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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3.05.1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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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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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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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년 2개월째 -3-

DUMMY

현재 조선 해안의 침략에 대한 방비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었다.


태조부터 세조때까지만 하더라도 왜구를 토벌하고 대마도 정벌에 나설 정도로 어느 정도 세력을 유지하던 조선 수군은 성종 이후 어마어마한 군축을 벌이며 사실상 수송대와 비슷한 처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육군보다도 훨씬 육성하기 어려운 수군이 수송대로 전락하고, 포를 다룰 줄 아는 자가 수군 군관 중에서도 열에 하나가 될까 말까할 수준으로 급감하였으며, 설령 뜻이 있는 자가 방포술을 연마하려 해도 문제가 많았다.


“무릇 수군이라면 능히 포를 재고 쏠 줄 알아야 하거늘, 언제까지 고기나 잡아다 말리고 농사를 지어야 한단 말인가.”

“어이 김씨 개소리 말고 어서 그물이나 끌어 올려.”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스스로 구해야 할 정도로 수군은 천시되고 있은 지 오래였다. 오죽하면 모든 노역 중 최하위로 여겨졌겠는가. 그러니 설령 뜻 있는 자가 방포를 연마하려 해도 문제였다.


“방포 조련을 하려 하니 화약 백여 근을 내어 주십시오.”


라고 가끔 아직 정신이 온전한 수군 군교가 건의하면 직접 화약을 조제하라는 명이 내려올 정도였다.


"화약이 부족하니 직접 염초를 구워 훈련하라."

"....네?"

"포환도 직접 주조하고."


그러니 정 방포 연습을 하려면 포를 정비하고, 포환을 주조한 후, 스스로 염초를 굽고 재와 황을 적절하게 구해 적절한 수준으로 배합하여 화약부터 만들어야 할 정도로 상태가 개판이 된 지 오래였다.


"그게 가능할 리 만무하외다!"

"허나 충무공은 해내지 않았는가."

"......."


당연히 일선에서 염초를 굽고 포탄을 주조하는 일이 쉬울 리 없었으니, 사실상 군선은 이름만 군선이고 어선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그나마 왜란 때, 세계 역사상 기록을 탈탈 털어봐도 그 유래를 찾기 힘든 영웅, 이순신의 등장이 아니었으면 조선 수군은, 아니 조선은 임진왜란을 끝으로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리라.


그는 함선의 개량 및 설계, 제작, 수군의 훈련, 수군의 재정 자립, 행정 개선, 전략과 전술의 개발 등등을 조정의 도움 없이 혼자서, 아니 조정의 방해 아래서도 홀로 감당해 내며 앞으로는 왜군, 뒤로는 편집증에 걸린 미친 임금의 공격을 오롯이 방어해내었고, 심지어 그 미친 임금의 오판으로 단 한 번에 궤멸당한 수군의 잔존 병력을 이끌고 수백 배의 적군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인 바 있어 그 이후 조선 수군은 명맥이나마 이어 나갈 수 있었으리라.


문제는, 충무공과 같은 장수가 매번 솟아날 리 없다는 점이었다.



조선은 가난했고 수군의 유지에 드는 비용은 상당했으며, 결정적으로 멍청한 왕들이 줄줄이 다음 세대를 이어나갔다.


전쟁 이후 조선은 배운 것을 죄다 잊어버리고 다시 수군을 수상 운송수단쯤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인식은 암군이 왕으로 있을 때 뿐만 아니라, 꽤 유능한 왕이 자리에 앉아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00여 년 전인 영조 20년,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황해도 수군절도사로 있을 때 일이다.


박문수가 아뢰기를,

“청나라 고깃배가 고기잡이를 이롭게 여겨 여름이 되면 법을 무시하고 멋대로 백성들과 물견을 교역하고 마구잡이로 물고기를 쓸어가는 일이 흔합니다. 그들을 잡기 위해 온갖 계책을 다 썼지만 힘이 모자랍니다.


지금 최상의 계책은 비선-소형 쾌속선-을 많이 만들어 밤낮으로 띄워 놓고 고기잡이한 이득을 빼앗는 것이 제일이기 때문에 먼저 비선 20여 척을 만들고자 합니다. 본영의 재력으로는 이를 착수하기 어려우니 감영과 병영의 돈 400냥과 쌀을 특별히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제때에 배를 만들어 쓸 수 있겠습니다.”

하였다.


당시 좌의정이 이를 따를 것을 청하였으나, 영조가 말하기를

“충무공 이순신은 전쟁이 극렬한 가운데에서도 능히 전선을 만들었는데, 그곳이 아무리 피폐하다고 해도 돈 4백냥을 마련하지 못하여 이런 청을 한단 말인가? 다시 생각하여 스스로 만들게 하라.”


전쟁터 한복판에서 배를 한척도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적선을 나포하고, 나무를 베어 전선을 만들었던 충무공이 인간을 초월한 영웅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을, 명군이라고 여겨지던 영조조차 저런 반응을 보이며 청을 내친 것이다.


그 이후에도 박문수가 상소를 올려 청나라 고깃배를 단속할 것을 청하였으나, 이를 영조가 내친 지가 어언 100여년, 그나마 조선이 제대로 돌아가고 조선군의 기강이 서 있던 시절에도 그나마 명군이라는 왕이 저따위 대응을 했었으니 지금은 어떠하였겠는가.


영해의 개념도 없고 해군도 사실상 없던 조선 앞바다는 왜구와 청나라 배들의 작업장 겸 약탈처로 변한 지 오래였다. 청국과 매우 가까운 황해도와 황해도 이북, 그리고 앞으로 툭 튀어나온 서산은 털린 지 오래였고, 다니는 청국 고깃배들의 수효도 100여년 전 이미 수십여 척에 이르럿던 것이 이제는 한번에 수백여척 이상이 무리지어 다니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나마 최근 몇 년간 왜구나 청 해적이 공충도 일대에 출몰하지 않은 이유는, 터는 노력조차 아까울 정도로 근방 고을이 가난에 쩌들어버린 탓이 컸다. 해적들 사이에서도 먹을 것 없고 털 것 없는데 물 때 잘못 맞추면 배만 버리는 더럽게 가난한 곳으로 소문이 난 것 이었다.


그러나 청 조정의 쇠퇴와 부패, 아편의 유통으로 청 수군이 약화되자 청 남부 해안을 중심으로 청 해적이 생겨났고, 일본 중앙 정부라고 할수 있는 에도 막부의 세력 약화로 인한 각 번의 밀무역과 해적질이 증가하면서 원래 유명하던 왜구의 숫자도 크게 증가했다.


여기에 큰 재물을 지니고 지나다니는 이양선과 무역선이 늘면서 이를 노리는 해적들도 배의 규모와 무장 양면에서 크게 발달하여 정규군 해군과 맞먹을 정도, 혹은 그 이상의 해적 선단이 등장한 시대였다. 바야흐로 지금 동아시아의 바다는 대해적 시대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해적이 증가한 것이다.


당장 홍기방이라 불리는 여두목 정일수가 이끄는 해적집단은 그 숫자가 5만에 배만 2천여척 가까이 되었으며, 당대 최강국이었던 영국 해군과 포르투갈 해군을 털어먹을 정도로 그 규모나 장비가 만만치 않았다.


일본 큐수의 사쓰마 또한 대대로 밀무역과 해적질로 먹고살던 동네답게 일개 번의 해적력, 아니 해군력이 왜 본토의 해군 전체와 싸워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대했을 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서양과의 밀무역을 해왔던 탓에 선박이나 장비 모두가 사실상 최신예 고성능을 자랑하는 것들이라 바다 위에서 만나 싸운다면 어지간한 국가의 해군과 붙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집단이었다.


이러한 집단이 득시글대던 동아시아 바다였으니, 해군력이라고는 삼사백년 전 목선에 청동을 녹여 주조해 만든 포를 달고, 그나마도 화약이 없어 활로 무장하고 다니는 조선 해군이 지키는 바다가 무사할 리 없었다.


“꽃게를 잡으러 갔던 배 두척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처음에는 조금 멀리 무리해서 나가봤던 경운선 두 척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바다가 사람 잡아먹는 것을 한 두 번 본 바닷가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점점 심각해져갔다.


그 다음에는 한밤중에 마을 사람들 몇몇이 실종되고, 바닷가에 묶어두었던 경운선 몇 대가 사라졌으며, 바닷가에 종종 붉은 깃발을 단 배들이 빠르게 마을 근처까지 와서 머물다 빠져나가곤 했다.


“첨사와 현감이 여러 배를 지휘하여 일시에 쫒아갔으나, 붉은 기를 단 배들은 마치 나는 새처럼 빨라서 잡아둘 수 없었습니다. 해가 떨어질 무렵이라 쫒아가 보았는데, 앞으로 나아간 배는 아득하여 형체가 보이지 않았고, 뒤의 배는 어슴프레 볼 수 있었으나 해가 곧 떨어져 자세히 보지는 못하였으니 참으로 망극한 일입니다.”


마량진 갈곶을 담당하는 수군 군관이 수상한 배를 쫒아가다 지쳐 배에 올라 잠시 쉬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배는 어떤 형태였소?”

“초승달과 반달 사이쯤 되는 형태로, 돛은 셋에 노가 몇 개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 배에 탄 사람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시오?”

“멀어서 자세히 보지는 못하였으나, 앞은 대머리인데 뒤쪽은 긴 머리를 한 줄로 한 듯 하니, 제가 잘못 봇 것이 아니라면 댕기머리처럼 한 것 같았습니다.”

“청국인들이고 붉은 기에 초승달 형태로 된 배들이라. 그렇다면 아마 홍기방이라 불리는 청 해적들일 것이오.”


정약용은 무엇이든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고민을 하시는 듯하다, 이야기를 꺼냈다.


“이 배의 포는 쓸 수 있는 것이오? 혹은 배와 저 마량진 일대를 방비할 만한 수단이 있겠소이까?”

“방비라 하시면?”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 천하가 비록 평안하더라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


해적이 코 앞을 들락날락 하는 상황이었다. 그에 비해 조선 수군의 도움을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고, 공충도 마량진 일대의 방어는 결국 사영과 그 무리들이 직접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최소한의 방어를 위한 회의가 시작되었고, 가용한 수단들은 점검해 보거나 실제로 제작해 보기로 했다. 그 중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끌었던 것은 배에 실린 16인치 포를 시험사격 해 보는 것이었다.


청국 밀사단이 본 연기는 바로 그 포를 사격한 후 포신에서 흘러나오는 연기였던 것이다. 뿜어져 나온 포연이 얼마나 컸던지, 수평선 너머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도 그 연기가 보였고, 그 다음 포성이 도달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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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1개월째 +2 23.05.29 39 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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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9개월째 23.05.25 33 3 15쪽
10 8개월째 23.05.24 40 5 15쪽
9 일곱달째 23.05.22 46 3 15쪽
8 여섯달 후 23.05.22 40 2 12쪽
7 넉달 후 -3- 23.05.16 46 2 18쪽
6 넉달 후-2- 23.05.15 43 5 22쪽
5 넉달 후 23.05.13 48 3 16쪽
4 백일 무렵 23.05.11 56 4 19쪽
3 공충도 마량진 앞 바다, 석달 후. 23.05.10 67 4 21쪽
2 4달, 조선 23.05.10 90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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