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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님의 서재입니다.

기연 첫날에 무림이 멸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9.23 06:39
최근연재일 :
2023.11.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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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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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걱정마세요(3).

DUMMY

“그럼 이제부터 뭘 어떡하실 거에요?”


홍광이 물었다.


사갈파는 곧 들이닥칠 것이다.

남을 사람도 정해졌다.


그럼 이제 발맞춰 대비를 해야 한다.

그 대비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물은 것이다.


“방법이 있어요?”

“······.”


무곤진인이 잠시 침묵했다.


그도 새벽 늦게까지 방법을 생각했다.

하지만 타개책도 열세가 적당해야 나오는 법이다.


천하의 지략가들도 열세를 한 번 뒤집으면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긴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정해진 전력을 뒤집는 결과를 내기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하물며 무곤진인은 전략이나 병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봐야 했다.


그가 평생을 해온 일은 경을 외고 도를 닦는 일이지 병법서를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싸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던 무곤진인이 아니던가.


무곤진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세를 뒤집을 만한 방법을 제게서 찾는 거라면 없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전력을 끌어올릴 방법이라면 있습니다.”

“오, 뭔데요?”

“검진(劍鎭)을 짜는 겁니다.”


제자들의 실력은 사갈파의 고수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진영을 만들어서 합공하는 수밖에 없다는 발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검진은 괜찮은 선택지였다.


합공의 위력을 높일 수 있고, 호흡을 맞춰서 본래보다 윗줄의 고수도 잡아낼 가능성이 있으니까.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어요.”

“······.”

“하지만 그다지 유효하지는 않은 방법이라는 거 아시죠?”


홍광이 무곤진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검진은 말 그대로 합공을 펼치는 데 의미가 있어요. 그러려면 우선 우리가 상대보다 머릿수가 많아야 하는데, 제자들이 생각보다 많이 남긴 했어도 무당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맞는 말씀입니다.”


무곤진인은 깔끔하게 인정했다.


머리를 쥐어짜내긴 했지만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다만 그로서는 도저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뿐이다.


“홍 소협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무곤진인이 혹시나 하며 물었다.


홍광의 답은 명료했다.


“튀어야죠.”

“예?”

“맞서서는 승산이 없잖아요. 장문인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검진을 짜겠다고 하신 거 아니에요?”

“마, 맞긴 합니다만······.”

“그럼 못 이긴다는 건데, 그런 상대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튀어야죠. 죽을 거 뻔히 알면서도 칼 뽑고 설치는 건 객기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상대가 더 강하다면 도망쳐야 한다.

당연한 정론이었다.


그러나 무곤진인은 그 말을 거부했다.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소협.”

“왜죠?”

“물러설 수 없는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도망친다고 살 수 있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하지만 등에 칼을 맞고 죽을 바에는 끝까지 싸우는 편이 낫습니다.”


무곤진인의 말을 들은 제자들도 저마다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태극 자수를 가슴에 달고 있는 한 이 전투를 피해갈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검을 뽑겠다는 의지가 제자들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홍광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끝까지 도망치기만 한다면 그렇겠죠. 하지만 우리가 노려야 할 건 역공이에요.”

“역공이라 하셨습니까?”


그제야 제자들의 눈빛이 변했다.


“네. 역공이요. 아무리 일방적인 싸움이라고 해도, 결국 싸움인 이상 언제든 변수가 있기 마련이거든요. 일단 도망쳐서 살아남다 보면 분명히 때는 와요.”


변수. 역공.


그 두 단어에 무곤진인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무림에서는 일류라고 불리는 고수도 삼류무사의 눈먼 칼에 맞아 죽는 일이 밥 먹듯이 일어난다.

무당이 이렇게 되기 전에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말이었다.


심지어 무곤진인이 무공을 주로 수련하는 제자가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그만큼 전투에서 변수는 때로 그 무엇보다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그 변수가 만들어진 틈을 탄 역공이 승패를 결정하는 일도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과연 어떤 변수가 있어서 역공을 하겠습니까?”


분명 가능성은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동시에 낙관적인 도박수였다.


달리 말하면 그저 천운에 기대겠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에 홍광은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변수는 만들면 되죠.”

“만든다?”

“네. 사부님이 감나무에서 감 떨어질 때까지 입 벌리고 있는 놈은 턱이 먼저 나간다고 하셨거든요.”

“구체적으로는 어떤 변수입니까?”

“간단해요.”


홍광은 허리를 숙여서 연무장의 모래를 한웅큼 쥐었다.


그리곤 제자 하나의 눈에 뿌렸다.


“무, 무슨!”


제자가 허우적대는 동안 홍광은 아주 천천히 손을 뻗었다.


어떤 기교도 없는 정직한 동작으로.

바로 어제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풋내기라도 흉내낼 수 있을 법한 속도로 말이다.


홍광의 손이 제자의 명치에 닿았다.


“방금 제가 이 분보다 빨랐나요? 아니면 힘이 셌나요?”

“······.”


반박할 말은 많았다.


애초에 홍광이 적대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모래를 쥐고 다가오는 꼴을 보고도 제자는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닌가.

눈에 모래가 들어갔지만 즉시 대응하지 않은 것도 그랬다.


‘하지만 대응했더라도 달랐을까?’


홍광의 동작은 느릿했다.


방금이 전투 상황이었다면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홍광이 특출나게 빨라서가 아니라, 이곳의 누구든 저것보다는 몇 배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변수라는 건 이런 거에요.”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만들 수 있다는 거군요. 설령 단순하고 작은 행동이더라도 상대를 교란할 수만 있다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엥? 아뇨?”


홍광이 뭔 말이냐는 듯이 무곤진인을 쳐다봤다.


“눈에 모래를 뿌리라는 건데요.”

“아······.”


머쓱해진 무곤진인이 괜히 뒤통수를 긁었다.


“사람은 결국 오감으로 세상을 느껴요. 특히 전투에 있어서 촉감과 시각은 지대한 부분을 차지해요. 그중 하나를 봉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변수죠.”

“하지만 너무 단순하지 않습니까?”


제자들 중 누군가 물었다.


확실히,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너도나도 흙을 뿌려대고 있으면 얄팍한 수는 먹히지 않을 터였다.

상대는 바보가 아니니까.


게다가 일단 사갈파에 들었다는 것은 능력을 입증 받았다는 것인데, 산전수전을 다 겪었을 그들이 이런 고전적인 수법에 당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홍광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잘 말했네. 그러니까 튀라고.”

“예?”

“생각을 해봐. 도망가면서 남들 안 보이게 거리도 벌리고, 욕도 하고 성질도 긁고 하면 일석이조잖아. 전략은 노출이 안 되고, 흥분한 상대일수록 이런 단순한 수법에 잘 당해주기 마련이지.”

“아······.”


제자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제자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했다.


“그런데 시야를 가려도 기감으로 전부 파악하면 어쩝니까?”

“아, 그건 걱정 안해도 돼. 사갈파에 그 수준의 고수가 널렸으면 어차피 못 이기는 싸움이니까.”

“예······. 어, 예?”

“상식적으로 그렇잖아. 그렇잖아도 전력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나는데 육감까지 갖춘 고수들이 즐비하면 무슨 수로 이길 건데?”

“그, 그렇죠.”


반박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절대로 못 이길 상황을 가정하고 논하느니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을 상정하고 매진하는 편이 낫다.


그래도 제자들이 불안해하자 홍광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괜찮아. 그 수준의 고수들이 널린 단체처럼은 안 보였으니까. 만약 그랬다면······.”


그랬다면 정군자 하나를 어찌하지 못해서 사갈파의 사사장까지 등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그랬다면 뭡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아둬.”

“아,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질문은 끝인가?”

“예.”

“그럼 이제 남은 건 하나네.”


홍광이 빙긋 웃었다.


“뭐해? 뛰어.”


홍광의 손가락이 거친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급작스러운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제자들을 향해 홍광이 말했다.


“왜? 도망친다고 하니까 쉬워 보였어? 택도 없지. 너희들 실력이면 스무 걸음도 떼기 전에 칼 맞고 죽어도 이상할 게 없어.”

“······.”

“달리기, 마보, 달리기, 마보, 달리기, 마보, 달리기, 마보. 그것만이 답이다. 그렇게 해도 불과 며칠 사이에 실력이 느는 게 가당키나 하겠냐마는.”


안 하는 것보다 백 배는 낫다.


“남은 시간도 없는데, 그동안 다리 하나만큼은 튼실하게 만들어 놓아야지. 적어도 사백 걸음은 안 잡히고 뛰어갈 수 있게.”


홍광이 무곤진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생긋 웃는 얼굴이었다.


“장문인도 똑같아요. 달리세요.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죠. 어서.”

“아······ 알겠습니다.”

“꾸물대지 말고 빨리!”

“예!”


홍광이 호통을 치자 무곤진인이 빠릿하게 달려나갔다.

장문인이 뛰는데 제자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곧이어 제자들이 앞다투어 산봉우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면서 홍광이 입맛을 다셨다.


‘모르겠네.’


현실적으로 무슨 짓을 해도 무당이 사갈파에게 대적할 수 있을 확률은 적었다. 지금 하는 말들은 한 명이라도 제자들을 더 살리기 위함이지, 사갈파를 이기기 위함은 절대 아니었다.


결국은 홍광이 해야 한다.

그가 이겨내야 한다.


‘모르겠어요 사부님. 잘 하고 있는 거겠죠?’


물어보고 싶다.

허나 용두방주는 이곳에 없었다.


아마, 있다고 해도 답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홍광은 알고 있다.


사부는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사부는 언제나 홍광에게 묻는 사람이었다.


‘잘 하고 있느냐고? 내가 묻고 싶구나. 너는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느냐? 애당초 잘 한다는 건 뭐라고 생각하느냐?’


사부가 내놓을 말이란 뻔했다.


‘네가 찾아라.’


사부가 웃으면서 홍광에게 말했다.

그렇게 느껴졌다.


홍광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차라리 남을 돕는 협객이 되라고 하지 그러셨습니까. 그럼 좀 더 편했을 것을.’


사부가 남기고 간 과제는 난해했다.


막말로 답을 찾으라 했지만 삶에 정답이 어디 있는가? 이건 답이 없는 문제의 답을 찾으라고 시킨 셈이었다.


막말로 공자나 맹자 같은 명인들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각자의 답을 내놓았을 뿐, 종결 내지는 못했는데.

홍광이 무슨 수로 그 답을 찾는단 말인가?


하지만 홍광은 그렇게 성을 낼 수가 없었다.

홍광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알아요.’


사부가 바라는 게 그런 답이 아니라는 걸.


사부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거창한 이론이나 논리로 말하라고 시킨 적이 없었다.

동굴에 사는 칠 년 동안 그 흔한 선문답 한 번도 사부가 먼저 시작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행동으로 보여드리면 되는 거죠?’


사부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걱정마세요. 거지 같은 유언이지만, 어떻게든 제가 노력해볼 테니까. 거기서 지켜보기나 하세요.’


홍광은 하늘을 우러보면서 미소를 머금었다.


* * *


그 시각, 사갈파의 사사장실.


방사혁이 언제나와 같이 옥좌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우사와 좌사가 옥좌 옆에서 호법을 서는 가운데 방사혁의 몸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더없이 짙고, 검은 기운이었다.


옥좌의 팔걸이를 쥔 손등 위로 검은 핏줄이 불룩 올라왔다.

가슴의 태양혈을 중심으로 한참 동안 그렇게 온 몸의 핏줄이 검게 튀어나와 있었다.


이윽고 방사혁의 안색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하게 돌아왔다.

툭 뒤어나왔던 혈관둘도 돌아왔다.


눈을 뜬 방사혁이 물었다.


“칙사는 아직도 무소식인가?”


그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한 지 오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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