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쥬레아

[유럽史] 중세에서 근세로. 유럽 30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1.06 16:45
최근연재일 :
2021.02.16 14:00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1,981
추천수 :
64
글자수 :
209,721

작성
21.01.26 15:34
조회
48
추천
2
글자
14쪽

승승장구 하는 구교. 폭주하는 페르디난트 2세.

DUMMY



1라운드부터 4라운드까지 모든 전투를 비롯해서 외국 군대가 처들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승리한 제국군.





막강한 제국군으로 신성 로마 제국은 여전히 구교의 강세를 보여졌습니다.





프리드리히 4세를 꺾으면서 독일 내의 신교 영주는 그 누구도 도전하지 못하게 되었고, 심지어 외국의 세력마저 격파한 구교.






그 누구도 페르디난트 2세의 앞 길을 막을 자는 없어 보였습니다.







찬란할 것 만 같았던 구교. 하지만 페르디난트 2세의 야망으로 점차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됩니다.











1. 페르디난트 2세의 폭주









1.jpg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 ]







지난 전편들을 가만 살펴보면 한가지 의문이 떠오르시는 분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제국군(틸리, 발렌슈타인)들이 잘 싸우는 거 인정. 구교가 계속 신교를 격파, 구교의 입지가 강한 것 인정.





" 근데 황제는 뭐했어? "





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있습니다.











2.jpg

[ 막시밀리안 1세 ]






이미 앞서 발렌슈타인의 등용에 대해, 페르디난트 2세가 구교 vs 신교의 전쟁 흐름이 황제였던 본인이 아니라 막시밀리안 1세에게 휘둘러져서 굴욕감을 느꼈다고 했었죠.





즉 발렌슈타인의 등장 이전까지, 막시밀리안 1세에게 빌린 틸리 군대가 승리한 것은, 황제 본인의 능력이 아니라, 막시밀리안 1세의 능력을 빌런 것이므로,





사실상 황제는 여태껏 군사 비용만 계속 지불 할 뿐, 황제가 한 일은 사실상 한 것은 거의 없던 것입니다.





이 정도까지 상황을 보고 유추 할 수 있는 것은 페르디난트 2세는 무능한 황제라는 것을 어림 짐작 할 수 있을 것이고, 당대 평가도 딱히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였습니다.





이는 그가 아직 오스트리아 대공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었죠.





그가 과거에도 계속 악평이 이어졌지만, 어째든 혈통등으로 안정적인 황제 자리를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이양받으려면 페르디난트 2세를 황제 위로 올릴 수 밖에 없었죠.





그러면.... 가만 생각해봅시다.





세간에 평가가 안좋아서 계속 참고 참았던 사람에게 황제가 되었다는 것은, 곧 칼을 준 것이죠.





이런 열등감이 가득 쌓인 사람에게 칼을 쥐어주면 어떤 사단이 터질까요?










3.jpg



바로 내재됐던 감정이 곧바로 폭발하여, 자신의 손에 쥔 칼을 휘두를게 뻔 했고, 그는 30년 전쟁에서 아주 화끈하고 대담하게 꿈과 포부가 대담......정도가 아니라 미쳐 날 뛰게 됩니다.





과연 그가 어떻게 날 뛰었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페르디난트의 폭주(1) : 토지반환령 선포








4.jpg

[ 1629년 토지 반환령 선포 ]







페르디난트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에 토지 반환령을 선포합니다.





* 토지 반환령




아우스부르크 종교 화의가 이루어지고 나서, 신성 로마 제국내에 많은 사람이 신교(루터파)로 전환.



이때 빼앗겼던 가톨릭(구교) 사람들의 토지를 다시 반환에 관한 것.



// 1줄 요약 : 신교 너희들 영토 싹다 내놔 //







* 아우스부르크 종교 화의




1559년 9월 체결. 쉽게 설명하면 신교의 루터파는 인정해줌. 정도로 간단하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페르디난트 2세가 이 토지 반환령을 선언하자, 곳곳에서 난리가 나게 됩니다.





사실 아우스부르크 종교 화의 결과를 잘 살펴보면, 좀 어폐가 있습니다.





이때 신교가 빼앗은게 아니라,





1) 해당 영지의 영주에게 가톨릭 혹은 신교(루터파)를 믿을지 선택권을 준 것.




2) 모두에게 신앙의 자유권을 준 게 아니라는 점. 또한 해당 영지에 사는 백성들은 그에 따라 따라가는 것.





이라는 것이었죠.





그리고 아우스부르크 종교 화의에 대한 위의 결과로 인해서, 많은 백성들이 구교였다고 가정해봅시다.










5.jpg

[ 믿을 거야! 안 믿을거야! 안 믿을거면 재산 다 내놓고 가! ]







근데 영주가 신교를 믿으면, 그 영지에 사는 많은 수의 백성들이 구교인데, 이 구교를 믿는 백성들의 재산을 불하해야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근데 당시에는 불만이 폭주했지만, 30년 전쟁이 터진 미래에서, 이때를 바라본다면 차라리 더 편했을 겁니다.





구교(가톨릭)의 재산을 신교가 먹었다. 그럼 깔끔하게 의견이 하나로 정리되니까요.





근데 빼앗은 구교의 재산을 먹은게 아니라, " 불하 " 했다는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 입니다.




즉 불하 했다는 것은 나눠줬다는 의미이고, 결국 이렇게 되면 빼앗긴 사람과 빼앗은 사람과 나눠 받은 사람으로 3가지로 분열됩니다.





이것도 큰 카테고리로 3가지 형태이지,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훨씬 많고 다양한 이유와 상황에 따라 꼬이고 섥힌 복잡한 이야기가 되죠.








6.jpg






그리고 나눠 받은 사람들이 또 팔고, 산 사람이 또 팔고.... 그리고 판 재산과 땅에 농지나 집을 헐어버리고 공장같은 걸 세우면?





결과적으로 이런 공장이나 건물 세울 때, 사람들 투자까지 다 받아서 개발을 하거나 끝냈는데....





토지 반환령으로 다시 내달라???





근데 정작 투자로 정당하게 자기 돈으로 비용 지출한 사람들은 뭐가 되는지.....





7.jpg

[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내가 거지라니!! ]







심지어 신교의 많은 계층이 상공업자. 즉 건물 짓고만 한게 아니라, 가게 차려서 사람들 영업하거나 은행으로 사람들 돈 저축하면서 장사하고 있는데,





이걸 하루 아침에 싹다 반환해라고 하면, 단순히 억울하다는 걸로 끝날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8.jpg

[ 경제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







신교 사람들의 경제권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했죠.





근데 이게 신교 사람들의 재산 빼앗아서, 구교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구교 사람들은 잘 살까요?





비록 신교라고 해도 사업이나 제휴등 여러 이유로 구교와 신교 모두가 계약하거나 같이 동업하는등 결과적으로 종교는 비록 틀리더라도, 공생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근데 하루 아침에 공장 날라가고, 투자금 증발. 예치된 금액 사라지고....





이는 신교의 경제 뿐만 아니라 구교의 경제도 같이 몰락하는, 신성 로마 제국의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피해를 받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죠.








9.jpg

[ 신교, 구교 할 것이 영주들은 분노하였다 ]







토지반환령으로 시작된 초유의 경제 붕괴의 사태.





이렇게 되자, 신교의 제후들도 페르디난트 2세의 토지반환령에 항의합니다.





굳이 토지가 아니더라도, 재산이나 일정한 몇년 동안 몇 %의 세금 부과로 온건하게도 끝낼 수 있는 일이었죠.




1.jpg




그러나 페르디난트 2세는 영주들의 항의에도 무시하고 황소 고집으로 토지 반환령을 밀어붙힙니다.





아마 그의 생각으론 이랬을 겁니다.





1) 계속된 신교의 패배로, 권력의 안정감 및 자신감 상승.




2) 여태 사람들에게 손가라 받은 열등감으로 자신이 뭘 해보겠다는 과잉된 자존감.





아마 내적인 감정과 외적 상황이 모두 융합되어 일어난 일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10.jpg

[ 꽉 잡아! 경제 떨어진다!. 신롬판 대공황 ]






이걸 밀어붙힌 결과. 미국의 세계 대공황 이전에, 신롬판 대공황 시즌 1을 찍게 됩니다.





이렇게 한창 페르디난트 2세가 미쳐 날 뛰고 있을 때,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 사람들 더욱 부추긴 사람이 있었습니다.








3. 페르디난트 2세의 폭주(2) : 지방 세력 정리




11.jpg

[ 명성에 눈이 먼 발렌슈타인 ]






바로 발렌슈타인이었습니다.





데사우 다리 전투 이후, 한층 영향력을 높혔던 발렌슈타인은 자신의 입지를 더 올리기 위해, 그를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12.jpg

[ 신롬의 독특한 황제 즉위 방법. 투표와 선거권을 가진 선제후들. ]







신롬은 태생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황제 직위를 선거를 통해 선출됐습니다.





비록 반세습 형태가 되어, 허울만 가졌을 뿐이라 할 지라도 말이죠.




13.jpg



그러나 발렌슈타인은 그 선을 넘어 버리도록 페르디난트 2세를 설득합니다.





발렌슈타인은 황제에게





" 선제후도 결국은 황제의 제후들인데 감히 황제를 선거로 뽑는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




" 그들도 다른 영주들과 동등한 대우를 하도록 조치해주십시오. "




" 황제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절대 군주가 되어야 합니다. "






라는 말로 그를 꼬득입니다.(대강 이런 뉘앙스)





심지어 발렌슈타인 말에 페르디난트 2세가 솔깃해서 믿게 되죠.






근데 웃긴게 프랑스나 스페인처럼 절대 군주. 그리고 여태 신롬 황제가 선제후들의 눈치를 보는 근본적인 이유.





강력한 군주에겐 필수 조건. 돈과 군대가 있어야 하는데, 여태 30년 전쟁에서 신롬 황제는 돈도 없고 군대도 없는데, 어떻게 제국의 선제후들과 영주들을 누르고, 절대 군주가 될 수 있는 지, 참 웃긴 일입니다.





가뜩이나 지금 꼬득이는 발렌슈타인도 사실 황제의 신하 혹은 충신이라는 포지션이 아니라, 사실 자기 욕망과 야망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발렌슈타인의 군대는 황제의 군대가 아니지, 자기의 군대라는 점이 가장 중요했죠.





그런데 그런 생각은 망각하고 지금 폭주해서 토지반환령에다가 마치 자기가 어마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착각속에 살죠.




14.jpg

[ 할베슈타트. 크리스티안(미친)의 별명이 할베슈타트의 광인으로, 전에 한번 지역 이름이 등장했다. ]








페르디난트 2세는 독일 지역 다듬기에 시작합니다.





할베슈타트 지역을 아들에게 임명, 오른쪽 지도의 동그라미 점선 안에, 마그데부르크가 있습니다.





이쪽 지역에도 간섭을 하는데, 이 지역의 행정관이 덴마크 군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퇴출시킵니다.





그는 사소한 꼬투리 하나만 있으면 온갖 지역의 유지들에게 퇴출을 시키고, 자기 혈족 혹은 측근들에게 마구 임명 시킵니다.





15.png

[ 야무진 페르디난트 2세의 꿈 ]






페르디난트 2세의 정복 야욕의 끝은 독일 + 북이탈리아까지 지배하면, 스페인(나폴리) 지역까지 연결되면서,




그야말로 진정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제국이 탄생하게 되고, 이것이 그의 최종적인 꿈이었습니다.











4. 유럽을 요동치게 하다 : 스페인(에스파냐)의 사정





16.jpg

[ 님아 왜이래요? ]







페르디난트 2세가 스페인(에스파냐)까지 확장을 꿈꾸며 행동하자, 스페인은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





스페인이 비록 같은 합스부르크 가문이긴 했지만, 그래도 서로 다스리는 영역인 철저히 구분해서 지냈는데, 이제와서 자기 밥그릇까지 빼앗으려는 것이죠.





그리고 여태까지 신롬 제국과 잘 지냈던건, 어디까지나 네덜란드 독립 전쟁 때문에, 신롬 지역을 지나쳐야하는 필요성과 네덜란드로 갈려면 팔츠를 반드시 점령해야 했던 필요성으로 손을 잡은 것이죠.





근데 이제와서 본인이 다 유리해보인다고 배짱부리니까 스페인으로써는 당황도 물론이거니와, 배신감을 안 들 수 가 없었죠.





구교 세력도 토지반환령과 황제의 세력 확장에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페르디난트 2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씩 조심스레 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곳 저곳 다 들쑤시며 독일 전역에 손을 뻗치는 악수를 저지릅니다.




17.jpg

[ 북이탈리아의 만토바 ]







황제가 북이탈리아의 만토바에 대한 계승권을 핑계로 입성합니다.





신롬 황제가 만토바를 계승하여 먹게 되면, 페르디난트 2세의 영토 야망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만토바를 황제가 점유하면, 결과적으로 프랑스 + 스페인(에스파냐) + 이탈리아 도시 국가등 모두가 엮일 수 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스페인(에스파냐)는 앞서 말했듯이 네덜란드로 가기 위해선 북이탈리아 > 팔츠 > 네덜란드 이렇게 경유해서 가는데, 그 길목을 딱 잡히는 셈.





심지어 고작 네덜란드만의 이유가 아니였습니다. 스페인, 본인의 야망에도 저지가 되기 때문이죠.









19.png

[ 나도 야망이 있다. 스페인의 야무진 계획 ]






어느 몇 화에서 제가 스페인과 네덜란드 이야기 하면서, 스페인의 야망에 대해 이야기 한 적 있을겁니다.





스페인은 당시 스페인 ~ 이탈리아 전역 ~ 네덜란드까지,





위의 지도로 유럽에 거대한 회랑이며 일종에 라인을 긋고, 스페인 대제국을 세우고 싶은 야망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이 야망 때문에, 스페인이 절대로 네덜란드를 포기를 안했고, 그래서 30년 전쟁 초반부터 참전했으며, 네덜란드가 근 80년 동안 독립 전쟁을 계속 벌였던 것.





최종적으로 스페인 본인의 거대한 야망을 위해 한치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약 스페인이 위의 이미지대로 거대한 제국을 세운다면 뭐가 이익이 될까요?





우선 가장 중요한건 " 프랑스의 고립 " 이었습니다.





또한 이러면서 스페인 + 신성 로마 제국과 육지로 붙어지게 되죠.





이러면 유럽 전역의 패권이 신롬과 스페인. 두 나라가 가지게 되며,





이 패권에서 두 국가는 동등한 입장이거나 최소한 스페인이 적어도 불합리하거나 영향력이 약해지진 않겠죠.





그런데 반대로 신성 로마 제국이 회랑 지역까지 다 먹겠다고 진출하여, 북이탈리아까지 점령하면 결국 스페인 본인의 야망은 둘째치고, 스페인 지역과 왕가가 신롬에게 묶여버리는 개가 되고 말죠.





겉으론 신롬의 구교를 도와준다고 나섰던 스페인(에스파냐)가 이젠 자기 뒤통수를 때리는 것도 모자라 남은 모든 것들을 싸그리 내놔라고 하는 꼴이니,




스페인은 자극시켜버린 꼴이 되죠.













4. 유럽을 요동치게 하다 : 이탈리아의 사정








20.jpg

[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이탈리아의 시점에서도 신롬 제국의 행동에 큰 자극을 받게 됩니다.





가톨릭의 지도자는 로마 교황이죠.





근데 갑자기 신롬이 구교의 수호자라면서, 교황이 있는 이탈리아로 치고 온다는 이상한 상황입니다.





분명 구교를 지켜준다고 여태까지 신교와 잘만 싸웠는데, 이젠 잘나간다고 반대로 구교로 칼부리를 돌린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 그랬으니까요.





이러니까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본인들의 이권을 사수 + 교황령도 자신의 입지를 지켜야한다는 의견에 서로 일치되죠.





이렇게 페르디난트는 신교를 박살내도 모자랄 판에, 갑자기 폭주하여 미처 날 뛰며, 구교로 향하게 되면서, 30년 전쟁에 새로운 전황이 불게 됩니다.









다음 편은 30년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30년 전쟁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유럽史] 중세에서 근세로. 유럽 30년 전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30년 전쟁 완결 소감 +6 21.02.16 97 0 -
공지 첫 연재 후, 한 달 동안 시간이 정말 숨 가쁘게 지나간 것 같네요. 21.02.12 27 0 -
33 30년 전쟁의 종결(완결) +1 21.02.16 62 3 15쪽
32 후반부 : 스웨덴 - 프랑스 전쟁(1635~1648) 21.02.15 41 2 13쪽
31 스웨덴의 영혼의 한판, 뇌르틀링겐 전투와 후반부의 서막이 울리다. +2 21.02.14 36 0 17쪽
30 구 세대와 신 세대들의 세대 교체 21.02.13 37 1 8쪽
29 발렌슈타인의 처참한 몰락 21.02.12 32 2 10쪽
28 대 격돌! 제 6 라운드 뤼첸 전투(完) 21.02.11 39 2 11쪽
27 대 격돌! 제 6 라운드 뤼첸 전투(3) 21.02.10 36 0 15쪽
26 대 격돌! 제 6 라운드 뤼첸 전투(2) 21.02.09 34 1 11쪽
25 대 격돌! 제 6 라운드 뤼첸 전투(1) 21.02.08 31 1 11쪽
24 30년 전쟁 역사상, 대 전투의 개막 21.02.07 34 2 15쪽
23 발렌슈타인의 복귀와 틸리의 항전 21.02.06 28 2 11쪽
22 유리한 분위기 속에 불안한 스웨덴 21.02.05 28 1 11쪽
21 발렌슈타인의 선택 그리고 치명적인 단점 +3 21.02.04 30 2 8쪽
20 스웨덴의 군사 개혁과 브라이턴 펠트 전투 이후 상황 21.01.31 37 2 15쪽
19 라이프치히를 탈환하라! 제 5 라운드, 브라이턴 펠트 전투(1631년) 21.01.30 34 0 17쪽
18 구교. 한 순간에 대세가 뒤바뀌다. 21.01.29 27 1 11쪽
17 스웨덴 전쟁(1630~1635) 21.01.28 37 2 13쪽
16 다시 한번 거대한 전쟁이 몰아치다. 21.01.27 38 1 14쪽
» 승승장구 하는 구교. 폭주하는 페르디난트 2세. 21.01.26 49 2 14쪽
14 제 4 라운드, 틸리 vs 크리스티안 4세의 루터 전투 21.01.22 36 2 16쪽
13 몰락하는 자와 떠오르는 자. 만스펠트와 발렌슈타인 21.01.21 35 1 10쪽
12 제 3 라운드, 데사우 다리 전투 21.01.20 50 2 14쪽
11 새로운 신교 세력에 맞서기 위해, 구교의 새로운 인물 등장 21.01.19 76 2 20쪽
10 전쟁 중반부의 시작. 외국의 개입 : 덴마크 전쟁(1625~1629) +4 21.01.18 65 2 13쪽
9 환장의 조합, 신교 군대(2) - 크리스티안의 발악. 슈타트론 전투 +1 21.01.17 42 3 13쪽
8 환장의 조합, 신교 군대(1) : 만스펠트의 만행 21.01.16 63 2 8쪽
7 구교의 무적에 진영. 테르시오 진영 21.01.15 48 2 16쪽
6 구교 vs 신교. 제 2 라운드. 빔펜 전투(1622년 5월) 21.01.11 55 2 9쪽
5 제 1차 보헤마아 - 팔츠 전쟁 이후, 독일과 유럽의 정세 21.01.10 76 2 15쪽
4 제 1차 보헤미아 - 팔츠 전쟁 : 백산(빌라호라) 전투 21.01.09 81 3 30쪽
3 구교와 신교. 누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될 것인가? 21.01.08 96 4 18쪽
2 30년 전쟁에 쓰였던 무기와 갑옷. 그리고 기술의 변화들 21.01.07 160 5 18쪽
1 중세에서 부터 이어진 전쟁의 서막 +8 21.01.06 393 5 2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