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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중세에서 근세로. 유럽 30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1.06 16:45
최근연재일 :
2021.02.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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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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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대 격돌! 제 6 라운드 뤼첸 전투(1)

DUMMY






겨울 숙영으로 인해 한발 물러서는 구스타프 2세 아돌프.





그러니 이 행동으로 인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회전의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과연 30년 전쟁의 가장 큰 전투였던 뤼첸 전투가 어떻게 일어났을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뤼첸 전투 : 전쟁 판이 형성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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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좋아 좋아~ 역시 물러나는구만 ]






발렌슈타인의 생각대로 구스타프가 물러나주니, 둘은 아주 흡족해 했습니다.





스웨덴 군이 물러나자, 본격적으로 겨울 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 뤼첸 마을에서 숙영 준비를 합니다.





겨울 숙영때 파펜하임이 문제를 터트립니다.









2.jpg



파펜하임은 겨울을 날려면 보급품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다른 개신교 지역을 해방시켜서 도움을 받을 것을 요청합니다.





말이 해방시켜서 도움을 요청하는거지, 사실 따지면 어디 털어서 온다거나, 아니면 반강제적으로 내놓으라는 뜻이겠죠.





아무튼 파펜하임의 요청에 발렌슈타인도 굳이 마다할 일이 아니었기에, 파펜하임의 기병대로 개신교 세력지였던 모리츠베르크로 가서 보급품 조달 명령을 하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황제군의 큰 실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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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뭐냐 갑자기? ]






왜냐하면 구스타프가 아직 전장에서 완전히 떠나간 것이 아니였는데, 군대 하나가 둘로 쪼개져서 어디론가로 떠나가는 것을 보고로 확인한 것이죠.





군대가 둘로 쪼개져서 사라졌는데, 구스타프 입장에선 이 절호의 찬스를 놓칠리가 없었죠.





그는 이 겨울이 끝나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웨덴 군은 뒤로 돌아가서 후퇴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유턴하여 황제군을 향해 진영을 준비하며 전투 준비를 하게 됩니다.




4.jpg

[ 아니 뭐야? 후퇴하고 있었잖아? ]






이렇게 되자, 발렌슈타인도 뤼첸 마을에서 겨울 숙영 준비를 전부 중단하고, 그 자리에서 진영을 구축하여 두 군대가 대치하게 됩니다.





이때 구스타프도 실수를 하나 저지릅니다.





황제군의 발렌슈타인과 파펜하임이 너무 성급하게 적이 완전히 떠나기도 전에 부대를 둘로 나눴는데,





이번에는 구스타프가 너무 빨리 다시 돌아와서 전투 준비를 해서, 파펜하임도 어느정도 가긴 했는데,




발렌슈타인이 보낸 전령을 통해 전투가 벌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복귀하러 옵니다.





구스타프가 기회가 생기면 즉시 실행하는 과감한 담략과 결단력이 있는 훌륭한 리더이지만,




여기서는 구스타프가 뉘른베르크 전투등 여러 압박에 시달리니까, 사람의 기본적인 습성인, 조급함이 먼저 다가온 것이죠.





이런 것을 보면 제 아무리 훌륭한 위인이라도 인간적인 한계는 뛰어넘지 못하는 면모가 보이네요. 어떻게 보면 그래서 역사가 흥미로운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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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에선 파펜하임의 돌아오는게 금방 처럼 보이지만, 그의 본대는 굉장히 늦게 도착한다. ]






발렌슈타인은 급히 다시 파펜하임을 소환하고, 뤼첸 마을에 다시 강력한 방어 진지를 구축하며 수비를 통해, 구스타프와 일전을 준비하게 되면서,





이렇게 30년 전쟁의 가장 큰 전투, 뤼첸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2. 제 6 라운드, 뤼첸 전투 : 전투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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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뤼첸 전투(1632년 11월 16일). 전체 지도 ]





이 뤼첸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마을 풍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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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동그라미 : 뤼첸 마을에 있는 풍차 ]






빨간 동그라미가 뤼첸 마을에 있는 풍차인데, 이 풍차에 올라가면 마을을 한 눈에 보였죠.





이 전망 좋은 곳에 황제군은 대포 20문을 배치합니다.





뤼첸이 벌어진 전투의 중심은 스웨덴 군이 이 풍차가 있는 곳까지 도달해서 제국군의 포대를 점령한다면 신교의 승리.





반대로 이것을 지켜내고 방어에 성공하면 황제군의 승리가 되는 것이었죠.





또한 마을 외곽에는 높은 진흙 벽들이 즐비해서 황제군이 은신하여 다가오는 적을 기습 공격하기 좋은 곳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위치상으론 발렌슈타인에게 유리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럼 뤼첸 전투의 제국군의 작전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8.jpg



좌익에는 홀크라는 지휘관이 맡았습니다.





중앙에는 콜로레도. 그리고 황제군의 총사령관이었던 발렌슈타인이 우익에 맡았습니다.






여기서 이상한게, 총사령관이면 중앙을 맡아야하는게 아닌가 라고 생각하실 듯 싶지만,





특이한 유럽의 전통중에 하나가 총대장이 우익에서 전투에 결정적인 일을 하는 부대를 지휘해야한다라는 것이 있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제국군의 포대는 2개로 나뉘어서 전면과 풍차가 있는 측면으로 둘로 나뉩니다.





이때 위의 사진에 전면에 있는 포대를 잘 살펴보면 포병 말고도 다른 병력이 일부 있을 겁니다.





이 병력은, 발렌슈타인이 구스타프가 구사하던 전술을 차용해서, 기병 사이에 머스킷을 배치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총 3가지의 장점이 있었습니다.





1) 병력 우위





2) 전면 대포 앞에 뭔가 라인처럼 그어진게 있는데, 이게 바로 도랑입니다.





이때 그림의 도랑은 하나처럼 보이는데, 사실 두개의 도랑(플로스 그라덴 + 무할 그라덴)이 합쳐져서 제법 컸죠.





얼마나 도랑이 컸는지 마차가 지나가지 못할 정도였고, 모든 보급품과 기병이 이 도랑을 피해 크게 우회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즉 스웨덴 군은 어떻게든 도랑을 넘어서 전투를 하던가, 그게 아니면 빙 돌아서 양측면으로 가야 하던가, 선택을 해야하는데 두 선택 모두 스웨덴에게 아주 불리했죠.





3) 전면 대포에 스웨덴의 전술이던 기병 사이의 머스킷 병 투입시켜서 십자포화 형태로 비슷하게 만들게 했었고, 이때 스웨덴은 전염병등으로 인해 많이 약화된 상황에서,





황제군의 기병은 흉갑기병인데, 스웨덴은 흉갑 기병이 아닌 것도 감안해야 했습니다.





거기다가 흉갑을 입은 기병은 방어를 하고, 흉갑이 없는 기병이 공격을 해야 하고, 기병 숫자에서도 열세.





그나마 다행인건 파펜하임이 이끈 일부 기병이 빠졌다는 선에선 다행이긴 했지만 그래도 스웨덴에게 불리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4.jpg



이러한 3가지 장점으로, 발렌슈타인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 중앙군은 도랑이라는 방패를 이용해서 전면에 배치된 대포와 총병으로 괴롭히자 "





" 우익의 언덕으로 올라오는 적은 측면에 배치된 대포로 상대하자. "





" 심지어 우익은 질이 떨어진 개신교 동맹 군대이다. "





" 좌익은 스웨덴 기병이 있긴 하지만 약해질대로 약해진 오합지졸이다. "





" 파펜하임의 기병이 현재는 없으니 임기응변으로 홀크의 기병대로 방어하면서 파펜하임이 올 때 까지 버텨라. "





이렇게 작전을 구상하고 전투에 임합니다.





발렌슈타인의 작전을 본다면 나쁠게 없어 보입니다.







이번엔 스웨덴 군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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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은 역시나 유럽의 전통대로 구스타프가 맡았습니다.





좌익은 작센바이마른의 베른하르트 및 개신교 동맹군이 맡습니다.





그리고 중앙은 쿠니프하우젠이라는 지휘관이 맡았는데, 이 쿠니프하우젠은 매우 중요한 인물중에 하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예비대를 총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예비대라고 하면, 그냥 뒤에 후방 병력을 급한 곳에 보내는 사람 정도로 취급하기 쉬운데, 이건 아주 큰 오류입니다.





예비대는 전투 최후의 순간까지 아끼고 아껴서 모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투입해야하는 아주 중요한 위치였고,





이런 예비대는 아주 최정예로 두는 것이 상식이었죠.





쿠니프하우젠의 예비대는 약 4개 여단이었습니다.





스웨덴은 총병을 2열로 배치, 양쪽에 기병을 두었고, 보병대열에는 전방엔 중포를 배치, 경포는 각 부대 사이에 총병들과 함께 배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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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각 군대의 대대를 모아서, 여단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일찍히 여단에 대한 장점은 전 편에 네덜란드의 군사 개혁 이야기하면서 했기 때문에, 굳이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11.jpg



이 여단으로 구성된 대대는 스웨덴의 군사 개혁중에 하나인, 횡렬로 구성을 짰는데,




횡렬이 황제군에 보다 길었지만, 종열은 짧아서 총의 분사력과 유연성이 뛰어났습니다.







이렇게 각 진영마다의 배치도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3. 구스타프가 움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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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첸 전투는 오전 7시 30분 부터 시작되게 됩니다.





이 뤼첸 전투는 거의 1시간 단위로 기록되어 있어서, 전투의 상황을 알아보기가 좋았습니다.





당시 기록들을 살펴보면, 밤과 새벽에 짙은 안개가 껴서 야간 작전이 불가능했죠, 물론 아침에도 안개는 껴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군이 7시 30분부터 군사 작전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 전에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먼저 두번의 연설을 하면서 아군의 사기를 고취시켰습니다.








3.jpg



먼저 스웨덴과 핀란드 병사들에게 연설을 합니다.





" 용맹한 형제들이여! 너희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왕을 위해 용감하게 싸워라 "





" 그렇게 한다면 너희들은 하나님과 자비와 나의 존중을 받을 것이다. "





" 내가 진정으로 너희들에게 보답하겠다. "





"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희의 뼈는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






라고 먼저 연설 후, 두번째 연설은 독일 지역 병사들에게 합니다.





" 진실하고 가치 있는 도이치 형제들이여! "





" 장교들과 사병 모두에게 전하노니, 남자답게 처신하고, 진실로 나와 함께 싸웁시다!! "





" 도망치지 마십시오! 나 역시 내 몸을 위태롭게 하고, 당신들의 최선을 위해서 소리를 칠 것입니다. "





" 만일 당신들이 나와 함께 서 있다면, 하나님이 승리를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





" 승리의 이익은 여러분과 함께 나눌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의 자유는 상실 될 것입니다. "






라고 독일 군에게 칭찬 섞인 격려를 해줍니다.




근데 이 말을 잘 살펴보면 살짝 구스타프의 협박성도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쁘게 말해서, 스웨덴과 핀란드 병사들에겐 " 니들 잘 못 싸우면, 집에 못 돌아간다! "





독일 병사들에겐 " 우리가 지면 너희들과 고향 모두 싹다 없어지는거야! " 라는 것처럼도 들리기도 하고,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스웨덴과 핀란드 병사들은 " 공격하라 " 는 말이 담겨있고, 독일 병사들에겐 " 자리를 지켜라 " 라고도 들리는 건 왜일까요?









13.jpg



한차례 연설을 끝마친 뒤, 신교는 행진을 시작하여, 뤼첸과 라파우 중간 지역에서 우선 멈춥니다.





왜냐하면 안개가 짙어서, 옅어질 때 까지 기다리려는 것이였죠.






오전 9시. 뤼첸 전장에서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스웨덴군과 제국군 모두 양측이 위치를 확인.






오전 10 ~ 11시. 스웨덴의 일부 포대가 도착하자, 스웨덴 군이 진격을 필두로, 두 진영은 대포에 불을 뿜으면서 전투가 시작되게 됩니다.









드디어 구스타프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발렌슈타인은 강적 구스타프에게 어떤 반격을 해올까요?





이 전투에서 스웨덴이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대 회전에서 승리를 할까요? 아니면 발렌슈타인이 또 다시 기적을 만들어낼까요?





다음 이야기에서 뤼첸 전투 이야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30년 전쟁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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