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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기연 첫날에 무림이 멸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9.23 06:39
최근연재일 :
2023.11.13 19:20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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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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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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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똥구멍에 불 붙은 개처럼(1).

DUMMY

‘무당의 현판을 내리고 공개적인 복속을 받아내라.’

그것이 방사혁이 칙사에게 내린 임무였다.


수행할 환경은 갖춰져 있었다.


명분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고, 민중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간단했다. 중요한 무당파의 기세도 이미 반쯤은 꺾여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럼에도 방사혁은 주의에 주의를 기울였다.


마지막 인선까지 신경을 써서 무당파를 상대로도 꿀리지 않을 실력자를 파견했단 말이다.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무당의 정기를 짓누른다.

정당한 명분을 가지고,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무당의 목숨줄을 끊어놓는다.

아주 천천히, 뭔가 다른 목적이 있으리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래야만 원하는 것이 손에 들어올 테니까 말이다.


사갈파가 즉각 무당을 처리하지 않는 이유였다.


헌데 돌아오지 않는다.

진즉 돌아왔어야 할 칙사가.


방사혁은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우사.”


옥좌의 오른편에 선 수하가 답했다.


“예 사사장님.”

“칙사가 무당으로 출발한 게 언제지?”

“달포 전입니다.”


달포.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진즉에 돌아와서 보고를 올렸어야 할 시간이었다.


이만하면 확실하게 일을 그르쳤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놈인가······.”


방사혁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무당에 독초의 씨를 풀라고 보낸 수하들이 돌아오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결국 방사혁이 직접 움직였는데, 그때 마주친 은거기인이 아직까지 무당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확실하게 쫓아냈다고 생각했거늘.’


마지막에 놓치긴 했지만 죽기 직전까지 몰아갔으니 이제 무당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그 노고수의 실력이라면 서균을 처리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터.’


일이 귀찮게 꼬였다.

그때였다.


“들라.”


중엄하게 한 마디를 하자 사사장실의 거대한 대문이 열렸다.

문 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곽자우였다.


며칠 전 무당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하라는 명과 함께 보냈는데, 지금 돌아온 거였다.


옥좌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들어온 곽자우가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안찰사 곽 모가 사사장님을 뵙습니다.”

“인사치례는 됐다. 어찌 되었더냐?”

“예. 일단 서균이 민중들을 이끌고 무당산을 오르긴 했던 모양입니다. 허나 무당의 현판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어째서지?”

“그것이, 무당파의 어린 제자가 칙사의 뺨을 쳤다고 합니다. 이렇듯 무당파는 강경히 대응했고, 칙사는 불문율을 치를 것을 선포하고 산을 내려왔다고만······.”

“그게 끝인가?”

“예. 산을 올랐던 민중들을 닦달해도 이 이상은 모르는 듯했습니다.”

“자네가 말했던 신원미상의 고수는?”

“나서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예 상황이 끝날 때까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는 증언이 있었습니다.”

“음.”


방사혁이 옥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기 전부터 거구라는 느낌을 주는 사내였는데, 두 다리까지 포함하니 정말로 기골이 장대했다.


키가 구 척에 달했다던 역사 속의 무장들이 딱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안찰사 곽자우.”

“예.”

“자네가 장담했던 것과 꽤 다른 내용의 보고로군. 칙사가 뺨을 맞았다라, 도저히 무당이 스스로 선택할 일 같지는 않네. 그리고 무당의 능력 같지도 않고. 정말로 그 고수가 간섭하지 않은 것이 맞나?”

“······송구합니다.”

“됐네.”


방사혁이 변명은 듣기 싫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수하가 실수했다면 윗선의 책임이지. 손발이 실수했다고 해서 수족을 탓하지는 않지 않은가. 잘못은 머리에게 있지. 내 책임이네. 그러니 책임을 져야겠지.”


방사혁이 무릎을 꿇고 있는 곽자우에게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솥뚜껑 같은 손이었다.


“결자해지라 했네.”


무정한 눈빛이었다.


이윽고 방사혁의 거친 내공이 곽자우의 몸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동시에 곽자우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끄아아아아아아악!”


무리도 아니었다.


마치 날카로운 은장도가 몸 속 구석구석을 베면서 지나다기는 기분일 것이다.

심지어 방사혁이 집요하게 뼈와 근육 사이사이를 벌려놓고 다녔기 때문에 고통은 그 이상일 터였다.


분근착골의 수.


사형조차 자비롭다고 생각될 만큼 극악무도한 죄인들이나, 특급 정보를 들어야 할 때 무림인들이 주로 하는 고문이었다.


그것은 죄인의 살을 회 떠서 죽이는 과형(剮刑)과도 같았다.

오히려 칼이 아닌 내공으로 하기에 오히려 더욱 거친 면이 있었다.


“음.”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비명을 앞에 두고도 방사혁은 태연자약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윽고 방사혁이 곽자우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꼴사납게 비명을 질러대던 곽자우가 간신히 넘어가려던 숨을 붙잡고 내쉬었다.


“커헉, 헉.”

“안찰사 곽자우. 나를 보아라.”


방금 전까지 고문을 당하던 이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다.


무자비한 처사였지만 곽자우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보였다.

방사혁과 눈을 마주쳤다.


방사혁은 마치 들여다보는 것처럼 곽자우의 눈을 한동안 응시했다.


“호오.”


이만큼이나 했는데 반항의 기미가 없다.


본디 한 대를 맞으면 두 대로 돌려주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일진데 곽자우의 눈빛에서는 조금의 불손함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이 처한 입장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이군. 주인을 무는 개가 되었다면 여지 없이 처분했을텐데 말이야.”

“······당치도 않습니다.”

“안찰사 곽자우.”

“예.”

“다음은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곽자우가 고개를 푹 숙이자, 그제서야 방사혁은 다시 자신의 사치스러운 옥좌로 돌아갔다.


방사혁이 습관처럼 옥좌의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일이 어그러졌군.”


방사혁의 미간이 좁아졌다.


거슬린다.


민중을 걸고 넘어지면 어쩔 수 없이 현판을 내릴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무당파는 결사 항전을 선택했다는 말이 아닌가.


그 선택 하나로 인해 모든 것이 거슬렸다.


무당파로 하여금 항전을 선택하게 만든 변수도, 칙사를 잃어 떨어진 사갈파의 위명도,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의 폭도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균이 실패했다면 무당파에 어줍잖은 인원을 추가 파견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최소한 좌우사 급의 실력자가 직접 간섭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런 강경책은 되도록 쓰고 싶지 않은 방법이었다. 설령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무당이 일찌감치 포기하고 태극검보를 없애버리기라도 하면 전부 끝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온 이상 강경책은 불가피했다.


“불문율, 불문율이라······.”


방사혁이 중얼거렸다.


불문율.

결국에는 실력행사라는 말이었다.


이렇듯 급진적인 방법은 방사혁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할 거라면 어설프게 하느니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제와서 말을 바꾸면 이번에는 무당이 본격적인 의심을 시작할 테니까.


“쯧.”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좌우사. 무당으로 간다. 인원을 꾸려라.”

“예.”

“불문율, 불문율대로 처리해야겠지. 하지만 변할 건 없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태극검보도 다를 건 없었다.


원한다면 빼앗으면 그만이다.

그게 창설 이래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사갈파의 방식이었으니까.


“무당이 잘 마무리되면 사갈파는 내 밑에서 호북 제일이 된다.”


방사혁의 무정한 눈길이 다시금 곽자우를 향해 내리꽂혔다.


“네 질긴 목은 이번 일에 달렸다. 그 사실을 명심하도록.”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좋다.”


대답을 들은 방사혁의 입꼬리가 말려올라간다.


약탈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오늘은 쉬어요.”

“······쉬라고 하셨습니까?”


홍광의 말에 반문한 것은 무곤진인이었다.


사갈파의 칙사가 다녀간 이후로 매일 같이 장딴지가 터져버릴 듯한 수련을 강행하던 홍광이 난데없이 쉬자고 말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간부터 병환을 떨치고 일어난 막내제자 공명완도 눈이 휘둥그래졌다.


“쉬라고요? 휴식? 그러니까 달리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네.”

“마보도?”

“그렇다니까요.”


매일 제자들과 함께 지옥 같은 하체 단련을 해온 무곤진인이다.


무당의 둘도 없는 은인인 홍광이지만 수련에 관해서는 지독한 악귀와 다를 바 없다고 여겼다.

헌데 수련을 쉬겠다니.


희소식이었지만 더없는 비보이기도 했다.


“사갈파가 오는 겁니까?”


무곤진인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이제 와서 수련을 쉬라고 할 이유는 그 외에는 없었다. 아무리 강해져야 한다고 해도 전쟁을 치르는 당일까지 녹초가 되도록 힘을 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홍광은 툇마루에 삐딱하게 누워서 배를 북북 긁었다.


“아닌데요? 제가 신도 아니고 걔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어떻게 알아요.”

“그럼······?”

“이만하면 됐다 싶어서요.”


홍광이 연무장에서 몸을 풀고 있는 제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 검법에만 매몰되어 있던 제자들의 하체는 한 달 사이에 제법 튼실해져 있었다.


한 달이라는 게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매일 운기조식을 하는 무림인들은 범인보다 근육의 성장이 빨랐다.

그걸 감안하고도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나온 결과이기도 하지만.


“제가 만들려고 했던 최소한의 도주력은 대충 만들어졌어요. 여기서 괜히 더 욕심 부리다가 사갈파가 기습이라도 오면 끝장나는 거에요.”


정군자가 보고를 늦춰서 시간을 벌었다곤 하지만 사갈파의 대처가 한 달 이상 소요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고 말이다.


저들도 바보가 아니니까.


“장문인.”

“예.”

“두려우세요?”

“······.”


무곤진인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무당의 존망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사내다. 솔직함은 미덕이지만 아군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홍광의 앞에서는 그런 무곤진인의 어깨에 올려진 짐이 조금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두렵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두렵다고 해서 싸우지 않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싸울 거라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설령 그가 전투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한 점 미련도 남기지 않도록.


무곤진인이 초연하게 웃어보였다.


“좋은 자세에요. 근데 그거 아시죠?”

“뭐 말입니까?”

“싸우기 전에, 일단 똥구멍에 불 붙은 개처럼 달려야 한다는 거요. 죽을 힘을 다해서, 젖 먹던 힘까지.”

“······.”


더 좋은 말이 있지 않나?


적어도 주위상계(走爲上計)라든가, 하다못해 작전상 후퇴라든가.

전장에 나가는 검수에게 똥구멍에 불 붙은 개를 논해야 하는가 말이다.


은혜를 입기만 했을 때는 몰랐는데 한 달이나 부대끼다보니 홍광에 대해 알게 된 무곤진인이었다.


홍광은 스스럼이 없고 솔직하다.


나쁘게 말하면 말을 고르지 않는 것이고, 좋게 말하자면 바른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런 홍광의 성격에는 무슨 생각을 해도 간파해버리는 용두방주의 지분이 상당했지만, 무곤진인이 거기까지 알 리는 없었다.


그리고 무곤진인은 홍광의 그런 성격이 싫지 않았다.


그가 평생을 예의와 도를 배우며 절제된 환경 속에 살아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랬다.


모두가 인상을 쓰고 말을 휘휘 돌리기 바쁜 마도천하에서, 홍광 한 사람만은 구김살 없이 하고픈 말을 뱉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보고 있으면 묘한 해방감이 들었다.


“개발에 땀 나도록 뛰어보겠습니다.”

“그런 말도 할 줄 아셨어요?”

“하하······.”


무곤진인이 짧고 어색하게 웃었다.


언제나 선선한 웃음을 달고 살던 무곤진인 치고는 어설픈 웃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참으로 오래간만에.

마음속으로부터 즐거운 진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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