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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의 작업실

삼별초, 남송(南宋)에 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고도일
작품등록일 :
2023.05.19 16:52
최근연재일 :
2024.02.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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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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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교맹(三敎盟) (1)

해당 소설은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으로, 특정 종교/단체/인물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DUMMY

진웅 일행이 첩장을 전달하기 위해 임안을 오고 갈 무렵,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시)의 대자은사(大慈恩寺, 삼장법사 현장의 연고사찰) 객당(客堂)에서는 무림을 뒤흔들만한 회동이 열리고 있었다.



우선 전진교의 기지성(祁志誠)은 동명자(洞明子)라 불리었으며 지난해 전진교 10대 장교에 오른 이후 종남산 중양궁에서 처음 내려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기지성의 사부는 바로 송덕방(宋德方, 1183~1147)으로 구처기의 직전 제자였고, 고로 기지성은 구처기의 사손(師孫)인 동시에 구처기 이래 전진교 내에서 최대 파벌을 차지하고 있는 용문파(龍門派)의 수장이기도 했다.



복유에게 이지상과 장지경이 모두 무참히 패배할 당시 전진교도들은 입을 모아 송덕방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비록 제6대 장교인 윤지평(尹志平)이 원나라 황실을 등에 업고 화북에 전진교가 뿌리내리도록 했지만 그 당시부터 권력을 쫓느라 수련을 등한시 한 것을 한탄했다.



기지성이 빠르게 전진에서 입지를 확보한 것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당시 기지성이 활동하던 남송 조정에서 사부 송덕방을 무명의 도사로 취급하자 기지성은 직접 원나라 황실을 직접 찾아가 쿠빌라이를 알현했다.



쿠빌라이를 만난 자리에서 기지성은 사부의 추증을 요청했고 쿠빌라이는 기지성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보고 송덕방에게 현통홍교피운진인(玄通弘教披雲真人)의 칭호를 내림과 동시에 대도에서 다시 전진교가 포교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송덕방의 수제자라는 것 하나만으로 용문파를 비롯해 많은 전진교도들이 이미 기지성을 따르던 상태에서 원 황실로부터 사부의 추증까지 얻어내고 대도에서 다시금 포교할 수 있도록 만든 기지성이 전진의 다음 장교가 되는 것은 당연해 보였고, 실제로 그로부터 2년 후 왕지탄이 등선한 이후 별다른 잡음 없이 전진교 장로에 오른다. 다만 왕지탄의 수제자이자 전진의 일대제자였던 장지선만이 기지성과의 격차에 좌절하며 속으로 울분을 삼켰다.



기지성의 옆으로는 정일교(正一敎)의 36대 천인(天人) 장종연(张宗演)이 자리하고 있었다. 학명산(鶴鳴山)에서 깨달음을 얻은 개파조사 장도릉은 스스로를 장천사(张天師)라고 부르며 오두미도(五斗米道)라는 이름의 종교를 만들었다. 이후 장현(張衡)과 장로(張魯)를 거쳐 증손인 장성(张盛)에게 이어진다.



장성대에 이르러 개파조사 장도릉이 우화등선한 청성산의 교단을 강서성 용호산(龙虎山)으로 옮겼고 이후 천사도(天師道)라 불리며 장자가 교단을 이어왔다. 교단 자체는 용호산으로 옮겼으나 개파조사 장도릉이 우화등선한 청성산은 여전히 정일교의 중요한 성지였고, 칠성제를 비롯해 청성산 제단에서 제사를 지냈기에 청성산에는 여전히 정일교에서 가장 큰 지부가 남아있었다.



훗날 정일교의 장자 승계에 반대하던 청성산 분파의 일부 도사들이 떨어져 나와 새로운 문파를 만들었으니 바로 청성공법으로 강호에 이름을 떨친 청성파(青城派)이다. 아미파의 분파인 청성파(青城派)와 이름이 같은 데다 둘 다 청성산에 위치해 있다보니 사람들은 두 문파를 아미청성과 무위청성으로 둘을 구분하기도 했으며, 각각 청성불파(青城佛派), 청성도파(青城道派)로 구분하기도 했다.



용호산에 자리잡은 정일교는 전진교보다 오랜 역사를 지녔고, 본인들의 원류이자 도교 본종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강남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정일교는 화북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왕중양과 칭기즈칸을 따라 대도에 머물던 구처기의 행보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후 전진교의 교세가 급속히 확장되자 그제서야 경계하며 사사건건 전진교와 잡음을 빚어왔다. 그러다 도불결전에서 전진교가 소림사에 무참히 패배하자 그 자리를 대체하며 화북에서도 세를 늘리고 있었다.



강호의 내노라하는 인물들이 모인 가운데 가장 의외의 존재는 바로 감숙의 공동파(崆峒派)였다. 소림사가 생기기 전부터 공동산에 자리를 잡고 도관을 지어 수련해온 공동파는 강호에 출두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무림에서도 그야말로 베일에 쌓인 신비로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공동파의 이름이 무림을 넘어 중원 전역에 알려진 이유는 바로 황제 헌원을 가르친 광명자(光明子)가 도를 닦은 곳이며, 팔선(八仙) 중 하나인 화곡자(和谷子) 종리권이 수행했던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종리권의 파초선을 비롯해 팔선이 소유했던 도보(道寶, 도교의 보물), 즉 암팔선(暗八仙)의 상당수를 공동파에서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때문에 공동파를 따르는 이들은 공동산을 도교제일산, 공동파를 도교제일종이라 칭하며 도교의 원종(原種)이라 여겼다.



팔선(八仙)을 모두 추종하는 문파답게 공동파는 주종(主宗)인 현공태극문(玄空太极門)을 비롯해 비룡문, 추혼문, 탈명문, 취문, 신권문, 화가문, 기병문 등 팔문(八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공동파가 강호에서 가장 신비로운 존재로 알려진 이유가 바로 기병문이 공동파 입구에 설치한 공동대팔진(崆峒大八陣), 칠성회천진(七星回天陣) 등 무수한 진법 때문이었다. 고로 공동파의 초대 없이 공동파의 들어온 자들은 여지껏 없었으며, 허락없이 들어왔다가는 무수한 진법 속에서 헤매다 목숨을 잃고 말았다.



공동파의 제자들은 입문할 시 모두 비룡문으로 들어가 권, 각, 검, 곤, 편 등 다양한 무기를 배우게 되며, 남제자는 추혼문에서 추혼권, 추혼장 등을 익힌 뒤 탈명문으로 들어가 탈명검을 익히며, 여제자는 신권문에서 신권을 배운 뒤 화가문으로 올라가 화가권을 배웠다. 비룡문의 제자 중 유독 진법에 재능이 있을 경우에는 따로 기병문으로 가 평생 진법을 연구했다.



가장 특이한 종파는 취문으로 바로 취권과 취검을 가르치는 종파였다. 이 취권은 다름 아닌 종리권의 사부이자 팔선 중에서도 제일선으로 꼽는 철괴리 이홍수(李洪水)와 종리권이 술을 나누던 중 깨달음을 얻고 그 자리에서 팔선 각자의 정수를 담아 문팔선(文八仙)과 무팔선(武八仙)이라는 두 가지 무공을 고안해냈는데, 각각의 무공은 문취권 8개, 문취검 8개, 무취권 8개, 무취검 8개 총 32개의 초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탈명문에서 탈명검이 9성에 이른 자는 문취검과 무취검을, 화가문에서 화가권이 9성에 이른 자는 문취권과 무취권을 취문의 문주로부터 배울 수 있었는데, 그 정도의 재능은 한 항렬에 한두명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가운데 30년 전 같은 해에 다섯 제자가 취문에 입문했으니 탈명문에서 셋, 화가문에서 둘이었다. 다섯의 천재가 동시에 나타났다며 공동파 내에서는 이들을 일컬어 공동오비(崆峒五飛)라 했고, 훗날 팔문 중 오문의 장문인이 되었으니 실로 공동의 기재들이었다. 오늘 회동에 참석한 것은 바로이 공동오비의 사부이자 주종 현공태극문의 장문인인 비운자(飞云子) 황건객(黄衫客)이었다.



정일교의 경우 여동빈은 팔선 가운데 하나로 받들고 전진교도 자신들의 개파조사를 왕중양이 아닌 여동빈을 조사(祖师)로 받들고 있으나 결국 왕중양을 인정하지 않는 정일교나, 장자 승계를 따르는 정일교를 배척하는 전진교나 서로 사이는 좋지 않았다. 게다가 스스로 도교제일종이라 칭하며 그간 전진교나 정일교와 따로 교류하지 않은 공동파까지 모였으니 화북의 도교 문파가 모두 한 자리에 모인 셈이었다.



복유의 초청으로 모이긴 했으나 서로가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었던 도교의 세 주장은 인사도 나누지 않았고, 복유를 기다리며 침묵을 이어가고 있었다. 공기마저 싸늘해져가던 시점에 문이 열리며 모임을 주최한 복유가 등장했다.



회동을 주최하는 소림사의 방장 설정복유(雪庭福裕)는 원 헌종 앞에서 전진교 장교였던 8대 이지상(李志常), 9대 장지경(張志敬)을 무참히 박살낸 인물이었다. 이후 복유는 사실상 강호에서 겨룰 고수가 없는 천하제일인으로 여겨졌고 원 황실에서도 광종정법대선사(光種正法大禪師)라는 칭호를 하사했다.



원 황실을 등에 업은 복유 덕에 소림의 성세는 나날이 발전하여 화북 곳곳에 지부를 두고 있었고 복유의 제자들 역시 각각 소림의 지부를 맡아오며 온 무림에 그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훗날 소림의 방장에 오르는 숭산의 문태(靈隱文泰) 선사를 비롯해 보은사의 임지태(林智泰), 영암사의 족암정숙(足庵净肃), 성도의 중경(仲庆), 북소림의각인(觉印) 선사 등이 복유의 제자들로 스승의 부름을 받고 모두 장안에 모여 있었다.



복유가 합장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동명자와 장천사, 비운자 세 분을 이리 한자리에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여기는 아미산 복호사의 지온 대사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소승 지온이라 합니다."



복유와 함께 들어온 인물은 바로 아미산 복호사(伏虎寺)의 전일지온(全一至温)이었는데 복유와 지온, 그리고 임총종륜(林泉從倫,1223~1281) 모두 조동종 이대조사이자 만송노인이라 불리던 만송행수(萬松行秀ㆍ1166~1246)의 제자들이며 화북의 조동종을 이끄는 인물들이었다.



원나라가 사천을 점령한 이후 쿠빌라이는 종륜의 청을 받고 복호사 방장으로 지온을 앉혔으며 자연스럽게 복호사의 다섯개 분파인 황릉파(黄陵派), 점역파(点易派), 청성파(青城派, 도교의 청성파와는 별개의 문파), 철불파(铁佛派), 청우파(青牛派) 역시 지온의 손에 들어갔다.



도교의 세 문파에 조동종의 본원이자 중원 최대문파인 소림사, 그리고 아미파까지 함께 모였으니 지난 날 원 헌종 앞에서 펼쳐진 도불 결전을 생각하면 회동 자체가 기이한 일이었다.



세 도사도 일어나 읍을 했고 그 중 기지성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대선사께서 이리 초빙해주셨으니 한 걸음에 달려와야지요. 헌데 장천사에 공동파의 비운자께서도 오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자 장종연 역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복유에게 물었다.



"전진과 공동이 함께 하는 자리라면 용호산을 내려오지 말 걸 그랬소. 언질도 없이 이게 무슨 경우입니까?"



그러자 복유가 장종연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지요. 오늘 이렇게 귀한 분들께 간곡히 드릴 청이 있고, 뭣보다 도사님들을 꼭 뵙고자 하는 분이 계셔 이리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곧 도착하실 겁니다. 그 전에 일단 오늘 이렇게 모신 연유부터 말씀 드릴까 합니다."



"그게 대체 뭡니까?"



그러다 기지성이 장종연과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사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충분한 이유가 있겠지요. 말씀해 주시지요."



"감사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원과 남송, 두 나라의 전쟁에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장강에 자리한 도불의 수많은 문파들까지 얽혀 큰 피해를 입었지요. 이런 전란의 시대일 수록 백성들은 저희를 의지하나 저희들은 종파, 문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반목하며 사사건건 부딪혀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백성들은 어긋나 백련교 같은 마교의 수중에 떨어지거나, 장강의 수적이 되거나 거지가 되어 개방을 기웃거렸지요.


굳이 언급해 동명자께는 죄송하나 지난 날 소승과 진상자(眞常子, 이지상)와의 대결 이후 도불은 끊임없이 반목해 왔고 지금도 각지에서 대립하며 분쟁을 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만백성이 전쟁으로 신음하고 있는 동안 말입니다. 이제는 이러한 소모적인 대결은 그만 끝을 내야지요."



"대사께서는 도불 간 불가침의 약조를 맺자는 말씀입니까?"



"불가침의 약조는 언제 깨질지 모를 공허한 맹세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고민 끝에 더이상 종파나 문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반목할 것이 아니라 도불을 떠나 의(義)를 행하는 문파들이 모여 맹(盟)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자 장종연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대사께서는 도불을 하나로 합치자는 소리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각자의 문파는 문파대로 유지하되 정파를 대표하는 일종의 연합체를 만들자는 것이지요. 마교나 사파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원과 남송의 전쟁에 휩쓸리지 않도록 말입니다. 저희가 힘을 합쳐 맹을 만든다면 마교나 사파에 대응하기도 손쉬워질 테고, 뭣보다 저희끼리 쓸데없이 분쟁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대선사께서 원 황실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는 하나 도불이 하나의 맹을 만든다고 하면 조정에서 가만 있겠습니까?"



"가능합니다. 그리고 정확히는 도불이 아닌 도불유의 맹이지요."



장종연이 말이 되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할 때 객당의 문이 열리더니 복유의 수제자, 문태가 문을 열고 들어와 복유에게 귓속말을 건넸고, 복유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도사들에게 말했다.



"사실 오늘 이 자리는 제가 아닌 다른 분이 마련한 것입니다. 지금 도착하셨다는군요."



복유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구의 한 사내와 문사 하나가 객당으로 들어왔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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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 남송(南宋)에 가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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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옥추보경(玉樞寶經) (1) 23.06.30 68 1 9쪽
28 유백문(劉百文) (2) 23.06.26 58 0 10쪽
27 유백문(劉百文) (1) 23.06.25 56 0 12쪽
26 청룡검(靑龍劍) 23.06.23 54 0 13쪽
25 병상첨병(病上添病) (3) 23.06.22 51 0 10쪽
24 병상첨병(病上添病) (2) 23.06.20 64 0 9쪽
23 병상첨병(病上添病) (1) 23.06.19 62 0 10쪽
22 화산파(華山派) (2) 23.06.19 112 0 11쪽
21 화산파(華山派) (1) 23.06.18 57 0 14쪽
20 하오문(下五門) 23.06.12 67 0 13쪽
19 삼교맹(三敎盟) (4) 23.06.11 65 0 11쪽
18 삼교맹(三敎盟) (3) 23.06.11 69 0 14쪽
17 삼교맹(三敎盟) (2) 23.06.10 78 0 12쪽
» 삼교맹(三敎盟) (1) 23.06.08 99 0 13쪽
15 수도 임안(臨安) (4) 23.06.06 99 1 9쪽
14 수도 임안(臨安) (3) 23.06.06 84 0 12쪽
13 수도 임안(臨安) (2) 23.06.03 97 1 13쪽
12 수도 임안(臨安) (1) 23.05.24 112 0 12쪽
11 문천상(文天祥) (2) 23.05.23 99 0 10쪽
10 문천상(文天祥) (1) 23.05.23 109 0 10쪽
9 백련교(白蓮敎) (2) 23.05.22 108 0 10쪽
8 백련교(白蓮敎) (1) 23.05.22 126 0 10쪽
7 전진교(全眞敎) (3) 23.05.21 122 3 14쪽
6 전진교(全眞敎) (2) 23.05.21 135 3 11쪽
5 전진교(全眞敎) (1) 23.05.20 178 3 15쪽
4 남송(南宋) 명주(明州) (3) 23.05.20 176 5 10쪽
3 남송(南宋) 명주(明州) (2) 23.05.19 199 5 12쪽
2 남송(南宋) 명주(明州) (1) +1 23.05.19 283 6 18쪽
1 위기의 삼별초 23.05.19 473 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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