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카츄샤 님의 서재입니다.

밀리터리 마니아가 이세계의 전쟁영웅이 되기까지 (1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전쟁·밀리터리

카츄샤
작품등록일 :
2020.04.22 04:51
최근연재일 :
2022.03.08 11:44
연재수 :
119 회
조회수 :
17,354
추천수 :
200
글자수 :
565,196

작성
20.12.11 00:19
조회
277
추천
4
글자
23쪽

(8) 7화.[정비반과 35(t) 전차]

DUMMY

-쿠궁, 쿵!


-위이이이잉!


눈에 잘 안 띄는 샛길을 통해 케이트 하사를 따라 정비고로 보이는 건물 근처에 다다르자, 아직 정비고 건물까지는 거리가 좀 있는데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그라인더 돌아가는 소리와 뭔지 모를 굉음 소리가 요란했다. 아마도 지금 우리 부대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일 텐데, 이렇게 불쑥 찾아가도 민폐는..아니...겠지?


에이, 그래도 명색이 중대장이 전차 보러 왔다는데, 설마 꼽이야 주겠어...


그래도 약간의 불안감을 가진 채 정비고 건물의 커다란 철문 틈으로 빼꼼 하고 고개를 내밀어 쳐다봤더니, 옆에 있던 케이트 하사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중대장님, 무슨 도둑도 아니고 그게 뭔가요? 여긴 당신의 부대잖아요?”


아니, 그건 맞긴 한데... 그래도...


“자아 자. 반장님, 저 왔어요!”


우물쭈물하는 내 모습을 보다 못한 케이트 하사는 그대로 나를 끌어당기며 전차 앞에서 손에 든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는 한 여성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시끄러운데도 용케 소리를 들었는지, 그 사람은 늑대 귀를 한번 쫑긋거리더니 금세 이쪽을 돌아보고는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옆에 붙들려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는지 황급히 내게 경례를 올려붙였다.


내가 경례를 받아주자, 그녀는 예상 못한 일에 약간 당황한 눈치로 자기소개를 했다.


“아, 저...전차 정비반장인 중사 캐서린 스미스임다. 여긴 어, 어쩐 일로...”


나보다 나이도 조금 많아 보였는데, 불쑥 찾아온 나 때문에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어딘가 껄끄러워 한다거나 빨리 꺼져줬으면~ 하는 눈치는 아니었고 뭐랄까, 그냥 신기한 동물을 보는 느낌이랄까? ‘어... 이런 인간이 왜 여기에..?’ 뭐 약간 이런 눈빛이었다.


“중대장실에 신형 전차에 관한 파일이 있길래, 인사도 할 겸 한번 보러 와본 거예요. 불편했다면 미안해요.”


내가 사과하며 살짝 고개를 숙이자, 그녀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나를 일으켰다.


“아아아 아임다! 그, 뭐냐. 전임 중대장은 도통 여기 오는 꼬라지를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좀 놀랐을 뿐임다.”


그녀는 들고 있던 차트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짝! 쳤다.


“아아, 맞다! 전차 보러 오셨다고 하셨죠! 그럼 우선은... 얘부터 소개시켜 드리겠슴다. 어이, 클라라!”


그녀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파이프렌치로 바로 앞에 있는 전차 전면부를 땅땅 내려치자, 동시에 포탑 큐폴라에서 사람 머리 하나가 천천히 올라왔다.


“아이...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네. 아, 뭔데예?”


잠에서 막 깬 듯한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고개를 내민 여자는, 완전 피곤해 보이는 눈을 하고는 마치 짜증이 난 고양이가 하악질을 하듯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중대장님 오셨으니까 인사나 해 인마. 그리고 누가 포탑 안에서 쳐자래? 빨랑 안 내려와?”


그제서야 멍한 눈으로 앞에 있던 나를 내려다 본 그녀는,


“..아.”


...아?


외마디 탄식을 내뱉고는 순간 소름이 쫙 돋는다는 듯 몸을 한번 크게 떨더니, 말 그대로 고양이같은 속도로 우다다다 하고 전차에서 내려와서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절도있는 자세로 경례를 하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하사 클라라! 22중대의 경전차 정비반장을 맡고 있심미댯!”


말끝에 혀를 깨물 정도로 푹풍같은 그 기세에 깜짝 놀란 나는 물론, 작업을 하던 정비고의 정비병들마저 하나같이 이쪽을 돌아보는 바람에, 한 순간 그렇게 시끄럽던 정비고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아이씨, 이러면 꼭 내가 일 방해하려고 온 것 같잖아.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 속에서 내가 어정쩡하게 경례를 받아주자, 그녀는 곧바로 캐서린 중사 뒤에 숨어 고개만 빼꼼 내밀고는 잔뜩 움츠러든 채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팔자로 늘어뜨린 눈썹을 자신의 꼬리마냥 오들오들 떨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만난 부대원들 중에 나에 대한 반응이 가장 오버스럽고 히스테릭한 것 같았다.


“...이 사람 왜 이래요?”


그러니까. 누가 잡아먹냐고. 무슨 내가 괴물이야?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치며 물어보자, 캐서린 중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 뭐냐. 간부 중에 그런 사람들 있잖슴까. 자기 할 일은 곧 죽어도 안 하면서 아랫사람 들들 볶는 양반들.”


아아, 또 그놈의 전 중대장이야?


난 이젠 해탈한 부처님같은 표정으로 캐서린 중사를 바라보았고, 마음이 통했는지 그녀도 눈을 감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그때 뭐 먹다 들켰었던가? 얘 그때 정비고 안에서 소시지였나 뭐 까먹다 들켰던가 그랬을 검다.”


“예에, 맞심다아아... 그때 잡아땡기킨 귀가 아직도 얼얼한데예...”


자신의 검은 귀를 매만지며 클라라 하사가 대답했다.


“원래 정비고에서 뭐 먹으면 안 되는 거였어요?”


“아아, 원칙대로라면 안 되긴 한데, 그건 위생 때문에 그런 거고 사실 딱히 먹든 말든 상관 없슴다. 그 양반이 꼬투리 잡을 게 없어서 그런 것 뿐이죠.”


“...제가 귀만 땡기켰으면 그냥 똥 밟았다 하고 넘어갈낀데, 솔직히 정비고에서 스팸 하나 까먹은 걸로 징계까지 때려버리는건 너무하지 않심까아아...”


누가 봐도 부당한 처사였지만 전임 중대장과 같은 위치인 내 앞이라 그런지, 클라라 하사는 완전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작게 항변하고 있었다. 자신의 직속상관인 정비반장의 뒤에 숨은 채, 그녀의 소맷자락을 꽉 붙들면서 말이다.


이 사람을 어떻게 안정시킬까 궁리를 하며 방금 전 그녀의 한 마디를 곱씹다가, 나는 무심코 내가 계속 지니고 있었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탁 떠올랐다. 그래, 스팸을 좋아한단 말이지...?


나는 잔뜩 움츠러든 그녀의 눈높이에 맞춰 살짝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 내 주머니에서... X팜을 꺼냈다. 그래, 출출한 한국 군인의 영원한 친구, 마법의 조미료 맛X시와 세트를 이루는 마성의 소시지 빅X말이지.


이 세계로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갔던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셀프 라면에 넣어 먹으라고 비치되어 있던 걸 어쩌다 보니 한 개 가져왔었는데, 하필 카고 바지 아랫단 주머니에 쳐박아두고는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전역한 아는 형도 짬타이거한테 먹이삼아 가끔 줬다고 그랬으니까, 이 사람도... 먹어도 괜찮겠지?


눈앞에서 포장을 뜯자마자 입질은 곧바로 왔다. 머리보다 몸이 일찍 반응하는 건지, 그녀는 곧바로 킁킁거리며 코를 가까이 가져다 댔는데, 소시지라는 사실을 알고는 눈을 반짝이며 이내 입 안에 침이 한가득 고였다. 표정을 숨기려고는 노력하는 것 같은데, 참 알기 쉬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징계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의외로 좀 주춤거리며 쉽사리 다가오지는 못하는 모습이었다. 먹고는 싶은데 엄청 눈치를 보는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워 보이는지, 결국 나는 곧바로 그녀의 손에 소시지를 쥐어주고 말았다.


“앞으로는 눈치 보지 말고 먹어요. 이런 걸 일일이 얘기해줘야 하는 것 자체가 웃긴 상황이긴 한데, 앞으로는 그런 바보같은 일이 절대 안 생기도록 내가 똑바로 정신 차리고 부대를 운영할게요.”


그러자 소시지를 받은 당사자도, 뒤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병사들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듯 노골적으로, ‘이새키가 뭘 잘못 쳐먹었나?’ 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여기서 가장 유도리가 있어 보이는 정비반장만이 나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이가 없네. 당연한 걸 했는데 주변으로부터 무슨 믿을 수 없는 일이라도 본 듯한 시선을 받아야 한다니. 이런 걸 보면 폐쇄적인 군대의 잘못된 문화가 사람의 뇌를 절여서, 당연한 것도 신기하게 여기는 바보로 길들여놓는 게 맞긴 한 것 같다.


괜시리 정비고 안의 묘한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만 같아서,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그럼 캐서린 중사, 전차 정비고 견학을 좀 부탁해도 될까요?”


무아지경으로 소시지를 먹는 클라라 하사를 마치 엄마의 시선으로 흐뭇하게 바라보던 캐서린 중사는, 이내 내 말을 듣고는 정신을 차렸는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우선 말씀드릴 건, 정비반이 총 2개의 팀으로 나뉘어 있다는 검다. 하나는 제가 맡은 경전차 정비반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 있는 클라라가 맡은 컴뱃카 정비반임다.”


아하, 그러니까 서로 담당하는 차량이 다른 거구나.


내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캐서린 하사는 차트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 원래는 그냥 한 팀이었는데, 이번에 신형 전차가 들어오면서 얼마 전에 정비인력을 반으로 나눠서 급조한 검다. 정비교육도 전혀 못 받은 상태에서 물건만 덩그러니 받은 거라, 솔직히 저희도 처음 만져보는 놈이다 보니 아직 정비하다 좀 헤매는 구석이 많슴다.”


그녀는 멋쩍다는 듯 헤헤 웃으며 말했다. 하긴, M1 컴뱃카랑 35(t)는 척 보기에도 생김새부터 영 딴판이니까. 같은 전차라고는 해도 우선 제조 국가부터 다른 데다, 익숙하지 않은 걸 처음 만지다 보면 실수야 당연히 할 수도 있는 법이지. 다만 본격적인 훈련이나 전투 전까지는 좀 익숙해져 주었으면 한다. 그래야 정비 실수로 인한 비전투 손실을 줄일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앞의 35(t)를 한번 쳐다보았다. 초기 미군 특유의 사막색과 비슷한 황토색 도장을 한 35(t)는 뭐랄까, 솔직히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컬러 필름에서 본 이놈과 38(t)는 체코 합병 후 독일군 손에 넘어가 짙은 저먼 그레이 색을 도포하고 운용되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일부는 아프리카에서도 사용을 하긴 했지만.


대략적인 스펙을 읊어주는 캐서린 하사의 설명을 들으며 멍하니 전차를 쳐다보고 있었더니, 별안간 맛있게 소시지를 먹은 클라라 하사가 아까 전까지 타고 있던 35(t)의 포탑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고양이 수인이라 그런지 몰라도 정말이지 깜짝 놀랄 만큼 엄청난 운동신경이었다.


“들어와 보실래예? 요 안이 쪼매 좁기는 해도, 안에는 그래도 꽤 아늑한 편인데.”


그녀는 조종수 해치까지 내려와 한 손으로 주포를 잡더니, 다른 한 손을 내게 내밀었다.


“네가 웬일이냐? 평소에는 성깔도 드러운 게.”


“...묵을거 주면 다 좋은 사람 아임니까?”


낭창한 표정으로 클라라 하사가 반문했다. 그러자 캐서린 중사는 차트로 입가를 가리고는 내게 귓속말로 작게 이야기했다.


“오늘은 평소 이미지가 좀 많이 망가졌지만, 평소엔 만사가 귀찮은 아이임다. 게다가 사향고양잇과 종특인지 성깔도 까칠해서 도통 남한테 다가가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중대장님은 어떻게 간단히 먹이로 길들이심까?”


“...다 들리거든예.”


클라라 하사는 영 불편하다는 기색을 내비치며 흰 붕대를 감은 꼬리를 흔들흔들하더니, 차가운 눈빛을 캐서린 중사에게 쏘아 보내고는 다시 주포를 훌쩍 뛰어넘어 그대로 포탑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뭐랄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긴 한데, 일단 삐졌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겠다.


“야 인마! 적어도 중대장님한테 경례는 하고 가야지!”


“아하하...괜찮아요. 이미 익숙해졌거든요.”


중대장으로써 이런 일에 익숙해져도 될까 싶긴 하지만, 한동안은 누가 되었든 좀 격 없이 다가가볼 생각이다. 물론 여기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로 캐릭터들이 독특하긴 하다만, 그렇게 가까워지면 이런 사람들 속에서도 적어도 상관 대우 정돈 받을 수 있겠지.


캐서린 하사는 한숨을 내쉬더니, 할 수 없다는 듯 이번에는 옆에 있던 M1 컴뱃카 쪽으로 직접 자리를 옮겨 설명을 시작했다.


“이건 정찰소대에서 사용하는 M1 컴뱃카임다. 원래는 경전차나 다름없는데, 뭐 높으신 분들의 고집인지 기병 관할의 전차들은 보통 컴뱃카라 부름다. 원래는 주력이었지만 저놈이 들어오면서 최신 전차인데도 이 부대에선 서열이 밀려난 불쌍한 아이죠. 뭐, 그래도 덩치는 쬐끄매도 야지 기동력이 준수한 편이라 기동력을 중시하는 기병에서는 말 대타로 뛰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이임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정비고 벽 근처에 있는 캐비닛에서 M1의 제원 파일을 꺼내주었다.


“상세한 제원은 여기에 다 기재되어 있을 검다. 가져가셔서 추가로 검토하시면 됨다.”


파일을 건네준 그녀는 마지막으로 나를 정비고 맨 끝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다른 35(t)와 다 똑같은데, 엔진룸 위에 웬 철봉 펜스가 세워진 채 어두운 청록색 계통으로 칠해진 전차 두 대가 서 있었다.


“이게 중대장님과 부중대장께서 탑승하실 지휘 전차임다. 뭐, 다른 건 다 똑같은데, 다른 점이라면 포탑 밖으로 나오셔서 지휘하시기 편하게끔 지휘용 펜스가 세워져있고, 지휘관 차량임을 표시하기 위해 도색이 조금 다른 것 정도임다. 여기 차량번호 옆에 노란 별이 새겨진 게 중대장 차량이고, 흰 별이 새겨진 저게 부중대장 차량이니 차량번호랑 같이 구분하시면 됨다.”


확실히 내 전차에는 차량 번호 7번 옆에 큼지막하게 하얀 별이 새겨져 있었다. 별 표식을 제쳐두고서라도 다른 전차들과는 영 딴판인 도색부터가 ‘나 지휘관이오.’ 하고 광고하는 느낌인지라 제일 먼저 표적이 되진 않을까 걱정되는데... 아, 물론 뭐, 걸X&판X의 황금색 38(t)같은 것보다야 훨 낫긴 하지만.


그래도 솔직히 적군 입장에서는 충분히 눈에 띌 만한 도색과 마킹이었다.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캐서린 중사에게 부탁해서 조만간 도색을 다른 전차들과 같은 색으로 바꾸던지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캐서린 하사는 아까의 클라라 하사처럼 능숙하게 전차 위로 올라가더니, 손에 낀 목장갑을 벗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이게 참 난감한 게, 이 아가씨 윗옷도 달랑 러닝셔츠 한 장이 다였지만, 거기에 더해 그녀의 자세 역시 상체를 숙이며 한 손을 무릎에 짚은 자세였던지라, 캐서린 중사의 그...뭐냐, 커다란 흉부장갑이 너무 강조되어 보였다.


아무리 누이들과 함께 여자 밭에서 사는 법을 단련해온 나라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시선을 처리하기가 곤란한 건 어쩔 수가 없다. 물론 정작 본인은 남자의 고충 따윈 전혀 모른다는 듯 티 없는 미소로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지만 말이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 여기선 신경 쓰는 놈이 이상하게 보이겠지. 나는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이 너무나 무색하게도...


“엇차, 자, 괜찮으심까?”


키가 작은 내가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갈 것을 배려한건지, 내가 전차 상판에 다리를 짚자마자 그녀는 그대로 내 팔을 잡아당겨 나를 자신의 품에 폭 안았다. 물론 나는 그녀가 잡아당기는 것과 동시에 앞쪽으로 중심을 잃으며 의도치 않게 그녀의 흉부에 머리를 처박게 되어버렸고 말이다.


“앗차차, 더워서 옷이 땀투성이인걸 생각을 못했네. 으음...뭐, 좀 찝찝해도 조금만 참아주심 감사하겠슴다.”


그녀는 그대로 나를 안아 올려 경사가 지지 않은 큐폴라 옆 포탑 상판에 내려주었다. 물론 단 몇 초뿐인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동안 나는 숨이 막힌 채로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하, 땀 냄새가 좀 심했죠? 이거 죄송함다. 제가 생각 없이 행동이 좀 먼저 나오는 스타일이라...헤헤.”


그녀는 실없이 웃으며 자신의 러닝셔츠 안에 손을 넣어, 그나마 땀이 덜 난 배 부분으로 내 얼굴 가를 닦아주었다. 그 덕분에, 아니, 그 때문에 나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것에 이어 그동안의 정비로 다져진 것인지, 가볍게 탄 얼굴이나 팔과는 달리 군살이 하나도 없이 매끈한 하얀 배를 보게 되는 두 번째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전차장석에 나를 앉히고는, 혼자서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이게 무전기고, 이게 헤드셋임다. 이건 이렇게 조작하시면 되고...”


얼떨결에 전차장석에 앉은 나는 그녀에게 온갖 장비들을 만지는 기본 조작법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녀는 자기 입으로 아직 정비 실수가 많다고 했지만, 그래도 중사를 달 동안의 정비 짬밥은 어디 안 가는지 능숙하게 기기들을 조작하며 생전 전차에 앉아본 적조차 없던 내게 하나하나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전 입대 전까진 트랙터랑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해서, 어찌저찌 그때 기른 실력으로 정비병들 교육시키고 이놈 정비도 하는 검다. 입대 후에 제가 들어간 부사관 학교는 심하게 낙후된 시설에, 높으신 귀족가 양반들께서 예산과 장비들을 홀랑 해 드시는 바람에 거의 배운 게 없거든요.”


갑자기 그녀는 분주히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멋쩍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무언가 말하기를 주저하듯이,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녀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며 겨우 입을 뗐다.


“그, 뭐냐. 중대장님은... 다른 세계에서 오셨잖슴까? 비록 제가 촌구석에서 구리스질만 하다 와서는 입대할 때만 해도 글조차 제대로 읽을 줄 모르던 무식쟁이긴 하지만, 당신이 하는 연설을 들을 때, 정말, 정말 이상하게도.... 여기서 뭔가가 느껴졌슴다.”


그녀는 또다시 조금 주저하다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내 손을 확 낚아채더니 자신의 왼쪽 가슴에 그대로 갖다 댔다. 갑작스러운 과한 스킨십에 부끄럽거나 놀란 것보다도, 그녀의 악력이 무척이나 억세어 조금 아프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처음에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다지 크게 기대하지 않았슴다. 어차피 소환한 놈도 귀족일 테니, 다 그놈이 그놈이라 생각했죠.”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짓눌린 손을 통해 그녀의 심장 박동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두근, 두근 하고 템포는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당신이 하는 말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당신이라면 뭔지는 몰라도 확실히 부대가 바뀌어 갈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슴다. 그런 연설을 여기 있으면서 한두 번 들어본 것도 아닌데 말임다.”


그녀의 표정은 진지했다. 손을 타고 전해지는 심장박동과 격앙되어 조금이나마 붉어진 얼굴, 그로 인해 전에 비해 더해진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저는 바보라 잘은 모르겠슴다. 당신이 그저 허울 좋은 가면을 쓴 건지 뭔지는 말임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저는 머리보단 몸을 쓰는게 편하고, 지금까지는 그냥 본능과 이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왔으니까요.”


그 말을 한 캐서린 중사는 나머지 한쪽 손을 내 심장 위에 올려놓은 뒤, 내 심장의 고동을 느끼기라도 하려는 듯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고르고는, 나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그래서, 까짓 거 한 번만 더 속아볼까 함다. 적랑족의 육감이 깃든 제 가슴을 믿고 말임다.”


말을 마친 캐서린 중사는 나와 자신의 앞머리를 슥 들어 올리더니, 마치 열을 재듯 자신의 이마를 내 이마에 갖다 댔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어느새 옆에 올라온 케이트 하사를 향해 눈만 돌린 채, 눈빛으로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당신을 믿고 따르겠다는 의사 표시랍니다. 보통 늑대 일족 중에서도 신체능력이 뛰어난 편인 적랑족이 우두머리를 정했을 때 사용하는 의사 표시 방법이죠.”


케이트 하사 역시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하지만 이내 그 행동에 담긴 의미를 설명해주며 나를 향해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그럼 내가 이 사람한테 인정을 받은 거구나. 내 연설이 전혀 효과가 없던 게 아니었구나.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어안이 벙벙하긴 하지만, 케이트 하사의 말을 듣고 의미를 이해하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안도감이 퍼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정비병들 역시 작업을 멈추고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고 보니, 정비고 안에 있던 정비병 8명 역시 헤어스타일은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적으로 캐서린 중사와 같이 모두 붉은 머리칼의 늑대 귀와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내 이마에서 떨어진 그녀는 마지막으로 내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는, 멋쩍다는 듯 헤헤 웃으며 말했다.


“여기 있는 녀석들도 모두 나온 배는 다르지만, 다들 저희 일족임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같은 마을 출신 입영 지원자들은 다 같은 부대에 배치가 되어서 어쩌다 보니 구성원이 이렇게 되었슴다. 자, 그럼 너희도 규칙에 따라야지?”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는 이미 입대 전부터 적랑족의 차기 당주였지만 복잡한 걸 싫어해 군대로 도망을 쳤고, 결국 그녀를 따라 비슷한 나이대의 인원들이 우르르 입대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차기 당주가 인정하고 따르는 상대라면, 구성원들 역시 그들의 규칙에 따라 상급자의 상급자가 된 상대를 자연스럽게 존대하고 따르게 되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놀랍게도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불과 20분 전쯤 내가 처음 여기에 왔을 때만 해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정비병들이, 지금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내가 있는 전차 위로 차례를 지켜 올라오더니, 캐서린 중사의 말에 따라 모두 내 이마에 그녀와 같은 의사 표시를 했다.


특히 이들이 하는 의사 표시에 대해 한명 한명이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마치 우리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빨리 하고 치워버리려 할 때 주로 보이는 행동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다들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조차, 특히 마지막 입맞춤에는 더욱 신경을 쓰듯 두 손으로 내 양 얼굴을 감싸고는, 살포시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아주 세심하게 내 이마에 입을 맞추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이들이 그저 마음에도 없는 겉치레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확실하게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난 이들의 행동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지라, 스스로가 한심하긴 하지만 이들이 의사 표시를 하는 동안에도 당황한 채 얼어붙어서는 좀 어버버하는 모습을 보여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게, 이곳 여성들은 미녀가 아닌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 외모가 무척이나 수려한 편이었고, 그렇게 예쁜 여자아이들과 얼굴을 이렇게까지 가까이 맞대는 것도 처음이지만, 또 이렇게 많은 상대에게 한꺼번에 존대의 의사를 받게 되는 것 역시 나로선 생전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뭐, 좀 바보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실시간으로 이마에 쏟아지는 키스 세례가 원체 생소한 경험이라 좀 많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이것도 기쁘다면 기쁜 일이겠지. 상대에게 인정받아 아군이 늘어나는 건 환영할 일이고, 적어도 케이트 하사나 캐서린 중사에게는 내 진심이 통했다는 뜻일 테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밀리터리 마니아가 이세계의 전쟁영웅이 되기까지 (1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16) 15화.[그녀들과 온천에서](3) +4 21.02.11 197 3 15쪽
15 (15) 14화.[그녀들과 온천에서](2) +6 21.02.05 203 3 14쪽
14 (14) 13화.[그녀들과 온천에서](1) +10 21.01.28 234 3 18쪽
13 (13) 12화.[너네 이거 성군기 위반이야!(...)] +4 21.01.19 239 3 15쪽
12 (12) 11화.[적 대전차포, 그리고...] +2 21.01.13 229 3 15쪽
11 (11) 10화.[첫 전투] +2 21.01.10 235 3 17쪽
10 (10) 9화.[드리우는 전운] +4 20.12.31 237 3 22쪽
9 (9) 8화.[무너지는 의지] +4 20.12.21 251 3 21쪽
» (8) 7화.[정비반과 35(t) 전차] 20.12.11 278 4 23쪽
7 (7) 6화.[상처입은 여자들] +1 20.12.03 294 5 25쪽
6 (6) 5화.[심상찮은 부대] 20.11.22 327 3 14쪽
5 (5) 4화.[여왕의 선물] 20.10.25 361 3 14쪽
4 (4) 3화.[너희가 내 부관이라고?] 20.10.23 446 3 12쪽
3 (3) 2화.[큰누나의 결심] 20.10.20 609 3 22쪽
2 (2) 1화.[사람 목숨이 장난도 아니고] +3 20.06.07 1,186 9 37쪽
1 (1) 프롤로그.[소환, 그리고 두 엘프 해병대원] +4 20.04.22 1,924 2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