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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의 작업실

삼별초, 남송(南宋)에 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고도일
작품등록일 :
2023.05.19 16:52
최근연재일 :
2024.02.28 16:54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4,744
추천수 :
51
글자수 :
293,169

작성
23.05.20 17:18
조회
178
추천
3
글자
15쪽

전진교(全眞敎) (1)

해당 소설은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으로, 특정 종교/단체/인물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DUMMY

손가락으로 지명당한 젊은 도사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여기까지 이렇게 찾아와 겁박하는 걸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이 놈이 정녕!"



"자자, 도사님들도 일단 진정하시고 찬찬히 이야기를 해주시지요. 대체 무슨 연유로 이 친구를 데려가려 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도사의 우두머리가 조금 진정한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공자. 저희는 종남산에서 수행하고 있는 전진교 도사들입니다. 도호는 현의자(玄義子)라고 합니다."



자신의 현의자라고 소개한 도사의 본명은 장지선(張志仙)으로 훗날 전진교 11대 장교가 되는 인물이었다.



"종남산의 도사들께서 이곳 명주까지 어쩐 일이오?"



"교단의 제자 하나가 교단의 규율을 어긴 것도 모자라 교단의 위신을 땅에 떨어트리고는 달아나 여태껏 찾아다니던 중 이곳 명주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문사가 돌아보며 젊은 도사에게 말했다.



"그게 사실이냐?"



"아닙니다. 교단은 스스로 명예를 더럽힌 것이지 제가 더럽힌 것이 아닙니다. 규율 역시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것이니 당연히 어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장지선이 검을 뽑더니 일갈했다.



"네 놈 목을 잘라 중양자(重陽子, 전진교 창시자인 왕중양) 묘에 바쳐야겠구나!"



그러자 뒤의 다른 도사들도 검을 뽑았고, 젊은 도사도 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처마 아래에서 닭을 뜯던 노개가 신묘한 보법으로 바람처럼 움직이더니 어느새 문사와 장지선 사이에 섰고, 구갑죽 지팡이를 장지선의 목에 대며 턱을 툭툭 쳤다.



"도사면 도사들답게 수행이나 할 것이지 왜 이리 검을 들고 떼로 몰려다니며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그러자 장지선의 얼굴이 새빨게지더니 소리쳤다.



"이 미친 노개가 오늘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장지선이 칼을 휘두르려고 치켜드는 순간 노개의 지팡이가 장지선의 양쪽 무릎을 가격했고, 그대로 장지선은 바닥에 주저 앉았다. 뒤에 있는 도사들이 노개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노개의 봉법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낀 장지선은 급히 손으로 그들을 제지하며 물었다.



장지선은 생각했다. 자신을 일초에 제압할 수 무공의 소유자에 구갑죽을 쓰는 늙은 거지... 명주 지역의 개방 단두(團頭)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데다 자신을 이리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다른 지역의 개방 단두들 가운데서도 이 정도 무공을 지닌 자는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한 명 뿐이었다. 개방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구갑죽 지팡이 하나로 천주(泉州, 취안저우)의 개방 단두와 장로들을 비롯해 정예 수십을 혼자 박살냈으며, 한때는 전진의 도사였고, 남선사(南禅寺) 승려였으며 지금은 거지꼴로 지내는 오대산(五臺山) 취암선사(翠岩仙師), 바로 그였다.



고강한 무공에도 불구하고 원체 어디에 속하는 것을 싫어하고 워낙 성격이 괴팍하여 사건 사고를 몰고 다녔으며 그래서 항간에서는 그를 취암노개(翠岩老丐) 또는 취암노괴(翠岩老怪)라 칭했는데 그의 출신이나 본명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를 중흥사장 중 하나인 악비(岳飛)의 후손이라 했고, 누군가는 한세충(韓世忠)의 후손이라고 했지만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었다.



"선사를 제가 미처 몰라뵜습니다."



"생각보다 아주 눈치가 없진 않구나. 연계(燕薊, 송에서 북경을 이르던 말)에서 쫓겨났으면 조용히 수행이나 하며 지낼 것이지 왜 이 곳 명주에서 난리더냐?"



"각 교단과 문파의 일은 그 문파가 처리하는 것이 당연한 예법이니 선사께서 물러나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다짜고짜 손님이 있는 자리에 찾아와 검부터 꺼내드는 놈들이 예법을 논하느냐?"



그 말에 장지선은 입술을 깨물더니 잠시 후 답했다.



"선사께서 고집을 피우시니 일단 물러나겠습니다. 하지만 동명자(洞明子, 본명은 기지성으로 전진교 10대 장교)께 오늘 일은 필히 전하여 두겠습니다."



"동명자가 아니라 염연자(活然子,본명은 학대통)를 모셔와도 두렵지 않으니 썩 꺼지거라."



상기된 얼굴의 장지선은 검을 검집에 넣더니 아무 말 없이 취암선사를 향해 읍을 하고 물러났다. 장지선이 아무 소득 없이 물러나자 뒤따르던 묘도일(苗道一, 훗날 전진교 12대, 14대 장교)이 물었다.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검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물러난단 말입니까?"



"취암노개라네."



"그 혼자 명주의 개방단을 박살낸 그 거지 말입니까?"



"그렇다네."



"저희 일곱명이 모두 덤벼도 상대하기 힘든 수준입니까?"



"취암노개 하나라면 태을금화검진(太乙金華劍陣)을 펼쳐볼만 하겠지. 그런데 그 뒤에 있던 문사나, 호위무사 차림의 두 사람도 보아하니 그 무공이 만만치 않아보이더군."



"그래서 종남산으로 이대로 돌아가는 겁니까?"



"그럴 리가. 근방의 도사들을 모두 불러들이게. 태을금화대검진(太乙金華大劍陣)을 펼칠 것이야."



전진교 창시자인 왕중양은 자신의 스승인 검선(劍仙) 여동빈(呂洞賓)의 경지를 한 사람이 온전히 깨우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신선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한 사람의 몸으로 펼치기엔 불가능한 수준의 무공들도 있었다.



그래서 왕중양은전진교의 가르침을 담은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를 무공으로 승화시켜 일곱 명이 하나의 검진을 이루는 합검진(合劍陣)을 만들었고, 그것을 자신의 제자들인 전진칠자(全眞七子)에게 가르쳤으니 이 것이 바로 태을금화검진이다.



왕중양은 제자들에게 이 검진에는 최소 일곱이 필요하며 그 묘리를 온전히 깨우쳐 검진을 펼친다면 왕중양 본인은 물론 무림의 어떤 고수라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전친칠자들 중에도 태을금화검진의 묘리를 완전히 깨달은 제자는 없었다. 그럼에도 전진칠자가 펼치는 태을금화검진만 해도 왕중양 정도를 제외하면 당해낼 수 있는 자는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삼대 제자부터는 급격히 성취가 떨어졌고 이를 보안하기 위해 훗날 전진교 5대 장로이던 구처기가 만든 것이 일곱명씩 한조가 되어 네 방위를 맡는 태을금화대검진이었다.



태을금화검진이 장로급의 고수들 일곱이 모여야 제대로 펼칠 수 있는 반면 태을금화대검진은 스물여덟명이나 되는 인원이 필요했으나 혼원공을 삼성의 성취만 이르러도 무난하게 쓸 수 있는 검진이었다. 게다가 스물여덟명이 모두 반 갑자 이상의 고수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자는 전 무림을 뒤져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한편 전진교 도사들이 물러가자 취암선사는 다시 접시를 들고 자신의 자리로 가더니 닭다리를 뜯기 시작했다. 문사가 진웅에게 미안하다는 듯 말을 건넸다.



"본의 아니게 잠시 소란이 있었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별 일 없이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문사가 젊은 도사에게 말했다.



"사과 드리게."



"저 때문에 소란이 벌어진 점 사과드립니다."



"괜찮소. 그나저나 선사님이 무공이 무척 고강하십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어찌하여 도사들께 쫓기고 있는지 여쭤봐도 되겠소?"



그러자 문사가 진웅의 말을 거들었다.



"그래. 자세한 내막을 알아야 돕든 꾸짖든 할 것 아닌가? 말해 보게."



"애초에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어쨌든 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젊은 도사가 말해준 자신의 이야기는 아래와 같았다.



전진교 5대 장교인 구처기(邱處機, 1148-1228)가 원 태조 철목진(鐵木眞, 칭기스 칸)에게 전진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이후 훗날 원나라 수도 대도(大都)가 되는 연계에서 전진교를 설파할 수 있도록 허락 받는다.



이후 6대 장교인 윤지평(尹志平, 1169-1251)은 몽골 황실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화북을 중심으로 퍼져나가 수백만 신도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전진교가 가장 강성할 때는 도교인의 수가 천만에 이른다며 천만 도교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 윤지평이 죽고 이지상(李志常, - 1193 ~1256)이 7대 장교에 오르는데 수행이 짧은 이지상은 참선보다는 원 황실과 교류에 힘썼고, 권력을 등에 업은 전진교 도사들은 불교 사원을 멋대로 점거하여 도교 사원으로 바꾸기도 했고 지나가는 승려들을 집단 폭행하거나 모욕을 주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불교가 들고 일어난 사건이 발생하는데 전진교가 포교에 쓰던 화호경(化胡經)이 노자가 석가모니로 환생한 것이라는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이는 소림사를 비롯한 화북의 모든 불교가 들고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참다 못한 소림사 방장 설정복유(雪庭福裕, 1203~1275)가 화호경을 비롯해 도사들의 행실이 눈뜨고 못 볼 지경이라며 원 헌종(憲宗, 몽케 칸)에게 상소를 올렸고, 때마침 지나치게 세력이 커진 전진교가 거슬리던 헌종은 복유와 이지상을 불러 복유와 이지상을 각각 도교와 불교의 명예를 결고 결투를 벌이라 지시한다.(작가 주 : 실제 역사에서는 결투가 아닌 대면 논쟁이었음)



결국 권력을 탐하느라 수행이 짧고 무공 수준이 복유에 미치지 못한 이지상은 복유선사에게 무참히 압도당하며 삼십여초만에 패배를 시인하고 만다.



이를 지켜본 헌종은 껄껄껄 웃으면서 불교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즉시 화호경은 파쇄하고 도관 37개를 불교에 돌려주라 명한다. 그렇게 도불결전에서 패한 이지상은 홧병으로 드러눕게 되고 이듬해 명을 달리하고 만다.



뒤를 이어 8대 장교에 오른 장지경(張志敬) 역시 전진교의 추락한 위상을 회복하고 명예를 되찾기 다시 한 차례 복유와 도불 결전을 벌였으나 이번에는 아예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사실 복유는 이지상 역시 바로 제압할 수 있음에도 자신과 같은 배분이었던 그의 명예를 생각하여 삼십여초를 나눈 것인데, 이듬해 제대로 복수를 하겠다고 헌종에게 간청해 자신을 소림사에서 북경까지 불러들인 장지경이 괘씸하여 단 삼초 만에 제압해 버렸기 때문이다.



실력 없이 무모하게 덤빈 대가는 더욱 처참했는데 실력도 없이 도불결전을 다시 열어달라 간청한 장지경에게 헌종은 도사들은 당장 머리를 깎고 중이 될 것이며, 이전에 사찰에서 도관으로 바뀐 곳은 모두 원상복구 시키라는 칙령까지 떨어졌다.



실제로 도사들 중 일부는 칙령에 따라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가기도 했으나 도저히 불교를 받아들일 수 없던 일부는 다시 종남산으로 들어가거나 원나라를 떠나 남송으로 넘어왔다.



이사건 이후 내단파였던 전진교의 위세는 점차 줄어 도교 제일의 위치를 부록파 정일교(正一敎)에 넘겨주게 되며, 원 세조 홀필렬(忽必烈, 쿠빌라이 칸)은 정일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화북에서 전진교의 입지는 더욱 약화되어 그때까지 연계에 남아있던 도사들 대부분이 중양묘가 있는 종남산으로 돌아가게된다.



황실 권력을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던 전진교 무리들은 반성은 커녕 다시 한번 원 세조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썼고, 결국 9대 장교 왕지탄(王志坦)은 전진의 모든 도사들을 대상으로 교령을 내리게 되는데, 그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 원(元)의 화북의 정당한 주인이며, 중원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


이. 전진의 모든 도사들은 참선에 몰두할 것이며, 원과 송 어느 쪽에도 가담하는 것을 금한다.


삼. 남송에 나가있는 모든 도사들은 본산으로 돌아오라.


사. 위의 사항을 어길 시 파문에 처한다.



남송의 도사들이 호응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만든 교령이라기 보다는 원의 환심을 사기 위한 교령이었던 탓에 원에서 종남산으로 쫓겨난 도사들은 어쨌든 원송간 전쟁에 가담하지 않을 생각이니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대부분 수긍했다.



그러나 가장 낮은 항렬의 제자 하나가 그날 밤 교령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내용의 벽보를 도관 곳곳에 붙인 뒤, 종남산을 하산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무작정 신선이 되기보다 고통에 신음하는 백성을 구하는 것이 도사의 본질이다. 그러나 연계에서 당한 치욕을 씻기는 커녕 앞장서 원의 주구가 되려는 교단은 중양묘에 서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비겁하게 홀로 우화등선을 꿈꾸느니 환속하여 백성들의 편에 서겠다."



다음날 벽보가 이곳저곳에서 발견되자 전진교 본당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당시 장교였던 왕지탄은 극노했고, 당장 범인을 색출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수소문한 끝에 새벽에 종남산을 하산한 젊은 도사가 범인으로 지목되었으며, 왕지탄은 교단의 모든 인원을 동원해 즉시 잡아오라고 명한다. 진웅이 마주하고 있는 젊은 도사가 소란의 주인공으로 그의 이름은 장전일(張全一), 훗날 무당파의 개파조사가 되는 장삼봉(張三峰)이다.



종남산을 하산한 장전일은 전진교의 추격을 피해 남송의 수도 임안(臨安)으로 가던 중 지금의 일행을 만나게 되고, 문사의 학식과 인품에 반한 장전일은 문사의 호위를 자처하게 된다.



자신이 종남산에서 수행하던 도사임은 미리 밝혔으나 본인이 전진교에 쫓기고 있다는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았는데 화북의 교단에서 임안이 코 앞인 명주까지 추격해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모두 가감없이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자 진웅이 놀란 듯 물었다.



"결국 그 말인즉 전진교를 비롯해 수많은 도사들이 원나라에 붙었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러자 문사가 한숨을 쉬며 답했다.



"도교 뿐만이 아닙니다. 이 친구가 방금 이야기했지만 복유 선사가 원 황실의 비호를 받기 시작한 이래로 소림사를 비롯해 수많은 불교 문파들 역시 원나라에 투항했습니다. 그나마 강남에 남아있던 문파들이나 상단과 표국들 마저 양양성이 함락되자마자 원에 투항하거나 중립을 표방하고 나섰지요.


그나마 일부 양심이 남은 문파들은 봉문에 들어갓고 말입니다. 무림이 원에 대항해 나서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원나라쪽에 서고 있는 형국입니다."



혼란스러운 시대인만큼 당시에는 수많은 문파들이 종남산과 무당산, 그리고 오대산과 아미산을 근거지로 창립과 몰락을 반복하며 난립해 있었다. 전진교만 해도 전진칠자들이 각기 만든 우선파, 청정파, 남무파, 윤산파, 용문파, 수산파, 화산파 등 일곱 개로 나뉘어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중 화산파는 아예 전진교에서 떨어져 나간 상황이었다. 전진교를 대신하여 원 황실의 눈에 든 소림사의 경우 각지에 분파를 세울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으며 방장인 복유는 원황실로부터 광종정법대선사라는 칭호까지 받는다.



"도교와 불교의 본산이 다 오랑캐에 붙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고려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지요."



원을 오랑캐라 칭하는 진웅의 말에 문사가 웃으며 답했다.



"적어도 네 분의 승려는 그렇지 않지요. 같이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이때 점원 여섯이 차례대로 올라와 원탁에 음식을 내려놓았고, 산해진미가 가득한 푸짐한 한상이 차려졌다. 문사가 음식을 권하고 새로 들어온 기녀가 술잔을 채우자 주진이 잔을 비우고 고기조림을 한가득 씹어 삼키더니 답했다.



"아마 저희가 지금 이렇게 여흥을 즐기는 것을 보면 고려에 도끼를 찾으러 가실지도 모릅니다."



"도끼를 찾으러 가신다니요?"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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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 남송(南宋)에 가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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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옥추보경(玉樞寶經) (1) 23.06.30 68 1 9쪽
28 유백문(劉百文) (2) 23.06.26 58 0 10쪽
27 유백문(劉百文) (1) 23.06.25 56 0 12쪽
26 청룡검(靑龍劍) 23.06.23 55 0 13쪽
25 병상첨병(病上添病) (3) 23.06.22 51 0 10쪽
24 병상첨병(病上添病) (2) 23.06.20 64 0 9쪽
23 병상첨병(病上添病) (1) 23.06.19 62 0 10쪽
22 화산파(華山派) (2) 23.06.19 113 0 11쪽
21 화산파(華山派) (1) 23.06.18 57 0 14쪽
20 하오문(下五門) 23.06.12 68 0 13쪽
19 삼교맹(三敎盟) (4) 23.06.11 65 0 11쪽
18 삼교맹(三敎盟) (3) 23.06.11 70 0 14쪽
17 삼교맹(三敎盟) (2) 23.06.10 79 0 12쪽
16 삼교맹(三敎盟) (1) 23.06.08 99 0 13쪽
15 수도 임안(臨安) (4) 23.06.06 99 1 9쪽
14 수도 임안(臨安) (3) 23.06.06 85 0 12쪽
13 수도 임안(臨安) (2) 23.06.03 97 1 13쪽
12 수도 임안(臨安) (1) 23.05.24 112 0 12쪽
11 문천상(文天祥) (2) 23.05.23 99 0 10쪽
10 문천상(文天祥) (1) 23.05.23 109 0 10쪽
9 백련교(白蓮敎) (2) 23.05.22 108 0 10쪽
8 백련교(白蓮敎) (1) 23.05.22 126 0 10쪽
7 전진교(全眞敎) (3) 23.05.21 122 3 14쪽
6 전진교(全眞敎) (2) 23.05.21 135 3 11쪽
» 전진교(全眞敎) (1) 23.05.20 179 3 15쪽
4 남송(南宋) 명주(明州) (3) 23.05.20 176 5 10쪽
3 남송(南宋) 명주(明州) (2) 23.05.19 199 5 12쪽
2 남송(南宋) 명주(明州) (1) +1 23.05.19 283 6 18쪽
1 위기의 삼별초 23.05.19 474 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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