인도 동석했다.


당연하게도 무당이 교류하는 문파들은 무파(武派)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물론 무공을 견식할 기회도 있었다.


무곤진인은 그중 화산파의 무공을 기억해냈다.


흩날리는 매화 꽃잎을 닮아 이지러지듯 수백 수천 갈래로 갈라지며 시선을 현혹했던.


믿을 수 없는 경지의 검법을 그는 보았다.


환검의 끝!


무곤진인의 무공 수준은 결코 내보일 만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사갈파와의 싸움에서 실력을 믿을 정도도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확실하게 되어 있는 그였다. 수련을 좀 받았다고 해서 검 실력만 믿고 설칠 정도로 무곤진인은 어리석지 않았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없는 것이 무곤진인에게는 있다.


그것은 바로 경험!


과거 무당파가 누려왔던 영광에 무곤진인도 분명한 수혜를 입었던 것이다!


‘그때 본 환검에 비하면······.’


무곤진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쩌엉!


짧게 휘둘러진 검이 가열찬 파찰음을 토해냈다.


그의 백검은 겸노사의 쌍겸이 날아온 위치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검 하나에 쌍겸 두 개가 모두 걸렸다.


순간 급습을 노렸던 겸노사의 눈이 커졌다.


‘이걸 막아?’


나름대로 빨리 정리하기 위해서 회심의 일격을 펼친 거였는데 간단히 막혔다.


심지어 무곤은 튕겨져 나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 다리를 박아넣은 채로 버티고 있지 않은가.

내공이라면 노고수인 겸노사가 확실하게 위거늘!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한 발 물러선 겸노사가 죽일 듯이 쏘아봤다.


하지만 받아친 무곤진인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


물론 경험을 토대로 상대의 공격을 읽은 것까지는 의도한 바가 맞았다.

그러나 일단 받아쳤으면 나가떨어진다든가, 그렇지 않더라도 손이 저릿하면서 상반신이 퉁겨져 나갈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무곤진인은 멀쩡했다.


그리고 멀쩡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겸노사의 위협적인 말투와 행동이 무곤진인에게 확신을 더해줬다.


달리기, 마보, 달리기, 마보, 달리기, 마보.


물론 도주력을 기르는 데 특화된 수련은 맞았다. 하지만 홍광의 말대로, 종베기를 잘하는 사람은 횡베기를 잘 할 수밖에 없다.


하체가 굳건해지니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자세가 단단하니 평소 수련했던 받아치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다.


무당의 검은 극한의 부드러움을 추구한다.


부드러운 것은 강한 것을 이긴다.


검법과 초식은 실전됐어도 유능제강의 묘리는 무곤진인의 몸에 녹아들어 있었다.


물론 무곤진인의 힘이나 내공이 한 달 사이에 갑자기 겸노사보다 강해진 것은 아니지만, 무당의 검의 본질이 이랬다.

기반만 잡혀 있다면 약한 힘으로도 얼마든지 강자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힘 차이가 이만큼이나 나는데?’


한 달 전의 무곤진인이었다면 속절없이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안배한 건가.”


무곤진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홍광의 의도가 어디까지였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제 눈 앞의 상대가 두렵지 않다는 것.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무슨 수작을 부렸든 상관 없겠지. 어차피 무당의 검은 이미 실전된 것을. 설령 편린을 깨우쳤다고 해도 반쪽짜리 검이다. 무당의 질긴 수명도 이로써 끝난 거지. 그 증거로······.”


겸노사가 히죽 웃으며 안광을 번뜩였다.


“네놈과 네놈 제자들의 목을 쳐서 살점을 얇게 썰어주마!”

“얼마든지.”


모욕적인 말이었지만 무곤진인은 동요하지 않았다.


저따위 뻔한 격장지계에 넘어가기에는 그가 짊어진 것이 너무 많았다.


“이놈!”


두 개의 낫이 포개지면서 상하좌우로 흔들린다.


이번에는 강가의 갈대처럼 흔들리는 쌍겸.


탓!


겸노사가 무곤진인을 향해 돌진한다.


곧 두 개였던 낫이 여덟 개의 날로 화하더니 일제히 무곤진인을 향해 덮친다.


팔은 두 개요, 검은 하나다.


무곤진인이 사람이고 검수인 한, 여덟 개의 낫에 모두 대처하기란 어렵다. 심지어 그들 하나하나가 갈대처럼 변칙적으로 움직여서 행동의 갈피를 잡기조차 힘들다.


분명 저건 무곤진인이 지금 죽었다 깨어나도 감당할 수 없는 공격이다. 방금 전 같은 손쉬운 눈속임과는 달랐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환상인지 무곤진인의 경지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받아낼 여력이 있어도 일단 무엇이 진짜 살초인지 알아야 검을 휘두르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닌가.


그러나.

무곤진인의 행동은 간단했다.


푹!


검을 바닥에 찔러넣는다.


그리고 검면을 후려치듯이 휘두른다.


초식을 펼치면서도 상대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던 겸노사는 반사적으로 낫을 휘둘렀다.


그 결과, 심후한 내공을 실어서 낫으로 흙을 쳐냈다.


무곤진인이 검을 휘둘러 흩뿌린 것은 검기도, 검사도 아닌 바닥의 흙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한 순간 눈을 감았다 떴다면 흙 정도는 간단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험 많은 노구인 겸노사는 결정적인 순간, 어떤 경우에도 눈을 감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이 역효과였다.


얇은 낫으로는 다 쳐내지 못한 흙이 부릅뜬 누으로 파고든다.


게다가 흙 따위를 막는 데 막대한 동작을 남비한 그의 늑골 부분에 커다란 빈틈이 생겼다.


무곤진인은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검수의 눈이 번뜩였다.


슈칵!


무곤진인이 먼저 벴다.

상대의 목을.


백검이 지나간 자리에 흰 검로가 남았다.

그야말로 깔끔하게 겸노사의 목을 지나간 검로가.


시간차를 두고 겸노사의 목이 미끄러지듯 바닥을 향해 낙하했다. 그 다음에는 노쇠하고 작은 몸뚱이가 허물어졌다.


수많은 어린아이들의 목을 베고 살을 먹었던 마두의 생명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지켜보던 이들이 경악했다.


사갈파나 민중들 할 것 없이.


무당의 검은 이미 실전된 것 아니었나?

효력을 다한 검 아니었던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심지어 무당의 제자들도 눈이 커졌다.


무곤진인은 다분히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이건 전략이다.


격장지계.


“이놈들.”


무곤진인의 한 마디에 멀찍이서 전투를 구경하던 사갈파 고수들이 시선을 집중했다.


무곤진인은 흰 이를 드러내며 나직하게 말했다.


“똥구멍에 불 붙은 개새끼처럼 쫓아와보거라.”


무곤진인이 다시 등을 돌려 뜀박질했다.

등 뒤로 고수들이 정말 개새끼처럼 쫓아왔다.


첫 격돌.


대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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