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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도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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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티스트
작품등록일 :
2017.01.31 18:26
최근연재일 :
2017.04.22 00:04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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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7,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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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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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의 시작

2017년 정유년 2월 1일 00:00시 연재 시작 합니다.




DUMMY

#1


새빨갛게 충혈 된 눈, 결코 단정하지 못한 옷매무새 옆을 구르고 있는 빈병들. 남자는 그것으론 부족했는지 한 손에 두꺼비 마크가 선명하게 그려진 병 하나를 손에 쥔 채 어디론가 통화를 시도하고 있다.



뚜뚜뚜....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전화를 거부한 것일까? 아님 실수로 종료버튼을 누른 것인지 남자가 통화를 시도하는 상대마다 불통이다.


“이 개새들이...쿨럭쿨럭...”


화가 난 남자는 손에 들린 소주병을 입에 가져다 대고는 속이 뻥 뚫릴 듯 시원하게 투명한 액체를 들이킨다. 동시에 다른 손에 들린 핸드폰으로 주소목록을 열심히 뒤적거리는 그.


잠시 후 그가 검색한 전화 목록에 뜬 누군가의 이름.


18XX년


목록 속 그녀는 도대체 남자에게 어떤 원한을 산 것일까? 차마 여성의 면전에 대고 쉽게 지 껄 일수도 없는 심한 단어들로 도배된 이름. 의문이 풀리기도 전 남자는 거칠게 통화버튼을 눌렀고 그녀의 전화기로 신호가 가기 시작한다.


“개년아 넌 받아야지. 네가 내 가슴에 박은 대못, 그 잘못을 뉘우친다면 넌 받아야만 해.”


하지만 남자의 바람과는 달리 수차례 울려대던 통화음은 자동으로 음성메시지 녹음기능으로 넘어간다.


“이런 시발, 개 시발!!!! 으아아악!!!”


남자의 절규는 그의 앞에 보이는 거대한 건물, 여의도의 상징이자 한 때는 대한민국 최고의 고층빌딩이었던 63빌딩을 향해 나아갔다가 그 건물에 가로 막혀 되돌아오며 메아리를 형성한다.


“쿠에에엑”


남자의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 위로 솟구친 건 비단 분노만이 아니었다. 남자는 술안주 삼아 위에 구겨 넣었던 새까만 순대들도 전부다 게워냈다. 허나 남자의 구토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순대를 밖으로 뱉어낸 것도 모자라 누가 봐도 피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뻘건 액체를 토해냈다. 입이 아닌 코에서도 말 이다.


“크으....하.....하.....아 흐,,,흑흑...이런 좆같은 시발!!!”


남자는 순식간에 감정의 3단 변화를 시도한다. 절규에서 웃음으로, 그 웃음에서 다시 흐느낌으로.


“으하하하하...아아아...으아아아.”


한 참을 소리 내어 울던 그 때. 남자의 반대편에 존재하고 있던 철문으로부터 요란한 소음이 발생하고 덩달아 인기척이 전해진다.


“안에 누구야? 빨리 이 문 안 열어!”


사람의 음성. 그 소리에 남자의 몸은 급하게 일으켜졌다. 그리고는 머리를 박박 감는다는 표현보다 거친 손짓으로 자신의 두피를 연신 긁어낸다. 동시에 가을철 떨어지는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남자의 머리칼. 그는 잠시 떨어진 머리카락을 쳐다보는가 싶더니 이내 시선을 자신의 핸드폰 액정으로 옮겼다.


5%.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 남자의 수중에 충전기, 혹은 휴대용배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폰은 기능을 상실할 것이다. 그 말은 즉 머지않아 꺼질 자신의 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한정적인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섰다. 그리고 63빌딩을 더 가까이서 보려는 것인지 앞으로 나아갔다. 그와 동시에 손에 들린 폰은 또 다시 어딘가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고 그 위태위태한 핸드폰은 마지막으로 제기랄이라는 단어를 액정에 띄어 놓고 있었다.


“여보세요?”


몇 차례 시도만인가? 드디어 그의 끊임없는 휴대폰 구애에 응답한 존재가 생겼다. 그 사실은 억지로 참고 있던 그의 감정 샘에 도화선 작용을 했고 휴대폰에 대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서글픔을 가득 실은 절규였다.


“세상 진짜 제기랄이야. 내 인생은 왜 이리 엿 같은 거냐? 솔직하게 말해봐. 내가 살면서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거 있냐? 아님 내가 사회의 기준에 못 미치게 노력을 하지 않았다거나...난 늘 최선을 다했단 말이다.”


그는 통화를 하며 옥상 난간에 기어오른다. 지금 그가 서 있는 장소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인 50cm도 채 안 되는 난간의 너비다.


“미안하다..다음...”


그 순간 남아있던 5%의 배터리도 더 이상 그를 지지하지 못하고 수명을 다하고 만다. 더 이상 제 역할을 못하게 된 휴대폰. 더는 필요치 않다. 전화기를 들고 있던 손에 힘을 뺀다. 동시에 지구의 중력을 실감케 하며 저 밑바닥으로 수직 하강하는 폰의 운명.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산산조각이다.


“으아아악!!! 너희들 잘 들어라. 살아생전 나 무시하고 핍박했던 개새끼들. 그래 시발 너 말이야! 내 이 세상 하직 전에 저주하나 퍼붓고 갈게. 내가... 36년을 지옥 불구덩이 속에서 살았거든? 이제는 너네도 한 번 겪어봐. 내가 반드시 그렇게 할 거니까...”


그 때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건물 경비원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들어오고


“이 시간에 여기서...어!!! 자...잠깐.”


미쳐 경비원이 손가락 하나 뻗기도 전에 두 눈이 불게 충혈 되었던 사내는 그의 시야 범위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건물 밑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그 것은 사내가 결코 온전치 못한 상태가 되었음을 경비원의 눈이 아닌 귀를 통해 그에게 알려주었다.


#2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 됩니다...”


제길은 몇 차례 통화버튼을 눌러 보지만 상대의 전화기는 꺼져있다. 조금 전 걸려온 한통의 전화 때문에 공무원 영어 공부에 집중하고 있던 그의 리듬은 완전히 엇박을 타 버렸다.


“하여간 산통 깨는 건 일등...이 형 뭔 일 있나? 에이... 일은 무슨...보나마나 집에 올 때 술이나 사오라는 거겠지.”


벽에 붙은 시계를 본다. 어느 덧 자정이 되어 가는 시간. 그는 자리에서 있는 힘껏 기지개를 펴고는 서둘러 가방을 싼다.



독서실이 있는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떼거지로 몰려있는 건물 앞. 그 옆 동작경찰서에서 파견된 것으로 보이는 경찰들이 사람들 앞을 가로막고 서서 그 곳으로의 접근을 막고 있다.


‘뭐야? 연예인이라도 온 겨? 게릴라 데이트라도 찍나?’


사람들이 둘러싸 보이지 않는 건물 쪽 누군가의 정체. 그것을 확인 차 까치발을 들고 고개를 빼곰 내밀어 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저기여. 혹시 촬영해요? 누구? 여자? 아이돌? 배우?”


커다란 덩치로 자신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앞 사람에 넌지시 묻는 제길. 제길의 질문에 고개를 돌린 남자는 덩치와 걸 맞는 산적 같은 얼굴을 들이밀며 몹시도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뭔 개 같은 소리야? 촬영 같은 소리하고 있네. 지금 여기서 사람이 죽었어 사람이.. 이 사람아!”


산적남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 제길. 앞의 남자가 돌아서며 생긴 빈틈으로 시선을 고정해 빠르게 현장을 확인한다. 급히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과 경찰들 덕에 엉망이 되었을 사체는 보진 못했지만 하얀 천을 붉게 물들인 체 누워있는 모습이 남자의 시신이 결코 온전치 않다고 대신 말해주고 있다.


‘쯧쯧...그 따위 정신력이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차라리 공부를 포기하던가...인생 말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공시생이 삶을 비관하며 자살했을 것이라 판단한 제길은 그 시체를 보자 결코 좋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 혼잣말을 주절대고는 현장을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며 현장을 벗어나려던 그 때, 삼삼오오 모여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골목 어귀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길의 발을 붙잡았다.


“처음 자살현장을 본 사람이 한 이야긴데 그 남자. 바닥에 떨어져서 작살이 났는데도 계속 꿈틀 거렸데.”


“병신. 뻥 좀 치지마라. 그게 말이 되냐? 저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음 즉사야 즉사.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냐? 이 새끼 요새 밤샘 공부 한다고 하더니 미친 겨? 눈깔도 토끼 눈깔처럼 새빨갛게 충혈 되가지곤...쯧쯧.”


“몰라... 잠이 안와. 아니 별로 자고 싶단 생각이 안 들어. 그 음료 먹고 나서 부턴가...암튼 효과가 쩌는 거 같아. 나 요새 이틀 밤새고 공부 했잖아. 너도 한 번 먹어 볼래?”


남자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멈춰 섰던 제길.


‘꿈틀대? 어이가 없네.’


그들의 면전에 피식 콧방귀를 끼고는 이내 빠르게 현장을 벗어났다.



삑-삑-삑-삑.


사건 현장에서 노들역 방향으로 쭉 걸어 내려오면 위치한 그의 오피스텔. 엄밀히 따지고 들어가면 같이 사는 형의 집인 이곳. 현관을 열고 들어가 손에 들린 맥주페트와 과자부스러기들을 한 쪽에 내려놓고는 뒤이어 가방을 내린다.


‘뭐야 뭔 일이래? 아직 집에 안 왔네. 설마 이 시간까지 공부할 사람은 아니고...술 사오라더니 못 참고 술 쳐 먹으러 나간 겨?’


곧 이어 상체를 탈의하고 침대에 두 다리를 걸쳐 엎드리고는 빠르게 팔굽혀 펴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에겐 이러한 체력 운동도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제길은 올해로 경찰 공무원 준비 2년 차에 돌입한 공시생이다. 2년차...시험 준비기간으로 보통 잡는 기간이지만 사실 그가 공부한 시간을 다 합치면 벌써 8년이다. 2년 전까지는 9급 행정직을 목표로 공부했었지만 늘 그에게 돌아온 결과는 합격 앞에 不자가 붙은 체였다. 학창 시절 제법 공부도 했고 대학도 서울 중위권 대학을 다녔던 그이기에 집에서도 공무원이 되겠다던 아들을 물심양면 지원해 줬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 이 년이 흐르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5년 차가 되었을 때,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부모님이 등을 돌리고 말았다. 용돈이며 학원비며 전폭적인 지원이 끊겨 완전 개털이 되 버린 신세. 시험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늘 그런 그의 발을 붙잡은 건 아쉬움이었다.


“아 영어에서 2개만 더 맞았으면...”


친구들은 그런 그에게 말했다. 늪에 빠진 것이라고. 또 다른 이들은 말했다. 그 생활에 익숙해진 것이라고.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런 자신들의 반응이 제길의 어깨를 짓누르고 돌아갈 길목을 차단해 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후우....”


그 자리에서 빠르게 팔굽혀펴기 80회를 소화한 그는 자신의 허리에 채워졌던 벨트를 풀어 헤쳐 남은 옷을 벗어던지고는 빠르게 알몸이 되어 화장실로 향했다.


냉수목욕.


새벽시간 치러야 할 2차 방어전을 위함이었다. 새벽 0시를 넘어선 시각이었지만 그에게 지금 잠자리에 드는 건 사치다. 노량진 외에도 전국 여기저기서 자신과 같은 목표로 정진하고 있는 경쟁자들이 천지인 현실.


“내가 자는 순간에도 상대방은 책상에 앉아 문제를 하나 더 풀고 있다.”


잠자리에 누워 공무원 합격을 꿈꾸는 순간 상대방은 합격을 향해 한 발 나아가 현실의 꿈을 향해 간다. 잘 수 없다. 아니 절대 자서는 안 된다. 그런 압박감이 겨울에 문턱을 지나 한 겨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 날씨에도 온수가 아닌 냉수를 택하게 만든 이유였다.



“하아암....”


절로 하품이 나온다. 새벽 한 시 반. 아직 잠을 청하기엔 이른 시각이지만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잠의 물결은 그를 침대위로 쓸어버리기엔 충분했다. 생명을 건 냉수마찰도 그닥 큰 효과가 없는 셈.


‘으 안 되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다. 그리고 크게 호흡을 하며 날 숨에 밀려오는 잠의 욕망을 뱉어낸다.


‘그나저나 이 형은 어떻게 된 거야? 전화기도 꺼놓고...설마 여친이랑 화해라도 한 건가? 캬, 오늘 밤 간만에 허리 좀 쓰겠네.’


자연스레 밑으로 향하는 시선.


‘아주 꼭지 틀면 녹슨 물 나오겠네. 쩝.’


사타구니에 손 한 번 넣고 다시 책상에 앉으려는 그 때. 진동으로 전환해둔 제길의 휴대폰이 책상 전체를 떠는 진도 8의 강진이 일어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 시간에 누구지?’


번호의 형태로 보아 스팸은 아닌 것 같고,


‘혹시?’


과거 스쳐간 인연 중에 한 사람인가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 전화를 받는 그였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래가 가득 끓은 걸걸한 남자의 음성이었고 혹시나 운명처럼 다가온 달달한 여인과의 로맨스를 꿈꾸던 제길에게 경고를 내리며 현실을 직시시키는 그의 음성.


“동작 경찰서 형사 팀 강 인한입니다. 전 상용 씨 동생 되시죠?”


남자인 것도 모자란 형사란다.


“네? 형사요? 아 저는...친동생은 아니고 친한 동생인데...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여전히 걸걸한 목소리로 수화기를 타고 넘어오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전해준 현실은 경찰공무원을 준비 중인 제길의 두 다리에 실린 힘을 단 번에 빼앗아가기에 충분한 소식이었다.


“성애병원 장례식장입니다. 형님이 오늘 돌아 가셨습니다. 이디아 건물 8층에서 투신했어요...”


작가의말

정유년 대한민국에 찾아 온 좀비들이 당신을 찾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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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2) 17.03.29 135 4 14쪽
42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1) 17.03.26 142 4 13쪽
41 미치거나 죽거나(3) 17.03.25 153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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