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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의 작업실

삼별초, 남송(南宋)에 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고도일
작품등록일 :
2023.05.19 16:52
최근연재일 :
2024.02.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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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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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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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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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수도 임안(臨安) (3)

해당 소설은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으로, 특정 종교/단체/인물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DUMMY

중삼의 말대로 상우현은 마을 자체가 크진 않으나, 요충지에 위치한 관계로 명주와 임안을 오가는 병단과 상단들로 북새통을 이루며 수많은 객잔이 늘어선 곳이었고, 청월루주는 이 곳에도 소월각(绍月閣)이라는 제법 큰 객잔을 가지고 있어 진웅 일행은 편히 머물 수 있었다.



양양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오히려 병단과 상단은 더욱 더 임안으로 몰려들고 있었는데 특히나 상단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양양성의 함락은 강남의 거상들에게는 오히려 큰 호재로 다가왔는데 이유인 즉 양양성을 잃은 후 남송의 모든 병력이 임안으로 집결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군량과 병기 등 각종 물자 역시 엄청나게 필요했기 때문에 남송 정부는 모든 재정을 동원해 물자를 사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단이야 야영을 하기 때문에 객잔에서 직접 마주칠 일은 드물었고, 청월루처럼 값비싼 객잔을 이용하는 이들은 크게 세 부류였다. 우선 첫번째가 앞서 말한 상단의 행수나 상단을 호위하는 대형 표국의 우두머리, 즉 표두들이었고 두번째는 송나라의 사대부를 비롯한 명문가의 자제들 무리였으며, 마지막이 일명 강호에 몸 담고 있는 무림인들이었다.



길안내를 맡은 중삼이 모처럼 고향에 온 김에 집에 들리라며 은전을 좀 쥐어주어 보낸 탓에 객잔에는 진웅, 주진, 원희와 계심까지 넷 뿐이었다. 원희와 계심은 승려가 내려가 술자리를 갖는 다른 손님들과 함께 있는 것이 썩 보기 좋지 않고 진상품을 지킬 사람도 필요하니 그냥 객실에 머물며 식사를 하겠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진웅 역시 술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지라 객실에서 머물 요량이었는데 주진만은 엉덩이가 근질근질한 듯 했다.



"내려가서 딱 한잔만 하고 오세."



"지금이 술 마실 때인가? 임안에 도착할 때까지는 자제하세."



"진상품이야 스님들이 지키고 계시고, 마을이야 송나라 군대가 둘러싸며 야영하고 있는데 화적 떼가 미쳤다고 쳐들어오겠나? 걱정말고 내려가세."



"정 마시고 싶으면 혼자 가게나."



그러자 주진이 진웅을 간절히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탐라에 남을 수도 있었네., 자네라 두 말 없이 이 먼 송나라까지 따라온 것이지..."



"같이 와 달라고 한 적 없네만."



"어찌 사람이 그리 매정한가? 게다가 중삼의 말을 들으니 이 객잔에 파는 황주(绍兴 黄酒, 소흥 황주)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술이라 하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마셔보겠나?"



"나도 옆에서 듣고 있었네만 내일 목적지인 소흥에서도 먹을 수 있는 술을 마치 여기서만 판다는 듯 말하나?"



"거 사람 정 없기는... 그냥 대충 넘어가 주면 안 되나? 알았네, 알았어!"



"저리 술을 좋아하니 주자께서 자네를 보시면..."



"그만, 거기까지... 어릴 적부터 정말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이네. 게다가 주자께서도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진 않으셨네. 취하지 말라고 하셨지."



그러면서 옷매무새를 다듬은 주진이 문을 열고 나가면서 다시 말했다.



"진짜 같이 안 가면 나 혼자 가네?"



진웅은 결국 못 이기는 척 주진을 따라나섰고 미리 청월루에서 기별을 넣어준 데다 중삼이 이 곳 소월각을 종종 드나들며 청월루의 지시를 전하느라 점소이와 상당히 친한 관계로 점소이의 친절한 응대를 받을 수 있었다.



소흥주 한 병과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허기진 두 사람은 배부터 채우기 시작했다.



"짜오지라고 했나? 기가 막히는군. 이 소흥주는 또 어떤가?"



점소이가 추천해준 음식은 짜오지(糟鸡)와 짜오위간(糟魚幹)이라는 술 지게미에 말린 닭고기와 생선 요리로 월나라 때부터 전해져 내려온 음식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술잔을 들이키자 주변의 이야기들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대부분이 양양성 함락을 비롯해 송원 전쟁에 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술에 취해 비분강개하며 내일 당장 임안으로 가서 군에 지원하겠다는 자들도 있었고, 이번에 한 목 단단히 잡고 화북으로 뜨자는 상인들도 있었으며, 술은 마시지 않은 채 조용히 소식으로 식사를 하는 도사 무리도 있었다.



처음 도사 무리를 봤을때 자신들을 미행하는 전진의 무리가 아닐까 의심했으나 의복이 전진의 것과 조금 달랐고, 자신들을 아는 눈치도 아니었지만 괜한 시비에 휘말릴까봐 진웅은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했다.



"다 먹었으면 그만 올라가세."



그러자 주진이 술병을 들고 흔들며 말했다.



"아직 술병에 술이 반이나 남았네만."



그때 비단옷을 입은 공자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와 읍을 하며 말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경계했으나 살짝 술에 취해있으면서도 결코 경박스럽지 않았고, 몸가짐에는 절도가 있었다. 적어도 시비를 걸거나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닌 듯 보였다.



"반갑습니다. 남궁가의 넷째, 현(玄)이라 합니다. 임안으로 가는 무사님들이십니까?"



진웅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현이 말을 이었다.



"둘러보면 나라가 이 지경인데도 한 몫 잡을 생각 뿐인 장사치에 벌써부터 임안에서 도망쳐 온 인간들 천지입니다. 대협들과는 다르지요."



그러자 주진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러는 남궁 소협께서는 여기서 뭐하고 계시오? 당장 임안으로 달려가지 않고. 발에 천근추라도 달려있는 것이오?"



주진의 가시 돋힌 말에 남궁현은 고개를 떨궜고, 진웅은 손짓으로 괜한 시비 일으키지 말라는 듯 주진을 제지했다. 잠시 후 남궁현이 말을 이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사실 제가 누굴 욕할 처지가 아니지요. 저부터도 천륜을 탓하며 안휘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 고작이니 말입니다."



진웅이 사발에 물을 채우더니 남궁현에게 건네며 토닥여 주었다.



"누구나 각자 사정이 있는 법이지요."



진웅이 이리 남궁현에게 친절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자신이 신의군에 들어와서 처음 모신 낭장의 이름이 남궁우현으로 진웅이 큰형님처럼 따랐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남궁우현의 집안은 황주(現황해북도 황주군)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몽골 침략 당시 마을 사람들을 모아 의용군을 조직하고, 끝까지 저항하다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당시 남궁우현과 아들 득희만 겨우 목숨을 건졌고, 아내와 친지마저 몽고군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남궁우현의 몽골에 대한 적개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진도로 상륙하던 여몽연합군을 맞아 최전방에서 분투하던 남궁우현은 몽고병 서넛을 쓰러트렸으나 결국 몽고 궁병이 쏜 활에 맞아 목숨을 거뒀는데 마지막 유언이 바로 그의 유일한 아들인 득희(得禧)를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진웅이 따랐던 남궁우현과의 인연은 여몽연합군이 진도를 함락시키면서 끝이 났다.



남궁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진이 물었다.



"남궁가라면 남궁경숙(남궁괄, 공자의 제자)의 후손이오?"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남궁가는 이번 전쟁에서 어느 편에 섰소?"



"좀 복잡합니다. 아시다시피 정강의 변으로 인해 곡부의 연성공(衍聖公, 공자의 적손이 대대로 세습하던 작위) 가문이 공단우의 남종(南宗)과 공단조의 북종(北宗)으로 나뉘었지요.


대대로 공씨 가문과 막역하게 지내며 그 곁을 지켜온 남궁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남종을 따를지, 북종을 따를지 의견이 분분했으니까요. 결국 여러차례 대립하다 공단우를 따라 임안으로 내려온 자들과 공단조를 정통으로 모시며 안휘에 남은 자들로 남궁가 역시 분열되었습니다.


저희 집안 또한 북종을 따라 안휘에 남았다가 원나라의 세력이 커지자 거기에 붙었습니다. 허나 시조가 공자의 제자 되시고 유학자 집안으로 어찌 북쪽의 오랑캐를 섬길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어릴 적부터 도저히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양양성이 함락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는 참을 수 없어 가문을 버리고 이리 남쪽으로 내려왔지요.


내려온 직후 남종의 연성공(공수-孔洙)를 만나 사정을 설명하고 원에 대항하기 위해 남송의 공가와 남궁가가 일어나야 한다며 힘을 보태달라 부탁했지만 괜히 전쟁에 휩쓸렸다가 선영에 누를 끼칠까 두렵다며 극구 거절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안휘에서 내려온 남궁가 친척들을 어렵사리 찾아 만났지만 비슷한 이유로 거절당했고 말이지요."



남궁현의 이야기를 듣고 진웅과 주진은 가문에게 버림 받은 자신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남궁현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진웅이 남궁현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찌할 작정이오?"



"공자께서 충(忠)이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함이라 하셨습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재주 밖에 없으나 이 한 몸 남송을 위해 바쳐야지요. 그래야 죽어도 문선왕(文宣王, 공자를 높여부르는 말)과 선조를 볼 면목이 있을 것 아닙니까?"



"검은 쓸 줄 아시오?"



"남궁가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검법이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오?"



"중원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으나 문선왕께서 친히 가르쳐준 검술이지요. 아시다시피 세상 모든 이치를 통달한 문선왕께서는 검술과 육예(六藝)에도 능통하였습니다.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려있다는 공자의 가르침)가 검술에도 통한 것이지요.


천하를 주유할 당시 문성왕이 눈에 가시였던 자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하물며 문선왕을 알아보지 못한 화적떼들의 습격도 빈번했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문선왕께서 천수를 누리며 고향 곡부에서 여생을 보내실 수 있었던 것도, 문선왕의 제자들 수십이 천하의 이름을 떨친 것도 문선왕께서 직접 전수한 무예 덕분이라 배웠습니다.


모름지기 군자라면 말을 다룰 줄 알고 제 한 몸 지킬 무예는 익혀야 한다며, 제자들에게 직접 검술과 궁술, 마상술을 가르치셨다지요. "



진웅와 주진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남궁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혹 문선왕의 영정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오도자(吳道子, 당나라 화가)의 공자행교상(孔子行敎像)을 비롯해 대부분 영정을 보면 문선왕께서는 패검(佩劍, 검을 참)을 하고 계시지요.


문선왕의 검술은 공씨 가문과 남궁 가문에 문선왕의 검법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다르게 변했답니다. 연성공 가문에서는 이 검법을 소왕검(素王檢, 소왕은 왕위에 오르진 않았으나 왕의 덕을 갖추고 있단 뜻으로 공자를 높여부르는 말)이라 하여 적손들에게 일인전승하고, 남궁가에서는 군자검(君子檢)이라 하여 가문의 직계에게만 전수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남궁현의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고, 꽉 다문 입술은 꺾을 수 없는 그의 결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군자검이라..."



진웅의 말에 남궁현이 미소를 띄며 말했다.



"두 분 송나라분들이 아니시군요?"



그러자 주진이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고 남궁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문선왕께서는 제자만 수백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뛰어난 분들을 따라 칠십이현(七十二賢)이라 했고 문선왕의 검술을 이어받은 제자 역시 수십이지요. 물론 그 중 경지에 이른 것을 일부이나 강호인이 아니라고 해도 군자검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자 진웅이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들어본 적은 있소만 실제로 본 적이 없어 그렇소. 남궁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처음이고 말이오."



"그런데 두 분은 어찌 임안으로 가시려는 것입니까?"



진웅이 대답하려는 찰나 남궁현의 일행인 듯한 젊은이가 이쪽으로 다가왔고 남궁현이 읍을 하며 일어났다.



"마침 기다리던 일행이 왔군요. 이만 일어서야 할 것 같습니다. 두분 대협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모쪼록 임안까지 무탈히 도착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남궁현과 짧은 인연이 끝이 났으나 세 사람의 인연은 사실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남궁현이 훗날 군자검(君子檢) 그 자체로 불리며 남궁가를 중원제일가(中原第一家)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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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 남송(南宋)에 가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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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옥추보경(玉樞寶經) (1) 23.06.30 68 1 9쪽
28 유백문(劉百文) (2) 23.06.26 58 0 10쪽
27 유백문(劉百文) (1) 23.06.25 56 0 12쪽
26 청룡검(靑龍劍) 23.06.23 55 0 13쪽
25 병상첨병(病上添病) (3) 23.06.22 51 0 10쪽
24 병상첨병(病上添病) (2) 23.06.20 64 0 9쪽
23 병상첨병(病上添病) (1) 23.06.19 62 0 10쪽
22 화산파(華山派) (2) 23.06.19 112 0 11쪽
21 화산파(華山派) (1) 23.06.18 57 0 14쪽
20 하오문(下五門) 23.06.12 68 0 13쪽
19 삼교맹(三敎盟) (4) 23.06.11 65 0 11쪽
18 삼교맹(三敎盟) (3) 23.06.11 70 0 14쪽
17 삼교맹(三敎盟) (2) 23.06.10 79 0 12쪽
16 삼교맹(三敎盟) (1) 23.06.08 99 0 13쪽
15 수도 임안(臨安) (4) 23.06.06 99 1 9쪽
» 수도 임안(臨安) (3) 23.06.06 85 0 12쪽
13 수도 임안(臨安) (2) 23.06.03 97 1 13쪽
12 수도 임안(臨安) (1) 23.05.24 112 0 12쪽
11 문천상(文天祥) (2) 23.05.23 99 0 10쪽
10 문천상(文天祥) (1) 23.05.23 109 0 10쪽
9 백련교(白蓮敎) (2) 23.05.22 108 0 10쪽
8 백련교(白蓮敎) (1) 23.05.22 126 0 10쪽
7 전진교(全眞敎) (3) 23.05.21 122 3 14쪽
6 전진교(全眞敎) (2) 23.05.21 135 3 11쪽
5 전진교(全眞敎) (1) 23.05.20 178 3 15쪽
4 남송(南宋) 명주(明州) (3) 23.05.20 176 5 10쪽
3 남송(南宋) 명주(明州) (2) 23.05.19 199 5 12쪽
2 남송(南宋) 명주(明州) (1) +1 23.05.19 283 6 18쪽
1 위기의 삼별초 23.05.19 473 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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