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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츄샤 님의 서재입니다.

밀리터리 마니아가 이세계의 전쟁영웅이 되기까지 (1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전쟁·밀리터리

카츄샤
작품등록일 :
2020.04.22 04:51
최근연재일 :
2022.03.08 11:44
연재수 :
119 회
조회수 :
17,346
추천수 :
200
글자수 :
565,196

작성
20.12.31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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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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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22쪽

(10) 9화.[드리우는 전운]

DUMMY

잠시 양해를 구하고 열어 봤더니 리스가 숨을 헥헥거리며 서 있었다.


“지금 부장님이랑 통화 중이니까, 들어와서 앉아있어.”


그녀는 숨이 차다는 듯 가슴을 두드리며 소파에 앉았고, 나는 다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실례했습니다. 제가... 사망 처리되었다구요?”


“그렇다네. 자세한건 이따 자네 부관에게 듣도록 하고, 지금은 급하니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는 듯 침묵하더니, 이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엘렌 공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대충이나마 들어서 자네도 알겠지만, 떨어질 콩고물이 많은 만큼 따르는 무리 역시 많다는 것 정돈 예상할 수 있겠지.”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2년 전쯤부터 서쪽 끝의 워싱턴 주를 본 영지로 두는 엘렌 공작가는 미 서부 전체에 대해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지. 그들은 미네소타, 오클라호마, 와이오밍, 그리고 애리조나의 유력 영주들과 결탁해서 미주를 완전히 반으로 나누어 서부연합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국가 단체를 만든 뒤 바로 어제까지도 독립을 요구하고 있었네.”


부장의 말을 요약하면 그렇게 독립을 요구하던 이들의 군사적 동향이 상당히 공세적으로 변환되어 가는 것을 보아 적어도 1주일 내에는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2시간 전쯤 왕성으로부터 결국 이들의 국가전복 혐의를 공식화하고 쿠데타로 규정하여 진압을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모레를 기해서 전면적인 공세가 시작될 테니, 자네는 일주일 전부터 계속해서 간헐적인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일리노이의 헨더슨으로 가서 교전 중인 내셔널 가드를 지원하도록 하게.”


그 말을 끝으로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겠다는 상투적인 멘트와 함께 전화는 끊어졌다. 나는 아닌 새벽에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도 못한 채 소파에 앉아 리스가 건네준 서류를 받았다.


“어디까지 이야기 들었어?”


리스가 물었다.


“아직 대충정도밖엔... 일리노이로 가서 주방위군을 지원하는 게 주 임무가 될 것 같은데... 아, 그리고 내가 사망 처리되었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내 말에 리스는 열심히 말을 고르는 듯하더니, 이내 포기했는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말 그대로야, 넌 서부연합과 너를 거슬려하는 귀족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아르티아 국무부에 의해 부대로 이동 도중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처리됐어. 물론 정보력도 좋은 데다 고여있는 귀족 사회를 생각하면 그냥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정치적인 명분으로 쓸 수라도 있게 하려는 조치인 모양이야.”


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반대하는 귀족들의 의견마저 묵살한 채 나를 소환해놓고는, 얼마 되지도 않아서는 그 반동을 억지로 감수하면서까지 다시 내 기록을 없앤다고? 그럼 난 여기 왜 있어야 하는 건데? 그게 과연 나를 귀족들로부터 구하기 위한 조치인지, 아니면 나를 투명인간으로써 써먹을 대로 써먹은 뒤 아무런 정치적 위험 없이 편하게 지워버리기 위한 조치인 건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그 조치로 인해 내 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일은 있어선 안 되는데, 일단 이 소식이 누이들에게 전해지는 것부터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제발, 그래야 하는데..


순간 마음속이 너무 복잡해졌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그저 그들을 믿고서 주어진 일을 계속하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솔직히 너무 답답하지만... 그래, 여왕이나 리안한테도 생각이 있어서 한 일일 거야. 그럴 거야...


나는 복잡해진 머릿속을 애써 무시한 채 한숨을 푹 내쉬며 눈앞의 명령서를 집어들었다. 적어도 이걸 읽고 집중하면 잡생각 정도는 다 지워버릴 수 있겠지.


으음...명령서에는 아까 로빈 부장의 이야기와 함께 좀 더 세부적인 명령이 쓰여 있었다. 헨더슨과 디모인을 사이에 둔 미시시피 강의 08번 철교에서 간헐적인 교전이 벌어지고 있으니, 내셔널 가드, 즉 일리노이 주방위군을 지원하여 다음 날 개전 직전까지 철교를 방어해 내라는 것이었다. 포탄 등의 보급은 실험 기병부 소속의 제 2 특수 독립 수송중대에서 맡게 될 것이며, 주둔지는 현재 부대 이전으로 인해 사용되지 않는 헨더슨의 A-1 주방위군 기지를 사용하라고 되어 있다. 오전 6시에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출발, 9시에 워싱턴 유니언 역에 도착해서 군용 열차에 화물을 모두 적재하고, 거의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기차를 타고 달려야 했다.


“리스 네가... 정찰 소대장이었지?”


“맞아. 에린은 1소대장이고, 비앙카 하사가 2소대장이야. 3소대장이랑 부중대장석은 아직 공석인데, 여기 보면 전입자들이 헨더슨 쪽으로 같이 와서 합류할 거라고 되어 있네.”


리스가 인사 파일을 건네주며 이야기했다. 어디 보자, 부중대장은 마틸다 모렌 견습생도에... 3소대장은 미아 해리슨 하사라..., 응? 미아?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 것 같은데...


“혹시 기억나?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대대장 텐트로 안내해줬던 그 하사. 걔가 여기로 온다고 하더라고. 세상 참 좁지.”


아! 작은누나가 이쁘다면서 이름 물어봤었던 그 토끼 귀 하사구나. 근데 그 사람은 해병대 소속일 텐데 왜 육군에..?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어쨌든 중대원들 기상은 시켜뒀으니 한 10분쯤..? 이따 나와서 브리핑해주면 될 거야.”


“그래... 고마워.”


리스가 나간 후부터는 정말이지 내가 바라던 대로 모든 것이 미친 듯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출발 시간은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검토해야 할 추가 서류가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나는 안 그래도 말 안 듣는 중대원들을 통제하면서도 서류를 검토해야 했고, 우리 부대가 자리를 비울 동안 부지를 지켜줄 파견병들의 도착도 예상에 비해 늦어지면서 결국 20분 정도 늦어져서야 겨우 모든 일을 정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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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파견병들이 가져온 서류에까지 사인을 마친 후, 나는 건물 밖으로 나와 연병장에 주욱 도열한 전차들을 보게 되었다. 이건 참 뭐랄까, 나름 장관이었는데, 포신을 위로 치켜든 전차 스무 대와 트럭들이 도열한 채 굉음을 울리며 엔진을 돌리고 있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들래도 자연스레 들 수밖에 없었다.


“아, 왔어? 이제 M1 두 대 정도만 예열 끝나면 출발할 수 있을 테니까, 한 5분 정도만 기다리면 될 거래.”


리스가 다가와 이야기해 주었다. 오늘이 8월이란 점에 비해선 좀 시원한 축에 속하는 날씨였는데, 덕분에 전차 안이 다른 날에 비해서는 좀 덜 덥혀진 찜통 수준일 거란 말에 그나마 안도했다. 그래도 찜통은 찜통인 거구나.


그런 와중에 우리가 이야기하던 걸 발견한 두 사람, 그러니까 각각 1, 2소대장인 리스와 비앙카 하사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중대장, 준비가 모두 끝났다. 출발 전에 무언가 따로 전할 말은 없는 게냐?”


리스는 편하게 부르라 한 후부터는 나를 이름이 아닌 중대장(commander)이라고 불렀다. 격식과 말투 사이의 갈등에서 나온 본인 나름의 절충안인 모양인데, 자기가 편하다면 그걸로 된 거겠지 뭐.


“...”


2소대장 비앙카 하사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유독 큰 키에 특유의 뱅 머리 헤어스타일 때문인지 그늘져 보이는 푸른 눈이 좀 무섭게 느껴졌는데, 살짝 위축된 내가 뭐 할 말이라도 있냐는 듯 쳐다보자 바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정말이지 여전히 알 수가 없는 사람이다.


“으음, 뭐 따로 더 전할 말은 없고, 이제 다들 돌아가서 대기하면 될 것 같아요. 준비 다 끝났다는 보고 받으면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그렇게 소대장들을 모두 해산시키고 내 전차로 들어가려고 보니, 케이트 하사가 내 뒤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순간 어제의 기억이 떠올라 살짝 얼굴이 붉어지려는 찰나, 그녀는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내 손을 잡아끌었다.


“자, 어서 가요. 다들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녀의 손에 잡아끌린 나는 대열의 선두에 있던 특이한 색상의 내 전차에 도달하게 되었고, 전차에서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마주하기 좀 껄끄러운 얼굴들이었다.


“...잘 부탁합니다.”


나는 흘깃 쳐다보는 그들에게 짧은 인사를 하며 케이트 하사의 뒤를 따라 포탑 위를 올라 자리에 앉았다. 의외로 보기와는 달리 꽤 높아서인지 탁 트인 시야에는 행렬 끝에 있는 차량들까지 모두 눈에 들어왔다.


나는 천천히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한 숨 크게 들이마신 뒤, 각 소대장을 모두 호출했다.


“으음, 여기는 본부소대 7호차, 각 소대별로 상황 보고 부탁드립니다, 이상.”


무선 호출하는 방법이나 규칙도 전혀 모르기에 대충 영화에서나 보던 걸 비슷하게 이야기한 거지만, 어쨌거나 다행히도 모든 소대장들로부터 답신이 돌아왔다.


“여기는 1소대, 이상 없음.”


“...2소대, 이상 없습니다.”


“아, 여기 3소대!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4소대, 방금 예열 끝났고 이제 출발해도 될 것 같아.”


와, 방금까지도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2소대장이 드디어 처음으로 입을 열었는데, 약간 높은 톤의 그 목소리는 지직거리는 무전기의 잡음으로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그 어떤 여자 목소리보다도 아름다운 미성이었다. 왜 아깝게 저런 좋은 목소리를 평소에는 전혀 들려주지 않는 걸까?


아, 그리고 3소대장석은 현재 공석이라 궁여지책으로 다음 최선임인 루디 병장이 임시 소대장을 맡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이 부대는 나를 빼고는 장교가 아예 없을뿐더러 부사관들의 계급조차 대체적으로 낮은 편이었는데, 이유를 듣자 하니 애초에 이 22 실험부대가 생기게 될 때부터 이미 아르티아 육군 자체가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던 터라, 대부분의 부대들이 숙련된 인력을 이 부대에 보내는 것 자체를 꺼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아까 서류에 적혀 있던 것처럼 이 부대는 일단 7여단 소속이긴 하지만, 보급과 같은 것조차 작전 시에는 실험 기병부 소속의 자체적인 보급부대가 시행하는데다 지휘권조차 이들에게 있기에, 그냥 여단에서도 우리 부대는 이름만 빌려준 없는 자식 취급한다고 했다. 물론 내가 오기 전까지는 신생 병과인 실험 기병부에서조차 제대로 된 관리를 하지 않았고.


덕분에 이 부대는 현재 오랜 기간 동안의 방치 속에 최근 전임 중대장을 비롯한 장교들이나 그나마 계급 있는 부사관들이 싹 다 증발하게 되면서, 무려 장교라곤 달랑 나 한명에 거의 대부분의 전차장 계급이 병장이라는 기이한 모양새를 하게 되었다. 어제 왕성에서 억지로나마 에린과 리스의 계급을 중사로 올려준 게 이제서야 이해가 되려고 했다.


어쨌거나 나의 출발 명령과 동시에 내 전차가 행렬의 선두에 서게 되었고, 연병장을 벗어나 처음 도로로 나서자 인근의 헌병부대와 제 1 근위 보병연대에서 파견된 병력들이 교통 통제를 진행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길가에 대기하다 내 앞에 콘보이로 따라붙은 사륜 구동차량의 지휘관에게 목례하면서 워싱턴 역까지의 지휘를 계속했다.


뭐랄까, 솔직히 낮선 경험에 행여나 실수라도 할까봐 바짝 신경이 곤두서다보니 금세 피곤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또 지휘 자체의 난이도는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중간 중간 눈에 들어오는 30년대 워싱턴의 풍경은 정말 생소하면서도 내 기분을 영 우울하게 만들었다.


벤치에 앉아 구직 신문을 보는 사람, 판매한다는 팻말이 내걸린 거리에 줄지어 세워져 있는 자동차들, 그리고 천진난만하게 강아지와 공원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말 그대로 아직까지도 대공황의 여파가 여실히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하긴, 귀족은 귀족대로, 왕정은 왕정대로 서로 칼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니 장기 불황이 이어지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겠지.


아무튼 뭐, 워싱턴 역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기에 금세 도착했다. 문제는 무개화차에 전차를 싣는 중노동이었는데, 간단히만 말하자면 광학장비는 모두 탈거해서 별도 포장한 뒤, 지휘용 펜스가 설치된 내 전차를 제외한 모든 전차의 포탑을 뒤로 돌린 채 화차에 올리고, 고임목을 밑에 깔고 고정한 뒤에 전차 고정용 케이블을 교차시켜 연결하면 되는 작업이었다. 간단해 보이지만 빌어먹을 정도의 중노동이었고, 더군다나 아무리 좀 덜 더운 날씨라고는 해도 한여름에 그늘막 하나 없는 땡볕 아래서 그런 작업을 하고 있으려니 정말로 죽을 맛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케이트 하사가 챙겨둔 자외선 차단제 덕분에 새카맣게 피부가 타는 건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만, 다행이 아닌 점은 다들 순식간에 입고 있던 옷이 땀에 푹 절어버린 탓에, 대부분의 병사가 윗도리를 훌렁훌렁 벗어던진 채 작업을 했던지라 나로선 눈 둘 곳이 없었다는 점 정도였다. 그나마 나를 의식해 준 케이트 하사나 에린 같은 경우엔 하다못해 러닝셔츠 정도는 걸쳐 주었지만...


“중대장님... 죄송해요, 저도 이젠 도무지...”


결국 적재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에는 케이트 하사조차 정말 죽을 맛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러닝셔츠를 벗어던지고 말았다. 확실히 셔츠가 헐렁한 편인 나랑은 다르게 다들 가슴 때문에 옷 자체가 좀 꽉 끼는 모양새인데다, 속옷까지 차고 있어서 통풍이 영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보자면 끝까지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면서도 묵묵히 러닝셔츠를 입은 채 작업을 하는 에린은 정말 사람인가 싶었다. 아, 리스? 걘 아마 부대원 중에서 제일 먼저 벗어던졌을 거다. 이런 만악의 근원 같으니.


“영훈, 작업 다 끝났어!”


“아 넌 제발 옷 좀...”


저 저 뛰어오는 것 좀 봐. 해맑은 표정으로 흉부에 미사일 달고서 뛰어오지 말아 줄래? 하다못해 사이즈라도 좀 작던가, 무슨 사이드와인더도 아니고 MOP 벙커버스터를 두 개씩이나...


“.....”


세상에, 여기 에린보다 더한 양반이 있었네. 리스의 손에 이끌려 보고하러 온 2소대장 비앙카 하사는 더위로 인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상태에서도 러닝셔츠는커녕 제복 단추까지 꽉꽉 잠가 맨 상태였다. 무표정했던 표정조차 답답해 죽을 맛이라는 듯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드러내고 있었고, 옆에 달린 양의 귀조차 마치 부채질을 하는 듯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이, 누가 봐도 쪄죽을 것 같아보였다.


“저기... 안 더워요?”


내가 어이가 없어 물어봤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내 앞의 객실을 가리켰다.


“열사병 걸리기 전에 소대 통제해서 먼저 들어가요. 어차피 다 끝나서 체크만 하면 되니까.”


그러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뒤돌아서서는 자기 소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나는 리스와 에린, 그리고 루디 병장에게도 똑같이 전한 뒤 정비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점검을 마치고는 마지막으로 객실로 들어왔다.


나는 모든 객실을 지나쳐 기관실 바로 뒤에 있는 부사관 및 장교용 객실로 들어왔고, 자리에 걸터앉아 늘어진 채 다가온 소대장들에게서 인원 체크 보고를 받았다.


그나저나 어떻게 객실 안에 제대로 된 에어컨 하나 없냐... 진짜 선풍기에 지붕으로 햇빛 가려주는 것 빼고는 바깥과 다를 게 없다. 아니, 오히려 갇힌 공기가 돌고 돌아서 더 더운 것 같기도 했다. 난 옆에 앉은 케이트 하사에게 보통 객차에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는지 물었다.


“여객 열차라면 이미 몇 년 전에 다 설치된 걸로 알고 있지만... 이런 낡은 군용 열차까지는 미처 신경을 못 쓴 게 아닐까요?”


아니, 할 거면 다 해야지 그게 무슨... 으아, 이런 상태로 하루 종일 달린다니... 정말 끔찍하네..


-----------------------------------------------------------------------------


그나마 다행히 열차는 달리는 중간에 딱 한 번 멈춰 서게 되었고, 나는 20분간 역에서 벗어나지 않는 조건으로 자유 시간을 부여했다. 어차피 그리 큰 역도 아닌 2층 건물 하나짜리 간이역이었던지라 조금만 통제하면 크게 신경 쓸 만한 일은 없었고, 간부나 병사나 갈 곳이라고 해봤자 에어컨 빵빵한 실내뿐이라 통제 자체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저기, 너 어디서 왔어? 귀여워라... 자, 이거 먹을래?”


“같이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 자, 웃어. 웃어!”


이놈의 치와와 취급은 어느 동네에서도 마찬가지인지, 민간인들이 다가와서는 내게 말을 걸거나 사진을 찍자며 초기형 라이카를 들이대는 일이 종종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중 대부분이 팔뚝이나 등짝에 웬 호랑이랑 용이 싸우고 있는 무서운 누나들이었다는 점이려나.


지나가는 말로는 간이역이 있던 그 동네가 마피아들의 전진 기지로 쓰이던 곳이라는 말이 있던 것 같은데,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저렇게 군복 입은 나한테 저렇게 호의적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뭐, 아무튼 그렇게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그대로 다시 기차에 올라 목적지인 헨더슨을 향해 쭈욱 이동했다. 다행히도 이동 중에는 크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는데, 도착하고 보니 이미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진 한밤중이었다. 그리고 화물을 하역하는 곳에는 이미 주방위군 소속 인원들이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브로디 헬멧을 쓴 나이가 좀 되어 보이는 한 여성은 자신을 일리노이 주방위군 33보병여단 소속의 제니아 중위라고 밝혔다.


“잘 오셨어요. 저는 33보병여단 1대대 A중대 소속의 제니아 로빈슨 중위, 그냥 제니아라고 불러줘요.”


화차에 적재한 전차를 모두 하역해서 그녀의 안내를 받아 주둔지로 이동한 뒤 우리 부대는 급히 3시간가량의 휴식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피로한 몸과는 달리 잠이 잘 오지 않아 그냥 멀뚱멀뚱 야외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 그러자 우리 대신 경계근무를 서기 위해 일부 인력과 함께 남아있던 제니아 중위가 내 옆에 걸터앉아 말을 걸어왔다.


“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안 그래도 망할 대공황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에요.”


“여파가 아직까지도 심각한가 보네요.”


“말도 마세요. 저 같은 지방 귀족들은 사실상 평민이나 다름없어요. 평소에는 남들과 같이 음식점을 운영하고, 지금은 소집되어서 이런 신세죠. 아, 혹시 담배 피시나요?”


그녀는 담배를 꺼내 내게 권하더니, 내가 거절하자 양해를 구하고는 담배를 태웠다. 맑은 하늘에 하얀 담배 연기가 퍼져가는 가운데, 그녀는 말을 이었다.


“우리랑 철교 하나 사이에 두고 맞총질하고 있는 사람들도 다들 서부연합에 복속당한 아이오와 주방위군들이에요. 아직 주력이 도착을 안 해서 저 사람들을 총알받이삼아 내보낸 모양인데, 누구나처럼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죠. 뭐, 저쪽도 주머니 사정은 똑같겠지만.”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모르겠어요. 어제만 해도 앞집에 살던 대학생 아이리가 팔에 총을 맞고 실려갔고, 그저께에는 두 명이 전사했죠. 이러다간 이런 불경기에 공동묘지만 호황을 누리게 생겼어요.”


그때, 입구 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해서 가보니, 웬 더플백을 든 두 사람이 A중대 사람들에게 검문을 받고 있었다. 어라, 저 사람들은...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다가온 나와 제니아 중위를 발견하곤 경례를 올려붙이더니, 한 명은 마치 훈련소를 갓 수료한 매우 빳빳하지만 어딘가 어수룩한 신병처럼, 다른 한 사람은 그냥 덤덤하게 보고를 시작했다.


“아..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제 22 실험 기병 중대에 새로 전입하게 된 견습생도 마틸다 로렌입니다!”


“...하사 미아 해리슨, 제 22 실험 기병 중대로 전입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아.. 저, 저도 신고합니다!”


아으 정신없어. 나는 경례를 받아주고는 제니아 중위에게 먼저 자리를 뜬다는 양해를 구한 뒤 담당 소대를 안내하기 위해 둘을 데리고 전차 쪽으로 갔다. 그런데 굉장히 흥미롭다는 듯 전차를 바라보던 마틸다는 이내 뒤에 서 있던 나를 돌아보더니, 상당히 어이없는 질문을 해 왔다.


“그런데, 말들은 모두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저 건물 뒤쪽에?”


...엥? 말이라니?


“여긴 기병 중대이지 않습니까? 저는 어릴 적부터 말을 타는 기병을 동경하여 기병과에 지원했답니다!”


가슴을 펴고 포부를 밝히는 그녀를 향해 어느새 다가온 제니아 중위와 내가 벙찌는 것과 동시에, 옆에 서 있던 미아 하사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헛소리야. 병사도 아니고 학교를 다니는 생도라는 애가, 자기가 파견 올 부대에서 어떤 장비를 운용하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파견을 나올 정도라면 아무리 재학 중인 생도라 해도 OBC를 안 받았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황당함에 말을 잃은 내가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그때, 타이밍 더럽게도 저 멀리 보이는 철교에서 작지만 따가운 총성과 함께 섬광이 번득이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네. 아무래도, 예정보다 좀 일찍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니아 중위는 그렇게 말하며 뒤집어두었던 철모의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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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11화.[적 대전차포, 그리고...] +2 21.01.13 229 3 15쪽
11 (11) 10화.[첫 전투] +2 21.01.10 234 3 17쪽
» (10) 9화.[드리우는 전운] +4 20.12.31 237 3 22쪽
9 (9) 8화.[무너지는 의지] +4 20.12.21 251 3 21쪽
8 (8) 7화.[정비반과 35(t) 전차] 20.12.11 277 4 23쪽
7 (7) 6화.[상처입은 여자들] +1 20.12.03 294 5 25쪽
6 (6) 5화.[심상찮은 부대] 20.11.22 327 3 14쪽
5 (5) 4화.[여왕의 선물] 20.10.25 361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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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2화.[큰누나의 결심] 20.10.20 608 3 22쪽
2 (2) 1화.[사람 목숨이 장난도 아니고] +3 20.06.07 1,184 9 37쪽
1 (1) 프롤로그.[소환, 그리고 두 엘프 해병대원] +4 20.04.22 1,923 2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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