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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3.05.10 10:53
최근연재일 :
2023.06.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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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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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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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2개월째 -11-

DUMMY

살아남은 수십여 척의 해적선들은 목표로 하던 큰 배로 바짝 붙어 포의 발사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포격은 멎은 지 좀 지났으나, 그 저주스러운 사이렌 소리와 붉은 등, 그에 이어지는 강렬하기 그지없는 포격과 그 거대한 사이즈에 맞지 않는 30초당 1발에 가까운 발사속도는 해적들의 전투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밤이 지나고, 어느새 해가 떠올랐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성.


연합 해적단이 몇 달간 공충도 앞바다에 나타난 배를 관측하며 느낀 것이었다. 청국, 왜국, 영국, 포르투갈의 각종 배들을 나포하고 몸값을 받아 챙겨 온 경험이 많은 홍기방과 사쓰마 사략선단이었지만, 포곽도 없이 매끈한 옆구리를 가진 철선을 나포해 본 경험은 둘 다 없었다.


아니, 이 시대에는 철선 자체가 드물었고, 그나마 동아시아 바다에 슬슬 보이기 시작한 것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증기 목선이었다. 그러니 철선에 대해서 이들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단단한 탄체로 옆구리를 쏴서 구멍을 여러 개 내어보고 침입을 해보거나, 아니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공성전을 벌여 점령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가장 강한 포에 화약을 최대한 채우고, 끝이 뾰족한 20근짜리 철제 탄체를 수십 발 쏴 보았으나, 포탄이 깨지기만 할 뿐, 적선에는 구멍은커녕 흠집도 제대로 나지 않았다. 결국 남은 것은 포위 후 사방에서 동시에 승선을 시도하거나 불을 지르거나 하는 방법뿐이었다.


포위를 유지하면서 보급을 막고, 항복을 권유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으나, 이미 포탄을 서로 주고받은 후였고, 보급 사정은 이쪽도 배 위에 있는 상황이라 오래 버틸 수 없었다. 보급선을 띄워 근처에서 조달하거나 본거지에서 싣고 오거나 하는 방법도 쓸 수 없어 보였다.


그나마 승선 후 단병접전이라면 승산이 있을 법도 했다. 적 대선은 경고방송을 하고 포를 쏘는 것 외의 다른 공격은 해오지 않았으며, 배가 포위된 상황에서도 움직임이 없었다. 필시 선원이 많지 않다는 뜻일 것이고, 일단 갑판 위에만 오르면, 적어도 단병접전에서 밀리지는 않을 자신도 있었다.


구키 류헤이는 다른 배들과 함께 적 대선의 갑판쪽으로 굵은 밧줄이 걸린 갈고리 탄을 쏴 올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침에 다시 보니 그의 배는 장군전 두 발을 맞아 배에 구멍이 뚫리고, 선원 한명이 죽은 것 외에는 큰 피해가 없었던 것이었다. 처음 출항했을 때의 하늘을 찌르던 기세와 사기는, 간밤에 사라진 배들과 사상자만큼이나 많이 사라지긴 했으나 어쨌든 저 배에만 올라 한몫 챙길 수 있다면, 그도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뻐-엉!”


배를 포위하고 있던 대선과 소선에서 갈고리 수십여 개가 쏴 올려지고, 그 갈고리에 달린 굵은 밧줄이 아래쪽에 있는 그물을 끌고 솟구쳤다. 목표물인 철선이 워낙 큰 때문인지, 갈고리 태반은 목표에 제대로 걸리지 않았고, 넷에 하나정도였다. 적선의 갑판에 걸린 갈고리도 끌고 올라간 거의 50자에 달하는 그물이 너무 높은 곳에 걸쳐졌으나, 어쨌거나 몇몇 그물은 사다리 대용으로 쓸 만큼 안정적으로 걸쳐지기는 했다.


류헤이는 휘하 칼잡이들이 걸쳐진 그물을 당겨보며 제대로 걸렸는지 시험해 보는 동안 무장을 점검했다. 등에 단창과 단봉, 허리춤에 미리 화약을 재어두고 탄환에 가죽을 물려 단단하게 끼워 둔 플린트락 권총과 왜도를 차고, 목에 12개로 나누어 둔 화약과 탄환이 든 가죽 주머니를 멘 후, 그는 휘하들을 이끌고 그물 사다리를 올랐다.


“이야아아아야아!”

“올라가기만 하면!”

“씨빨것들 대가리를 따서 쓴맛을 보여줘야!”


일부러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내뱉으며 사기를 끌어올린 류헤이와 그 일당은, 거의 9층 탑에 달하는 높이의 그물사다리를 올라갔다. 오르기만 하면, 간밤에 포를 쏴갈기던 놈들의 머리통을 날리고 모가지를 따 주리라 이를 바득바득 갈며 그렇게 수백여 명의 해적이 그물을 차례차례 기어올라 갑판에 올라왔지만..


갑판에는 아무도 없었다.


푸르스름한 회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포가 박혀있는 역시 거대한 포탑, 창문 하나 보이지 않는 탑 모양의 함교, 그 위에 불룩하니 여기저기 박혀있는, 광택 나는 시커멓고 동그란 형체들, 그 뒤쪽에 있는 거대한 연통.. 어디를 둘러봐도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그렇게 배 위로 오른 수백여 명의 해적들은, 다른 일당들이 올라오는 동안 들어갈 곳이 있는지, 혹은 사람의 흔적이 있는지를 찾아 배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칙쇼. 배가 오오오지게 크네.”

“他妈的!”


문과 입구가 군데군데 분명히 보였지만, 단단히 안쪽에서 잠겨 어떠한 곳으로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들어가 볼 만한 곳이나 사람의 흔적을 찾아 한 바퀴 도는데 걸린 시간만 해도 어언 30여분에 가까웠고, 그동안 해적들은 꾸역꾸역 배 위로 올라와 갑판과 구조물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내리찍어보기도 했으며, 잠긴 문을 따보려 애쓰기도 했다.


그렇게 헛되이 시간이 흐르고, 한 시간쯤 지나 해적들의 절반 이상이 배에 승선해서 여기저기 두들기고 다닐 때였다. 갑판과 함교 여기저기서 비죽비죽한 것들이 툭 튀어나오더니, 사방으로 강한 물줄기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것은 갑판에 승선한 해적들 뿐 아니라, 배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해적들이 몰고 온 선박에도 골고루 물줄기와 물안개를 뿌리기 시작했다. 물줄기가 얼마나 센지, 가까운 거리에서 물줄기를 직접 맞은 사람은 수압에 밀려 바다로 날아가 버릴 정도였다.


“나니잇?!”


설령 직사에 당하지 않고 비껴 맞더라도, 물에 흠뻑 젖기에 충분할 정도로 수압과 수량 모두 화끈했다. 부하가 물대포에 맞아 날아가는 것을 본 류헤이는 황급히 몸을 날려 이쪽으로 향하는 물줄기를 피하고 몸에 뭍은 액체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혹시 기름을 뿌린 후 화공을 거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던 것이다. 그의 걱정과는 달리, 물에서는 묘한 구수한 냄새와 쿰쿰한 냄새, 그리고 약간 달달한 냄새도 났고, 조금 미끈거리기는 했지만 확실히 기름보다는 물에 가까운 액체였다.


냄새가 심하지는 않았으나 어쨌거나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류헤이는, 배를 한 바퀴 더 둘러본 후, 결국 철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을 바다의 밤바람은 상당히 추운 편이었고, 온 몸이 젖은 이상, 해가 지기 전에 몸을 씻거나, 최소한 몸을 말려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해적들은 결국 별 수 없이 타고 왔던 배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불이라도 질러 보려 했으나, 배 자체에 물대포가 수도 없이 있는 것을 봐서는 어지간한 화공으로는 씨알도 안 먹힐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물대포가 나왔던 구멍을 어찌어찌 부수고 넓혀 사람이 들어갈 통로를 만들어볼까 했던 조들도 있었으나, 물대포가 나온 구멍을 통해 본 철선의 철판 두께를 보고 나니 그럴 마음조차 사라졌다. 통짜로 된 철판이 몇 치나 둘러쳐져 있는지 감도 오지 않을 정도로 안쪽까지 쇠, 그것도 보통 단단한 쇠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소수 인원만 갑판에 남기고 다시 타고 온 배로 돌아간 그날 밤, 진정한 지옥이 시작되었다.


아무런 전조 증상도 없었다.


배가 아프거나 열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몸이 떨리거나 머리가 아픈 것도 아니었다.


코와 입을 통해 들어간 콜레라균은 상당수가 위산에 녹아내리긴 했으나, 꽤 많은 숫자가 살아 남아 장 내 상피세포에 눌러 앉는데 성공했다. 대부분 전투의 피로와 스트레스로 위산이 제대로 분비되지 못했던 것이 컸다. 설령 위산이 정상적으로 나왔더라도 워낙 들어온 콜레라균의 숫자가 많아 다 잡아내지는 못했겠지만.


그렇게 장 내부에 도착한 콜레라균은 콜레라 톡신을 사방으로 뿌려대기 시작했다. 콜레라 톡신은 상피세포 표면의 수용체에 앉아 정상적인 세포 신호를 해킹했고, 장 표면 상피세포는 이를 덥석 세포 안쪽으로 끌어들여줬다. 그렇게 들어간 콜레라 톡신은 세포 안쪽에서 자신의 일부를 세포질 안쪽으로 쑤셔박았고, 곧 재앙이 시작되었다.


콜레라 톡신에서 쪼개져 세포질 안쪽으로 성공적으로 이동한 코드네임 A1은 원래대로라면 잠깐 신호가 올 때만 작동해야 할 신호기를 항상 켜진 상태로 두게 만들었고, 세포 내 신호체계는 개판이 되었다. 신호가 교란된 세포는 원래 해야 할 일과 반대로 일하기 시작했다. 물과 염소이온을 흡수하는 대신, 장 내부로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곧 쏟아낼 물과 염소이온이 부족해진 장 상피세포는 그 물과 이온을 주변에 있는 혈관으로부터 끌어오기 시작했고, 결과는 폭풍설사라는 말도 부족한 파멸적 설사의 시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장 내부의 물을 이온과 함께 몸 안으로 끌어들여야 할 세포들이 반대로 피 속의 물을 장 내부로 이온과 함께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장 내에 있는 모든 세포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그렇게 쏟아낸 양이 어찌나 많은지, 일반적인 설사의 노란색이나 갈색이 아닌, 흰색이나 투명한 색에 가까운 설사를 밑으로, 혹은 밑으로 쏟아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위로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강건하고 튼튼한 자라도 그것을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설사와 구토가 시작된 후 단지 밥 한 끼 먹을 시간 정도 지나자 사람들은 쓰러져갔다.


“사....살려....”

“우웨에에에엑!”


증상은 갑작스러운 구토, 그리고 초반에만 잠깐 정상적인 설사 색깔을 보인 이후 나타나는 뿌옇거나 약간 노란 폭풍설사.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첫 사망자는 발병 두 시간만에 나왔다.

싣고 온 식수를 충분히 마시게 했음에도, 두 시간에 한 말(약 20L)은 족히 넘을 듯한 설사를 한 선원 한명은 미이라같이 바짝 마른 모습으로 위와 아래쪽으로 뿌연 액체를 뿜어내다 죽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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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년 4개월차 23.06.13 32 0 17쪽
26 1년 2개월째 -12- 23.06.09 31 0 13쪽
» 1년 2개월째 -11- 23.06.09 29 0 10쪽
24 1년 2개월째 -10- 23.06.09 23 0 14쪽
23 1년 2개월째 -9- 23.06.09 25 0 11쪽
22 1년 2개월째 -8- 23.06.09 24 0 10쪽
21 1년 2개월째 -7- 23.06.07 29 0 10쪽
20 1년 2개월째 -6- 23.06.06 2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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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년 2개월째 +1 23.05.30 35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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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0개월째 23.05.26 39 4 14쪽
11 9개월째 23.05.25 34 3 15쪽
10 8개월째 23.05.24 42 5 15쪽
9 일곱달째 23.05.22 47 3 15쪽
8 여섯달 후 23.05.22 43 2 12쪽
7 넉달 후 -3- 23.05.16 48 2 18쪽
6 넉달 후-2- 23.05.15 48 5 22쪽
5 넉달 후 23.05.13 53 3 16쪽
4 백일 무렵 23.05.11 59 4 19쪽
3 공충도 마량진 앞 바다, 석달 후. 23.05.10 70 4 21쪽
2 4달, 조선 23.05.10 93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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