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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츄샤 님의 서재입니다.

밀리터리 마니아가 이세계의 전쟁영웅이 되기까지 (1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전쟁·밀리터리

카츄샤
작품등록일 :
2020.04.22 04:51
최근연재일 :
2022.03.08 11:44
연재수 :
1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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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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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글자수 :
565,196

작성
21.01.2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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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8쪽

(14) 13화.[그녀들과 온천에서](1)

DUMMY

뭐, 케이트 하사가 자기 허벅지를 베고 누워 한숨 자라고는 했지만, 아무리 나라도 팬티 바람의 예쁜 여자 무릎을 베고 누워 잠드는 일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 거절하기로 했다. 힐끔힐끔 내 하반신을 쳐다보는 눈길도 왠지 모르게 신경 쓰이고 말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마침 타이밍 좋게 리스가 다시 의무실에 찾아왔다. 의무실 문틈으로 고개만 빼꼼 내민 그녀는 안쪽을 슥 둘러보더니, 우리밖에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문을 살짝 닫고 들어왔다.


“영훈, 너 아까 바지랑 팬티 다 찢어졌지? 여분 남은 거 있어?”


아참, 애초에 해병대에서 이쪽으로 넘어온 에린이나 리스면 몰라도 왕성에서 곧장 여기로 온 나는 여벌 속옷은커녕 제대로 된 군장조차 없는 그야말로 단벌신사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찢어진 바지는 케이트 하사가 꿰매주기로 했고, 임명식 때 입었던 깔끔한 정복이 하나 있어서 일단 급한 대로 바지 정도는 챙겨입을 수 있다는 거였지만...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쉰 리스는 잠시 머리를 싸매는 듯 고민하는 포즈를 취했다. 그러다 결국 무언가를 결심했다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의무실을 나가 내 정복 바지와 함께 자기 더플백을 가져오더니, 그 안을 이리저리 뒤져 무언가를 꺼내 내게 밀어붙이듯 쥐어주는 것이 아닌가.


“며...몇 번 안 입었어. 나중에 보급계한테 말해둘 테니까 새로 보급받으면...그때 돌려 줘.”


뭔가 해서 펴 봤더니... 보급 팬티였다. 살다 살다 여자애한테 팬티를 빌려 입는 날까지 오게 될 줄이야...


뭐라 할 말 없이 처량한 내 신세에 그대로 엎어져 좌절하고 있는데, 머리맡에 있던 케이트 하사 역시 그 팬티를 보더니 고개를 숙여 내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는 소근소근 이야기했다.


“부...부족하시면 제 것도 빌려드릴 테니, 필요하시면 꼭 말씀해 주세요... 비록 좀 오래 사용하긴 했지만...”


“필요 없어요!”


쓸데없는 그녀의 배려에 크앙 하고 울부짖으며 리스가 챙겨와 준 내 바지를 갈아입으러 침대 칸막이를 넘어가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넘어가기 직전에 나는 또다시 리스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아직 연고 안 발랐잖아?”


싸늘하다. 등 뒤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그,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나? 움찔 떨면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리스는 아까처럼 눈만 빙긋 웃고 있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명을 등지고 있어서 그런지 그늘진 그녀의 얼굴에 비친 미소는 마치 조커의 그것처럼 보였다.


“히...히익...”


“자자, 이리로 와!”


...이후 하마터면 메차쿠챠 연고를 엉덩이에 발릴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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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연고를 발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내가 제대로 씻지도 못했던 이유가 가장 컸다. 어차피 그리 큰 상처도 아니라 그냥 씻고 나서 소독하고 약 바를 생각이었던 것이다. 내가 이 이유를 들먹이자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의외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목욕하러 가자.”


“...뭐? 목욕?”


샤워가 아니라 목욕(bath)이라니, 사회도 아닌 군대에서 듣기엔 생소한 단어라 고개가 절로 갸웃해졌다. 내가 의아해하자 리스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설명해 주었다.


알고 봤더니, 영국계였던 전임 부대장이 기지 지하에 장병 복지(물론 본인 욕심이 99퍼센트였겠지만) 차원에서 유럽식 대형 목욕탕 시설을 만들어두었던 것이다. 우리가 전투에 나가 있던 도중 기지 청소를 하던 행정반이 찾아낸 후, 어느 정도 청소해서 쓸 수 있게끔 만들어두었다는 모양이었다.


“나도 방금 군장 가지러 갔다가 들은 이야기야. 뭐, 우리 같은 엘프야 원래 목욕을 좋아하니까 상관없지만, 너는 괜찮아?”


그녀는 가만히 그 말을 듣고만 있던 케이트 하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는 건데..?


“저도 괜찮아요. 귀에 물만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면 마다할 이유는 없죠.”


“그럼 결정됐네. 자, 가자.”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아니아니아니, 난 나중에 따로...!”


“모시는 상관의 몸을 깨끗하게 해 드리는 것도 부관의 업무지, 안 그래?”


아무래도 그녀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들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나는 결국 반쯤 포기한 채 그녀가 가는 대로 이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목욕탕에 도착하기 전부터 문제들이 곧바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우선 당연하겠지만 남자 탈의실이 전혀 없었다. 하나뿐인 대형 탈의실은 이미 근무 투입이 되지 않은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사용 중이었고, 그저 내가 좀 다르게 생긴 여자인줄로만 알고 있는 병사들이 대부분인 그곳에 함부로 내가 들어갔다간 대참사가 벌어지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물론 아까 만났던 보니타 병장의 경우 어째서인지 이미 연설 때부터 내가 남자라는 사실 자체를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애초에 그녀와 친해지게 된 계기부터가 기차에서 그녀의 짐을 옮겨준 직후 나를 쳐다보며 내뱉은 “역시 남성은 체구가 작아도 여성과 근력 자체부터 차이가 나는군요?” 라는 폭탄 발언으로 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거니까.


물론 본인은 귀찮은 일에 엮여들기 싫다며 어딘가에 발설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대신 기차의 빈 칸 화장실에서 연구라는 명목으로 험한 꼴을 볼 뻔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팔 근육 같은 것만 조금 만져본 뒤 흥미롭다는 얼굴로 노트에 여러 가지를 필기하는 게 다여서 크게 별일은 없었다.


음, 그나마 문제라면 케이트 하사인데,,, 마치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 행동하고는 있지만, 전에 비해 내가 남자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마다 조금씩 힐끔거리는 시선을 보내는 등 아주 자잘하게 신경쓰이는 일이 있긴 했다. 뭐 그래봤자 이 사람도 그런 걸 떠벌리고 다닐 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그다지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기로 했지만.


어차피 이 되도 않는 비밀을 유지하는 게 시간문제라는 사실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 어딜 가나 그들과 동성이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상 지금 이상으로 몸을 부대낄 일이 상당히 많을 테니까. 하지만 이들과 너무 깊은 유대감까지 쌓을 생각은 없어도, 비교적 유연한 지휘를 위해, 적어도 전 중대장같은 인식만은 박히지 않게 처신하려면 어느 정도 중대원들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은 거의 필수적인 사항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과 갈등을 하며 리스의 손에 이끌려 입성하게 된 탈의실은 역시나 군대답게 개인 공간 따위는 개나 줘버린 락커룸 형식이었다. 물론 여기서 함부로 갈아입었다간 그대로 병사들과 “ANG?”을 외치며 아르티아판 락커룸의 제왕을 찍을 게 뻔했기에, 나는 한숨을 쉬며 근처에 혼자 들어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나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보이자 불과 수 시간 전에 비해 의외로 지나다니던 병사들이 아는 척을 하며 경례하는 횟수가 늘어난 것이 아닌가. 그 중 대부분은 아까 나와 함께 전투에 나갔던 정찰 소대원들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아까의 전투가 나름 나쁘지 않은 이미지로 비춰진 것 같았다.


다만 다 좋은데, 딱 하나 문제라면 그런 병사들의 모습이 온통 여기를 봐도 살색, 저기를 봐도 살색이라 여간 당혹스러운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평균 미모가 웬만한 연예인 뺨을 후려갈기는 이 동네 특성상 그런 그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은 내 얼굴을 벌겋게 달아오르게 하기에 충분했고,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푹 숙인 내 모습을 본 병사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결국 리스도 사람의 숫자를 보고는 이건 좀 아니다 싶었는지 나를 데리고 곧바로 화장실로 향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탈의실 내에 인파가 몰려 쉽게 이동할 수가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여기서 갈아입어야 하나 생각하고 있던 그때,


“어라? 중대장님 아이심까?”


바로 앞에서 특유의 사투리 억양이 섞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정비반장인 캐서린 중사였다.


“목욕하러 오셨음까? 애들이 몰려 있길래 뭔 일인가 했더니... 아하, 야들아. 그렇게 둘러싸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면 나라도 부담스럽겠다. 자 자, 정비반!”


내 상황을 이해하고 있던 그녀는 깔깔 웃으며 정비반을 호출했고, 그녀의 구령 한 마디에 어디에 있었는지 인파 속에서 곧바로 붉은 머리칼의 정비병들이 튀어나오더니, 곧장 몸에 두르고 있던 타월을 풀어 펼쳐들고는 내 주위에 스크럼을 쳤다. 물론 그 친구들도 옷을 모두 갈아입고 입욕 준비를 하던 터라 대부분 나체 상태였지만, 나는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급하게 그들 사이에서 탈의를 마치고는 락커 안에 비치되어 있던 긴 타월을 허리에 둘러 최대한 임시방편까지 마쳤다.


다행히도 내 미사일(?)을 목격한 이는 없는 것 같았고,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스크럼에서 빠져나와 병사들의 인사를 일일이 받아줄 수 있었다. 물론 시선은 최대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려 했지만, 얼굴 아래에 또 다른 얼굴만 한 어뢰 두 발이 계속 시선을 사로잡으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바람에 나는 속으로 미친 듯이 애국가를 부르며 허리를 뒤로 뺀 엉거주춤한 상태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미..미안...”


조금 미안하기는 한지 리스는 솔직히 사과하며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기밀 사항도 연관된 만큼 이렇게 장난을 칠 만한 부분은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그녀는 왜 그걸 알면서까지 나를 억지로 여기에 끌고 온 걸까? 나는 수치심과 복잡한 원망이 섞인 눈초리로 리스를 쳐다보며 탕의 문손잡이를 끼익 하고 밀었다.


그런데 세상에. 후끈한 증기가 훅 쏟아져 나오며 펼쳐진 내부 광경은 방금의 짜증 섞인 기분을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가히 장관이었다.


난 그냥 욕조 여러 개가 배치된 일반적인 후줄근한 유럽식 대중 목욕탕을 생각했는데 전혀 그런 정도의 레벨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앙에 있는 큰 탕에서는 왕성에서 보았던 것보단 작지만 확실히 사람보다 큰 석상이 높은 위치에서 항아리에 담긴 물을 아래로 흘려보내고 있었고, 가장 안쪽에 있는 반원형 탕에서는 벽에 만들어진 돌로 된 거대한 폭포에서 따뜻한 온수가 콸콸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엘프의 숲을 그대로 옮겨둔 듯한 착각마저 드는 그런 광경에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런 자연적인 분위기의 공간에서 곳곳에 군복을 벗고 앉아있는 수인이나 엘프 병사들을 보자 이곳이 확실히 판타지 세계가 맞긴 하구나라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났다. 무엇보다도 다들 정말 말도 안되는 미인들뿐이라 그런지 그렇게 목욕을 즐기고 있는 모습들이 신성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 물론 그렇게까지 자세히 관찰한 건 아니다. 내가 무슨 관음증 환자도 아니고 말이지. 방금 본 풍경을 애써 잊어버리려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서둘러 리스를 따라갔다.


“이게...뭐야?”


리스가 나를 데려온 곳은 뭐랄까... 작은 종합 온천 같은 곳이었다. 온천 가장 구석진 곳에 지휘관 전용이라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오는 독립된 공간이었는데, 그 안에는 밝은 색감의 나무로 된 고급진 인테리어에 3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을만한 여러 형형색색의 입욕제가 뿌려진 탕들과 축소판 폭포, 그리고 상시 온수가 흘러나와 따뜻하게 등을 적셔주는 돌침대 등 여러 고급 온천욕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이 온천을 만든 부대장이 개인용 공간 삼아 따로 만들어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를 맞이해 주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아앗, 와...왔느냐..?”


왜인지 간만에 보는 듯한 에린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풍만한 마음(...)과 폭탄급 몸매를 가리기에는 터무니없이 짧은 타월이 늘어져라 쭉쭉 당겨가며 최선을 다해 천 면적을 늘리려고 하던 중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영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를 맞이하게 되었다. 뭐, 난 그런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지만...진짜다. 하늘에 맹세코.


“오오...온도도 나쁘지 않고 좋네, 여기.”


탕 안은 한국의 공중목욕탕과 비슷한 온도였다. 가슴이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한국 목욕탕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크게 거슬리지 않는, 목욕을 즐기기에 딱 기분 좋은 수준의 그런 온도였다.


“자, 그럼 나도... 읏차!”


“너...너넨 왜 들어오는데?!”


갑자기 리스와 에린이 들어오자 곧장 넘쳐흐를 듯 넘실거리던 물은 결국 표면 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시원한 물소리를 내며 바닥에 흩뿌려진 채 작은 파도를 만들었다.

“모..목욕 시중이니라. 뭔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리스가 하도 목욕시중 역시 부관의 의무라 우겨대니...말이...니라...”


말하는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가는 걸 보면 뭔가 본인도 이건 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리스의 청산유수같은 말빨과 의무 들먹이기에 보기 좋게 넘어간 모양이었다. 에린은 이런 거에 약하니까 말이지.


리스와 에린에 이어 뒤늦게 개인실에 들어온 케이트 하사 역시 탕 안에 들어오게 되었고, 결국 안 그래도 좁은 탕에서 나는 세 명의 여자에게 둘러싸여 사방에서 흉악한 가슴이라는 이름의 어뢰들에게 압박을 받는 행복...아니 곤란한 신세에 처하고 말았다.


“후아...덥네요.”


“그러게. 이건 벗어버릴까.”


그 말과 동시에 리스는 그대로 몸을 가리고 있던 타월을 풀어버렸고, 케이트 하사 역시 내 눈치를 조금 살피더니, 손으로 슬쩍 부채질을 하며 스르륵 타월을 풀고는 몰래 내 반응을 살폈다. 물론 난 타월을 풀자마자 마치 방류된 기뢰처럼 물 위에 떠서 내 몸을 압박하는 그것들을 직시하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어가며 노력했고, 다행히 나의 딕...아니, 빅데이터로 계산해본 바, 어느 정도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이성이 버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에린은 기차에서도 그러더니, 이번 역시 얼굴이 달아올라 쪄죽을 것 같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쉽사리 타월을 벗지 않았다. 나는 절대, 절대 내 욕구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그녀가 더워 보여 그녀에게 타월을 벗을 것을 권유했다.


“그...너무 더우면 그냥 벗어도 될 것 같은데...”


“..무...무슨..! 어찌 본녀가 공ㅈ..”


거기까지 말한 직후 리스가 황급히 에린의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뒷말은 들을 수가 없었다. 에린 역시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더니, 그대로 나와 리스를 번갈아보다 결국 뭔가 체념한 듯 치욕스러운 표정과 떨리는 손으로 조금씩 목욕 타월을 풀기 시작했다.


“그...그리도 보고 싶다면...버, 벗어줄 터이니, 마...마음대로 보면 될 것이 아니더냐...!”


목욕 타월을 다 푼 그녀는 내게 잘 보이도록 타월을 양 옆으로 활짝 벌리며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려버렸다. 아니...딱히 내가 보고 싶어서 벗으란 게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꼭 내가 나쁜 놈이 된 것 같잖아?!


마치 악당에게 붙들린 공주기사가 큿 죽여라! 하며 스스로 옷을 벗는 얇은 책에 나올 것만 같은 표정으로 저렇게 말하니, 내가 천하의 죽일 놈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몹시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방금 에린이 말하려던 건 또 대체 뭐였는데? 공...뭐라 그런 것 같았는데... 이무튼 저 두 사람은 출신부터 숨기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닌 걸 보아 확실히 뭔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왕성에서 붙여준 사람들이고 하니 좀 찝찝해도 내가 어쩔 수 있는 사항은 아닌가...


그렇게 에린과 리스는 목욕 시중이라는 명목으로 마사지부터 팩까지 여러 가지 케어를 해 주었다. 딱 봐도 미용 쪽으로는 문외한일 것 같아 보이는 에린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케이트 하사와 함께 주로 내 어깨나 다리를 주물러주는 보조 역할을 맡았지만, 의외로 시원해서 기분은 좋았다.


그런데 마사지가 끝나갈 때쯤 문득 문 밖의 일반 탕에 있는 사병들이 생각났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싫으나 좋으나 그들과 몇 년이 될지 모를 시간을 함께 보내야만 하고, 언제까지고 이렇게 벽을 치고 살아갈 수만은 또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든 순간, 그들과도 친목을 한번 쌓아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들과 가까워질수록 남자라는 걸 들킬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뭐 어때. 그건 내 사정이 아닌걸. 리안이 그것도 생각 못하고 날 여기에 보냈을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왜, 목욕 시간은 사람이 가장 풀어지는 시간 중 하나라고도 하잖아? 뭔가 생각지 못한 성과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지금은 타월도 두르고 있으니 크게 걱정할 것도 없을 것 같고. 물론 대놓고 내가 남자라는 걸 광고하고 다닐 생각은 없지만, 딱히 내가 뭐 죄 지은 것도 아니잖아? 따지고 보면 왕성에서도 나보고 남자인 걸 철저히 숨기고 살라고 신신당부한 것도 아니고.


좋아, 결정했다. 나는 처음으로 장교도, 부사관도 아닌 일반 사병들에게 순수하게 내 의지로 한번 다가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뭐, 아까 만난 정비병도 있긴 하지만, 그들을 제외하고도 부대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인원들이니 그들과 친해지면 분명 지휘 통제에 있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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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8화.[무너지는 의지] +4 20.12.21 251 3 21쪽
8 (8) 7화.[정비반과 35(t) 전차] 20.12.11 277 4 23쪽
7 (7) 6화.[상처입은 여자들] +1 20.12.03 294 5 25쪽
6 (6) 5화.[심상찮은 부대] 20.11.22 327 3 14쪽
5 (5) 4화.[여왕의 선물] 20.10.25 361 3 14쪽
4 (4) 3화.[너희가 내 부관이라고?] 20.10.23 446 3 12쪽
3 (3) 2화.[큰누나의 결심] 20.10.20 609 3 22쪽
2 (2) 1화.[사람 목숨이 장난도 아니고] +3 20.06.07 1,184 9 37쪽
1 (1) 프롤로그.[소환, 그리고 두 엘프 해병대원] +4 20.04.22 1,923 2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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