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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도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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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빽티스트
작품등록일 :
2017.01.31 18:26
최근연재일 :
2017.04.22 00:04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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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7
추천수 :
503
글자수 :
347,599

작성
17.02.0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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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폭풍전야(6)

2017년 정유년 2월 1일 00:00시 연재 시작 합니다.




DUMMY

#1


3일이 지났다. 남근이 새해맞이 헌혈에 동참했다가 큰 봉변을 당했던 것도 벌써 삼 일전의 일이다. 그 날 이후로 그는 고시원 밖으로 일체 나가지 않게 되었다. 새해 첫 날 피를 휘날리며 슈퍼마켓에서 먹을거리를 사재기한 이후론 여간해선 방 밖으로의 외출은 삼가고 있는 상태.


“밖은 위험하다.”


남근은 이 말에서 자체경보 발령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


그는 하루 종일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방 문을 노려보고 있다. 작년 가을 잠시나마 활동했던 사회인 야구단, 그 활동 때문에 구입했던 야구배트를 손에 쥐고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말이다.


‘어디 한 번 들어 올 때면 와봐. 아주 개 박살을 내줄테니까.’


그는 그 날 이후 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눈만 감으면 생생하게 펼쳐지는 그 날의 기억. 자신의 피 흐르는 오른 팔을 물어뜯으려던 미친 간호사, 그리고 슈퍼마켓에서 생닭을 물어뜯던 여인들의 모습을 종합해보면


‘세상이 미쳐도 완전 미쳤다. 설마 이대로 종말이 오는 건가?’


종말론에 무게를 실은 결론에 이른다. 그는 생각 끝에 도달한 자신의 결론을 입증하기 위해 핸드폰사주 앱을 열었다. 그리고 만세력에 천천히 자신의 생년 월, 일과 태어난 시간을 기입한다. 자신의 앞날을 예측해보고자 함이었다.


‘올해가 정유년이고, 계묘일주인 나한테는...헐! 올해 천 충 지 충이네.’

(정유년- 남근의 일주는 계묘일주다. 천간을 이루는 정과 계는 충의 관계, 지지의 묘와 유도 충의 관계이다. 충은 부딪히고 깨지고 하는 현상을 말한다.)


최악이었다. 올해 본인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생길 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해가 바뀌기 무섭게 미친 여자로부터 봉변도 당할 뻔 했다. 아니 그 정도면 당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으....으....어....어....”


그 때 옆방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신음소리. 그 신음은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남근의 신경에 칼갈이를 하는 꼴이었다.


“아 시발! 제발 그만 좀 해. 이 새끼들아! 떡을 칠거면 모텔을 가던가! 왜 여기서 지랄들인데? 버진(virgin)인 것도 서러운데 아주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네. 야! 지금이 이러고 있을 때야? 이 무뇌충 새끼야!”


손에 들린 알루미늄 배트로 벽을 치며 분노를 뿜어내는 남근이다. 하지만 옆방에 누군가는 그의 흥분에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밤낮없이 신음하며 침대를 흔들고 있었다.


“그래 말 나온 김에 너 사주 한 번 까보자. 생년월일 면상도 모르지만 보나마나 물이 엄청 많은 사주라 정력은 타고 났겠고... 식상도 넘치겠지. 이 새낀 복상사도 쉽게 안할 놈이네, 체력이 타고나서... 그래 어차피 망해가는 세상 신나게 즐기다 가는 것도 나쁘진 않네. 시발 그래서 더 쳐라 더 쳐!”



쾅~쾅~쾅!


타오른 분노를 어김없이 내뿜던 그 때 어디선가 소음이 들려왔다. 이것은 남근이 휘두른 배트가 벽에 부딪치며 발생한 소음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소리치던 남근은 급하게 입을 닫았고 그의 날카로운 신경은 옆방의 누군가에서 방문을 두드리고 있는 낯선 이에게로 전환됐다.


쾅~쾅~쾅!


또 다시 일정하게 철문을 두드리는 누군가. 잠시 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멈추고는 남근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사람의 음성이 전해졌다.


“남근이 안에 있냐? 문 열어 임마.”


“어??? 동기 형이야?”


자신을 찾아 온 남자는 성강 고시원 총 관리인 동기였다. 목소리를 들은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조심스레 이불을 걷어내 문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귀를 철문에 바짝 붙인 채 한 번의 신분 확인 과정을 더했다.


“성이 뭐야? 형?”


“뭔 성 갑자기 빨리 문이나 열어!”


“형 이름 성이 뭐냐고!”


“뭐긴 뭐야 원이지.”


“동기 형 맞네. 무슨 일이야?”


“뭔 일은 임마. 술 한 잔 삐리 빠라 뽕 하자는 거지. 옆에 제길 씨도 있다.”


“제길?”


그는 아직은 친숙하지 않은 제길이란 이름에 굳게 닫혀있던 철문을 개방했다. 좁은 복도를 채우고 있는 두 사람. 떡 진 머리, 쾌쾌한 모습에 방망이를 쥐고 있는 남근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멍했다.


#2


가게에 앉아서도 안절부절 못하는 남근은 가게 밖을 수차례 쳐다봤다. 그러다 테이블 앞에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자 그의 불안감도 잠잠해졌다. 펄펄 끓고 있는 국물 속 탱탱한 육질이 살아 있는 순대. 그 것을 보는 순간 식욕이 타오르며 모든 걱정거리를 잠재운 것이다. 들깨가루와 양념장을 가득 퍼서 자신의 그릇 안에 넣어서는 숟가락을 이용해 그것들을 잘 섞어 국물의 부족한 맛을 더한다. 먹을 준비가 완료된 그가 이내 시선을 제길에게 향했다.


“그 때는 미안. 아니 미안합니다.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 거린다는 게...”


제길은 생각지도 못한 남근의 뜻밖의 사과에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자신의 잔을 들어 남근의 사과를 받아들인다.


“뭐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요. 정말 상을 치르고 왔는데요. 뭘...”


“예? 그럼 진짜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제길. 그 바람에 남근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에 사로잡힌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손바닥으로 툭 튀어나온 주둥이를 마구 쳤다.-


‘하여간 이 주둥이가 화근이지...’


그 때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고시원 총 관리인 동기가 남근의 손을 붙잡아 말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됐어 임마, 이제 그만해. 하여튼 이놈이 뚫린 주둥이라고 막 지껄이는 것 같지만 용하긴 용하다니까...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제길 씨 출근이 늦어진 게 형님 장례식 때문이었다고 하네. 그래 일단 고인의 명복을 빌자. 그리고...”


동기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자신의 잔에 채워진 소주를 말끔하게 비어내더니


“산 사람이 죽은 사람 몫까지 열심히 살면 돼. 털고 일어나자. 제길 씨.”


나머지 두 사람도 그를 따라 탁자 위에 놓아진 술잔을 비운다.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에요. 그 밝은 사람이 자살이라니...아직도 믿겨지지 않고, 지금이라도 당장 저 문을 열며 들어와서 말을 걸 것 같은데...”


순대 국 속 고기들을 숟가락으로 뒤적거리며 사색에 잠긴 제길을 보자 남근은 자신의 그릇에 담긴 순대 하나를 건네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런데 막상 그에게 줄 고깃덩이를 뒤척이다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제길의 국그릇으로 향하던 숟가락을 멈추고는 말로 자신의 감정을 전한다.


“제길 씨. 앞으로 힘내서 살자는 의미로 제가 힘을 불어 넣는 주문하나 외울게요.

주문을 외워보자. 아싸라비아 콜롬비아. 닭다리 잡고 삐약삐약.”


옆에서 남근의 허무맹랑한 주문을 듣고 있던 동기가 남근의 뒤통수를 살짝 올려 친다.


“아니 이 자식은 언제 적 개그를 치고 있어. 네가 아재냐? 하긴 뭐 이제는 아재는 아재지 바리아재. 크크.”


님근의 주문을 듣고 피식 웃는 동기. 제길이 보기엔 두 사람이 개그 수준은 도찐 개찐이다.


“ 뭐 아무튼 새해, 새로운 시작이니 만큼 지난 일을 털어내고 정유년엔 좋은 일만 가득 했음 좋겠다. 제길 씨는 올해 꼭 합격하고, 남근이야 뭐 됐고...나는 올해 장가 좀 가자. cheer up!”


“아니 난 왜 빼! 나도 좋은 거 해줘. 난 올해 아다 탈출...”


“헐 남근 씨. 아직?”


“아...건배!!!”


남근은 얼굴이 급 빨개지며 서둘러 건배 제의를 했고 세 사람은 그 술잔에 마음을 담아 그것을 가슴팍에 채워 넣었다.



노량진 외진 곳에 자리한 순대 집에서 순대 국 한 그릇에 각 두 병에 소주를 마신 세 사람은 밤 깊은 시간 동네가 떠나갈 듯 고성방가를 부르며 고시원으로 향하고 있다.


“아 씨...도저히 못 참겠다. 야 자..잠깐만...”


제길과 남근의 어깨에 몸을 싣고 비틀대던 동기. 거의 인사불성 상태가 된 그가 이내 발걸음을 멈추고는 가까운 전봇대를 찾았다. 영역 표시를 하기 위함이었다.


쏴아아~


어느 덧 전봇대 하단은 동기의 소변으로 홍수가 일어 물난리를 일으키고 있다.


“아 이형 진짜 나이 값 못하게 먼 짓거리야?”


“뭐긴 자식아. 세상을 정화 시키는 거지. 왜 하나님도 홍수로 세상을 쓸어 버렸잖아. 나도 좀 하면 어디가 덧나 냐?”


“휴 진짜 한심하다. 노상방뇨를 성경에 갖다 부치고..쯧쯧. 이러니 지금까지 장가를 못 갔지. 하긴 뭐 형은 장가들어 봤자 좋을 것도 없어. 재성이 그 많은 비겁을 감당할 수나 있겠어.”


똑 같이 술을 나눠 마셨지만 취한 것은 동기뿐이었고 그의 취한정도는 본인 몸 하나 가누기 힘들 정도의 만취상태인 것은 분명했다.


“악담을 퍼부어라 아주 죽일 새끼. 야 너 봤지... 이 형 오줌발...나 아직 건실하다. 그러니까 참한 여자 좀 물어와... 손님 들 중 여자 많잖아. 이 새끼는 지 혼자 독차지하고...와! 진짜 사람이 그럼 못써. 좀 나누자고!!!”


“뭔 여자? 형 내 처지 알면서 그 딴 소리가 나오냐.”


“데려오라면 데려 오라고!!!”


취할 대로 취한 동기가 순간 욱하더니 남근의 머리를 두 차례 빠르게 내려쳤다. 그 바람에 머리를 맞은 남근도 짜증이 확 몰려 왔는지 비틀대던 동기의 가슴을 밀어 전봇대 밑으로 넘어뜨렸다.


“아이고...내 허리...야 이...”


“작작 좀 마시자. 응? 내 이래서 오늘도 안 보려고 했건만.”


짜증이 난 남근은 그대로 두 사람을 남기고 고시원 쪽으로 빠르게 걸어 사라져 버린다.


“야 어디가...2차 가야지. 이 자식아. 네가 쏠 차롄데....이씨...”


“형 이미 남근 씨 갔는데요...”


옆에서 홀로 남아 동기를 부축하고 있던 제길이 조심스레 만취한 동기에게 상황 설명을 더한다.


“뭐? 갔다고? 하여간 저 새낀 의리라곤 좆도 없어. 그러니까 아다...아니다. 그래 제길이 넌 2차...아니다. 넌 아직 형님 때문에 슬퍼야 할 때지. 2차 콜? 아...아니다. 에이 몰라 그럼 나 혼자 2차 간다. 그럼 수고~~”


“형 괜찮으시겠어요?”


제길이 급하게 동기를 잡아 보지만 그는 그의 손길을 뿌리치고는 가로등 불이 나간 골목 어귀로 비틀 거리며 사라져 버린다.


“아 저 형 만취인데...어쩌지?”


#3


먼저 방으로 돌아 온 남근은 들어섬과 동시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야구 배트를 들었다. 동기 때문에 짜증이 난 상태에서 여전히 들려오는 옆방의 신음소리에 순식간에 감정의 한계선까지 짜증이 도달했기 때문이다.


“으...으어어,...”


아직도 신음하고 있다니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그래 시발. 아주 오늘 결판을 내자. 술도 쳐 먹었겠다. 오늘 한 번 제대로 사고치지 뭐. 내 알루미늄 배트랑 네 XX랑 누구 방망이가 더 튼실한지 겨뤄 보자고.”


그는 배트를 들고 방문을 열어 복도로 나섰다. 그리고 옆방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는 정면으로 철문과 마주했다.


쾅~쾅~쾅


“나와 이 새끼야. 오늘 한 번 꼴리는 대로 해보자.”


철문이 찌그러질 듯 강하게 배트를 내리치는 남근. 하지만 안에 있는 누군가는 남근의 행위에 어떠한 반응도 없다.


“미친놈이 사태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나와!!!”


쾅~쾅~쾅


문을 샌드백 삼아 미친 듯이 배트를 휘두르는 남근. 그는 이미 이성의 끈을 놓은 듯 하다. 같은 층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횡포를 부리고 있으니 말 이다. 하지만 누구하나 그의 폭주를 막아서지 못한 채 굳게 닫힌 방에서 나오려 들지 않았다. 방이 비웠거나 남근의 행동에 겁먹었거나. 둘 중 하나의 이유일 것 이다.


그 때 겁먹은 사람들 중 가장 용기 있는 누군가. 복도 끝자락에 위치한 311호 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등장했다. 얼핏 봐도 남근보다 훨씬 체격적인 면이 유리한 듬직한 체구의 남자였다. 하지만 그는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를 내뿜으며


“저...저기 죄송하지만 좀 조용히...”


“문짝 꼴 나고 싶지만 않으면 조용히 들어가 있지?”


“아...네...그럼 볼 일 보세요...”


남자는 엄청 싱거웠다. 그게 전부였다. 큰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은 작은 마음의 소유자였다. 남근의 위협 한 방에 바로 꼬리를 내리고 방 안으로 줄행랑 치고 말았으니 말이다.


“나와! 이래도 안 나와? 엉?”


말릴 사람 없는 폭주 그 자체의 남자. 그는 상대방의 불성실한 태도에 전면 계획을 수정했다. 이제는 철문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손잡이를 부셔 안으로 들어서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다.


“그래 넌 이게 떨어져 나가는 순간 그것도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아라!”


그는 거침없이 손잡이를 내려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발생한 소음은 고시원 전체를 혼란하게 만들고도 남을 만큼 소란스러운 것이었다.


덜커덕~


그렇게 몇 차례를 때려 쳤을까? 철옹성같이 버티던 철 손잡이가 항복을 선언하며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좋아 어디 그 잘난 물건 좀 보자.”


그는 잠시 뒤로 물러서는가 싶더니 문짝을 향해 발을 겨누었다. 문을 완전히 박살 낼 생각이었다.


“잠깐!!!”


그 순간 계단 쪽에서 남근을 부르는 누군가의 음성. 또 다시 나타난 훼방꾼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고개를 돌려보면 방금 전까지 자신과 술잔을 주고받았던 제길이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거....에요?”


“총무 양반이랑은 상관없으니까 가던 길 가. 난 오늘 살인을 저지를 지도 모르거든.”


또 다시 발을 겨누고 문짝을 향해 발길질을 날리려는 데 그때, 제길이 거칠게 남근에게 달려들며 태클을 시도했다. 그 바람에 바닥을 굴러 저 만치 멀어지는 야구 배트.


“아 시박! 뭔데...그냥 가던 길 가라고! 왜 나서서 지랄인데?”


남근의 위에 올라타 한 숨을 푹 쉬는 제길.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왜 남의 방문을 작살내고 있는 겁니까? 도둑질이라도 하시려고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털 것도 없는 방입니다.”


“응??? 네 ....네 방?”


“그래요. 303호 제가 배정 받은 방 말입니다. 저한테 무슨 불만 있으신 거 아니죠? 아님 군대 신병 신고식 같은 거냐구요!”


“303호?”


바닥에 깔린 채 고개를 들어 방문을 바라본다. 그 곳엔 또렷하게 금빛으로 박힌 철판 위에 303호라 방 번호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엉뚱한 방을 작살내 버렸네...”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겼다. 끊임없이 신음소리가 들려온다던 남근의 방으로 말 이다. 그들은 입을 닫는 대신 두 귀를 열었고 멈출지 모르고 들려오는 신음에 신음하고 있었다.


“하 그러니까 이 게 밤낮없이 계속 된다는 거죠?”


“그렇다니까 내가 아주 미쳐 버리지 않고는 못 베 겨. 그래서 오늘 술 먹은 김에 결판을 지으려 한 거지.”


“흠....”


제길은 잠시 고민 하는가 싶더니 이내 남근의 방문으로 향했다.


“어디가려고?”


“이 정도면 심각한 건 맞아요. 분명히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겁니다. 환자가 있다면 구급차를 불러야 할 거고...아니면...”


“환자는 무슨? 아 환자 맞네. 섹스중독 환자.”


“뭐...일단 방문을 열어 봅시다.”



일층 고시원 관리실에 다녀 온 제길의 손엔 열쇠뭉치가 들려 있고 두 사람은 303호가 아닌 301호실 앞에 섰다. 옆 방 신음소리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똑~똑~똑


일반적인 절차. 먼저 방문을 두드려 상대의 반응을 본다. 뭐 예상했던 결과지만 상대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안에 계신 거 다 알고 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제길의 정중한 목소리에도 여전히 상대는 반응이 없다.


“뭔 개짓거리야. 시간 끌지 말자 그냥 부수자니까!”


옆에서 제길의 행동을 지켜보던 남근이 제길 앞으로 서서 불만을 토로한다.


“입이 많이 험해지셨네요. 저 얼마나 봤다고...그리고 전 아직 말 놓으란 소리 안했습니다.”


“자 말!!! 놨다 이제. 의미 없이 너랑 말장난 할 기분 아냐. 그러니까 빨리 열든가 부수던가!”


흥분하는 남근의 얼굴을 바라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제길도 그의 의견에 동조한다.


“엽시다.”


제길의 손에 들린 수많은 키 중 301호라 적힌 열쇠가 철문의 비좁은 틈으로 몸을 숨기고 이내 딸깍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우에엑 이게 뭔 냄새야. 무슨 시궁창 냄새가 나냐..”


문이 열림과 동시에 코를 찔러오는 강한 악취. 방안은 불하나 켜져 있지 않은 새까만 어둠만이 존재한다.


“야 이 새끼야 일어나!!!”


남근은 냄새며 환경이야 어찌됐든 소음의 근원지인 남자를 조져야겠다는 생각 뿐. 그는 다짜고짜 침대를 향해 다가가 배트를 치켜들었다.


“워워!!! 자..잠깐만 일단 좀 기다려 봐요.”


제길은 무자비한 남근의 행동을 가로 서며 우선은 방 불을 켰다.


“헐!”


방 안이 환해짐과 동시에 두 사람의 눈에 들어 온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잠바며 이불을 잔뜩 뒤집어 쓴 채 침대에 누워 신음하고 있는 남자. 그 남자의 두 눈은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 시뻘건 색이었고 눈동자는 이마를 향해 솟구쳐 있었다. 제길은 남자의 모습을 보는 순간 상용의 장례식장에서 봤던 하나의 검색어가 떠올랐다.


‘광인병?’



“으아악!!! 조져야 돼!”


그 모습을 본 남근은 화들짝 놀라 나가자빠졌다. 그리고는 다시 빠르게 바닥을 짚고 일어나 남자를 향해 배트를 휘둘렀다.


“남근 씨 잠깐만!!!”


제길이 맨 손으로 그의 방망이를 막아서며 눈이 돌아간 남자의 편을 들어섰다.


“뭐하는 짓이에요! 환자한테... 빨리 구급차나 불러요!”


“야 이 미친놈아. 환자는 무슨 환자. 저거 빨리 처리 안하면 우리가 위험해져.”


“미친 건 당신이지. 환자한테 뭐하는 짓 입니까! 지금 당신의 행동...구급차보단 경찰차가 필요하겠군요.”


남근은 자신의 배트를 붙잡은 제길의 손을 뿌려 헤치려고 발버둥 쳤지만 압도적인 힘이 차이는 그를 배트로부터 멀리 떨어 뜨려 놓을 뿐이다.


“네가 뭘 알아? 새끼야. 저렇게 토끼 눈깔처럼 된 새끼들은 위험해. 사람을 문다고! 못 믿겠어?”


제길도 알고 있었다. 뉴스를 통해서 그리고 학원과 상용을 통해서 확인한 증상. 눈이 빨개진 사람들의 공통점. 하지만 침대에 누워있는 빨간 눈의 남자를 보는 순간 죽은 상용이가 떠오른 그는 남근을 말려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압니다. 저도...저희 형도 죽기 전에 이런 증상을 보였어요.”


“그럼 더 잘 알 거 아냐? 그러니까 비키라고! 난 당했었어. 이런 새끼들한테! 내 팔이라도 보여줘야 믿겠냐?”


남근은 자신의 오른 팔을 걷어 부쳐 제길 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이미 아물 대로 아문 주사 바늘이 만든 상처는 그에게 불신만을 키워 줄 뿐이었다.


“그 팔이 뭐요? 됐으니까 빨리 방망이부터 내려놓으세요. 안 그럼 경찰을 부를 겁니다.”


“아 진짜 넌 대갈빡이 안 돌아 가냐!!! 안다며? 경험 했다며! 그럼 빨리 조져야지!”


남근은 멈출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제길이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것이었다. 눈이 충혈 된 남자. 분명히 이것이 뉴스를 통해 봤던 광인병의 증상이라면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 신음하는 남자는 단순 환자다. 이 몸으로 자신들을 공격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비키라고!!! 진짜 좆된다니까!!!”



제길은 결국 흥분해서 날 뛰는 남근을 다시 한 번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그리고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112 버튼을 누른다. 우선은 남근을 진정 시키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통화를 시도한 경찰은 전화를 받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뭐하고 있는 거야, 경찰은...”


제길이 잠시 전화에 한 눈 판 사이. 그것은 분명 남근에겐 기회였다. 바닥을 뒹굴고 있던 그가 그 틈을 타고 일어나 침대 위 남자를 향해 달려들어 자신의 전매특허인 발길질을 날렸다.


퍽~


하지만 그 발길질은 침대위에 남자에 도달하지 못하고 제길의 두 팔에 저지당한다.


“당신 진짜 안 될 사람이네!”


“이 답답한 새끼야. 내 말 좀 듣자 응? 이러다 우리 좆 되는....어?”


그 순간 제길을 바라보던 남근의 두 눈동자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어...으...젠장...어쩌지...”


“왜? 막상 감방 가서 썩을 생각하니까 겁납니까? 나쁘게 생각하지 맙시다. 이참에 개과천선 하면 되니까. ”


“아니...그...그....뒤..”


“뒤 뭐요? 저한테는 얄팍한 속임수 안 통합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빌면 선처는 베 풀수도 있슴...어?”


그 순간 제길의 몸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 와 동시에 남근의 비명 소리가 고시원 3층 전체에 울려 퍼지고 지금 벌어진 상황이 긴급 상황임을 사이렌 대신 알렸다.


“크어어어....”


침대 위에 남자. 그가 어느새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제길의 어깨를 짓눌러 그대로 뒤로 나가자빠뜨린 것이었다.


작가의말

담주부터가 진짜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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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5) +2 17.04.01 193 3 13쪽
45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4) +2 17.03.31 172 3 15쪽
44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3) +1 17.03.30 152 4 15쪽
43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2) 17.03.29 135 4 14쪽
42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1) 17.03.26 144 4 13쪽
41 미치거나 죽거나(3) 17.03.25 153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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