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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3.05.10 10:53
최근연재일 :
2023.06.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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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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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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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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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넉달 후-2-

DUMMY

“허허, 배 한척이 한 고을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한 식량을 싣고 온 것도 아니고, 만들어 왔다는 것이더냐?”

“그렇습니다.”


한양에 도착한 감찰관은 비변사에 들르기 전, 먼저 김유근의 집에 들렀다.


법도대로라면 당연히 조정에 먼저 보고를 했어야 했을 것이나, 작금의 조선은 안동 김문과 풍양 조문의 나라나 다름 없어진 터였던 것이다.


당연히 감찰관 또한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적어 온 공충도의 이양선과 그것이 한 일들에 대해 먼저 김문에 들러 보고를 올린 것이다.


박규수와 홍희근이 연명으로 올린 글이 이양선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면, 감찰관이 올린 보고는 그것이 석 달간 한 일에 대한 것들이 주 내용이었다.


“청 황제가 나포를 명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렇소이다. 게다가 그 배가 정상인 상태도 아닌 터임에도 그 정도 식량을 대고, 우마를 대체해 수레를 끌고 배를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어 내었다고 하니, 제대로 수리를 마치고 나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소이다.”

“일단 그 화포만 하더라도 본디 오백근짜리 포탄을 천리(약 450km)까지 날려 보낼 수 있다지않소. 한양에서 쏘면 부산까지 날아간다니,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공충도에서 능히 도성을 때릴 수 있을 거외다.”

“쌀 대신 키워서 먹을 수 있는 벌레와 녹말가루같은 것을 준다고 하니, 이것을 좀 더 많이 만들게 하면 전세를 더 걷을 여력이 생기지 않겠소이까?”

“기왕이면 그 방법을 알아내어 우리만 좀 써 보는 것도 좋지 않겠소이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이양선의 도래가 확실히 긍정적이라는 의견들이었다.



기존에 왔던 다른 이양선들과는 달리, 서학을 퍼뜨리려 하는 것도 아니고 통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 그저 배를 수리하는 데 필요한 일을 시키고 그 삯으로 식량을 준다는 것에 대해서는 세도가들 입장에서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껄끄러운 것은 따로 있었다.


“헌데, 백성들에게 언문과 산술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연유로 가르친다고 하더냐?”

“복잡한 기기를 다루고 도해를 최소한이라도 읽고 이해하려면 언문과 산술은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더이다.”

“언문과 산술이라...”


홍경래의 난 이후 조정은, 정확하게는 세도가들은 또 다른 반란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매우 우려하고 있었다.


거듭된 흉년으로 인한 식량난과 삼정의 문란에서 오는 심각한 생활고에 백성들의 불만은 위험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세도가들도 곧 터지리라는 예상을 하고는 있었다.


홍경래의 난때도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가혹한 처벌, 즉 주동자 뿐 아니라 단순 가담자들까지도 모조리 목을 따버리거나 노비로 만들어버리는 조선 역사, 아니 한반도 역사를 통틀어 유래 없는 처분을 내린 바 있었다. 그러나 그런 처분을 내린다고 한들 공포만으로 불만을 잠재우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불만이 결집되지 않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백성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었고, 그래서 현 세도가들은 꽤 오래 전부터 그들 가문을 제외한 다른 백성들과 양반들이 무언가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탄압하고 있었다.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그저 곡식 약간과 광대놀음만 있으면 그뿐인 것을...”


백성들을 가르치는 것이 좋은 일이라 여기던 감찰관은 그 말에 잠깐 당황했으나, 곧 낮빛을 바꾸고 다시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박규수가 뭇 사람들에게 그곳에서 가르치고 있는 일들을 널리 알리겠다고 책을 쓰고 있었는데말입니다... 그것을 여러 권 찍어 한양에 뿌리겠다고 하고 있었습니다.”

“뭣이?”


“그것은 막아야 한다. 육로와 수로 양 쪽 모두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고, 막으라고 일러라.”


그렇게 해서, 박규수의 움직임은 공충도를 출발하는 순간부터 안동 김문의 감시망에 걸리게 되고 말았다.


정조 15년, 신해년에 금난전권을 폐하고 누구나 상업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지도 어언 사십여 년, 마포나루는 그야말로 조선의 가장 큰 무역항이자 도매시장이 되어있었다.


조선의 육로는 예나 지금이나 몇몇 도로를 제외하면 도보로 이동 가능한 소로에다 장마나 홍수, 폭설, 빙결 등의 자연에 크게 영향을 받는 터라 수운이 대부분의 물동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수로를 통한 쌀과 소금 운송을 하는 상인들이 조선 초부터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정조 때에는 이미 쌀 1천여석을 실을 수 있는 배가 수백여 척에 이르고, 운임 수입만 해도 1만석을 크게 웃도는 커다란 상인 집단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들을 가리켜 경강 상인, 혹은 줄여 강상이라 불렀다.


덩치가 커진 강상은 수운으로 얻는 소득 뿐 아니라, 넓은 유통망을 바탕으로 좋게 말하면 유통 물량 조절, 그리고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자면 매점매석과 독과점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였다. 일부 상인들은 더 나아가 수송물의 일부를 횡령하거나, 아니면 화물을 홀라당 해먹고 배를 고의로 침몰시켜 증거를 인멸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정조때만 하더라도 이를 바로잡기 위해 협잡질을 하는 상인을 단속하려 시도하였고, 강상들도 몸을 사리기는 했었다. 그러나 정조 사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상업에 밝은 자가 조정에 없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경강 상인들은 그 자본력을 바탕으로 주요 권력자에게 상당한 금액을 상납하고 현대로 치면 조폭이나 마피아라고 할 수 있는 왈자들을 몰래 부리며 위로 아래로 크게 해먹는 것이 현실이었다.


물론, 강상에게 상납을 받고 뒷배를 봐 주는 주요 권력자들 중에는 안동 김문과 풍양 조문도 당연히 들어있었다. 양 가문에서 수운과 배에 대해 대해 나름 전문가집단이라 할 수 있는 경강 상인들에게 이양선에 대한 정보를 구해오라 요구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실제로, 강상은 세도가들의 지시가 있기 전부터 이미 이양선과 공충도의 사정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강상은 주요 수입이 해운인 만큼, 배를 만들고 유지하고 수리하는 일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저번에 왔던 영길리 이양선과 이번에 왔다는 큰 배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고, 박규수가 이양선과 접촉한 것도 조정의 누구보다도 빠르게 알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박규수가 타고 온, 특유의 텅텅거리는 소리를 내며 등장한 경운선은 사람들과 상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마포나루 근처에서 가장 큰 여객(상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물품을 보관해주며, 거래 중개도 해주는 조선 특유의 상업시설) 주인인 김재순은 묵은 쌀을 꺼내 물을 부어 다시 가마니에 넣는 작업을 감독하며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저 배는 돛도 안 올리고, 노꾼도 없는데 강을 잘도 거슬러 올라오는구먼. 저런 걸 전에 본 적이 있나?”

“오늘은 중요한 날이야.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말라구.”


그 옆에는 역시 한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쌀 상인 정종근이 비교적 상태가 좋은 쌀을 김재순의 창고에 넣고, 물을 부어둔 묵은 쌀이 든 가마니를 소에 옮겨 싣는 작업을 보고 있었다.


“텅텅텅텅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저게 그 공충도 마량진에 등장했다는 그 배인가보구먼.”

“어? 그게 한양까지 왔는가?”


그제서야 정종근은 고개를 돌려 감재순이 보고 있는 쪽을 보았다. 그 텅텅거리는 소리를 내는 배는 그나마 좀 한산한 나루쪽에 가서 섰고, 곧 텅텅거리는 소리가 끊겼다. 배에서 젊은 선비 하나와 그 일행들이 곧 배에서 책더미와 꾸러미들을 뭍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잘 되었구먼. 안 그래도 윗선에서 이양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수소문해 달라 했는데, 그대로 잡아가면 되겠네그려.”

“양반 같은데 뒤탈 나지 않겠는가? 보는 사람도 많은데.”


“뭐, 그쪽 양반들이 뒤는 봐 준다고 하였으니. 사정이 급하니 다소 손을 거칠게 쓰더라도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확보하라고 하였다네. 일단 쌀 작업은 잠깐 미루고 저놈들하고 배부터 잡자구.”


김재순이 하던 일을 중단시키고 아랫것들을 모으고 왈자들을 부르러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면서, 정종근은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배를 하루 내내 타고 온 박규수는, 마포나루에 닿자마자 뭍에 내렸다


"우욱! 우웨에엑!"


그래고는 그대로 더 이상 나올 것도 없는 속을 한번 더 비워낸 후 그대로 그 자리에 퍼졌다. 생각보다 빠르게 온 것은 좋았지만, 배 자체의 흔들림에 엔진 특유의 진동이 더해진 것을 하루 내내 경험하면서, 그 독하다는 뱃멀미를 직접 경험해 본 것이었다.


먹은 것을 다 게워내고 좀 괜찮은 줄 알았는데, 마포나루에 가득한 생선 비린내와 땀냄새, 똥냄새등이 섞인 악취를 맡고 나니 빈 속이었음에도 다시 신물이 올라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바로 움직일 수 없었던 박규수는 마포나루에서 사람들을 사서 책자 일부는 서울과 경기 각지에 있는 친분이 있는 선비들에게 보내고, 우마차 석 대를 빌려 나머지 책자와 짐을 먼저 실었다.


"...나도 짐짝과 같이 실려야겠다."

박규수 본인도 짐짝들과 함께 널부러져 울퉁불퉁한 서울 길에 실려 가고 있었다. 흙길에 나무 바퀴가 더해지니, 거적을 깔고 그 위에 짚으로 짠 멍석을 얹었음에도 불구하고 골이 울리고 허리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새삼 이런 길을 어떻게 다녔나 싶었다.


“역시 도로를 정비하고 길을 단단하고 평평하게 굳혀야 물산이 원활하게 팔도를 돌리라.”


박규수는 그렇게 중얼중얼하며 사영이라는 그 이양선에서 보았던 사람과의 대화를 떠올리다 그가 준 기물들을 몇 가지를 다시 꺼내어 보았다. 밀웜, 포도당 사탕, 외상에 좋다는 항생제라는 것이 든 고약과 그 외 몇 가지 약품들 하나하나가 모두 신기한 것들이었으나 그 중 가장 그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기묘하게 생긴 총이었다.


수평으로 나란히 나 있는 총구가 두 개에 총 허리를 꺾어 뒤쪽으로 뭉툭한 탄알 두 개를 밀어 넣고 닫으면, 쏠 준비가 끝나는, 조총과는 비할 바 없는 기물이었다. 글줄만 읽는 선비라 할지라도 능히 자기 한 몸은 지킬 수 있고, 손에 완전히 익히면 대저 전설 속에 나오는 악귀나 신령이라 할지라도 자웅을 겨룰 수 있다면서 사영이 준 물건이었다.


그 사영이라 하는 자도 농담을 할 줄 아는구나 싶기는 했지만, 확실히 이러한 것을 대량으로 만들어 군을 조련한다면 열 사람이 쓸 탄알을 능히 한 사람이 쏘고도 남으리라. 성벽이나 지형에 의지한다면 한 사람이 백 사람을 막아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싶었다. 호환도 많이 줄어들 것이고, 어쩌면 호랑이나 늑대 따위는 감히 민가로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할 수 있으리라 싶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우마차를 끄는 소는 무심히 길을 걸어 마포나루에서 도성으로 가는 길 남동쪽에 있는 작은 고개에 이르렀다.


“뭔가 이상합니다요.”


가노 한 사람이 무언가 수상함을 느꼈는지 말을 꺼냈다.


“무엇이 말이냐?”


그러고 보니 아이고갯길을 다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도성 중심에서 인천이나 마포나루 쪽으로 가려면 여기 아이고개나 여기서 동쪽으로 좀 더 가야 있는 만리재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이 길은 항상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 길이었다. 그런데, 더운 낮이라 해도 한여름도 아닌 이 때, 사람이 없다니.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 못해 언덕 길 위와 뒤쪽 아랫길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와 길을 막아섰다. 손에는 하나같이 곧은 나무 지팡이나 대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삿갓을 눌러 쓴 자들이 대다수였다. 비단옷 위에 허름한 옷을 걸치거나, 나막신을 신은 자들도 보였다.


“거기 오시는 젊은 선비가 이번에 공충도에 왔다는 이양선에서 유하다 오신 환재거사가 맞으시오?”


앞뒤로 길을 막고 선 자들 중, 검은 삿갓에 검은 한복, 그 위에 검은 쇄자갑-사슬갑옷-을 입은 덩치 큰 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을 건네어왔다. 등 뒤로 검은 칼자루가 삐쭉하니 매달려 있었고, 손에는 시커먼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괴한이 자신을 알아보자, 박규수는 표정이 굳었다. 복장이나 행실을 봐서는 검계인 것 같은데, 이들은 공공연히 '양반을 죽이고 재물을 갈취한다. 부녀자를 잡아다 강간한다.'라고 말하고 다니며, 실제로 그러한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범죄 조직이었던 때문이었다.


박규수는 할아버지인 박지원의 저서들을 정리할 때 이들에 대해 다룬 서적을 본 적도 있었고, 잠깐 조정에 나가 일할 때에도 이들이 저지른 크고 작은 사건들을 다뤄본 적 있었다.


그러니 그들의 흉포함이나 잔인함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자들이 자신을 찾아 길을 막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에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쇄자갑이라니. 궁궐을 지키는 군사들이나 근무 나갈 때 입을 수 있을 정도로 귀한 것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긴장감이 더 들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환재가 맞소만, 그대들은 뉘시길래 철주-쇠몽둥이-와 창포검을 들고 무리를 지어 길을 막는 것이오?”

“이양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해서 말이오. 잠깐 일 좀 같이 하는 것이 어떻소? 순순히 따라온다면 몇 가지 물어만 보고, 몸 성하게 풀어드리리다.”

“얼굴 가리고 칼 찬 무리들의 말을 어찌 믿고 따라가겠소.”


일단 박규수가 말을 받으며 우마차에 있던 산탄총들을 가노들에게 주고, 탄약도 분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저쪽 앞에서 길을 막아서던 몇몇이 흠칫흠칫 놀라는 것이 보였다.


“시발 저거 뭐여. 총통아녀?”

“맞는 것 같네. 이연자포인가?”

“내가 군문에 있을 때 오연자포, 십연자포는 봤지만 이연자포는 첨 보네.”

“니가 군문에 있을 때가 몇 년 전인데 그때 이야기를 하는겨. 다 늙어 빠진게.”

“조용! 조용하라 씹할것들아. 큰형님이 이야기하시자너!”


검은 삿갓을 쓰고 있는 남자 뒤에 있던 또다른 삿갓 쓴 사람이 욕설을 섞어가며 술렁이던 무리를 진정시켰다. 그 사이 가노들은 총 허리를 꺾어 굵고 긴, 기름먹인 종이로 단단하게 말아둔 흰색 탄을 두발씩 뒤쪽에 넣고 총을 닫았다. 박규수는 소란을 틈타 가노들에게 넌지시 일렀다.


“내가 먼저 네 발을 쏠 터이니, 그래도 저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너희도 쏘거라. 저들이 다가오지 않는다면 지금 넣어 둔 탄과 같은 것으로 계속 쏘고, 만약 달려든다면... 산탄을 넣고 기다리거라."


그리고는 우마차에 올라가 총을 높게 들어 탄알을 재어보이며 외쳤다.


“길을 여시게. 이 정도 거리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 양총으로 우리 넷이서 사람 스물은 상하게 할 수 있으니.”


그러면서 박규수는 일부러 총알을 재었다 빼며 장전하는 것을 몇번 더 보여주었다.


"저게 뭐하는 지랄이랴? 왜 탄알을 뒤로 넣었다 뺐다 하는겨?"

"그러게. 양총은 뒤로 탄알을 재나벼?"


총이라고는 조총밖에 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 총알을 뒤로 재는 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드문드문 섞여 있는 군 출신자들이 어렴풋이 그 의미를 짐작해 볼 따름이었다. 길을 막은 무리들에서 술렁거림이 커져가고, 길을 무한정 막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검은 삿갓을 쓴 자는 목소리를 크게 높여 외쳤다.


“양총이라. 역시 못 보던 총통이다 싶었더니 양총이었구려. 거 이양선에 왜 양총을 네 자루나 환재 거사에게 준 것이오? 혹시 양이들에게 나라의 귀한 정보라도 파셨소?”


검은 삿갓을 쓴 사람이 이죽대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박규수도 지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쪽은 이게 못 보던 총통인줄은 어찌 아셨소? 쇄자갑도 입었고, 환도도 제대로 매셨고, 나도 알아보는 것을 보아하니 검계 나부랭이로 위장한 무관이신가보구려?"


제대로 찔렀는지 검은 삿갓을 쓴 자가 움찔했다.


"나라의 녹을 먹어야 할 무인, 그것도 병졸이 아니라 품계가 꽤 있는 무관 같으신데 검계 뒷구멍이나 닦아주고 계셨구려. 떳떳하지 않다는 것은 아시나보오. 그리 온 몸을 검게 가리고 나서신 것을 보니?”

“어허, 이립(서른살)도 되지 않은 젊은이가 말이 좀 심한 것 아닌가.”


검은 삿갓이 나이를 들먹이며 이야기를 받으려 했으나, 박규수도 당대의 권력자들을 대상으로 논쟁을 숱하게 벌이고 이름난 학자들과 대등하게 논쟁을 벌였던 인물. 말로 싸우는 것은 조선 팔도에서 다툴 수 있는 자가 손에 꼽으리라.


“그러고 보니 요즘 검계에 속한 자들이 대낮에도 주문을 부수고 들어가 재상을 욕보이고, 규방에 들어가 부녀자를 두들기고 창고를 파하고 들어가 물건을 훔치고 재미로 사람을 참한다 하던데, 범죄한 사람을 잡고도 놓아주고 단서가 드러났음에도 뿌리를 캐지 않는다 하였소. 그게 다 당신네들이 뒤를 봐준 때문이었구려.”

“거 보자보자하니 못하는 말이 없구나. 닥쳐라 이놈!”

“가뭄과 기근이 들어 굶어 죽는 이가 허다한데, 그나마 있는 쌀은 모두 술 만드는 집에 들어가고, 저자의 고기와 젓갈은 죄다 술집에 들어가니 물가는 오르고 백성들은 더더욱 곤궁해 지는 것도 이 때문이겠지요. 그 뒤에 있는 자들이 무관뿐이겠소이까? 세자 저하께서 살아 계실적, 이를 바로잡기 위해...”


검은 삿갓을 쓴 남자가 조용해졌다. 그는 잠시 그대로 멈추어 있다가 부들부들대는가 싶더니, 들고 있던 시커먼 지팡이를 두 손으로 거머쥐고 위쪽을 꺾었다. 그러자, 검은 나무판이 부러지면서 지팡이 머리쪽이 옆으로 떨어지며 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흔히 도리깨라고도 하는, 검은색 철 편곤이었다.


“당장 저 자의 입을 다물게 하라! 머리하고 입만 멀쩡하면 괜찮으니, 팔다리 몇 개는 분질러도 좋다!”


검은 삿갓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길을 막고 서 있던 삿갓 쓴 무리들 중 따라서 달려든 것은 전체의 일부뿐이었다. 나머지는 총통을 보고, 둘 사이에 오고 가는 말싸움을 듣고 기가 질린 탓인지, 제자리에서 움찔대기만 할 뿐이었다. 무리 중 실제로 무관들이 많아, 총통에 익숙한 자가 많았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박규수는 빙그레 웃으며 가노들에게 이야기했다.


“기세가 우리 쪽으로 넘어왔는가 보구나. 불알을 겨누어 쏴라.”

"네!"


고자를 만들겠다는 의도보다는 가슴이나 머리를 쏘는 것보다 사람이 심하게 상할 위험이 없어 그리 이야기한 것이다. 물론, 혹시 잘 맞춘다면 남자들에게 있어서는 머리통이 날아가는 것 만큼이나 위협적인 장면이 될 것이기도 하지만.


“펑! 퍼벙! 펑!”


첫 번째로 장전해둔 탄 안에는 손바닥 만한 두꺼운 주머니가 구깃구깃 구겨져 쑤셔박힌 채 들어있었고, 그 주머니 안에는 둥글둥글한 잡철과 모래, 돌 따위가 들어있었다. 흔히 콩주머니, 혹은 빈백이라고 불리는 저살상탄인 것이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폭음과 함께 총구에서 짙은 회색빛 연기가 나무 장탄통에 쌓인 이 주머니와 함께 뿜어져나갔다. 총열을 벗어나 어느 정도 날아가다 나무 장탄통을 벗어버린 주머니는, 곧 넓게 퍼지며 속도와 위력을 대부분 잃고, 맞으면 심각하게 아프지만 죽지는 않을 정도로 바뀌었다.


펴지고 나면 그 특유의 형태 때문에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주머니들은 반쯤 허무하게 공중으로 날아갔고, 반쯤은 제대로 목표로 날아가 뛰어오던 사람들과 충돌했다. 이쪽과 저쪽에서 비명이 터져나왔고, 뛰어 오던 검은 삿갓을 쓴 사람의 아랫배쪽에 누르스름한 무언가가 틀어박히는 것이 보였다.


편곤을 거머쥐고 살기를 피어올리며 뛰어오던 검은 삿갓은, 그 주머니를 맞자 잠시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는 곧 편곤을 떨어트리고는, 낭심을 감싸 쥐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제자리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가노들도 달려드는 검계 무리들을 향해 방아쇠를 연달아 당겨 두 발을 쏘고 총을 꺾어 다음 탄을 장전하려는데,


“으억!”


박규수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음머~~~~~~~~~~!!!!!!!!”


커다란 총 소리에 놀란 소들이 일제히 뛰어나가며, 우마차도 앞으로 확 튀어나간 것이었다. 그 위에 서 있던 박규수는 당연히 뒤쪽으로 날아가듯 쓰러졌다.


“으아아악!”

“소들이 미쳤나벼!”


“저런 걸 전에 본 적이 있나?”

“염병,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느꼈지.”

“나도 꿈자리가 좀 뒤숭숭하더라고. 하지만 교련관이 내 말을 듣지 않았어.”

"일단 튀어!"


얼마 되지 않던 삿갓을 쓴 사람들 중 빈백에 맞아 쓰러진 것은 채 다섯명이 되지 않았으나, 지휘관으로 보이던 검은 삿갓이 쓰러지고, 총 소리에 놀란 소들이 마차를 끌고 일제히 돌진하는데다, 가노들이 총을 쏘고 순식간에 재장전을 마치고 다시 쏘아대자 가뜩이나 기세가 죽어 있던 길을 막았던 무리들은 사방으로 흩어 달아나버렸다.


“나으리, 괜찮으십니까!”


우마차에 실어두었던 짐들과 인쇄한 책들 중 일부는 박규수와 함께 떨어졌고, 책 대부분은 소가 날뛰면서 도망간 길을 따라 여기저기 흩뿌려졌다.


결과적으로 아기고개-지금의 애오개-부터 서대문을 지나 경희궁을 거쳐 광화문 앞까지 도망갔던 소들 덕분에 널리 책을 뿌리겠다는 사영과 박규수의 계획은 어쨌거나 절반쯤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불알을 부여잡고 쓰러진 자 하나, 이빨이 날아가고 어디 한 곳이 부러진 자 몇몇, 그리고 우마차에서 날아가 쓰러진 박규수 정도의 가벼운 부상자만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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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년 2개월째 -4- 23.06.02 34 2 12쪽
17 1년 2개월째 -3- 23.06.02 30 2 10쪽
16 1년 2개월째 -2- +2 23.05.31 33 2 10쪽
15 1년 2개월째 +1 23.05.30 32 2 16쪽
14 11개월째 +2 23.05.29 40 2 18쪽
13 10개월째 -2- +2 23.05.26 39 4 15쪽
12 10개월째 23.05.26 35 4 14쪽
11 9개월째 23.05.25 33 3 15쪽
10 8개월째 23.05.24 40 5 15쪽
9 일곱달째 23.05.22 46 3 15쪽
8 여섯달 후 23.05.22 40 2 12쪽
7 넉달 후 -3- 23.05.16 46 2 18쪽
» 넉달 후-2- 23.05.15 44 5 22쪽
5 넉달 후 23.05.13 48 3 16쪽
4 백일 무렵 23.05.11 56 4 19쪽
3 공충도 마량진 앞 바다, 석달 후. 23.05.10 67 4 21쪽
2 4달, 조선 23.05.10 91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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