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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중세에서 근세로. 유럽 30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1.0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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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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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3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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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군사 개혁과 브라이턴 펠트 전투 이후 상황

DUMMY

:: 스웨덴의 군사 개혁과 브라이턴 펠트 전투 이후 상황 ::

1.png



지난 브라이턴 펠트 전투에서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스웨덴 군.





스웨덴 군이 불패의 틸리 군대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들만의 진보된 개혁의 힘이었습니다.





이번 편에는 전편에서 얘기 했듯이, 스웨덴의 군사 개혁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1. 대포의 개혁








1-1. 포탄 상자의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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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브라이턴 펠트 전투에서 스웨덴은 3파운드 대포를 사용했다고 했었죠.





이 3파운드 대포는 보통의 큰 다른 구경의 대포보다 발사 속도가 매우 빨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군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스웨덴 군은 지금보다 더욱 빨리 포를 쏘기 위해, 새로운 개혁으로 " 포탄 상자의 통일 " 이라는 정확히 맞는 규격의 포탄을 제시합니다.





생각해보면 포탄 상자의 통일? 고작 이게 개혁 수준이라 할 만 할까 싶지만, 옛부터 보급 소요를 줄이는 것이 군대의 큰 고민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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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대에도 보급 체계를 단순화. 간략화가 아주 중요합니다.





수많은 종류의 탄환(5mm, 7mm등)과 미사일등 아주 다양한 무기들과 탄들이 현대에 셀 수 없이 많고, 이 모든 것을 다 나누고, 각 창고마다 두며, 각 품목마다 관리 방법도 다 다르는등





무기 보급부터 식량, 식기, 자제등 모든 종류의 보급을 다루는 것은 아주 어렵고, 유지 관리하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죠.





그리고 저 당시에도 다양한 구경의 대포와 장전 형태가 다른 총과 아퀘버스, 머스킷 처럼 종류도 틀린 총까지





이 모든 것을 각자 나눠서 보관 배치해서, 전선에 싸우고 있는 병사들이 장비하고 있는 무기마다 맞는 보급을 수송하기란 너무나도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스웨덴 군은 먼저 포탄 상자의 통일. 즉 상자가 통일됐다는 것은 오직 단 하나의 구경만 사용하는 것이죠.





하나의 구경 대포를 쓰는 것은 전장에 위험한 도박수 일 수 있습니다. 때론 더 큰 포가 필요한 경우가 있을지 모르는 위험성이죠.





그러나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이 30년 전쟁.....





아니, 현 시대에 굳이 큰 대포를 쓸 필요성 자체가 없다고 판단한 아주 모험적인 결단이었고, 그 판단이 옳았던 것이, 이번 브라이트 펠트 전투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순전히 한 대포만 쓰겠다고 상자 통일이 된 건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더 큰 상자를 쓰면, 더 많은 포탄을 가지고 갈 수 도 있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굳이 상자 통일을 할까? 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1-2. 운송의 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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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의 통일의 근본적인 부분은, 운송을 편리하게 해주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왜 편리하게 해주는가?





이는 전선에 보병은 다들 밀집된 전열 보병들입니다.





전열된 보병들중에 탄이 부족하거나, 총이 망가진 병사들이 있겠죠.





그러나 그 병사들이 내부 깊숙히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이 보병들을 보급병들과 보급품을 전달해주어야 하는데, 밀집된 보병들 사이로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상자 형태가 제각기 틀려서, 어떤건 좌측이 약간 더 길 수 도 있고, 아니면 우측이 길 수 도 있겠죠. 그러면 전열된 보병들 틈이 흐트려지게 됩니다.





이걸 방지하고자 모든 상자 규격을 통일한 것이죠.





모든 상자 형태가 일정하다면, 그 일정한 거리만큼 보병들 대형이 일정하게 벌려져 있다면 보병들 틈을 힘들게 비집고 들어갈 필요도 없고, 옆에 서 있는 보병들과 충돌이 없으니,





운송은 더욱 편리하고 빠르게 갈 수 있다는 아주 좋은 방법인 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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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파운드 구경의 대포 + 상자의 일원화와 운송의 개혁은 스웨덴 군의 대포를 아주 빠르게 발사하게 된 근간이었습니다.




얼마나 스웨덴 군이 빠르게 쐈는지, 일설의 기록에 따르면 총이었던 머스킷보다 훨씬 빨리 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평균적인 머스킷 발사 속도는 약 1분.




그나마 머스킷 발사 시간이 아주 빠르다고 하던 영국의 경우에도 30초 남짓입니다.





당시 제국군이 쓰던 대포는 12파운드 혹은 24 파운드를 주력으로 썼는데, 발사 속도는 약 12분 이었죠.





평균 1분을 잡아 쏘는 머스킷 총을, 스웨덴 대포는 1분보다 더 빨리 쐈다는 것은, 적에게 정말 끔찍한 공포가 아닐 수 없을 겁니다.(적은 시도때도 없이 노 쿨타임으로 포탄이 날라오는데, 아군은 늦게 쏜다고 생각하면..;;;;)





물론 이는 스웨덴 군 쪽에서 자부심으로 인해서 거짓된 보고일 수 있고, 워낙 전장에서 여러 대포가 수시로 쏘니까, 헷갈려서 그리 작성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스웨덴 군이 아주 빨리 쏜 것만은 확실한 진실이죠.











1-3. 이동 대포








5.png



스웨덴 군이 3파운드 대포를 만드는 건 순전히, 빨리 쏘기 위함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에도 있었습니다.





보병 - 포병. 두 병과가 서로 맞춰서 전진(조금씩)이 가능하도록 설계했고, 이렇게 훈련을 했습니다.





이것도 쉽게 어떻게보면, 이런 생각 못해? 라고 할 수 있죠.





문제는 이 대포 진지 설계 형태부터 설명해야합니다. 제국군이 쓰던 포대중 가장 작은 대포는 12 파운드.





이 12파운드가 다른 군대의 포에 비하면 한참 작긴 하지만, 그럼에도 반동과, 무거운 무게 중심에 의해서 포병이 일부 지형을 다듬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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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를 만드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한국의 많은 남자들이 군대에 가면 많이 하는 일중 하나가, 진지 보수/공사 입니다.





원래 있는 진지를 새로 보강하는데도 몇 십분은 기본 걸립니다.





하물며, 아예 새로 땅을 파서 거리 조절을 하게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하면, 여간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 아닌 것이죠.





그러나 스웨덴의 3파운드 대포는 12파운드보다 훨씬 무게가 적게 나갔기 때문에, 진지를 새로 만드는데에도 오래 걸리지 않았고,





또 전장이 계속 밀고 밀어나는 형세가 많다보니,





보병이 앞으로 진격할 때, 같이 이동이 가능하도록 빠른 이동이 가능하도록 특수 설계된 포로 제작, 이동하는 와중에도 포를 쏠 수 있도록 반동과 포병들의 거리 계산 능력 및 조준 모두 훈련도 했다는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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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포병 운용 방법은 먼 미래, 20세기의 1차 세계 대전에서도 쓰였을 만큼, 아주 선전적인 방법중에 하나였습니다.










1-4) 대포 조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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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군은 위의 이미지의 도구들을 활용해서 대포를 발사했습니다.





간혹 유럽 드라마등의 영상 매체로 인해서 그냥 눈대중으로 판단해서 쏠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의 포병들은 다양한 도구들과 수학적 계산을 통해 거리 조절을 했고, 스웨덴의 위의 대포 조준기들의 오차가 아주 적을 만큼 훌륭했고, 도구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쟁에서 숙련도를 쌓았습니다.





심지어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각도기등을 이용해서 직접 대포를 발사하여, 병사들을 가르쳤을 정도로 위의 도구 활용을 적극적으로 표방했으며, 완전히 숙달되도록 숙지시켰습니다.






이러한 훈련 방식은 고스란히 전장에서 결과를 발휘했습니다.





스웨덴 군의 포병들의 명중력은 약 300야드(274m) 에선 원하는 곳을 맞추는 것이 가능한 수준이었죠.





또한 스웨덴 군은 포탄의 명중력을 높히기 위해 포에도 다양한 설계를 했습니다.




당시 대포가 위 아래가 불가능했고, 좌우로 바꾸기도 쉽지 않아서, 포탄에 철 파편을 심었습니다.





이게 발사된 뒤, 땅에 박히면 철 파편들이 사방에 튀는 효과를 만들어, 살상력을 높혔죠. 다만 이런 방식은 스웨덴 군만 한게 아니라 다른 군대들도 다 활용했기 때문에,





포탄 자체를 안맞더라도 명중력이 높았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추가적인 방편에 의해서 입니다.










2. 테르시오 진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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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군은 자기들만의 테르시오 진영의 다이아몬드 대형을 만들었습니다.





일반적인 테르시오 진영의 약점은 측면이 노출이 되는 순간, 기병이 파고 들면 와해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이 측면 노출은 총병들이 사격하여, 뒤로 도망치며, 진영이 일시적으로 움직여서 약간 벌이지는 그 순간!





이 아주 찰나의 순간에 발생되기 때문에, 기병 지휘관은 찰나같은 순간을 항상 잘 포착해야 해서, 공략하기가 까다로웠던 것이 테르시오 진영이었죠.





이러한 약점 때문에, 테르시오는 최대한 측면이 노출되지 않기 위해, 각 사각형 대형이 다닥 붙어 있는 밀집 형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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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스웨덴의 테르시오는 진영 간격이 넓었고, 배치도 지그재그로 마치 다이아몬드 형태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넓직히 테르시오 대영을 만드니까, 적 기병 입장에선 측면이 뻥 노출된 형태로 보였기 때문에 신나게 돌격하지만, 이게 바로 노림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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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선 : 기병 침투로 ]



[ 파란 선 : 총병의 사격 ]







스웨덴 군은 넓은 대형 사이에 총병을 배치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속 빈 강정마냥, 뻥 뚫려 있어서 공격하기 좋게 보였겠지만,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대로 기병들은 총병의 십자포화에 맞아 당하게 되는 방식이었죠.





이 십자포화가 얼마나 무서운지, 앞에서 대놓고 쏘면 그래도 맞는다라는 생각은 하고 그래도 최후의 힘을 뭔가 짜낼텐데,





옆, 뒤에 자신의 시야 사각에서 총이 마구 발사되니까 어디에서 맞을지 누가 쏘는지 조차 모른 채 쓰러지는 것이죠.





결국 스웨덴의 다이아몬드의 테르시오 대형은 겉에서 보기엔 " 나 자살할래요~ " 하고 적들에게 비웃음 사기 좋은 형태였지만, 알고나니 적을 올가미에 묶어서 죽여버리는 아주 무서운 전략인 셈이었습니다.













3. 훌륭한 지휘관들






아무리 무기와 전술에서 변화를 줬다 한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특히 전쟁에서의 지휘관들의 역량 수준이 대세를 바꿀 만큼 중요한 것이죠.




사람이 돌발 상황이 터지면, 결국 사람의 시야는 좁아지고 자기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전쟁에서의 군대는 단체와 집단인데, 이 군대가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 되버리면 모든게 말짱 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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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를 들어서, 갑자기 적 기병이 좌측에 튀어나왔다는 돌발 상황이 일어난 가정을 해봅시다.





좌측 기병이 몰아쳐왔는데, 좌익의 보병 지휘관이 이 기병대를 결사의 방어로 격퇴에 성공합니다.





이 보병 지휘관은 좌익을 지켜야한다는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고, 원래 그렇게 하는건 당연한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격퇴한 다음에? 돌발 상황이 터지고 편협해지고 자기만 생각해진 사고속에서, 지휘관은 무슨 생각할까요?





" 이야~ 기병대를 막았어! "





이러면서 자기가 막았다는 것에 본인이 감동한다는 것입니다.





즉 뭔가 돌발적인 변수에서 당하지 않고 이겼다. 그다음에?





그 다음에 뭘한 것인가가 제일 중요합니다.





간혹 역사에서 보면, 다 이긴 전투였는데 갑자기 어물쩡거리면서 있다보니 적이 다시 군세를 모아 공격해서, 승세를 잡은 군대를 격파했다른 식의 이야기가 자주 있을 겁니다.





그 이야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승리한 다음에 취할 행동이 중요한데, 본인이 감동먹고, 심취해서 그 다음 대처를 미숙하게 한 것이죠.






이걸 브라이턴 펠트 전투에서 한번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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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미지 순서로 진행된 브라이턴 펠트 전투 순서입니다.





파펜하임 기병대가 좌측 방향으로 치고 들어왔지만, 스웨덴 군은 방어에 성공합니다. 이때의 돌발 상황에서 승리한 좌측 스웨덴 군.





바로 이때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좌측 군대에게, 적 중앙으로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왜냐하면 이때 틸리 좌측 군대의 기병대는 이미 도망쳐서 좌측이 뚫려 있었고, 중앙은 틸리 군의 대포가 있으니, 이걸 점령하라는 뜻이었죠.





그래서 마지막 이미지를 보면, 파펜하임 군대의 빨간 선을 향해, 파란 선이 쫒아가는 스웨덴 기병이 있고, 구스타프의 명령을 듣고, 중앙으로 돌격해서 포대를 점령하는 부대로 나뉩니다.





이때 중앙 틸리 군대로 향하는 좌측 스웨덴 군에는 포대가 있긴 했고, 위에서 포병이 보병과 같이 이동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거리가 꽤 길어서, 순식간에 갈 수 없었죠. 하지만 점령한 포대를 가지고, 틸리 군대를 향해 쏘았습니다.





이렇게 브라이턴 펠트 전투가 펼쳐진 것입니다.





이러한 드넓고 사방에서 치고 박는 싸움에서 전장을 보는 눈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마, 이 브라이턴 펠트 전투에서 다시 보여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4. 브라이턴 펠트 전투 이후의 독일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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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턴 펠트 전투가 벌어진지 30분만에 도망치고,심지어 보급마차 까지 털어버린 작센군.





작센의 깽판에도 불구하고 틸리 군대와 승리한 스웨덴.





과연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이 작센을 가만히 내버려 둘까요?





저같았으면 이 배신자놈들! 하면서 한대 후드려패도 시원치 않을텐데 말이죠.





하지만 역시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훌륭한 리더입니다. 그는 자기 군의 보급품을 털고, 멋대로 전쟁에서 도망친 작센 군을 용서해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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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작센군이 저지른 일은 사라지진 않았죠.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이 전투 이후부터는 절대 작센군을 비롯해서, 작센의 영주 요한 게오르크도 믿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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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틸리가 졌어? 우리도 대세를 탄다! - 독일 남부의 신교 봉기 ]








브라이턴 펠트 전투에서 틸리 군대가 그냥 진 것도 아니고, 사상 대패를 했다는 소식이 독일 전역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갑니다.





30년 전쟁이 일어난, 1618년 부터, 지금의 1631년까지. 구교의 틸리는 단 한번도 패전을 기록하지 않았던 불패의 군대가 여기서 깨진 것은 독일 전역의 대세에 크게 요동쳤고,





구교의 패배 소식은 곧바로 독일 남부의 신교들이 봉기로 이어집니다.





독일 북부 개신교들은 모두 단합하여 스웨덴 군에 합류. 불패의 신화를 쌓았던 틸리 백작의 패배. 그리고 황제의 입김이 강했던 독일 남부 신교의 봉기.





전황은 순식간에 신교에게 유리하게 돌아갑니다. 이제 구교는 처참하게 무너질까요?





이 혼란스러운 정국에 다시 혜성처럼 한 인물이 부상하게 됩니다.











18.jpg

[ 날 잊은 것은 아니겠지? ]






루터 전투 이후 한동안 조용히 관망만 했던 발렌슈타인이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다음 이야기는 다시 등장한 발렌슈타인으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다시 남은 분량이 떨어져서 잠깐 재 충전 후에, 빠르게 복귀하여 다시 이어 쓰겠습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30년 전쟁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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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구 세대와 신 세대들의 세대 교체 21.02.13 37 1 8쪽
29 발렌슈타인의 처참한 몰락 21.02.12 32 2 10쪽
28 대 격돌! 제 6 라운드 뤼첸 전투(完) 21.02.11 39 2 11쪽
27 대 격돌! 제 6 라운드 뤼첸 전투(3) 21.02.10 36 0 15쪽
26 대 격돌! 제 6 라운드 뤼첸 전투(2) 21.02.09 34 1 11쪽
25 대 격돌! 제 6 라운드 뤼첸 전투(1) 21.02.08 32 1 11쪽
24 30년 전쟁 역사상, 대 전투의 개막 21.02.07 34 2 15쪽
23 발렌슈타인의 복귀와 틸리의 항전 21.02.06 28 2 11쪽
22 유리한 분위기 속에 불안한 스웨덴 21.02.05 28 1 11쪽
21 발렌슈타인의 선택 그리고 치명적인 단점 +3 21.02.04 30 2 8쪽
» 스웨덴의 군사 개혁과 브라이턴 펠트 전투 이후 상황 21.01.31 38 2 15쪽
19 라이프치히를 탈환하라! 제 5 라운드, 브라이턴 펠트 전투(1631년) 21.01.30 34 0 17쪽
18 구교. 한 순간에 대세가 뒤바뀌다. 21.01.29 27 1 11쪽
17 스웨덴 전쟁(1630~1635) 21.01.28 37 2 13쪽
16 다시 한번 거대한 전쟁이 몰아치다. 21.01.27 38 1 14쪽
15 승승장구 하는 구교. 폭주하는 페르디난트 2세. 21.01.26 49 2 14쪽
14 제 4 라운드, 틸리 vs 크리스티안 4세의 루터 전투 21.01.22 36 2 16쪽
13 몰락하는 자와 떠오르는 자. 만스펠트와 발렌슈타인 21.01.21 35 1 10쪽
12 제 3 라운드, 데사우 다리 전투 21.01.20 50 2 14쪽
11 새로운 신교 세력에 맞서기 위해, 구교의 새로운 인물 등장 21.01.19 76 2 20쪽
10 전쟁 중반부의 시작. 외국의 개입 : 덴마크 전쟁(1625~1629) +4 21.01.18 65 2 13쪽
9 환장의 조합, 신교 군대(2) - 크리스티안의 발악. 슈타트론 전투 +1 21.01.17 42 3 13쪽
8 환장의 조합, 신교 군대(1) : 만스펠트의 만행 21.01.16 63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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