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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곰곰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 고인물이 업적을 다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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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곰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2
최근연재일 :
2024.06.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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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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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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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5
글자수 :
309,626

작성
24.06.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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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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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글자
12쪽

놀아나 주도록 하지 1

DUMMY

“곧 도착입니다 아가씨.”

“······.”


기이할 정도로 흔들림이 없는 호화로운 마차 안에 교복을 차려입은 한 소녀가 앉아있었다.

마부에게서 시종을 거쳐 도착을 안내받았으나 그녀에게선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곧 도착한다는 사실쯤은 그녀도 잘 알았다. 아까부터 줄곧 턱을 괸 채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으니까.


드넓게 펼쳐진 공원. 모든 것이 완벽하게 관리되는 수풀과 길. 저 먼 연병장에 모여 이 더운 날에도 훈련에 열중인 사병들까지. 모든 것들이 소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다.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더운 바람에 그녀의 붉고 흰 머리카락이 살랑였다. 냉기 마법이 유지되고 있는 차내에 비하면 차라리 바람이 땀을 맺히게 할 수준이었으나, 그녀는 말없이 그러고 있었다.


또 한 번 아카데미에서의 한 학기를 마치고 방학이 되어 피리스는 본가에 돌아왔다.

다만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옆얼굴은 이전까지와 어딘가 달랐다. 아카데미 입학 후 벌써 다섯 번째 귀가였으니 익숙해졌다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매번 옆에서 시중을 들며 지켜보던 시종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시종은 그 이야기를 구태여 입 밖으로 내지 않았고, 미끄러지듯 나아가던 마차도 멈추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

시종의 도움을 받아 바깥으로 나서자 그곳엔 황가를 방불케 하는 어마어마한 시종들의 도열이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오셨습니까, 피리스님.”


그런 성대한 인사를 받아도 피리스는 익숙한 듯 별다른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랜 시간 앉아있느라 구겨졌을지 모를 교복 치마 주름을 손으로 조금 매만질 뿐.

길의 끄트머리엔 중년의 초입에 들어선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피리스는 고개 숙인 시종 사이를 걸어 그에게 향했다.


끄트머리에 다다라 그녀는 가벼운 커트시로 인사했다.


“반데가르의 피리스, 지금 돌아왔습니다.”

“조금 늦었구나.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드높은 황제의 오른편에 앉은 이, 남들에게는 <철혈>이라 불리는 자.

그런 대공 반데가르였으나 하나뿐인 외동딸 앞에선 어쩔 수 없이 얼굴이 풀어졌다. 먼 길을 걸음한 딸을 걱정 섞인 목소리로 반갑게 맞이하며 양 볼에 키스하려 했다.


허나 피리스가 예의를 차린 건 인사 정도뿐이었다.


“아뇨 그냥, 정리할 일이 좀 있어서요.”

“어어, 딸······?”

“피곤해서요. 들어가서 좀 쉴게요.”


끌어안으려던 아버지를 솜씨 좋게 피하며 피리스는 저택 안으로 휙 들어가버렸다.

남겨진 반데가르 대공은 잠시 망연자실하게 서 있다가, 곧 울먹이는 눈동자로 피리스를 시중든 시종을 찾았다.


“······! ······?!”


말없이 피리스와 자신을 번갈아 가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대공을 보며 시종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시종마저 모른다면 대공에게 남은 일은 슬픈 마음에 무너지는 것뿐이었다.


“세상이······, 이 세상이 나를 버리다니······!”


현관에 냅다 주저앉아버린 지체 높은 대공을 기꺼이 부축하며 시종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사실 시종은 이유를 알 것 같았으나, 아직 어린 주인을 위해 그녀는 입을 다물기를 선택한 것이고.


원래 피리스라면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방보다 먼저 향하는 곳이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 엘레노어가 항상 시간을 보내는 뒤뜰의 화원. 그곳에서 자애롭고도 단호한 어머니께 폭 안기며 지난 한 학기 동안 있었던 일들을 주절주절 말하는 게 정해진 일과라면 일과였으나.


이번에 피리스는 그곳으로 향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정돈된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걸어가 시종의 도움을 받아 옷부터 갈아입었다.

비단을 자아 만든 화려하고도 편안한 실내복을 입자 그제서야 그녀가 타고난 계급이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공작영애였다. 이 제국에 단 셋뿐인 공작가의, 그것도 대공의 하나뿐인 여식.


“······.”


허나 피리스는 눈앞에 놓인 전신거울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뚱한 표정이 좀처럼 얼굴에서 떠나질 않던 그때였다.


“피리스, 안에 있나요?”

“······어머니?”


부드러운 노크 소리에 뒤이은 건 은빛 강물이 흘러가듯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찌푸린 얼굴을 활짝 편 채 피리스는 몸소 닫힌 방문을 열어 찾아온 손님을 반겼다.

늘 그래왔듯 어머니 엘레노어에게 아이처럼 폭 안겨 머리를 쓰다듬받았다.


“서신받았어요. 이번 기말고사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면서요. 아주 대단한 일을 했어요.”

“그런 거야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중간고사에선 장학금도 못 탔고······.”

“늘 노력하는 피리스가 이 어미는 자랑스럽답니다.”

“······어머니.”


끌어안은 채 잠시 엘레노어를 올려다보던 피리스가 곧 그녀의 배에 얼굴을 부볐다. 저택 대문 앞에서 아버지를 대하던 때와는 상반된 반응이었다.

엘레노어 또한 눈치 없는 남편과는 달랐다. 잠깐의 대화만으로 피리스의 변화를 한 눈에 알아봤다.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일은요. 늘 똑같죠. 바보같은 동급생들, 꽉 막힌 황녀, 말도 안 통하는 멍청이······.”


그러고 보면 늘 함께 오던 벡스가 이번엔 동행하지 않았다. 그에 대해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은 했으나 엘레노어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지금은 그래야 할 때였다.

목표를 이루겠다는 마음 하나로 열일곱의 나이에 먼 타지에서 홀로 고생하고 있는 딸이었다. 귀여운 투정 정도야 방학이 이어지는 내내 들어줄 수도 있었고.


그리고, 이번엔 투정뿐만이 아니었다.


“저······, 어머니.”

“무슨 일인가요?”

“브리오트 자작가는 뭐 하는 곳이에요?”


엘레노어의 눈매가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고민할 때면 늘 나오는 그녀의 버릇이었다.

지금이야 반데가르 공작저의 안주인으로서 조용한 생활을 지내고 있다고 하지만, 한때엔 데뷔탕트부터 사교계를 휩쓸었던 전설이었다. 엘레노어가 내부 사정을 모르는 귀족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러니 이번엔 엘레노어 쪽에서 궁금해질 수밖에.


“분명 행상을 지원하고 그 호위를 양성하는데 주력하는 해안 근처의 가문이었을 겁니다만······, 그건 어쩌다가요?”

“아녜요 뭐, 대단한 건 아니구요.”


엘레노어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피리스가 옆으로 고개를 슬쩍 돌렸다. 허공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무언가 먼 것을 좇는 듯했고.


“그냥, 신경 쓰이는 애가 하나 있어서요.”


엘레노어의 눈매는 조금 더 가늘어지던 순간이었다.


* * *


“쓰읍······.”


아무리 노려봐도 닫혀있는 학장실의 문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이건 내 실수가 맞았다. 게임에선 ‘사이드 스토리’인 방학 때에 이렇게 돌아다닐 일이 없으니까 잘 몰랐지 나도.

원래 같았으면 지금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나도 메인 캐릭터들이랑 놀고 있어야 했다니까. 피리스 따라서 반데가르 공작저라도 갔으면 지금쯤 달콤쌉싸름한 청춘연애물 여름방학편이라도 찍고 있을 때인데, 나 원 참.


그래 그건 선남선녀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잠깐 머릿속의 도감을 뒤져보며 생각했다.

몰래 들어가는 방법? 물론 없지는 않지.

일단 <도적의 기초> 업적을 깨고 <도둑 기술 도해>를 먼저 손에 넣어. 그 다음 도적 직업의 숙련도를 올리다 보면 <자물쇠 따기> 스킬을 배우게 되는데, 그 후 열고 싶은 자물쇠의 수준에 따라 재주 스텟을 채워오면 된다.


보자. 학장실 정도의 자물쇠라면 분명 내 기억엔······. 재주 250이면 됐다 그래.


[도감을 펼쳐봅니다.]

[ >>> ]


───


[스테이터스]


근력 : 14

기민 : 16

지식 : 10

재주 : 9

마나 : 3

영감 : 5


───


“썅······.”


허탈한 혼잣말을 내뱉으며 등 뒤의 벽에 힘없이 몸을 기댔다.

아니면 차라리 <마스터키>를 손에 넣을까? 그거 하나 갖고 있으면 앞으로도 이런 일 생겨도 문제없긴 한데······.

아니지, 그거 수정 트로피잖아. <몽상가의 향로>로 <이상향의 꿈>에 들어가서 <대괴도의 시련>을 일곱 번 깨야 하는데 그 향로부터가 개당 백만 골드쯤 했던 거 같다. 더러워서 안 깨고 말아 내가.


한숨이 푹 나왔다.

사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개학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긴 했다. 그때 깨도 중간고사의 배드 엔딩까지는 시간 있으니까.

그럼 다른 조각들만 먼저 다 모아놓고 개학하자마자 여기부터 올까. 그 정도로 타협해야 하나.


뒷머리를 긁으며 학장실 문 앞을 떠나려던 때였다.


“이봐요 아즈일 씨.”


그런 나를 나지막히 불러 세운 목소리가 있었다.

잠깐동안은 누군지 알아듣지 못했다. 심지어는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도 그랬다.


그럴 만도 했다. 눈앞에 서 있는 캐릭터는 이런 아카데미에서 만날 일이 없는 캐릭터.

그럴 리가 없어야 하는 NPC.


“그 앞에 서서는 뭘 하고 있습니까?”


‘공돌이’ 살로메였으니까.


“······살로메?”

“그 전에, 공방엔 대체 왜 안 찾아옵니까? 약속했잖아요.”

“아니 어, 그건.”


너무나도 예상 못한 조우에 내가 조금 얼빠져 있는 사이였다. 살로메는 불만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와 학장실 문을 번갈아 보더니 곧 말을 덧붙였다.


“일과 아직 안 끝났습니까? 그럼 얼른 끝마치고 따라오세요.”

“······엉?”


다만 거기서는 나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 일과라니?

그러고 나서야 살로메의 기이한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이 더운 날씨에도 굳이 머리까지 다 가리는 로브를 둘러 입은 것이다.

일과를 얘기하는 걸 보니 방학이 시작한 줄도 모르는 모양이고.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을 때였다.


“······!”


살로메는 갑자기 화들짝 놀라더니 곧 쓰고 있던 로브 모자를 더욱 깊이 눌러썼다.

그와 동시에 복도 저 끄트머리에서 학생 두세 명이 지나가는 인기척이 전해졌다.


나와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 둘도 우리에게 잠깐 시선을 던졌을 뿐 별일 없이 지나쳐 걸어갔다.

그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도 살로메는 로브를 뒤집어쓴 채 떨고 있었다.


“······음, 살로메?”


내가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그는 겨우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마지막으로는 내게서 고개를 돌린 채 한마디.


“왜 진작 안 찾아와서 내가 이런 데까지 오도록······!”

“어, 음.”


그런 살로메의 눈가에는 희미한 물기마저 서려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살로메의 인적 사항이 스쳐 지나가는 중이었다.


완드를 만드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는 인물.

아카데미에도 작년에 입학한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기숙사에도 모습을 비치지 않는다고 하고. 마법의 재능이 뛰어나지만 정작 본인은 공학의 길로 빠져버린.

풀네임, 살로메 드 살드마이어.


위대한 대현자이자 성 가브리엘 아카데미의 학장이기도 한 살드마이어의 피를 잇고 태어난 이.


“저기 살로메.”


거기까지 떠올리고선 내가 살로메를 불렀다. 손은 어느새 그의 어깨 위에 툭 올라간 뒤였다.


“공방에 갈게. 가는 건 좋은데. 그 전에 말이야.”

“······?”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살로메에게 씩 웃어준 다음, 다른 손으로는 옆에 있는 학장실의 문을 슥 가리켰다.


“혹시 이거 한 번만 열어줄 수는 없냐?”


아니 뭐 별 거는 아니고, 그냥 안에서 십자가 조각 하나만 주워가면 되는데 말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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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놀아나 주도록 하지 3 +2 24.06.11 1,260 59 13쪽
36 놀아나 주도록 하지 2 +5 24.06.10 1,300 50 12쪽
» 놀아나 주도록 하지 1 +3 24.06.09 1,374 62 12쪽
34 낙제생이 힘을 숨김 5 +1 24.06.08 1,448 6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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