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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츄샤 님의 서재입니다.

밀리터리 마니아가 이세계의 전쟁영웅이 되기까지 (1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전쟁·밀리터리

카츄샤
작품등록일 :
2020.04.22 04:51
최근연재일 :
2022.03.08 11:44
연재수 :
119 회
조회수 :
17,264
추천수 :
200
글자수 :
565,196

작성
22.01.25 07:10
조회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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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109)108화.[퀸즈 프로토콜](2)

DUMMY

"...로렌 저택이라면 어릴 때부터 다녀서 눈에 훤해요."


그녀는 그렇게 운을 떼었다.


허나 한 가지 걸리는 점은, 교장이 분명 그녀의 외출이나 휴가 처리에 대해 완곡한 거절 의사를 내비쳤었다는 점이다. 그것까지는 자기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결국 그렇게 쓴물을 삼키며 학교를 나와야만 했었다.


그 점을 지적하자,


"...자퇴했어요."


아직 눈가가 새빨개져 있는 클레가 힘없이 대답했다.


그제서야 그녀의 행색이 눈에 들어왔는데,


며칠은 감지 않은 듯 산발이 된 머리와 검게 그을린 듯 퀭한 두 눈동자, 거기에 여기저기 찢기고 다 구겨진 교복, 그리고 스타킹까지.


그래, 완전히 거지꼴이었다.


학교를 나오기 직전 찾아가 문을 두드렸을 때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더라니...이미 학교를 나온 거였구나.


그런 그녀가,


ㅡ털썩.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도와...주세요."


떨리는 목소리. 이내 그렁그렁 눈가에 맻힌 이슬이 방울져 툭툭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흐윽...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


**


"언니가 그렇게 된 이후엔 저, 문 밖에 나서는 것조차 무서워져서..."


결국 자퇴한다는 편지 한 장 달랑 남기곤 짐도 없이 야밤에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와 정처없이 걸었다고 한다. 일부러 추적을 피하려 산을 타고 넘다보니 이 꼴이 난 거라고.


그러고보니 진짜 짐도 하나 없네.


"위병소는?"


"친구가 마침 근무라서... 사정을 설명하니 어찌어찌 빠져나올 순 있었어요..."


자기 딴에는 징계를 무릅쓰고 빼내어 준 건가. 그런 친구 하나 있다는 게 그녀로선 충분한 행운이었다.


그런데, 여긴 또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래?


ㅡ스윽.


내 말에 그녀는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쪽지로 추정되는 그곳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ㅡ미안해, 클레. 언니가 더 이상을 지켜줄 수 없을 것 같아. 대신 이곳으로 가렴. 좋은 분이시니 분명 널 도와주실 거야.


유려한 필기체, 분명 마틸다의 것이었다.


나는 다시금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단순히 친척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편지를 봐서 그런 건가.


얼굴에서 그녀가 겹쳐 보이는 듯했다.


"...배고프지?"


분명 밥도 한 끼 못 챙겨먹고 쫄쫄 굶었을 텐데.


그녀를 옆에 앉히곤 개인 배낭에서 라면 하나를 꺼내 끓인 물을 부었다.


ㅡ치이익....


좀 있으니 하얀 김이 피어오르며 감칠맛이 도는 냄새가 지통실을 가득 채웠다.


처음엔 이게 뭔가 하며 내 얼굴과 라면을 번갈아보던 그녀였지만, 포크를 건네주니 먹을 거란 걸 인식했는지 급하게 허겁지겁 퍼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모두가 측은하게 바라보던 와중, 이를 보다 못한 리스가 모포를 가져와 살포시 어깨에 덮어주었다.


"...옆에 중대장실 있으니까 다 먹고 나면 한숨 자."


그렇게 키를 건네주었지만 선뜻 받지 못하는 그녀.


"...불안한 게로구나. 여긴 안전한 곳이니 부디 안심하거라."


에린이 덧붙였지만 여전히 불안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한다.


"...그냥 여기에서 자면 안... 될까요? 방해 안 할게요. 구석이라도 좋으니까..."


울먹이며 슬쩍 나를 곁눈질하는 그녀.


그리고 그 속뜻을 알아챈 에린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영훈,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그대도 잠시 쉬거라. 그래, 마침 그녀가 불안해하고 있으니 함께 있어주는 것도 좋겠군."


그러면서 귀에 입을 가져다댔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 제 언니가 소개해 준 그대 말고는 그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는 것 같구나."


그러더니 쓰게 웃으며 내 등을 살짝 밀었다.


"잠들 때까지라도 좋으니 옆에 있어주거라. 한숨 자고 나면 또 나아질지도 모를 일이지."


...내가 보모냐.


하지만 뭐, 달리 뾰족한 방법도 없는 것 같기에 나는 억지로나마 수긍했다.


그리고 아직도 키를 꼬옥 받아쥔 채 오도카니 서 있는 덩치만 큰 어린아이의 손을 잡아 이끈다.


그녀는 몇 번 입을 벙긋거리긴 했으나 끝내 아무 말도 못 하곤 고개를 푹 수그린 채 힘없이 내게 끌려왔다.


"...자."


그녀를 강제로 침대에 앉히고 손수 구두를 벗겨주었다.


땀에 푹 젖은 스타킹을 벗기려 하자 그녀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렸지만, 무시하고 힘으로 잡아 벗겨냈다.


ㅡ슥, 스윽...


이윽고 누덕누덕한 스타킹이 벗겨지고 새하얀 맨다리가 드러났다. 땀냄새가 약간 나긴 했지만, 뭐 그렇게 심하지도 않아서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ㅡ보글 보글...


티 포트로 한번 더 물을 끓이는 사이 중대장실 안에 있는 간이 세면대에서 받아낸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를 그녀 발치에 내려두었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뭘 하려는지 몰라 경계심 어린 새끼고양이처럼 시선을 유지하는 그녀의 발을, 살짝 잡아 대야에 담궜다.


"..."


ㅡ촤악! 쪼르륵, 쪼륵...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을 손에 올려 천천히 발에 끼얹는다.


그 동작을 3번쯤 반복하고 나니 털을 부풀리듯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이 스르륵 풀리는 게 안 봐도 확연히 느껴졌다.


비누로 뽀득뽀득,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문질러주자 간지러운 듯 살짝 움츠러들었지만 제지하거나 하진 않았다. 아마 스스로도 뭔가 편안하다고 느끼는 모양.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이윽고 굳게 앙다물려 있던 입술이 작게 달싹였다.


"왜...저를 도와주시는 건가요?"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동그랗게 눈을 뜨자 그녀는 시선을 내리깔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잘난 것처럼 말했지만, 지금 제겐 돈도 뭣도 없어요. 그냥 초라한 도망자 신세죠. 저를 도와서 득 될 거라곤..."


아아. 내가 자기로부터 무언갈 얻어내기 위해 하는 일이라 생각하는 거구나.


확신이 없는 듯 끝을 흐리는 그 말에 쓴웃음이 배어나왔다.


그래, 귀족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한 일이지. 일개 평민에 불과한 내가 중견 귀족가와 척을 지면서까지 몰락한 귀족 영애를 도울 이유 따위 하등 없으니까.


...그래. 어디까지나 귀족의 시선에서 본다면.


"너무 타산적으로만 생각하지 마."


"이건 그런 문제가..."


"마틸다가 널 맡긴 이상 언제까지고 보호할 뿐이야. 갚고 싶으면 나중에 성공해서 갚든가."


"그러다 당신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럼 니가 내 묫자리라도 봐 주던가."


퉁명스레 대답하며 발을 닦아주자 그녀는 기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분 나빠요, 당신."


"말이 안 통하지? 그러니까 얌전하게 돌봄이나 받아라. 설마 군바리 하다 베이비시터까지 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만."


나는 이에 질세라 계속 이죽거렸다.


ㅡ풀썩.


결국 삐졌는지 등을 돌리고 누워버렸다.


삐순이련.


"...빚은 안 저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틸다는 내 가족이야."


"피도 안 섞였으면서."


"피가 섞인 가족보다 나을 때도 있더라. 한솥밥 먹고 오순도순 살면 그게 가족 아닌가?"


아마 정곡을 찔렸겠지. 자길 죽이려 드는 혈육을 피해 도망쳐 나온 게 지금의 그녀니까.


"...그리고 너도 예외는 아냐."


그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마틸다가 목숨 걸고 부탁한 아이니까. 그럼 나도 목숨 걸고 지켜내야지. 그 아이가 슬퍼하지 않도록."


"...고작 그런 이유로요?"


"고작 그런 이유로."


"...당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녜요?"


"알면 열심히 이용해먹어라. 그리고 평생 감사하면서 살라고."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원하는 게 뭐예요."


"너 머리 나쁘구나?"


"솔직히 말하라고요! 그런 값싼 위선 따위 역겨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에요! 당신이 나 따위한테 목숨 걸 이유가...!"


그녀가 자리를 박차고 앉아 왁! 하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느새 눈물방울이 주륵 흘러내리는 그녀는 마치 흉신악살이라도 되는 양 새빨갛게 물들인 얼굴을 한껏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불신과, 분노로 점철된 그 얼굴의 한 켠에서, 나는 또 다른 감정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걸 알 수 있었다.


외로움.


그래, 익숙치 않은 거다.


살얼음을 밟는 듯한 정치판과 겉으론 하하호호 웃어도 온전한 자기 편 하나 없는, 뒷공작이 만연한 사교계에서 살아온 그녀.


그리고 결국 몰리고 몰린 끝에 벼랑에 선 그녀에게 기적처럼 다가온 순수한 호의라.


솔직히 그 누가 이걸 동아줄이라 생각할까. 차라리 끝까지 등쳐먹었으면 먹었지 그녀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악마의 유혹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떻게든 구멍 뚫린 주머니를 뒤져서 대가를 치르고 싶은 것이다.


그 편이 깨끗하니까.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래, 이유 말이지..."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이내 손뼉을 짝 쳤다.


"이쁘니까?"


이젠 아예 미친놈 쳐다보는 표정이 되었다.


이게 아닌가.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는데, 어딘가 비애에 찬 표정의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는 게 아닌가.


"...그래요. 이깟 몸뚱아리... 원하신다면 드릴게요. 그걸로나마 대가가 된다면..."


"갈!"


ㅡ따악!


"꺄악!"


난데없이 날아온 딱밤에 사고가 따라가질 못했는지 한 템포 느리게 이마를 부여잡은 그녀가 죽일 듯 나를 노려보았다.


지금 이 미친 평민이 무슨 짓을 한 것이지?


그녀의 표정은 딱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 표정은 니 엄마한테나 보여주시고. 안 자고 헛짓거리 할거면 나 그냥 간다?"


이번엔 엄포 비슷하게 목소리를 내리깔자 그녀가 흠칫하더니, 다시금 사부작, 사부작 천천히 돌아누웠다.


이걸로 경계심은 많이 누그러지지 않았을까. 되도 않는 농담까지 섞어가면 쌩쇼한 보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ㅡ스윽.


잠들었나 싶었던 그녀의 이불 속에서 무언가 꼼지락거리더니, 이불 사이로 하얀 손 하나가 쏙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뭔가 싶어 멍청히 뒤통수를 쳐다봤더니 귓볼이 새빨개져 있었다.


비록 표정은 안 보였지만...


"휴우. 예, 예."


진짜 새끼고양이구나.


손을 맞잡아주자 그제서야 정자로 반듯하게 눕는 그녀.


결국 고개는 끝까지 반대로 돌린 채였지만...


나는 살살 지압하듯 손을 문질러주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그제서야 이 말괄량이 아가씨는 고른 숨소리를 색색 내며 겨우 잠에 빠져들었다.


"흐음..."


나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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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16)115화.[퀸즈 프로토콜](6) +2 22.02.26 91 1 13쪽
116 (115)114화.[퀸즈 프로토콜](5) 22.02.24 75 1 9쪽
115 (114)113화.[퀸즈 프로토콜](4) 22.02.23 66 1 13쪽
114 (113)112화.[퀸즈 프로토콜](3) +2 22.02.14 78 1 11쪽
113 (112)111화.[준비 작업](3) 22.02.11 80 1 13쪽
112 (111)110화.[준비 작업](2) 22.02.05 7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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