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기연 첫날에 무림이 멸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9.23 06:39
최근연재일 :
2023.11.13 19:20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9,135
추천수 :
455
글자수 :
263,236

작성
23.10.25 19:20
조회
244
추천
6
글자
12쪽

다치실 텐데?(2).

DUMMY

곽자우는 내심 긴장했다.


청년 고수를 조심하라고 사사장에게 경고한 것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실력을 알 수 없는 젊은 고수가 사갈파의 제안을 거절하고 무당으로 갔습니다’라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고했을 뿐이지만, 일은 이미 벌려졌다.


사사장은 이미 상상 속 고수에 대한 평가를 엄청나게 올려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정작 나타난 고수가 볼품 없다면?


‘그럴 리는 없다.’


곽자우는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추측이 아니다.

근거가 있는 생각이다.


저 고수는 무시무시하게 높은 감청력과 기척을 죽이는 능력, 그리고 베짱을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도 자신의 의견에 확신을 갖고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


‘태극검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만으로 무당의 피를 말려 죽일 계획을 세우는, 방사혁처럼 우두머리의 자질을 타고난 자가 아니라면 보통은 중대사를 앞두고 떨기 마련이다.


다소 근거가 있고 준비에 열성을 쏟았더라도 정작 당일이 되면 긴장되는 것이 사람이라는 생물 아니겠는가?


그래서 곽자우는 빌었다.


제발 저 고수가 체면치례는 할 정도로 잘 싸워주기를.


여기서 잘못하면 곽자우의 평가가 수직하락할 수 있었다.

반대로 잘 싸워주면 잘 싸워줄수록 위기 상황에 미리 대처한 능력자로 평가가 올라가는 것이다.


‘제발!’


곽자우가 눈을 부릅떴다.


* * *


곽자우의 눈에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겠지만 좌사와 우사는 각각 오른쪽과 왼쪽으로 크게 반원을 그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어느 한쪽에 집중하면 등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감당해야 한다.

고전적인 합공법이었다.


홍광의 대처는 간단했다.


아무리 빙 돌아서 온다고 해도 둘이 노리는 것은 홍광 하나.


결국에는 합쳐지게 되어 있다.


홍광은 기다렸다.


그리고 두 고수가 가까워지는 순간 손을 뻗었다.


출수(出手).


강호인들이 손을 뻗는 행위를 도전의 의미, 혹은 전투의 시작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위협적이니까.


손바닥 하나를 뻗는 것 뿐이지만 고수들의 경지에서는 그 동작 하나로 생사가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칼을 뽑아 겨누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손이라는 것은 그만큼 위협적인 무기였다.


홍광의 장(掌)에서 집채 만한 거력이 뿜어져나왔다.


손바닥 모양의 거력은 좌사와 우사를 한 번에 덮쳤다.


‘뭣?’


좌사와 우사는 급하게 호신기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경미한 내상을 입고 밀려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붉은 선혈이 좌사의 입을 비집고 주륵 흐른다. 수준이 비슷한 우사도 비슷한 타격을 입었으리라.


두 고수는 돌진을 하기 전보다 훨씬 먼 거리까지 밀려나 있었다.


눈대중으로도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아니······.”


그 광경에 내심 홍광을 응원하던 곽자우조차 아연실색했다.


장법이라는 건 보통 손바닥을 맞댄 상태에서 내력으로 겨루거나, 쏘아도 말 그대로 손바닥 크기 정도였다.


그에 반해 홍광이 쏘아낸 것은 장정 열 명은 너끈히 밀어낼 크기였다.


그렇다고 위력이 떨어졌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장력 안에 실린 것은 어안이 벙벙할 정도의 거력이었다.


‘어이가 없군.’


이쯤 되면 입지가 낮아지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곽자우는 이미 공신이었다.


“지, 지금······.”

“사갈파가 밀려난 건가?”

“말도 안 돼······.”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와는 별개로 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민중들의 반응은 격했다.


그들은 사갈파에게 강제로 끌려온 것에 가까웠다. 적어도 무당이 일방적으로 학살 당하는 장면을 보고 싶은 호북민은 없었다.


그런 연유로 방금 전까지는 그들의 분위기도 초상집처럼 음울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무당파 장문인이 사갈파의 노인 하나를 벴다.

그것만으로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어디선가 나타난 젊은 고수가 사갈파의 최고수들을 밀어낸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밀려난 사갈파의 고수 둘은 몸을 추스르느라 다시 덤벼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민중 하나가 못 믿겠다는 듯이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물론 그런다고 일어난 일이 변하지는 않았다.


“정말 밀어냈군!”

“이, 이보게! 나 좀 꼬집어보게! 어서!”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란 말이지?”

“아악! 아프군! 진짜였어!”


그들 딴에는 속닥거린다고 했지만, 방사혁쯤 되는 고수의 귀에는 모든 대화가 선명하게 들렸다.


심기가 불편해진 방사혁이 입을 열었다.


“좌사, 우사. 물러날 셈이냐?”

“······.”


두 고수가 황급히 태세를 정비했다.


일격에 물러날 수는 없었다.


눈 앞의 청년 고수도 대단했지만 그들의 등 뒤에서 방사혁이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우사가 좌사에게 눈짓했다.


좌우사가 각각 내력을 끌어올려서 병장기로 흘려넣었다.

불어넣어진 내력이 응축되고 또 응축된다.


단단한 박도 얇은 바늘에 뚫리는 법.


좌우사가 동시에 바닥을 박찼다.

홍광이 다시 한 번 장력을 날렸다.


그리고 좌사와 우사는 실감했다. 바늘은 박을 뚫지만 바위는 뚫지 못한다는 사실을.


맹렬하게 쏘아지던 사슬의 머리가 장력의 파도를 만나자 추진력을 잃고 반대로 날아간다.


동시에 좌사의 몸도 장력에 밀려나 허공으로 솟구쳤다.


“커헉!”


좌사는 피를 토하면서 날아갔다.


허나 끝이 아니었다.


날아간 좌사의 뒤에 숨어 있던 우사가 홍광을 향해 철퇴를 휘둘렀다.

좌사를 방패막이로 쓴 것이다.


이미 거대한 장력을 쏘아낸 뒤다.


큰 힘을 발출하려면 그만큼 허점이 드러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좌사를 희생한 만큼 확실한 한 수.


‘이 기습을 절대로 막지 못할 것이다!’

‘학습능력이 없는 건가?’


홍광은 반대쪽 손을 내질렀다.


곧게 뻗어진 장법이 우사의 명치에 곧장 틀어박혔다. 우사는 좌사보다 많은 양의 피를 한 번에 토하면서 저 멀리로 날아가 황무지 어딘가에 처박혔다.

아마 다시 일어날 일은 없으리라.


홍광은 손을 탈탈 털었다.


이미 두 번이나 맞은 장법에 뻔히 당하다니, 나름 수뇌부라는 사람들이 가진 실력에 비해 머리는 멍청했다.


물론 홍광이 너무도 상식 밖의 힘과 실력을 기른 거였지만, 사부와 하던 수련을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그랬다.


“쯥.”


손바닥이 저렸다.


홍광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아직도 사부의 거대한 내력을 다 운용하기에는 벅찼다. 폭포처럼 쏟아지길 바라는데, 겨우 바위틈으로 한 방울 새어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수문을 헐자니 몸이 버티질 못해서 무너져내릴 것 같고······.


아직은 바위를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이나마 받아먹는 수밖에 없었다.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그 물방울조차 남들과 비교하면 그다지 꿇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더 방대했다.


“이제 내려오시죠?”


홍광이 방사혁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직까지도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있는 방사혁이 홍광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대단하구나.”


방사혁은 솔직하게 칭찬했다.


젊은 고수가 보여준 위용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났다. 좌우사가 맥도 추리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것은 상정 외의 상황이 맞았다.


“운공만 해서 쌓을 수 있는 내력이 아니더군. 북해에서 만년설삼이라도 찾아 먹은 거냐?”

“비슷해요.”

“역시.”


방사혁이 납득했다.


방금 보여준 장법은 피나는 노력과 더불어 만 년 묵은 영약이라도 찾아먹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도 가능할까 의심스러운 정도이긴 했지만 걸음마를 뗄 때부터 무공을 수련했다고 하면, 그리고 익히는 이가 천고의 천재라면 또 몰랐다.


방사혁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십 척에 가까운 거구가 홍광을 굽어본다.


“태극검보가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쉬려고 했는데 말이야. 일이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군.”

“역시 태극검보가 목적이었네요.”

“호오. 그걸 알고 있었느냐?”

“그렇죠 뭐.”

“어떻게?”

“그게 중요한가요?”


방사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 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어떻게 알고 있는지따위.”


사유를 안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다.


방사혁은 좀 더 의미 있는 말을 했다.


“네가 무당을 돕는 이유는 스승이 말했던 협의를 찾기 위해서라고 했지. 관둘 생각은 없느냐?”


근본에 닿아 있는 말이었다.


“네가 보았다시피 세상은 변했다. 이제는 힘이 모든 것을 증명하지. 법과 질서는 무너졌다. 마도천하 아래서 협의는 낡아빠진 말이다. 아무런 의미가 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방사혁이 뒤편의 민중들을 가리켰다.


“저들 중 하나라도 무당을 도왔느냐? 구걸하는 무당에게 소금 한 주먹이라도 건넨 이가 있었느냔 말이다.”

“······.”

“즉, 네가 쫓는 것이란 소금 한 주먹 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말이다. 이 강호에서는!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방사혁의 눈빛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가 커다란 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내 손을 잡아라. 그리하면 효용이 다한 쓰레기같은 말보다 훨씬 많은 것을 주마. 그러니 협객 놀이는 관둬라.”


달콤한 제안이었다.


아마 저 손을 잡으면 평생 누리지 못할 사치와 호화를 누리면서 살 수 있으리라. 아름다운 여인과 재산을 탐닉할 수 있고, 손가락 하나로 사람을 부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홍광은 덤덤히 말했다.


“뭔가 착각하시는 모양인데요. 저는 딱히 협객이나 협사가 아니거든요.”

“뭐?”

“위험할 것 같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내뺄 거에요. 보통 이런 걸 협객이라고는 안 하지 않나요?”

“······.”

“저는 그냥 돌아가신 사부의 유언이나 들어드리고자 하는 것 뿐이에요. 대의가 아니라 완전히 개인적인 일이죠.”


홍광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저는 협객을 관두더라도 당신 믿으로는 들어가지 않아요. 애초에 협객이었던 적이 없으니까. 대의를 논하는 건 사부로 충분해요. 전 그냥 유언대로, 협이 뭔지 알 때까지 세상을 볼 거에요.”

“······협의란 평화에 찌든 자들이 명분을 내세워 아랫것들을 조종하기 위해 만들어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홍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사혁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솔직히 홍광도 개방이 내세우는 협의가 개소리라고 생각했으니까.


사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누군가에게 듣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싶어서요.”

“······어리석은.”


방사혁이 손을 거뒀다.


거둬진 손이 꾸득 쥐어지며 주먹으로 변한다.


권사(拳士) 방사혁.


그 주먹으로 호북의 일각을 평정하고 지배한 사내.


지금, 그 사내의 주먹이 홍광을 겨눴다.


* * *


무당파의 산문이 있는 무당산 영봉.


제자들과 장문인이 모두 불문율을 수행하러 떠나고 무주공산이 되어 있는 산문에 누군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흠.”


사람이 없는 도관의 풍경은 퍽 을씨년스러웠다.

얼굴에 흉터가 많은 침입자는 상관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봤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에 그 태극검보가 있단 말이지.’


사내에게 하달된 명은 무당파의 산문을 뒤져서 태극검보를 가져오라는 거였다.

명에 걸맞게 은신과 잡입술에 능한 사내는 발소리도 내지 않은 채 산문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더라도 언제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것은 잠입술의 기본이었다.


허나 아무도 없는 게 아니었다.


“왔느냐?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침입자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흐렸던 하늘이 때를 맞추는 듯이 번개를 내리쳤다. 순간 시야가 번쩍 빛나며 목소리의 정체를 비추었다.


백발의 노인이었다.


날이 달리지 않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노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침입자를 똑바로 보고 서 있었다.


그 우묵한 눈두덩에 눈은 없었지만, 만약 눈이 있었다라면 어떤 시선을 보냈을지는 뻔했다.


한없이 무정하고.

가라앉은 시선일 터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기연 첫날에 무림이 멸망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감사합니다. 연중 공지입니다. +2 23.11.11 137 0 -
공지 업로드 시간은 오후 7시 20분입니다. 23.09.23 272 0 -
50 혀라도 깨물 수 있다면 좋으련만(2). 23.11.13 75 3 11쪽
49 혀라도 깨물 수 있다면 좋으련만(1). +1 23.11.12 113 0 11쪽
48 다 똑같은 무림인(3). +1 23.11.11 109 3 12쪽
47 다 똑같은 무림인(2). 23.11.08 141 2 12쪽
46 다 똑같은 무림인(1). +2 23.11.07 141 6 12쪽
45 밥알 한 개도 안 남기는 주의(3). +1 23.11.06 163 4 11쪽
44 밥알 한 개도 안 남기는 주의(2). +1 23.11.05 164 5 12쪽
43 밥알 한 개도 안 남기는 주의(1). +1 23.11.04 178 5 12쪽
42 거지로 돌아오셨네요(3). +2 23.11.03 198 7 12쪽
41 거지로 돌아오셨네요(2). +1 23.11.02 188 7 12쪽
40 거지로 돌아오셨네요(1). +1 23.11.01 203 6 12쪽
39 마공(魔功)(4). +1 23.10.30 221 6 12쪽
38 마공(魔功)(3). +1 23.10.29 216 7 12쪽
37 마공(魔功)(2). +1 23.10.28 213 7 12쪽
36 마공(魔功)(1). +1 23.10.27 229 7 12쪽
35 다치실 텐데?(3). +1 23.10.26 232 7 12쪽
» 다치실 텐데?(2). +1 23.10.25 245 6 12쪽
33 다치실 텐데?(1). +1 23.10.24 251 6 12쪽
32 똥구멍에 불 붙은 개처럼(4). +1 23.10.23 265 4 12쪽
31 똥구멍에 불 붙은 개처럼(3). +2 23.10.22 258 3 11쪽
30 똥구멍에 불 붙은 개처럼(2). +1 23.10.21 265 5 11쪽
29 똥구멍에 불 붙은 개처럼(1). +1 23.10.20 277 5 12쪽
28 걱정마세요(3). +1 23.10.19 277 7 12쪽
27 걱정마세요(2). +1 23.10.18 276 7 12쪽
26 걱정마세요(1). +1 23.10.17 293 6 12쪽
25 나도 억울하네(2). +1 23.10.16 293 5 12쪽
24 나도 억울하네(1). +1 23.10.15 309 7 11쪽
23 어찌하시겠습니까?(3). +1 23.10.14 312 7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