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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3.05.1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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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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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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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4달, 조선

DUMMY

마량진 가까이로 말을 몰아 간 박규수는, 마침 그 곳에 와 있던 공충 감사 홍희근을 만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이양선이 마량진 앞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홍희근이 보고를 받자마자 황급히 군사들을 이끌고 말을 달려 왔던 것이었다.


지난 봄과 여름에 왔던 영길리 배를 제대로 문정하지 못하였다고 황해도 조니진의 수사와 관할 구역이었던 장연 현감이 파직당하고, 감사에게도 죄를 묻기 직전까지 갔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이양선의 도래는 각 도의 수령과 감사들에게는 가뜩이나 신경 쓰이는 일이었는데, 이번 이양선은 더군다나 기존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배에 대한 정보가 믿기 힘든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직접 가서 자세히 보고 장계를 올려야 하리라.’


그렇게 말을 달려 마량진에 왔지만, 홍희근은 마음이 더욱 답답해지고 말았다. 직접 눈으로 보자니, 배에 대한 보고가 과장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축소되어 올라온 때문이었다.


비록 이곳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긴 했으나, 저 멀리서도 그 크기가 예사롭지 아니한 데다 회색빛을 띈 것이 검붉은 얼룩까지 여기저기 흘려내려 있는 것이, 누가 보더라도 피를 폭포처럼 흘렸던 흔적이 있었던 때문이었다. 돛도 없고, 모양도 각진데다 군관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비죽하게 나와 있는 그것이 거대한 화포라는 것 또한 가까이 가기에는 두려운 것이었다.


게다가, 마량진에는 저 영길리 말이나 청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 또한 없었다. 그러던 찰나, 비록 젊다고는 하나 청국말에 능하고 주상 전하와 세자 저하를 가까이 모시던 박규수가 내려왔다고 하니, 홍희근은 마음이 꽤나 놓이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놓이는 것은 박규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도가를 피해 사실상 도주에 가까운 상태로 멀리 공충도까지 내려왔으나, 그는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문물에는 더더욱 관심이 많은 젊은 선비였다. 그런 그가 홍희근이 살갑게 맞아주며 같이 가보자고 하니, 어찌 마음이 동하지 않았겠는가.


“환재가 학식이 높고 당선이나 청국의 이양선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많으니, 내 마음이 무척이나 놓이오. 같이 가서 문정을 해 보고, 상께도 연명으로 장계를 올리는 것은 어떠하오?”

“이제 벼슬도 떨어지고 떠돌아다니는 저를 높이 여겨주시니 참으로 감읍할 따름입니다. 마침 저도 저 양선에 흥미가 동하는 참이었으니, 어찌 제안해 주신 점을 거절하오리까?”


그렇게 그들은 마량진에서 판옥선 한 척을 내어 군관들 및 수졸들과 함께 그 이양선을 향해 갔다.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으나, 직접 본 배는 보고받은 정보보다도 더 어마어마했다. 술렁이는 수졸들을 다그쳐 노를 저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배의 크기에 오금이 저려왔다.


그것은 배라기보다는 강철로 된 바다 위 요새라고 해야 옳은 표현이리라.


그가 듣기로는 예전에 왔던 영길리의 군선이 길이 30파(약 45m)정도였다고 들었는데, 이건 그 열 배는 될 법했다. 게다가 멀리서 보였던 검붉은 자국은 실제로도 피였다. 배 여기저기가 갈라지고 뚫어진 곳이 있었는데, 그곳을 통해 조금이나마 볼 수 있는 배의 단면은 더더욱 무서운 것이었다.


“이 깊이가 몇 치나 될 것 같소이까?”

“...다섯 치는 넘겠습니다.”


배에 깊숙이 패인 자국은 완전히 뚫린 것은 아니었음에도 그 들어간 깊이가 다섯 치가 넘었는데, 그것 중 쇳덩이가 네 치는 되었다. 더 두려운 것은, 그 주변에 마치 상어 껍질같은 쇠 갑피와 조갯살같은 살점이 있었는데, 그것이 마치 아물어 들어가는 상처처럼 패인 곳을 감싸고, 딱지도 앉아 있는 부분이 있던 것이었다. 출혈 또한 꽤 있었던 것 같았지만, 지금은 거의 지혈이 된 모습이었다.


“이..이게 당최 무엇이란 말인가...”

“철과 살덩이로 이루어진 배라니.. 이런 이양선은 이전에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배를 한 바퀴 돌며 그들이 본 것을 문서로 기록하며, 때때로 목청이 좋고 담력이 있는 군관이 소리를 질러보았으나, 답은 통 없었다. 아니, 소리라기 보단 악을 쓰는 것에 가까웠다. 홍희근은 군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만한 배에 겁먹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양선은 문정을 받으라!”

“통 답이 없군요.”

“배가 이렇게 상했으니, 안에 탄 자들도 변을 당한 것이 아닐지요?”

“허허.. 승선을 해볼 수 있으면 좋겠으나, 어찌 저 위를 오른단 말이오. 이럴 줄 알았으면 공성용 사다리라도 짜서 가져 와 볼 것을 그랬소이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이양선은 문정을 받으라!”


옆에 서있던 젊은 군관이 다시 크게 소리를 질렀다.




곧 배 위쪽 탑 위에 지은 집 같은 곳에서 누군가 나왔다. 얼핏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기는 하였으나 얼굴은 햇볕을 받지 못하였는지 새하얀데 눈은 붉은 빛을 내고 있었다.


‘배만 크고 괴상한 것이 아니라, 사람 또한 크고 괴상하게 생겼구나.’


내려 주는 줄사다리를 타고 오르며, 홍희근은 그렇게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허여멀건한 사람의 형체를 한 것은 우리 말을 할 줄 알았다. 무언가 좀 군데군데 이상하긴 했지만.

문정하러 왔다는 조선 지방관과 군관은 거의 사흘 내내 배 위에서 먹고 자고하며 두 척의 배에 대해 자세히 물었고, 사영도 그들에게 지금 이 곳에 대해 꽤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지난여름 두 번 영국 배가 다녀갔고, 당시 문정을 자세히 하지 못하고 전후 사정도 자세히 알아보지 못한 채 보고하였던 것 때문에 군관과 지방관이 모두 파직당하는 징계를 받을 번 하였다고 한다.


그나마 이양선 출몰이 잦아지고 있기 때문에 접촉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직을 수행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과 더불어 오는 족족 파직당할 것이 뻔한 자리가 되어버린 관직을 서로 하지 않겠다는 통에 목이 아직 붙어있는 터라 가능한 한 자세히 나와 이 배에 대해 알아보려 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청 연호로 도광 12년이라고 한다. 연도로 따지면 대략 1832년이 맞을 것이다. 영국 배가 다녀갔고 통상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아마 청나라와 일본에서도 곧 대격변이 일어나던 시기인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비어있는 부분이라 무척 아쉬웠다.


역시 일단 배를 복구하고 기억부터 찾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혼자서 작업하기에는 한 천년쯤 걸리지 않을까 싶다. 그 전에 배의 동력이 수명을 다 할 확률이 높을 것이고.. 차라리 사람들을 모아 교육시키고 고용하는 쪽이 더 빠를 것이다.


사영은 문정을 마치고,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하고 있는 홍희근에게 이야기했다.


”배가 많이 상했고,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으니 인력이 필요합니다. 마침 배에 양식으로 쓸 수 있는 녹말과 메주가루 비슷한 것은 풍부한 편이고, 배가 어느 정도 수리되고 나면 연료로 쓸 수 있는 기름과 의약품의 생산도 가능하니, 그것을 품삯으로 일꾼을 모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홍희근이 답하기를,


”타국의 배와 행상하는 배라면 상에게 알리고 대국에도 답을 청하여 그 답을 받은 후에야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오. 허나 말한 대로 타국의 배도 아니고 행상하는 배도 아니라면 사정이 다르다고 생각되오. 지금 공충도도 그렇고, 전국적으로도 수한(장마와 가뭄)과 기근이 극심하여 한 낱의 쌀과 한 푼의 돈도 아쉬운 상황이니 연료와 식량을 삯으로 사람들을 부리는 것에 대해서는 빠르게 답을 달라 청해보겠소.”


박규수가 웃으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 만남이 부디 서로에게 좋은 일이 될 수 있도록 저도 힘 써보겠습니다. 제가 느낀 바를 저 위에서도 느낀다면, 조만간 좋은 답이 올 것이오.”


홍희근은 격변하기 시작하는 세상을 봐 온 관리였다.


대사간으로 사간원에서 자기 목도 여러 번 걸고 직언을 올려보기도 하였고, 지금 왕과 조정에 희망을 가져보기도, 절망을 해보기도 했다. 두 번 청나라를 다녀오면서 물산의 풍족함과 도시의 웅장함에 놀라기도 하였고, 영길리에서 퍼뜨리기 시작한 아편의 폐해도 풍문으로나마 들어 봤었다.


오랜 세월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나라가 점점 기울어 가는 것을 느끼지 못한 바 아니었다. 관직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홍경래의 난을 겪으며 나라 돌아가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난 이후 지금 왕이 손을 놓고 비변사에 일을 죄다 맡겨 버리는 것도 보았다. 공충도에 와서도 폭력을 읾삼는 무리들이 관원을 두들겨 패고 감옥에 있는 죄수를 탈옥시키는 일이라던가, 세곡을 실어 나르던 조운선이 털리는 일이라던가, 경종 대왕의 태실이 도굴당하는 사건 등등을 겪으며 한번 갈아엎어야 할 때라고 생각하던 터였다.


이게 다 나라가 빈궁하고 힘이 없어 그런 것임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그에게, 영길리 배와 이번 초대형 배의 출현은 엄청난 충격과 전율을 주었다. 그는 그 충격을, 세자와 공주들이 연달아 죽고 나서 사실상 일을 놓아버린 무기력한 왕과 조정 중신들도 느끼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일주일 뒤, 홍희근의 장계를 받은 비변사는 발칵 뒤집혔다.


"12월 11일 마량진 갈곶 앞바다에 이상한 모양의 큰 배가 표류해 이르렀습니다.


-중략-


여기까지 온 사정을 물어보니 자기도 연유를 잘 알지 못하고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아니하였다 하며, 배도 산만큼 거대한지라 사흘간 머무르며 자세히 문정을 하였습니다.


배 모두 선체는 참외를 쪼개 놓은 것 같이 생겼으며 머리는 뾰족하고 꼬리 부분은 둥글둥글한데 길이는 각각 백칠십오파(약 270m)이고 너비는 이십이파(약 33m)에 이르옵고 선재는 갑철과 석회암과 아교질과 세포 조직이라는 것으로 만들어져있다 하옵니다.“


비변사 제조 김기은이 이야기했다.


“저번의 영길리국은 청국과 크기가 같고 권세도 비등하여 조공도 바치치 아니하는 대국이라 하였는데도 배의 크기가 30파(약 45m)에 목재로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헌데 이번에 공충 감사가 올린 글에는 배의 크기가 백칠십오파(약 270m)에 갑철 등등으로 만든 배라니요. 필시 이것은 무언가 장계를 작성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비변사 제조인 조인영은 다른 의견을 내었다.


“허나 공충 감사가 직접 장계를 올리고, 홍주 목사와 우후도 연명으로 보고하였으니 세 명이 모두 실수를 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거기다 공충 감사가 어떤 사람입니까.

호조판서와 동지사 서장관을 거친 분이고, 정조 선대왕때부터 오랜기간 관직에 계셨던 분 아니십니까. 김 제조께서 경험이 일천하고 그 분을 겪어보지 못해 그렇겠지만, 그 분은 숫자에 실수를 하였을 리 없을겁니다. 뒷 내용도 이어 보시면 참으로 대단한 배가 아니라 할 수 없겠습니다. 어느 나라 배도 아닌 것이 참이라고 한다면 공충 감사의 말대로 외인이라 할지라도 중히 쓰지 아니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경험이 일천? 거 말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니오?"


김기은은 안동 김문의 일원이었고, 조인영의 본관은 풍양이었다. 올해 안동 김문의 거목이었던 김조순이 죽고 나자, 그나마 막후에서 실리만 챙길지언정 앞으로 나서지 않던 그의 뜻을 이을 자는 없었다.


안동 김문의 제어는 풀려버렸고 비변사를 비롯한 궁궐 전반에 안동 김문이 쏟아져 들어오며 권력을 빠르게 장악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반면, 당시 왕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던 효명세자의 장인 조만영은 세자가 살아있던 당시 안동 김문과 자웅을 겨룰 만큼 세력을 키웠으나 세자의 사후, 권세가 확연히 줄어드는 모습이었다. 조인영은 그 조만영의 동생으로, 영의정까지 지냈던 인물이니 자연스럽게 안동 김문과는 대립할 수 밖에 없었을뿐더러, 요즘 말로 하자면 낙하산이 들어온 셈이니 무슨 말을 하건 고깝게 보일 수 밖에 없었으리라.


비변사 제조 정기선이 김기은과 비슷하게 부정적인 의견으로 말을 거들었다.


“맞습니다. 또한, 그 정도로 큰 배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면, 대저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저만한 배를 만들었다는 것입니까. 이는 필시 거짓일 가능성이 높으니 처리에 있어서 신중히 해야 할 것입니다.


내자불선 선자불래라, 선한 사람은 오지 않고, 오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 하였습니다. 배를 몰고 온 자가 말은 통한다고 하니 문정관을 파견하여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나, 일단 의도는 불순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정기선은 경상도 관찰사로 있던 시절, 왜인의 피해를 겪어본 일이 있었으며, 왜국의 사정에도 상당히 밝은 편이었다. 문신으로서는 드물게 군사적인 안목이 있는 편이었으며, 당시 문신들로만 채워져 원래대로라면 국방을 담당해야 할 기관인 비변사가 제 기능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왜국에 의한 피해를 경험한 때문에, 외세에 대해서는 강경한 대응을 주장하는 매파에 가까웠다.


그런 정기선이 다시 말을 받았다.


“저만한 배가 오가는데 대국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저번에 영길리 배가 온 사실도 청국 예부에 들여보낸 바 있으니, 이번에도 우리나라에 대선이 와서 정박한 사실을 알리고 어찌 할지 처결을 바라는 것이 좋겠습니다.”


비변사 부제조 김로가 이를 반박하며 이야기했다.


“어허, 장계의 이쪽 부분을 보시지요. 여기서 이야기하는대로라면, 지금 배의 상태가 심각하고 사람도 한 명 뿐이라 수리할 인력과 자재가 매우 시급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곤궁한 상태를 보고도 외면하는 건 군자의 도리가 아니지요.”


김로가 이야기한 홍희근의 장계 중간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배에는 서역 숫자로 6이 선수쪽에 써 있었습니다. 갑판에는 큰 구멍이 뚫려 크게 상한 곳 하나와 작은 상처가 여기저기 나 있는 것이 심히 곤란한 상황을 겪은 듯 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스스로를 움직일 동력도 부족하고 수리할 곳이 많아 철과 각종 금속, 물자가 시급한 상황이라 하옵니다.”


그러자 다시 정기선이 장계의 한 부분을 들며 반박했다.


“이 부분을 보시오. 평범한 이양선이라면 응당 구휼을 하고 수리에 필요한 물자도 대어 주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이 배는 군선이 아니오. 게다가 이 포에 대한 보고를 보시오”


정기선이 가르킨 부분은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그보다 큰 배에는 영길리 글이라 하는 것과 서역 숫자로 X63N이라고 써 있었고 앞쪽과 뒤쪽에 거대한 철로 된 집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집 같이 생긴 것 앞쪽에는 포구가 열두치(약 400mm)가 넘고 길이가 이백여 자(약 60m)에 달하는 포가 달려있고, 뒤쪽에는 사각형으로 각진 그보다 더 큰 포가 달려있었사옵니다.”


정기선이 말을 이었다.


“천자총통이라고 해도 이렇게 거대하지는 않을 것이오. 포구가 열두치에 길이가 이백여 자라니,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이오.”


이런 식으로 의견 하루 내내 토론을 벌이던 그들은, 일단 비변사 명의로 주석을 달아 내일 경연에 올리기로 하였다. 사안이 중대한 것도 있었지만, 각자 생각이 다른 때문이기도 했다. 당대 왕은 이미 의지를 잃고 사실상 국정에 손을 놓은 상태였고, 대리청정하던 세자와 그에 이은 딸들의 죽음 이후엔 사실상 폐인 생활을 하고 있던 터였다.


사실상 왕은 손을 떼었고,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가 국정 주도권을 두고 치고받고 하던 때라 이번 사건을 어떻게 유리하게 써 먹을 것인가를 두고 비변사와 편전에서 벌어진 격론은 결국 공충 감사의 바램과는 달리 길고 지루하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사흘이 넘게 걸려 나온 결론은 결국 “청국 예부에 문의를 넣어 그 답에 따른다.”였다. 빠르게 잡아도 석달은 걸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실제 청국에서 답신이 온 것은 넉달 뒤였다.


그동안 조선 중앙 정부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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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0개월째 23.05.26 35 4 14쪽
11 9개월째 23.05.25 33 3 15쪽
10 8개월째 23.05.24 40 5 15쪽
9 일곱달째 23.05.22 46 3 15쪽
8 여섯달 후 23.05.22 40 2 12쪽
7 넉달 후 -3- 23.05.16 46 2 18쪽
6 넉달 후-2- 23.05.15 43 5 22쪽
5 넉달 후 23.05.13 48 3 16쪽
4 백일 무렵 23.05.11 56 4 19쪽
3 공충도 마량진 앞 바다, 석달 후. 23.05.10 67 4 21쪽
» 4달, 조선 23.05.10 91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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