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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곰곰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 고인물이 업적을 다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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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곰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2
최근연재일 :
2024.06.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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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626

작성
24.06.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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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글자
12쪽

놀아나 주도록 하지 2

DUMMY

“푸하!”


공방에 돌아오자마자 갑갑한 로브를 벗어던진 살로메는 옷으로 부채질하며 마도구 하나를 가동시켰다.

살로메의 옷이 펄럭이는 동안 공방에 땀 냄새가 퍼져나갔지만······, 잠시 후엔 차가운 바람이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버렸다.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벽 한켠에 붙은 마도구로 향했다. 거기 있는 건, 세상에. 누가 뭐래도 착각할 수 없는 에어컨 그 자체였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어? 어어, 아냐.”


판타지 세계에서 갑작스레 맞닥뜨린 벽걸이 에어컨에게 놀라고 있는 사이였다. 살로메는 자신의 작품을 슬쩍 보더니 금방 작업대 앞에 앉아버렸다.

관심도 없는 것처럼 굴더니 내게서 등을 돌리고선 중얼중얼 말을 시작했다.


“별것도 아닙니다. 하위 대기 마법의 응용일 뿐이에요. 액체는 증발하며 주변의 열을 빼앗는데, 그렇게 차가워진 상태의 공기를 바람으로 불어주고 있는 게 전부입니다.”

“······.”

“항상 냉기 마법으로 공간을 냉각시키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 만들어봤습니다. 물론 아직 완성됐다고 부르기는 어렵고 더 좋은 냉매를 찾는 것이······.”


그렇게 줄줄 말을 이어가던 살로메가 갑자기 퍼뜩 깨달은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다.

누가 공돌이 아니랄까 봐 자기가 만든 거 관심 가져주니 신나서 떠든 모양이었다. 그 점은 뭐, 귀엽게 봐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쓸데없는 데에 관심 가지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고고히 걸어가는 천재. 내가 이 게임에서 가장 좋아하던 NPC, 그랬지.


“······그, 그래서. 완드는 잘 쓰셨습니까?”


그런 NPC가 나한테 너무 관심 가진다는 게 조금······, 곤란할 뿐이지.

어쩌다 이 공방에 다시 오게 됐을까. 그런 걸 생각하며 슬금슬금 대답을 회피했다. 일단 살로메 덕분에 학장실에서 십자가 조각을 얻은 건 사실이었다.


“어어 뭐······, 그럭저럭.”

“······그럭저럭?”

“아니, 좋았어 완드는. 응.”

“······.”


내 애매한 대답 앞에 살로메가 고개를 돌렸다. 수더분한 녹색 머리칼 사이로 그의 조용한 눈동자가 날 추궁하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기말고사, 잘 안 풀리셨습니까?”

“응? 아냐 아냐, 그렇게 안 풀린 것도 아니야. 그냥 뭐······.”

“······.”

“······낙제해서 방학에 보충수업 듣는 정도지.”


내 실토 앞에서 살로메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제 완드 두 개를 들고 갔는데도요?!”

“거 완드는 좋았다니까! 그냥 일이 좀 안 풀려서 그래, 응?”

“······.”


충격에 빠져있던 살로메는 의자를 천천히 돌려 다시금 작업대 쪽을 바라봤다.

잠시 침묵하던 그의 입에서 이어진 건 허탈한 목소리였다.


“심혈을 기울인······, 완드였는데.”

“진짜 좋았다니까 그러네! 그 완드로 내가 뭘 해냈는지 들으면 깜짝 놀랄걸?!”

“뭘 해내셨는데요?”

“그건······.”


뒷말을 흐리는 나를 향해 살로메가 슥 돌아봤다.

그런 그와 눈을 마주치다가 내가 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악마······, 정도 잡았어.”

“농담하지 마시고요.”

“아오 안 믿을 줄 알았다 내가!”

“기말고사에서 악마 잡을 일이 대체 뭐 있습니까?!”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다니까!”

“아니 그래 사실이라고 칩시다. 그럼 악마까지 잡았는데 실습 낙제한 건 대체 뭐고요?”

“그건!”


그건······, 진짜 할 말이 없네.

짧은 논쟁 후 머쓱하게 입을 다물고 있자 결국 살로메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즈일 씨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으시겠죠.”


이러니저러니 해도 살로메는 이전만큼 나를 적대하진 않았다. 처음 봤을 때엔 거의 뭐 축복도 없는 호구 정도로 봤던 걸 생각하면 정말 깜짝 놀랄 변화였다.

이유를 따지자면 역시 이전에 클리어해두었던 <완더> 업적과 그 보상, <살로메의 조력자> 칭호 덕분이겠지.

게임에서도 이 칭호를 얻고 나면 살로메의 인사가 조금 더 부드러워지기는 했었다. 뭐······, 그래봐야 NPC 수준이긴 했다만.


“완드는 잘 썼어. 진짜야.”

“······.”

“안 찾아온 건······, 그 뭐냐. 바빴다. 말했다시피 보충수업 듣는 중이라.”


그냥 완드 만들 이유가 없으니 찾아올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괜히 좀 달래보고자 한마디 지어냈다.

그러고 나서는 잠깐 생각했다. 그래봐야 NPC인데 그렇게까지 생각해야 하나?

내가 좀 과몰입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만났으면 됐습니다.”


내 변명을 듣고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몰라도 살로메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작업대 한쪽에 치워져 있던 완드 하나를 들고서 내게 다가왔다.


살로메는 왜 나한테 공방으로 찾아오라고 했을까.

그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당신이 보기엔 어떻습니까?”

“······어떻냐니?”

“괜히 발뺌하지 마시고요. 별로지 않습니까.”


별로라니. 뭐가?

이건 게임에서 나오는 완드가 아니었다. 전에 내가 지적했던 번개 마법이 담긴 녀석도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웃길 수는 있겠다만, 이건 완전히 살로메의 오리지널이었다. 나는 전혀 모르고 알 수도 없는.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살로메는 한껏 찌푸린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도대체 뭐가 문젠지 모르겠습니다. 이론상으론 완벽한데 계산만큼 출력이 나오질 않는 이유가 뭘까요?”

“······.”

“아즈일 씨.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내 시선이 살로메의 손에 들린 완드로 향했다.

흠, 그렇구나. 계산만큼 출력이 나오질 않는구나. 난 여기 담긴 마법이 뭔지도 모르겠는데.


그리고 다시금 살로메와 눈을 맞췄다.

능력 있고 씻기면 귀여울 아카데미 후배는 숨길 수 없는 반짝거림을 눈동자에 품고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뭐가 됐든 내가 대답을 내려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근데, 음. 미안한데.

난 이제 팔아먹을 미래가 없는데.

너한테 괜히 있어 보이는 척했던 건 그냥 다 게임 지식이나 활용했던 거야. 나 완드는커녕 마법조차 모르는 놈이라고. 근데 그걸 보여준다고 내가 알겠냐?


“······아즈일 씨?”


라고 말을 하려던 때였다.

어딘가 의심스러운 듯 말끝을 올리는 살로메의 목소리를 듣고 떠올라버렸다. 과거의 그가 뭐라고 말했었는지.


- 그래요 아즈일 씨. 당장은 당신의 그 어쭙잖은 계략에 넘어가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헛소리인 게 밝혀지면······.


그리고 손에 든 쇠망치를 은근슬쩍 비추는 모습까지도. 그래.

여기서 사기꾼이었다는 게 들키면 진짜 뒷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될지 모른다.


아니 굳이 그 위협이 아니더라도 문제는 남아있었다. 여기서 내 신뢰도가 갑자기 박살이 나버리고 나면 이후에 완드 제작 의뢰를 넣기도 어려워질 거 아니야.

아무리 수련을 통해 강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완드를 아예 못 쓰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끽해야 검이나 휘두를 줄 아는 내게 온갖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완드는 가치가 너무나도 높다니까.


“아즈일 씨, 그······.”

“완드 말이야!”


결국 고민 끝에 살로메의 손으로부터 완드를 낚아챘다. 뭐라도 있어 보이는 척 완드를 한 번 눈으로 세심히 살펴본 후에 입을 열었다.


“역시 네가 어려워했을 법해. 결코 단순한 문제는 아닌 거 같거든.”

“예? 어어······, 네.”

“그래서 나도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신중하게 보고 싶은데. 혹시 빌렸다가 나중에 다시 가져와도 될까?”


내 말을 들은 살로메는 잠시 입을 다문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제발 통해라. 이 사기가 먹혀라······!


“······그러시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끝내 살로메의 입으로부터 승낙의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 뭐 더 용건 없지? 그럼 다음에 또 보자.”

“엇······.”


살로메는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도 같았지만 거의 억지로 내가 잘라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일단 이 상황을 무마한 후에 시간을 벌고 천천히 계획을 세우는 게 나았다.


완드를 챙겨 들고 초록색 철문을 향하면서는 살로메가 괜한 말 못 꺼내게 한마디 툭 던졌다.


“방학인데 너는 뭐 하는 거 없어? 고향에 돌아간다든지, 뭐 특별학습을 신청한다든지.”

“······.”


별 생각 없이 내뱉은 질문이었다. 그냥 요즘 별일 없이 건강하냐 수준의 그런 물음.

칼라일을 포함해 메인 캐릭터들은 이 ‘사이드 스토리’에 각자 하는 일이 있는데 혹시 넌 뭐 없는지. 없으면 말고. 그 정도 마음가짐에 불과했고.


“······없습니다, 딱히.”

“그러냐.”


그러니 그런 대답이 돌아왔을 때에도 크게 신경 안 쓰고 철문을 열었다.


“방 안에서 혼자만 있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다녀. 간다.”


마지막은 역시 좀 오지랖이었을까. 그런 생각도 들기야 했지만 이미 바깥으로 나온 뒤였다.

제법 시간이 늦었을 텐데도 아직 해가 질 생각이 없는 여름 하늘이었다. 에어컨의 축복 아래에 있다가 바깥에 나와서 그런가 괜히 더 덥게 느껴지는 공기 속에서 손에 들린 완드를 내려다봤다.


이제 이걸 어쩐다.

날 천재라고 착각해주는 건 그야 고맙긴 한데······, 이거 유지할 수 있는 컨셉이긴 한 건가?

이제 와서 벼락치기로 마법 공부한다고 뭐가 달라지긴 할까. 살로메는 아예 지가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내는 천재 중의 천재인데? 걔 앞에서 괜히 아는 척해봐야 밑천만 드러나는 꼴이 아닐까.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고 이거, 나 참.


일단 뭐가 됐든 안에 든 마법이 뭔지부터 알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운동장에 터덜터덜 걸어갔다.

방학인데다 늦은 오후라 아무도 없는 그곳에 혼자 서서는 완드를 조준하고, 발동해 봤다.


“······.”


잠시 후, 모래로 되어 있던 운동장 바닥 한편이 시뻘겋게 녹아서 지글거리고 있었다.

이게 별로라고? 계산만큼 출력이 안 나온 거라고?


환장하겠네 진짜.


* * *


“······.”


금발의 눈매 사나운 방문객이 잠시 머물다 떠난 공방.

바깥에 있을 때엔 그렇게나 더웠는데 이제는 조금 춥게 느껴지는 살로메였다.

이상해서 공간 냉방 마도구의 출력을 확인해봤으나 아까까지와 다른 게 없었다. 모든 게 똑같았다.


달라진 건 오직 하나. 사람이 둘이었다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뿐.

살로메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작업대 앞에 앉았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작업을 시작하려고 쇠망치를 들었는데.


이제는 온도가 문제가 아니었다. 마도구의 기계음이 여느 때보다도 유독 시끄럽게 들렸다.

결국 못 참고 가동을 중지시키자 이제는 반대로 너무 조용했다. 평소엔 신경도 쓰지 않았던 바깥 상업 지구의 소음들이 이제는 귀에 거슬릴 수준이었다.


몇 번 억지로 망치를 두들기던 살로메는 곧 손에 쥔 망치를 작업대에 내팽개치듯 던져버렸다.

다리를 의자에 올려서는 팔로 끌어안았다. 무릎에 턱을 괴고서 생각하는 건 아까 있었던 대화들이었다.


- 농담하지 마시고요.

- 아오 안 믿을 줄 알았다 내가!

- 기말고사에서 악마 잡을 일이 대체 뭐 있습니까?!

-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다니까!


떠올리고 있으려니 얼굴에 배시시 미소가 번졌다.

즐거웠다. 아즈일과 때로는 소리 높여가며 떠들었던 순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엔 소음도 잡음도 전부 사라져버리는 세계가 있었으나.


그 다음 순간, 살로메의 머릿속을 꿰뚫듯 스쳐 지나가는 한마디가 있었다.


- 그러니까 됐다고.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건지, 에이 씨.


“······.”


잠시 미소가 번졌던 표정은 순식간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아무 말 없이 살로메는 던져버렸던 손망치를 다시금 집어들었다.

어떤 목적도 없이 그저 철을 구부리기 위해 살로메는 망치를 내리쳤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머릿속의 장면이 떨쳐질 때까지, 몇 번이고.




3.png


작가의말

이번에도 qq**** 님께서 감사한 팬아트를 그려주셨습니다! 이거 논란이 될 수 있는 일인데 용기를 가지고 소신 발언 하나만 하자면... 전 사실 안경을 좋아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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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누구도 다치지 않는 1 +3 24.06.26 666 3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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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닫힌 문 1 +5 24.06.23 942 53 14쪽
47 한 명은 모범생, 한 명은 6 +3 24.06.21 993 57 14쪽
46 한 명은 모범생, 한 명은 5 +5 24.06.20 1,000 50 12쪽
45 한 명은 모범생, 한 명은 4 +3 24.06.19 1,036 50 14쪽
44 한 명은 모범생, 한 명은 3 +3 24.06.18 1,065 50 12쪽
43 한 명은 모범생, 한 명은 2 +4 24.06.17 1,101 58 12쪽
42 한 명은 모범생, 한 명은 1 +7 24.06.16 1,140 62 15쪽
41 부르신 건 황녀 저하십니다 3 +2 24.06.15 1,162 62 14쪽
40 부르신 건 황녀 저하십니다 2 +4 24.06.14 1,186 62 15쪽
39 부르신 건 황녀 저하십니다 1 +6 24.06.13 1,244 62 13쪽
38 놀아나 주도록 하지 4 +3 24.06.12 1,254 61 12쪽
37 놀아나 주도록 하지 3 +2 24.06.11 1,259 59 13쪽
» 놀아나 주도록 하지 2 +5 24.06.10 1,299 50 12쪽
35 놀아나 주도록 하지 1 +3 24.06.09 1,371 62 12쪽
34 낙제생이 힘을 숨김 5 +1 24.06.08 1,445 63 12쪽
33 낙제생이 힘을 숨김 4 +7 24.06.07 1,514 55 13쪽
32 낙제생이 힘을 숨김 3 +4 24.06.06 1,489 64 12쪽
31 낙제생이 힘을 숨김 2 +3 24.06.05 1,555 65 13쪽
30 낙제생이 힘을 숨김 1 +5 24.06.04 1,669 61 12쪽
29 엑스트라 스토리 4 +7 24.06.03 1,691 79 12쪽
28 엑스트라 스토리 3 +8 24.06.02 1,714 7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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