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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중세에서 근세로. 유럽 30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1.0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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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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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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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 vs 신교. 제 2 라운드. 빔펜 전투(1622년 5월)

DUMMY

:: 빔펜 전투(1622년 5월) ::

1.jpg

[ 밍골스하임 전투는 너무 소규모 전투라, 사실상 구교 vs 신교의 2번째 라운드 ]







:: 신교 ::

2.jpg

[ 만스펠트 개객기...ㅠ ]





VS





:: 구교 ::

3.jpg

[ 엌ㅋㅋ 킹스펠트좌님 ㄳㄳ ㅋㅋ ]






신교는 용병은 떠나고, 돈을 가지고 있는 물주느님은 아직 오고 있는 상황에서 치뤄진 빔펜 전투.




병력의 숫자는, 신교의 바덴군은 약 1만 5천 VS 구교의 틸리 군은 약 2만 5천




이번 전투도 저번 백산 전투처럼, 언덕 위에 진을 치고 있었고, 병력 숫자도 신교가 약 1만 가량 부족한 상황.




언뜻 보면 저번 전투와 똑같은 불리한 조건으로 이루어진 참 아이러니한 우연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지휘관이었죠.





그리고 프리드리히(바덴)는 안할트 대공과는 다르게 전투 전에 준비를 합니다.

4.jpg

[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병력의 숫자에서 구교 군대와 정면으로 맞붙으면 불리했습니다.




프리드리히는 언덕에 올라가는 길목마다 마차로 바리게이트를 설치하여 언덕 위로 올라오려는 구교를 저지 시킬려고 합니다.

5.jpg

[ 17세기. 네덜란드가 실제로 운용하던 박격포.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그리고 신교 군대는 포대도 같이 설치하는데, 그냥 대포가 아니라, 박격포를 바리게이트 안에 설치합니다.




언덕 위를 점령한 고지대 라는 유리한 지형점 이점으로, 구교의 대포보다 훨씬 사거리가 더 길었고.




일진선으로 내다 꽂는 일반 대포보다 포물선으로 쏘는 포였기 때문에, 전장에서 더 범용 있게, 목표를 맞추기가 편했습니다.




그래서 틸리 백작의 군대가 언덕에 올라오며 마차 바리게이트에 고전하는 동안,




박격포로 테르시오 진영 안쪽을 집중적으로 사격해, 아주 야무지게 후드려 패며 반격에 성공합니다.




이때의 틸리 백작은 굉장히 고심합니다.




이미 밍골스하임 전투에서 자신의 군대를 이긴 군대.




또한 저번의 안할트 대공보다 전쟁에 빠삭한 지휘관이 철저히 자신이 유리한 지형과 진영에서 짜놓은 이 전투를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그리고 그는 빠르게 결정을 내립니다.

6.jpg

" 괜히 어쭙잖게 다른 전술을 쓰는 것 보다, 차라리 우리가 잘하는 것을 하자! "




틸리 백작은 박격포에게 혼쭐이 났던, 테르시오를 다시 한번 강력하게 구축하고 재진격에 나섭니다.




아군이 테르시오 방진으로 적진으로 진격하는 사이, 적의 방어를 격파하기 위한 수를 준비합니다.

7.jpg

[ 17세기 필드 캐논 ]

8.jpg

[ 대포 진지.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틸리 백작은 저번 전투의 안할트 대공이 큰 대포 가지고 전쟁에 임했고, 대포 진지를 구축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고 말았죠.




진지 구축이 느렸던 이유 중에 하나로, 구경이 큰(무거움) 대포를 사용했다는 것은 저번 백산 전투에서 말씀 드렸을 겁니다.




그리고 틸리 백작도 이를 잘 알고 있었죠.




그는 이번 전투에서 20구경의 나름 작은 대포를 보유하고 있었고, 빠르게 진지를 구축하여, 포를 사격 하게 됩니다.




틸리 백작의 판단은 정확했습니다.





틸리군의 보병대를 괴롭혔던 바리케이트를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안에 있던 박격포 부대들까지 격파한 것이죠.



(2편에서 작은 구경의 대포가 전장의 전술을 가져다준 페러다임을 대입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실 겁니다.)

9.jpg

포병들로 인해, 바리게이트와 박격포 부대를 돌파한, 강력한 테르시오 부대는 프리드리히의 보병 진영까지 도착합니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 프리드리히가 불안해 하고 있던 부족한 병력 숫자. 그리고 이번에도 아군 보병을 엄호할 대포마저 없게 되자, 또 다시 틸리의 군대가 승리하게 됩니다.







5. 무엇이 틸리 군을 이기게 했는가? - 전술 평가





10.jpg

[ 2번의 대규모 전투를 승리한 구교의 명장, 틸리 백작 ]




프리드리히는 저번 안할트 대공보다는 확실히 뛰어난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는 부족한 병력의 수라는 변수를 뒤집기 위해서, 지형을 산 위라는 유리한 이점을 선택했고, 철저히 준비한 방어 진영까지.




이 모든 전황에서 보면, 이 전투가 계속 소모전으로 갔다면 아마 무승부로 끝났을 전투였습니다.





그러나 틸리 백작은 적이 안배해 놓았던 유리한 상황을 모두 꺾었습니다. 적에게는 없고, 오직 틸리 군만이 있었던 강점은 무엇이었을까요?






1) 틸리의 유능함




2) 각 대대들이 숙련도(대포 진지를 빠르게 설치등)




3) 질서 정렬한 규율과 통제.

​- 모든 대포의 한 곳에 정확한 지점으로 일제 사격

- 여러 개의 테르시오 진영(1개 테르시오가 약 6~8천 명) 일제 전진이 가능토록 했던 팀워크





이 3가지가 원활히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병력의 질이 우수했기에 승리했습니다.





이번 전투에서 틸리 백작이 전투에 내린 각 부대의 통솔을 예시로 들어 보자면....





1) 오른쪽으로 가! 명령을 받은 모든 보병이 마치 한 몸처럼 오른쪽으로 질서 있게 진영을 유지하며 이동(심지어 1개 테르시오가 약 6천 이상이란걸 감안)





2) 다시 왼쪽으로 가! 해서, 오른쪽으로 돌던 군대가 순식간에 왼쪽으로 진영을 반대로 바꿔 이동.



(이렇게 좌우로 지속적으로 움직이면, 박격포가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야 하고, 방향에 따라 조준 거리를 즉석에서 계산이 많아지는 만큼, 명중력이 크게 저하)





3) 뒤에 있던 기병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려서 바리케이트 근처 까지 접근하여 위협과 보병에게 몰린 화력망을 분산등 다양한 기동 전술을 펼치는게, 정말 자유로웠다고 기록에 전해집니다.








반대로 프리드리히(바덴)의 신교 군대는....





1) 진영도 짜고, 접근을 막기 위한 방편도 짜긴 짰으나,





2) 틸리 보병이 접근해서 퍽! 하니까 억! 하고 손쉽게 무너졌습니다. 근데 모두가 전투에서 전멸한게 아니라, 패배한 후, 뒤에서 병력을 재집결했더니 2/3이 모였습니다.



즉 병사들이 죽음으로 싸운 게 아니라, 가까이 오니까 무서워서 도망쳤다가, 다시 자신들의 무리가 모이니까 자기도 뒤따라 모인 겁니다.



(생판 모르는 동네에 적군이 있는 지역에 혼자 돌아댕기면 위험하죠)




​결과적으로 빔펜 전투에서 다시 보여준 구교의 테르시오 진영은, 유럽에게 테르시오 진영의 최강이라 걸 다시 입증하게 되었습니다.

11.jpg

[ 전장의 끝에는 항상 지휘관의 명언(?)이 붙는다. ]





이번 전투를 승리한 틸리는, 저번 보헤미아 - 팔츠 전투때와 같이, 틸리 백작의 연출을 병사들에게 보여줍니다,




이 연출은 그냥 지휘관이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칭찬만 하는 소리가, 아니라 다분히 전략적이기도 했습니다.






이 전투가 어찌됐든 종교 전쟁이기 때문에, 병사들이 신앙심도 필요했고, 이것을 끓어 올리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틸리가 이런 감정선을 끓어 올리는 것에도 아주 능숙해서, 일종의 그의 특기라고도 평가했다는데,





그가 전투에 승리 하면,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항상 목에 찬 십자가에 입을 맞추며 신에 대해 찬양하면,




병사들을 그의 모습을 보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신앙심이 고취됐다고 합니다.





무신론자들이나 철저한 현실주의자들에게는 이런 포퍼먼스를 굳이 했어야 했나 라고 의문을 제기한 기록도 있지만, 반대로 전술 평론가들에게는 아주 극찬했습니다.





주로 이런 부분을 대중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무엇 때문에 이 전쟁에 참전했는지 병사들과 장교들에게 상기 시켰어야 하는 전쟁의 목적성 + 구교의 이미지 쇄신 등으로 많은 의미가 해석됩니다.




이는 17세기 부터의 전쟁은 곧 부대 통솔만 중요한게 아니라, 대중 심리 및 정치적 판단력도 중요했다는 것이죠.




즉 지휘관의 역할이 훨씬 폭 넓게 다양해졌기 때문에, 그저 싸움만 잘하거나, 용맹하게 돌격만 할 줄 알거나, 나름 군대 진영을 짜는 판단력만 좋은,




어느 한 분야에서만 특출 난게 아니라, 다방면에서 두루 밝아야 함을 제시해준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2번째 빅매치도 구교가 승리함으로 인해,

12.png

신교은 체면을 구긴게 문제가 아니라, 신교의 세력이 풍전등화에 놓였으며,

13.jpg

프리드리히 5세는 더욱 입지는 더욱 좁아졌고,

14.jpg

그리고 한창 북쪽에서 내려오고 있는 크리스티안은 홀로 강력한 틸리군을 상대해야하는 상황으로 돌아갔습니다.




과연 구교는 이번에도 아무런 반전 없이, 크리스티안을 이기고, 신교를 무너트릴 것인지, 아니면 신교는 새로운 묘수를 찾을 건지는 다음 편에서 계속 쓰도록 하겠습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30년 전쟁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다음 글을 올리는 데는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현재 남은 분량이 모두 소진되었고,



다음 내용의 자료 조사 및 글로 다듬어서 작성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내막은 공지 1~5화 분량 에피소드를 참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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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대 격돌! 제 6 라운드 뤼첸 전투(1) 21.02.08 2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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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발렌슈타인의 복귀와 틸리의 항전 21.02.06 28 2 11쪽
22 유리한 분위기 속에 불안한 스웨덴 21.02.05 26 1 11쪽
21 발렌슈타인의 선택 그리고 치명적인 단점 +3 21.02.04 29 2 8쪽
20 스웨덴의 군사 개혁과 브라이턴 펠트 전투 이후 상황 21.01.31 36 2 15쪽
19 라이프치히를 탈환하라! 제 5 라운드, 브라이턴 펠트 전투(1631년) 21.01.30 33 0 17쪽
18 구교. 한 순간에 대세가 뒤바뀌다. 21.01.29 27 1 11쪽
17 스웨덴 전쟁(1630~1635) 21.01.28 36 2 13쪽
16 다시 한번 거대한 전쟁이 몰아치다. 21.01.27 37 1 14쪽
15 승승장구 하는 구교. 폭주하는 페르디난트 2세. 21.01.26 47 2 14쪽
14 제 4 라운드, 틸리 vs 크리스티안 4세의 루터 전투 21.01.22 36 2 16쪽
13 몰락하는 자와 떠오르는 자. 만스펠트와 발렌슈타인 21.01.21 35 1 10쪽
12 제 3 라운드, 데사우 다리 전투 21.01.20 50 2 14쪽
11 새로운 신교 세력에 맞서기 위해, 구교의 새로운 인물 등장 21.01.19 76 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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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환장의 조합, 신교 군대(1) : 만스펠트의 만행 21.01.16 61 2 8쪽
7 구교의 무적에 진영. 테르시오 진영 21.01.15 46 2 16쪽
» 구교 vs 신교. 제 2 라운드. 빔펜 전투(1622년 5월) 21.01.11 55 2 9쪽
5 제 1차 보헤마아 - 팔츠 전쟁 이후, 독일과 유럽의 정세 21.01.10 76 2 15쪽
4 제 1차 보헤미아 - 팔츠 전쟁 : 백산(빌라호라) 전투 21.01.09 81 3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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