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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곰곰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 고인물이 업적을 다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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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곰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2
최근연재일 :
2024.07.04 22:00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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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32
추천수 :
4,525
글자수 :
338,091

작성
24.07.01 22:00
조회
808
추천
42
글자
12쪽

누구도 다치지 않는 4

DUMMY

“······저, 교수님?”


예정에 없었던 2학기 중간고사의 배드 엔딩을 기가 막히게 막아버리고 과장 좀 보태 이 세상을 또 한 번 구해낸 나, 엑스트라 아즈일.

표창장을 다발로 받아도 부족할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어딘가 하니, 나를 포함해 사람이 단 둘뿐인 교무실이었다.

어딘가 익숙한 상황인데 눈앞엔 어딘가 익숙한 근육질 교수까지 한 명 앉아있었다.


다만 지금은 내 쪽이 갑이었다.


“분명 저와 뭐시기······, 사나이끼리의 약속? 같은 걸 나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

“중간고사에서 실력을 증명하면 절 놔주시기로 저희 약속을 나누었던 것 같은데······, 그건 제 착각이었습니까?”

“음? 아아, 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

“같기도······?”


교무실로 날 불러낸 빅터 교수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는 않은 채로 그렇게 말을 둘러대고 있었다. 아니 이 양반이?

두터운 다리를 부산스럽게 떨던 그가 곧 혀를 차며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거, 아즈일!”

“예에.”


그러거나 말거나 양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빅터 교수는 이내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쪽을 바라봤다.

조심스럽게 이어지는 말은 이랬다.


“······다시 한번 생각해줘라.”

“뭐를요.”

“뭐긴! 어! 그······, 내 제자가 되는 것 말이다!”

“제가 왜요?!”


즉시 거절하자 빅터 교수는 답답하다는 듯 손바닥으로 자신의 책상을 한 번 내리쳤다.


“한 번 물러주면 어디 덧나냐?! 이 몸이 이렇게 먼저 부탁하는데!”

“사나이끼리의 약속은 어디 가고!”

“나한테 강의 좀 듣는 게 그렇게 어렵냐? 어! 그렇게 어려워!”

“애초에 이번 학기도 벌써 절반이 지났는데 이제 와서 강의를 듣긴 뭘 듣습니까!”

“그럼 내년에 강의 열 테니까 들어!”

“당신 3학년 담당이잖아?!”


소리 높여 유치한 말싸움을 이어가던 우리 둘 사이에 잠시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서로를 노려보며 숨을 고르다가 먼저 고개를 돌린 건 빅터 교수였다.

머리칼도 수염도 희끄무레 바뀌어 가는 그의 옆얼굴에는 잔주름이 여기저기 패여 있었다. 한때 전설의 기사라 불렸던 빅터 교수 또한 늙어가는 것이다.


“······네 과거 성적을 봤다.”


이윽고 그는 어울리지도 않게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책상에 한쪽 팔을 올린 채 어딘지 특정할 수 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1년 사이에 몰라보게 성장했더군.”

“······.”

“솔직히 말하자면, 아즈일. 널 가르치려는 생각은 없다. 너 또한 이미 내 손을 벗어났어.”


빅터 교수의 목 아래 쪽. 어슴푸레 드러난 커다란 흉터를 본다.

설정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몇 밀리미터만 더 위를 다쳤어도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지 못했으리라고.

그렇게나 위대했던 기사조차 한 끗 차이로 목숨이 오가는 곳이 바로 최전선이었다.


“나는 네 재능을 사고 싶다. 천재가 아니었으나 끝내 스스로 개화한 네 바로 그 재능을.”


그랬던 그가, 주먹을 꽉 쥐고서 말한다.


“아직도 전선에서는······, 너무 많은 햇병아리들이 죽어나간단 말이다.”


이 아카데미에 천재만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게임 속의 메인 캐릭터들이야 다 그런 설정을 가지고 있긴 하지. 저마다의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과 재능을 갖춘 인물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칼라일과 엮여서 결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지만.

허나 이 학원에 그런 인물만 있는 건 아니다. 단적으로 말해 천재가 아닌 쪽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졸업 후에 기사 서임을 받고 최전선에 나가봐야, 1년간 생존자는 반이 안 된다. 또 1년이 지나면 반으로 줄고, 그 다음 1년에 또 반으로 줄어든다.


최전선에서 3년을 버티면 베테랑 취급을 받는다.

그 말은 고작 3년을 버티는 사람이 그렇게 적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빅터 교수는 그게 답답해서 내게 이렇게 매달리는 것이리라.


“······교수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 그렇게 대단한 놈 아닙니다.”


빅터 교수가 내게 바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이 부탁은 어떻게든 거절해야 했다.

내가 강해진 건 어디까지나 업적이라는 편법 덕분이다. 이 세상이 게임 속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을 남에게 가르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제가 있어 봐야 다른 학생들의 면학에 방해가 될 뿐일 겁니다. 저는 졸업한다고 최전선에 나갈 생각도 없고, 기사가 될 생각도 없습니다.”

“······.”

“전 어디까지나 살아남는 게 인생의 전부인 평범한 놈입니다. 부디 재고를.”


말을 마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빅터 교수로부터는 한참 동안이나 반응이 없다가 끝내 깊은 한숨이 교무실에 울려 퍼졌다.


“······망할 자식.”


혀를 한 번 더 찬 후 빅터 교수는 날 내보냈다.

내가 천천히 돌아서자, 등 뒤로부터 한탄에 가까운 나지막한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전투의 재능 따위 필요 없는 세상이 오면 좋으련만.”

“······.”


그렇게 될 겁니다.

입 안에서 그런 말을 굴렸으나 끝내 내뱉지는 않은 채 교무실을 나섰다.


이로써······, 나의 2학기 중간고사는 대강 마무리된 셈이었다. 배드 엔딩도 어떻게든 빗겨나갔고, 내 시험 점수도 당연히 낙제점은 아닐 테고.

이 다음에는 역시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배드 엔딩을 틀어막으니 갑자기 튀어나왔던 시스템 메시지 한마디에 대해.


[숨겨진 업적이 진행됩니다.]


도감 수집률 100%를 달성한 나도 처음 보는 숨겨진 업적. <영웅서사>.

처음부터 100%를 넘기게끔 설계가 되어 있었던 이 놈의 엉터리 도감을 가만 보고 있자면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러나 이해는 됐다. 곱씹어보면 없는 게 이상하긴 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도감의 마지막 페이지. 텅 비어있을 뿐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던 그 버그와 같았던 공간.

<영웅서사>라는 업적은 바로 그 마지막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궁금한 건 산더미 같았다.

왜 그 타이밍에 튀어나온 걸까. 진행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걸어가려니, 마침 저 너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잠깐 베리! 갑자기 이런 데에 끌고 간다고 뭐가······, 헉.”

“······.”

“어, 아, 음. 그게······.”


시스템 메시지의 당사자면서 동시에 이번 중간고사의 주인공이었던 인물.

아카데미를 박살낼 수준의 대단한 실력을 보여준 뒤에도 이리야의 성격은 여전했다.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몸이 굳더니 그대로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을 가만 보다가 내가 피식 웃으며 말을 걸었다.


“학장실에 불려간 건 잘 해결됐어?”


평소의 이리야라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 * *


“쓰읍······, 그렇네. 그 생각을 못 했네.”


가을 바람이 선선히 불어오는 시월의 낮. 이리야와 둘이서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리>도 옆에 있긴 할 테니 둘이 아니라 셋이려나. 그것도 생각하긴 해야지.


“다행이다 그래. 칼라일이 거기서 막아줘서.”

“아, 아냐! 아니 그, 막아준 건 다행이 맞는데, 그게······.”


이리야에게는 학장실에 불려가서 있었던 일에 대해 좀 들었다.

내가 좀 안일하긴 했다. 배드 엔딩만 막으면 어련히 잘 굴러가겠거니 했는데, 목격자가 있는 이상 이리야가 이번 사태의 범인으로 몰릴 수밖에 없겠지 그렇지. 자칫하면 목숨을 구해놓고도 스토리에서 퇴장시킬 뻔했다.


거기서 칼라일이 잘 나서줬다고. 그건 뭐 장하다고 해야 할지, 주인공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이리야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부끄러움 때문에 좀처럼 꺼내질 못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알고 기억하는 이리야의 모습 그대로였다.

칼라일로 게임을 플레이하며 수도 없이 봤던, 그 모든 회차 속에서의 이리야.


생각한다. 숨겨진 업적 <영웅서사>에 적혀 있는 한마디를.


있을 수 없는 미래로.


“······있잖아, 아즈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이리야는 천천히 입을 연다.


“나······, 뭐라구 할까. 엄청 기분 좋은 꿈을 꿨거든.”

“응.”

“위기의 순간에······, 멋진 기사님이 달려와서. 나를 구해주는, 그런.”

“응.”


이번 배드 엔딩에서, 아카데미는 무너졌어야 했다.

이리야의 폭주는 아무도 막을 수 없어야 했다. 칼라일은 절망하고 시간을 감았어야 했다.


허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내가, 그것을 막았다.


생각한다. 과연 어느 쪽일까?

나의 행동으로 스토리가 틀어져서 배드 엔딩이 반복해서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아니라면 어떤 운명으로 인해 확정된 배드 엔딩을 내가 틀어막고 있을 뿐인 걸까.


아니라면, 둘 다일까.


“······아즈일.”


생각한다.


“그건······, 너였어?”


이 업적 끝에 기다릴 <세계의 진실>은 무슨 내용을 품고 있는 걸까.


“······이리야.”


잠시 침묵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설픈 거짓말은 어차피 통하지 않을 거다. 이곳엔 보이지 않는 진리가 있을 테니까.


만약 여기서 ‘그렇다’고 대답하면.

그러면 이리야는 칼라일이 아닌 나를 믿기 시작하겠지. 특히 남을 의지하고 싶어 하는 성향상 더더욱 많은 일들을 내게 매달리게 될 거다.

어쩌면 이리야 루트를 내가 타게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런 일들을 반복하다 보면, 칼라일 대신 내가 이 스토리를 이끌어가게 될 수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후. 미소 지으며 이리야를 돌아봤다.


“손, 많이 나았네.”

“······응? 어어, 아, 응.”


연이은 마법의 실패로 엉망진창이 되었던 이리야의 손바닥도 많이 나은 모습이었다.

별 효과는 없었다지만 그래도 찜찜하던 몸속의 저주도 내가 내민 성수 덕분에 다 지워졌을 거다.


“이제 마법은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

“엇, 그, 그러엄! 아즈일 네 덕분에 이번 시험에서두 그 무서운 발피르 교수님한테 A도 받았구······. 헉! 그러고 보니 시, 시험은 나 어떻게 되는 거지? 그대로 점수 받을 수 있을까? 낙제 한 번 더 받으면 나 큰일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리야의 걱정을 가만 보다가 자리에서 먼저 일어섰다.


“괜찮을 거다, 너라면.”

“······아즈일?”


손을 설렁설렁 흔들어주면서는 이리야 곁을 떠났다. 의아한 시선이 오랫동안 등에 달라붙어있는 것만 같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리야는 나와 이 이상 가까워지지 않는 게 좋았다.


이제 와서 덜컥 메인 스토리에 진입한다는 건, 심지어 주인공 자리를 가져온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이미 배드 엔딩은 내 예상을 뛰어넘어가며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스토리를 맡는다고 해서 앞으로 벌어질 배드 엔딩을 온전히 막을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내게도 이제는 할 일이 생겼다.


<영웅서사>라는 이 숨겨진 업적.

어쩌면 여기에 내가 게임에 빙의해버린 원인이 깃들어있을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이라도.


“······.”


표정을 굳히면서는 복도를 걸어나갔다.


스토리 같은 것에 기웃거릴 시간은 내게 없었다. 그런 데에 한눈팔고 있을 만큼 내가 여유로운 건 아니었다.

업적이 배드 엔딩과 연관이 있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


추후에 찾아올 기말고사. 2챕터의 마무리.

이 다음의 배드 엔딩도 반드시 막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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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한 명은 모범생, 한 명은 3 +3 24.06.18 1,352 56 12쪽
43 한 명은 모범생, 한 명은 2 +4 24.06.17 1,385 63 12쪽
42 한 명은 모범생, 한 명은 1 +7 24.06.16 1,427 68 15쪽
41 부르신 건 황녀 저하십니다 3 +2 24.06.15 1,445 67 14쪽
40 부르신 건 황녀 저하십니다 2 +4 24.06.14 1,455 67 15쪽
39 부르신 건 황녀 저하십니다 1 +6 24.06.13 1,525 66 13쪽
38 놀아나 주도록 하지 4 +3 24.06.12 1,531 66 12쪽
37 놀아나 주도록 하지 3 +2 24.06.11 1,546 63 13쪽
36 놀아나 주도록 하지 2 +5 24.06.10 1,589 53 12쪽
35 놀아나 주도록 하지 1 +4 24.06.09 1,670 67 12쪽
34 낙제생이 힘을 숨김 5 +1 24.06.08 1,740 69 12쪽
33 낙제생이 힘을 숨김 4 +7 24.06.07 1,815 5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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