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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기연 첫날에 무림이 멸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9.23 06:39
최근연재일 :
2023.11.13 19:20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9,142
추천수 :
455
글자수 :
263,236

작성
23.11.05 19:20
조회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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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밥알 한 개도 안 남기는 주의(2).

DUMMY

무려 칠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보통 인연이었다면 서로 잊어버리고 어쩌다가 마주친다 쳐도 어색하게 인사나 나눌 테지만, 이 경우에는 아니었다.


원래 맞은 놈의 기억은 오래가는 법.


홍광은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난 듯이 반가웠다.


“미친 아저씨.”

“옙.”


철구광자가 바로 대답했다.


“철장 좀 치워주세요. 방해되니까.”


철구광자는 순간 자기는 간수가 아니라서 열쇠가 어딨는지 모른다고 대답하려다가, 다행히 주둥이를 관리했다.


고수가 까라면 까야했다.


철구광자는 창살을 붙잡고 얼굴이 터질 것처럼 힘을 줬다. 내공과 외공을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리자 간신히 두꺼운 창살이 휘기 시작했다.


“흐으으읍!”


꾸드드드드드드득!


힘겨운 신음과 함께 곧 사람 하나가 지나다닐 창살 사이에 정도의 간격이 생겼다.


지쳐서 숨이 넘어가려고 하는 철구광자를 뒤로하고, 그 틈으로 홍광이 들어갔다.


“충자야, 오랜만이다.”

“오랜만이다 뿐이겠느냐! 나는 네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저승에서 속죄하게 되려나 했건만 이렇게 살아서 만나게 되다니! 내가 오늘까지 악착같이 살아남은 보람이 있구나!”

“······뭐?”

“칠 년 만인가? 많이 자랐구나. 가슴팍까지 오던 꼬마였는데. 두, 아니 홍광아, 그간 잘 지냈느냐?”

“······.”


주먹에서 뼈소리를 내며 ‘어떻게 하면 이 개새끼를 가장 아프게 팰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홍광이 멈칫했다.


왠지 이대로 패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너 혹시 반성하고 있나?”

“아무렴! 내가 과거에 아무리 양아치에 무뢰배였다지만 은혜도 모르는 짐승은 아니다. 나는 네게 속죄하기 위해 지금껏 살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아하.”


홍광은 영리했다.


충자의 말 속에서 ‘은혜’라는 한 마디를 들은 것만으로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파악한 것이다.


“좋아. 네가 반성하고 있다니까 용서해줄게.”

“그게 정말이냐!”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충자가 소리쳤다.


홍광은 씩 웃었다.


“단, 지금부터 내가 널 패는 동안 그 어떤 저항이나 방어도 하지 않으면. 이게 용서해주는 조건이야.”

“정말 그런 걸로 되겠느냐?”

“약속할게.”


충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적어도 충자의 머릿속에서, 홍광은 세상에 둘도 없는 협의지사이자 원수조차 죽게 내버려둘 수 없는 성품의 소유자였다.


필시 지금도 이미 용서했지만 일부러 충자의 죄책감을 지워주기 위해 이런 조건을 거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너란 녀석은!’


충자는 눈을 감고 목을 살짝 위로 젖히며 가슴을 폈다. 순순히 처맞겠다는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자세였다.


이런 조건따위 걸지 않아도 충자는 원래 홍광이 때리면 반항하지 않을 셈이었다.


그야 순전히 충자 본인의 업보였으니까.


홍광이 비오는 날 먼지나도록 충자를 패겠다고 하면 웃으면서 두 팔을 벌려야 하는 것이다. 그게 옳다.


칠 년 전의 일만 해도 그런데, 홍광은 이번에도 지하 뇌옥에 갇혀서 꼼짝없이 죽어가는 충자를 발견해주었다.


목숨을 두 번이나 빚진 것이다.


반항하면 그게 개다.


“다 내 잘못이다. 원없이 패다오!”


어차피 만나면 한 번쯤은 크게 죗값을 치러야 할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게 지금이라면 기꺼이, 그리고 겸허히 받아들여야 했다.


“그럼 사양 않고······.”


하지만 충자의 그 다짐은 한 대를 맞고, 두 대를 맞았을 시점에 완전히 바뀌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로 죽을 것 같았다.


“자, 잠깐만!”


“아악! 아파!”


“끄으윽! 죽어, 나, 나 죽는다고!”


“자, 잠, 으헉! 컥!”


그 고통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간자라는 사실을 들킨 뒤 받았던 고문과 홍광의 주먹질 중 우열을 가리라면 한참을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고문 과정에서 손발톱을 모조리 뽑혔음에도 그랬다.


홍광은 아픈 곳을 집요하게 때리는 재주가 있었다.

두 번은 맞고 싶지 않은 곳들.


게다가 죽기 직전까지 패는 게 아니라 그냥 반죽여버리겠다는 각오가 격통을 타고 전해졌다.


“고문, 나 고문 당했어!”


“지금 더 패면 진짜 죽, 끄어억!”


필사적인 애걸복걸에도 불과하고 홍광의 발길질과 주먹질은 멈출 기세가 없었다.


“호, 홍광아!”


충자는 이러다가 정말 죽겠구나 싶어서 재빨리 다리에 매달렸다. 꽤 고통스러운 투옥생활을 견딘 충자였지만 주먹 앞에는 얄짤 없었다.


“이거 왜 이래? 아직 반도 못 때렸는데.”


지금도 까딱하면 죽을 것 같은데 반도 안 때린 거였다니.

충자는 생존을 위해 말했다.


“살려주라.”

“누가 죽인대? 딱 내가 맞은 만큼만 맞고 끝내자고. 괜찮아. 내가 똑같이 처맞아봤는데 안 죽더라고.”

“······.”

“반성하고 있다고 했지? 걱정 마 견딜 수 있어. 난 너를 믿는다 충자야.”


홍광이 빙긋 웃었다.


상대가 충자라면 홍광은 얼마든지 후련하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다른 게 협이냐?

이게 협이고 정의구현이다!


그 자신감에 찬 표정을 보고, 충자는 이대로 있으면 꼼짝없이 날이 저물 때까지 맞게 생겼다는 확신을 가졌다.


충자가 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냈다.


“홍광아, 반성도 좋지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아마 알면 놀랄······.”

“음, 그랬구나. 그거 정말 궁금한걸?”


홍광은 하나도 안 궁금한 목소리도 대충 대답하고 멈췄던 발길질을 계속했다.


쾅! 쩌억! 우지끈! 퍼억!


사갈파 전체가 울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소리가 다시금 울러퍼지기 시작했다.


홍광은 밥알 한 개도 안 남기는 주의인 만큼, 감정 한 올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충자를 패고 패고 또 팼다.


당장 마도천하에 동냥질을 나가도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불쌍한 몰골로 만들어주겠다는 일념이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철구광자는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면서 다짐했다.


자신이 저렇게 처맞을 때가 오면 차라리 혀 깨물고 빠르게 죽어야겠다고!


* * *


“후우.”


홍광은 상쾌한 얼굴로 뇌옥에서 나왔다.


구속구가 풀려난 충자도 뒤따라 나왔다. 도저히 패기 전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놀랍게도 충자는 정말 마지막까지 피하거나 반항하는 일 없이 얌천히 처맞았다.


“그래, 이제 말해봐. 사갈파에 들어와서 뭐가 어쨌다고?”

“······스글프으 드르근 즉 읏다.”

“사갈파에 들어간 적 없다고? 아, 그래? 그럼 사갈파 뇌옥에는 왜 갇혀 있었어?”

“즈밈 뜨므내.”

“잠입? 무슨 잠입? 충자야, 그냥 솔직하게 사파짓 하고 있었다고 해도 돼. 어차피 기대도 안 됐어. 아니면 진실이 나올 때까지 더 맞을래?”

“즈쯔르그!!”


‘진짜라고!’


충자는 정말로 억울했다.


용두방주와 홍광에게 목숨을 구해진 그날 이후, 그는 개과천선한 것이다. 굶어죽으면 죽었지, 남의 것을 빼앗는 사파의 밑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홍광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은 눈초리로 물었다.


“그럼 잠입은 왜 했는데?”

“므브······.”


충자는 뭔가 말하려다가 힘에 부치는지, 그냥 근처에서 간수가 쓰던 물건으로 보이는 지필묵을 가져왔다.


충자가 쓴 글씨에 의하면 전말은 이랬다.


강호가 멸망한 이후, 수련을 거듭하던 충자에게 패천회(敗天會)라는 조직이 접근했다. 패천회는 언젠가 마교를 물리치고 강호를 되찾고자 하는 암중세력이었다. 충자는 홍광을 찾을 겸, 마교에 복수할 겸 거기서 무공을 익히고 임무를 수행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물밑에서 마교를 도모해? 미친 조직이네. 절대 엮이지 말아야겠다.”

“······.”


홍광의 비판에 잠시 움찔한 충자는 마저 붓글을 써내려갔다.


어찌어찌해서 패천회 잠행조장까지 오른 충자는 큰 정보를 입수했다. 그것은 사갈파의 수장인 방사혁이 과거 만벽서고와 거래했다는 정황 증거였다. 그것도 마공을 얻었다는 정보! 충자는 즉각 사갈파에 잠입을 시도했으나, 미숙한 조원 하나가 실수하면서 들통이 났다.


“······잠깐, 만벽서고?”


충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홍광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패천회라니, 이름만 거창한 웬 어중이떠중이 집단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저런 정보를 입수했다는 건 제대로 된 정보 수집과 전달 체계가 갖춰져 있다는 의미고, 실제로 간자를 보낼 정도의 행동력까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런 정보들을 나한테 알려줘도 되는 거냐? 암중세력이라며?”

“은 믈흐믄 드 픗을 그즈느.”

“안 말하면 더 팼을 거라고? 이야, 정확히 봤네.”

“······.”


원래부터 홍광에게는 그 무엇도 숨길 생각이 없었던 충자였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니 왠지 자신이 고문 끝에 정보를 토해낸 배신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만벽서고가 패천회랑 무슨 상관이 있길래 집행까지 했어?”


충자가 다시 집필묵을 들었으나, 이번에는 짧고 간단한 문장 하나만 쓰였다.


-만벽서고는 마교의 광신추종자들.


한 문장으로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마교도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걸로 보아서 만벽서고가 정신 교도는 아니겠지만, 마교를 추종하는 세력이라면 그 자체로 강호 전체의 위협이 되는 것이다.


“······견제할만하네. 내 생각에는 좀 부족한 것 같은데? 감시 인원을 따로 뽑아서 붙여야 하는 거 아닌가?”


-이미 하고 있음.


“아하.”


희소식인 동시에 더없이 나쁜 소식이기도 했다.


일단 만벽서고를 견제하는 집단이 있다는 건 희소식이었다. 최악의 경우 그쪽으로 도망치면 함께 싸워줄 테니까.


하지만 이걸로 이제 만벽서고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어졌다.


강소의 만벽서고에는 광인들이 산다던 방사혁의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사실이 아닌 편이 더 의심스러웠다.


‘그럼 나는 진짜로 쫓기고 있단 말이네.’


홍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거지새끼 팔자에 행운이 찾아올 리가 없는 것이다.


홍광은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입을 열었다.


“충자야, 혹시 방사혁을 죽인 놈이 있으면 만벽서고가 그놈을 잡으려고 할까? 들어보니까 예전에 한 번 접촉한 게 끝인 것 같은데 이미 관심 끄지 않았을까?”


그러자 충자는 결단코 아니라는 것처럼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엄청 철저함. 지식에 미친 놈들이라 그런지 한 번 일어난 일은 절대 안 까먹음.


“······염병.”


충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곤 ‘그럴 리는 없겠지만’이라는 표정으로 가볍게 글씨를 적었다.


-누가 방사혁을 죽였어?


“내가 죽였다.”

“??”


충자는 세상에서 가장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흉하게 부어오른 얼굴인데도 당혹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진짭니다.”


보다 못한 철구광자가 옆에서 거들었다.


철구광자가 대화를 들어보니 만벽서고는 사갈파 전체를 합친 것보다 훨씬 무서운 집단인 것 같았는데, 괜히 시간 끌었다가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충자는 또한번 놀랐다.


“츠그긍즈?!”


간자로 들어온 만큼, 충자는 사갈파의 구조도에 대해 빠삭했다.

이제까지는 홍광에게 정신이 팔려서 몰랐지만, 나름 실력자인 철구광자를 단번에 알아보는 건 당연했다.


“네, 제가 철구광자는 맞는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후.”


철구광자는 하는 수 없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속사포로 설명했다.


“······그래서 홍 대협이 악독한 마두 방사혁을 무찌르고, 이렇게 사갈파의 부당한 재산을 몰수하러 오신 겁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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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24 별랑(別狼)
    작성일
    23.11.07 18:52
    No. 1

    정신-> 정식. 다시 폼이 돌아오는 듯? 이대로 만 정진 하십쇼 기분 좋을 때마다 담배값하라고 기부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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