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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3.05.10 10:53
최근연재일 :
2023.06.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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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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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8,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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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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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년 2개월째 -6-

DUMMY

“헌데, 저 포는 비록 위력은 강하다고는 하나 한 문 뿐이고, 적은 수백여 척의 작은 배로 나뉘어 들어올 터인데 적선이 배 아래쪽으로 파고 든다던가 우회하여 마을을 덮치면 어찌 방어하시겠소?”


한창 마량진 일대의 방어 계획을 수립하며 토의하던 차에 당연하지만 아픈 질문이 날아들었다.


“쌍열 산탄총을 찍어내서 보급하는 방법이 있겠으나...시일이 걸리긴 할 것입니다.”

“탄약을 찍어내는 데에는 얼마나 걸리겠소?”


항상 그럴듯한 계획은 있기 마련이다. 시간과 예산이 발목을 잡으니 문제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다 뿌리고 훈련시키고 하려면 최소 두어달은 걸릴 것입니다. 넉넉히 탄환을 제공해 주려고 한다면 1년도 모자라겠지요”

“당장 쓸 수 있는 무기가 있어야 하겠구려.”

“그런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돌?”

“여기는 석전꾼이 없습니다..”


석전, 즉 돌을 던지며 하는 싸움은 민속놀이로서 오래 전부터 장려되던 풍습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이 지역에서도 석전은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일어나곤 했었으나, 지금으로 따지면 아마추어 리그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프로들이 하는 석전은 인구가 많고 풍요로운 지역, 즉 평양이나 한양, 혹은 안동 일대에서 유명하다고 했으나 이쪽에는 그 정도로 석전이 뜨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석전의 프로들을 석전꾼이라 하여, 단순히 돌을 던지고 상대 마을을 점령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용 경기장에서 탱, 딜, 오더를 따로 나누어 방패와 갑옷, 그리고 투석구 등을 갖추고 하는 전문가들이 있다는 모양이었다.


“아쉽군요. 일단 급히 토성을 쌓고 화살을 만들고, 급한대로 산탄총도 제작하여 최대한 뿌리겠습니다. 또 다른 의견 없으십니까?”


“분포는 어떻소이까?”


박규수가 의견을 냈다. 사영은 잘못 들은 것인가 하여 반문했다.


“분포? 똥을 포로 쏜다는 말입니까?”

“포로 쏜다기 보다는 커다란 물총같은 것에 똥물이나 오래 묵은 똥물에 비법을 더한 재료를 넣어 만든 금즙을 쏘는 무기입니다. 왜란 때 수성전에서 쓴 기록이 좀 있는데, 꽤 효과가 있었다고 하더이다. 화포와 조총, 창과 활에 비할 바는 아니나, 전투에 능하지 않은 백성들도 쓰기에 편하고 만들기 편하며, 적의 눈을 상하게 하고 상처를 덧나게 하여 전투를 치를 수 없게 만드니, 그 효용이 제작 방법이나 훈련의 간편함에 비해 매우 좋다고 하더군요.”

당장 부족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으나, 일단 머릿수를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생각해볼만 했다.


“군관이나 격수보다는 일반 백성들이 쓰기 편한 무기군요?”


사영의 말을 정약용이 받았다.


“그렇다오. 군기가 잘 서 정예함이 날카로운 갑사와 군관이 충분하다면 생각해 볼 이유가 없겠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고려해 볼 만 하오. 전쟁은 군관이 하는 것이 제일 상책이나, 어디 적이 사정 보면서 쳐들어오고 노략질을 하겠소? 백성들도 민보와 같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간단한 방어는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할 것이오. 왜란이 한창일 때야 크게 만들어 수십 보씩 날아가는 분포를 만들어 썼으나, 요즘 같은 상황에서 왜구나 해적 무리 소수를 상대하기 위해서라면 작게 만들어 휴대하기 편하게 만들어 놓으면 배 위에서 쓰기도 좋을 것이오. 대나무 한 마디를 잘라 작은 구멍을 뚫고, 반대편 끝에는 솜이나 천을 싸맨 나무막대기를 끼워 만들면 되는 것이니, 사실상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물총이 유사시에는 수성용 무기가 되는 것이라오.”


“똥물을 쏘는 물총같은 수성 무기라.. 일종의 생화학 무기군요.”


한번에 치명상을 입히는 무기는 분명 아니지만, 전투능력을 없애고 숙련도가 낮아도 쓸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이 배도 따지고 보면 바다 위에 떠 있는 성과 같은 상황이고, 수성 무기로서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면, 못 써먹을 리 없었다.

다방면에 뛰어난 천재이자 후대에 다산위키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아둔 정약용은, 전쟁사와 전쟁 이론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배에 있는 포 중 단 한 문만이 사용 가능하고, 왜구와 해적이 곧 쳐들어 올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방어용 무기와 방어 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과거 사례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중 하나가 지금 한창 이야기하고 있는 분포, 즉 똥포였다.


“뿐만 아니라, 전투를 치르게 되면 열에 여덟명 이상은 어떤 식으로든 충격을 받고,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린다오. 죽거나 다치는 사람도 있지만, 몸은 상하지 않더라도 마음이 상해 영영 전투 이전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자들도 많소. 충격을 전혀 받지 않는 사람은 열에 하나가 안 된다고 하오. 그래도, 자신이 사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또한 자기가 직접 자기 손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면, 마음에 상처를 입어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는 훨씬 덜 할 것이오.”


의외였다.


정약용은 지금 PTSD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거의 백수십년이 지난 후에야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문제를 이미 이해하고 있던 것인가. 대화가 잠시 끊겼다. 사영이 별 대답이 없자, 정약용이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원래 나는 어릴 적부터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다오. 나 스스로도 유배 생활도 오래 해봤고, 형님과 동생이 유배지에서, 혹은 형장에서 돌아가시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어느 새인가 나도 마음이 병들어가고 있었소.”

“그렇군요.”

“그래서 스스로 공부를 좀 했었소. 나는 어찌하여 고통을 받으면서도 살아남아야 하는가. 몰락한 폐족으로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내가 좋아하던 사람은 나를 떠나고, 싫어하는 사람은 어찌하여 평생에 걸쳐 만나고 부딪히게 되는가. 내가 바라는 것은 얻지 못하는데 바라지 않는 것은 어찌 쉽게 얻어지는가 등등.. 그러는 동안 작은 깨달음을 얻은 바 있으니,,”


정약용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그대와 그대의 배와 각종 기물들이 현세의 지옥에서 살던 저 사람들에게 희망을 꽃피워 주었고, 열매를 맺게 해 주었소. 씨를 뿌리고 종자를 심는 편리한 법이 있어 오곡이 번성하였고, 경운기와 상하수도의 제도까지 민간에 전하여 삶이 참으로 풍요로워졌으니 그 공은 백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오. 허나, 재물과 풍요가 있는 곳에는 이를 시기하고 원하여 힘으로라도 빼앗기를 원하는 자가 반드시 있소. 가깝게 봐서는 청 남부에 크게 무리를 지어 있는 홍기방이라 하는 해적과 저 옛날 삼국시대부터 약탈을 일삼던 왜구, 그리고 가렴주구를 일삼는 조선의 썩어빠진 위정자들이 있을 것이고, 멀리 보자면 청국, 왜국 전체, 그리고 요 몇 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양선을 보내어 오는 서역 나라까지 대비를 해야 할 것이외다.

어찌 보면, 옛날 춘추전국시대처럼 전란이 계속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을 터. 싸워 지키는 것도 중요하고, 싸워서 죽고 다치는 이들이 최대한 나오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며, 싸움에 명분과 의미가 있어 마음이 다치치 않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할 것이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싸울 일이 없게 만드는 것이고, 그 다음 상책이라고 하면 이겨 두고 싸우는 것이며, 싸워도 사람이 상하고 다치고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 것은 하책이라 할 것이외다.

이야기가 옆으로 다소 샌 느낌이 드네만, 늙은이의 기우라 생각하시고 이해하여 주시오. 백성들이 싸울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싸운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궁리하여 둔 바가 있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랄 따름이오.”


새로운 무기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한 긴 이야기는, 정약용이 건넨 책 몇 권을 받는 것으로 일단 끝났다. 책의 제목은 “민보의”와 “비어고”였는데, 각각 지금의 향토예비군에 관한 내용과 전국 산성들의 목록, 스펙 및 특성, 그리고 공격과 수비에 특화된 무기 체계, 편제, 마지막으로 청과 일본의 풍속, 습성, 국민성 및 예상 가능한 적의 거점도시 및 기동로까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덕분에 사영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으니, 구현 가능한지 생각을 좀 해 보고 그 중 가능한 것들의 실물을 한번 만들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똥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떠오른 것은 비살상무기, 급조 화기, 그리고


“생화학무기.”


생화학무기에서 생각에 떠오른 것은 세가지였다. 콜레라, 보툴리누스, 그리고 트리코테신. 그 중 역시 똥물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면 콜레라였다.


독성이야 보툴리누스나 트리코테신이 압도적이긴 했으나, 현재 상황에서 배양하기 쉽고 다루기 쉬운 쪽은 단연 콜레라였다. 보툴리누스균의 배양은 산소가 들어가는 순간 끝나는데다 포자를 잘 형성하는 특성상 유출되는 경우 대형 사고가 벌어지는 것이 확정이고, 결정적으로 유출되어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보툴리누스 독소에 대한 항체를 생산해서 혈관 내에 대량으로 때려박는 것이 현재 기술로 해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 불행하게도 항체를 대량으로 조합해 생산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려면 최소한 20세기 후반, 혹은 21세기 초반급의 분자생물학 실험이 가능한 실험실과 장비 제작이 가능해야 했다.


트리코테신은 몇 가지 곰팡이가 만들어내는 독소로 피부로도 잘 흡수되는 주제에 물에도 잘 녹고, 독성도 강력한데다 DNA, RNA, 리보솜, 미토콘드리아 등등을 공격하며, 방사선에 피폭된 것과 같은 증상을 일으키며, 대량 생산도 편안한 편이나 역시 해독제가 없었다. 역시 유출되거나 뿌렸다가 기상 변화로 뒤집어쓰기라도 한다면..


반면, 콜레라 균은 일단 키우기가 저 위 두가지에 비해 압도적으로 간단했다. 효모추출물과 소금, 포도당정도만 적절하게 섞어 준 배양액에 넣고, 온도도 37도를 정확하게 맞출 필요 없이 따뜻하게, 그러나 너무 뜨겁지는 않게, 45도만 넘지 않으면 무럭무럭 잘 자라는 것이었다. pH도 적당히 맞춰주면 되는데다 에어로졸로 뿌려버리거나 먹는 물만 오염시키면 그다음은 알아서 잘 퍼질 것이다. 잠복기가 1~5일로 꽤 빠르고, 다수가 좁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해상이라면 당연히 감염도 쉬울 것이며, 다른 증상은 없으나 그 강력한 설사와 이어지는 탈수로 인해 일단 증상만 나타난다면 충분히 적 무력화도 가능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현재 가지고 있는 재료로도 치료가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게 19세기 조선에 겉보기에는 똥물을 쏘는 물총이 등장하게 되었다. 아이들 장난감 같은 대나무 물총이지만 내용물은 콜라레균이 그득한, 원시적인 생물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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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0개월째 23.05.26 39 4 14쪽
11 9개월째 23.05.25 34 3 15쪽
10 8개월째 23.05.24 41 5 15쪽
9 일곱달째 23.05.22 47 3 15쪽
8 여섯달 후 23.05.22 43 2 12쪽
7 넉달 후 -3- 23.05.16 48 2 18쪽
6 넉달 후-2- 23.05.15 48 5 22쪽
5 넉달 후 23.05.13 53 3 16쪽
4 백일 무렵 23.05.11 59 4 19쪽
3 공충도 마량진 앞 바다, 석달 후. 23.05.10 70 4 21쪽
2 4달, 조선 23.05.10 93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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