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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중세에서 근세로. 유럽 30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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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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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에 쓰였던 무기와 갑옷. 그리고 기술의 변화들

DUMMY



저번 편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국가 형태와 전쟁이 발생한 역사적 계기들로 얘기를 했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30년 전쟁의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당시 전쟁에 쓰였던 무기들과 갑옷. 그리고 총과 창이 공존하는,



냉병기와 열병기의 과도기에서 어떻게 열병기 시대로 들어섰는가에 대한 변화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1. 30년 전쟁에 쓰이던 무기와 갑옷




이 시기에는 냉병기와 열병기의 과도기였습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냉병기의 보병 무기는 파이크


열병기 무기는 아퀘버스와 머스킷으로 나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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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크 병의 대표적이고, 상징이라 불리는 스위스 용병 ]



파이크 병은 기병의 돌파력을 상쇄 및 방어합니다.



보병들의 전투에서 파이크의 긴 사거리를 이용해서, 서로 최소한 닿을 정도의 근접한 거리에서 싸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이가 짧은 검과 창들이 전장에서 사장된 결과를 낳으며, 전장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이던 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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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크의 길이는 대략 5m ~ 7m 로 긴 손잡이가 특징입니다.


이 긴 거리는 특히나 집단적으로 병력들을 운용하는데 일반 냉병기의 보병 무기보다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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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이크의 진정한 빛은 바로, 기병들과의 전투였습니다.



기병들이 돌격해 올 때 방진을 구성하고 대응할 경우, 적 기병의 돌파을 저지할 뿐 만 아니라 말 위에 높은 위치에 있는 적을 쉽게 찔러 타격을 주거나 혹은 말에서 넘어트려, 전투 불능 상태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보병들의 가장 천적이었던 기병로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을 수 있었기에 스페인, 프랑스, 영국, 덴마크등 유럽 모든 국가들의 표준 무기로 채택됩니다.



이 파이크 병은 17세기 말까지 보병들의 주력 병기로 사용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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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크 말고, 다른 창이었던 파르티잔, 핼버드등은 16세기까지 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파이크 무기에 대한 군대 운용에서 우월한 점이 부각되어 현역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완전히 전장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였습니다.



이 창들은 야전에서 병사들을 통솔하는 초급 장교들이 가지고 다니며 사용했습니다.



그 이유는 초급 장교만의 전용 무기라는 일반 병졸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을 심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파이크 병들이 적을 상대로, 각자 맡은 방향으로 창이 내찌르게 했야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과 훈련때, 창으로 방향 교정등을 위한 방법도 있었고, 또한 전장에서 도망치거나, 망설이는 병사가 있다면, 주저 없이 등을 뒤에 찌르는 용도도 있었던 만큼, 정말 다양하게 쓰였습니다.




그러나 17세기가 지난, 18세기 무렵부턴 파이크 병은 완전히 사라지면서, 더 이상 훈련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점차 의전용으로 쓰이는 것으로 대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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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병기의 보병들의 대표 무기에 대해 설명했으니, 이번엔 열병기 보병 무기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아퀘버스는 약 15세기 ~ 17세기 까지 쓰였습니다.



표준 아퀘버스의 길이는 1m , 무게는 5kg, 구경은 50구경(13mm) 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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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에 50 구경을 검색하니, 이 사진이 눈에 들어왔는데, 아마 대략 이 크기일 것 같아 보입니다. ]



현대 총들의 대부분 쓰이는 구경이 5.56 mm 혹은 7mm. 더 아니면 9mm 파라블럼 탄을 쓰이는 것에 비해 아주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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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킷은 아퀘버스 보다 총이 무겁고, 길었습니다.



표준 머스킷의 길이는 1.4m , 길이는 7kg, 구경은 75 구경(19mm), 탄자의 중량은 38g 이었습니다.



무거운 탄자와 총신의 길이등 때문에, 아퀘버스보다 사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머스킷으로 사격할 때, 위에 사진에 처럼 일종에 지지대가 있는 장대를 이용해서 사격을 했습니다.




재장전 시간과 장대를 이용한 사격 방식이라는 복잡한 방법의 단점이 존재했지만, 아퀘버스보다 아주 치명적인 무기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30년 전쟁에서 보병 병과들 중에 아주 소중했습니다.



이들은 한번 사격하면 재빨리 뒤로 도망가서 재장전를 하는 사이에, 아퀘버스 병사가 자리를 대신 메워, 파이크와 아퀘버스 병과들이 적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위험도가 다른 병과에 비해서는 부담이 크게 줄어 들어, 인기가 아주 많았으며, 이것 말고도 많은 이유로 인기가 아주 높은 병과였습니다.





다음에는 근접용 무기, 검에 대해 소개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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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귀족(지휘관)이 주로 쓰던 근접용 무기는 에스파다 로페라(레이피어) 였습니다.



유럽의 야철 기술이 발달됨에 따라, 질 좋은 강철들을 생산되어 튼튼하면서도 가벼운 무게로 널리 애용됐습니다.



거기다가 총이 점차 강력해지기 시작하자, 방패와 갑옷같은 방어 무구들이 배척되어 사용하지 않게 되자, 찌르기 전용 검이 유행한 것도 한 몫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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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 브로드 소드 ]



[ 아래 사진. 세이버 ]




일반 병사들은 레이피어 보다 칼날의 폭이 좀 더 넓은 브로드 소드를 사용했습니다.



왜 브로드 소드를 사용했는가에 대해서는 개인적 견해로, 레이피어처럼 폭이 얇고 긴 무기는 목숨이 오고가는 전장에서 다루기 어려운 무기였을 겁니다,



이 무기를 자연스럽게 사용할려면 상당의 연습 기간이 필요한데, 귀족들은 고급 검술 연마로 충분한 숙련도를 가지고 있겠지만,



평민들은 평소 시간이 고급 유희 문화를 즐길 수 없었죠.



그래서 근접 전투에서 좀 더 다루기 쉬운 브로드 소드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조심히 추측해봅니다.




이 브로드 소드도 각 나라마다 다양한 명칭과 형태가 존재했습니다.




- 베네치아의 스키아보나


- 독일의 카츠발거


- 벨기에, 네덜란드의 왈론 소드


- 영국의 모쳐리 소드



등이 있습니다.



이 브로드 소드는 과거 기병들도 사용했지만, 17세기에는 세이버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습니다.




다음은 기병 무기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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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병기가 나왔지만, 여전히 총기병과 창기병은 공존했다 ]




기병의 대표적인 무기라 할 수 있는 랜스는 돌파전 혹은, 기병과의 싸움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보병들의 화기가 점차 보급됨에 따라, 그 한계가 절실히 드러나게 됩니다.



과거에는 밀집한 보병들 사이로 종횡무진하던, 용감무쌍한 창기병들의 모습이 무색하게, 30년 전쟁 시기에는 전열 보병들에게 대놓고 정면 돌파는 자살하는 꼴이었죠.



그래서 이 시가에는 주로 적의 진영이 흩어지는 틈을 노리거나,


추격전 및 후미 혹은 옆구리등 기습적으로 공격 방식으로 창기병이 활용됩니다.





마지막으로 갑옷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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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러시어 갑옷 ]





돈이 많은 귀족들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퀴러시어 갑옷을 입었습니다.



이 시기에 갑옷의 역할은 아퀘버스 같은 총을 방어하기 착용했기 때문에, 두텁고 무거워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갑옷을 입는 계층은 귀족들이었고, 귀족들은 대부분 기병 병과였습니다.



17세기의 시대가 되면서 기병을 몰고 다니는 귀족들의 입장에선 무거운 무게 때문에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무거우면 기병 속도와 돌진력이 그 힘을 잃어버리고, 또한 대포가 점점 발전해져서, 속도가 느리면 대포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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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기존에 온 몸을 철갑으로 두르던 것과 달리, 최소한 필요하지 않는 부분을 없애거나, 헐겁게 하는 방식으로 진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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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러시어 갑옷 보다 더 경량화된 캐러비니어 갑옷 ]





그러나, 퀴러시어 갑옷 조차 무겁다고 느낀 기병들은 팔과 다리 부분을 아예 완전히 없애버린, 캐러비니어 갑옷이 등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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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러비니어보다 더 경량화된 아퀘버스 갑옷 ]





30년 전쟁에서 군사 혁신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었던, 스웨덴은 이 캐러비니어 갑옷을 더더욱 간략하게 만든 것이 아퀘버스 갑옷을 사용합니다.



이 갑옷은 흉갑과 팔(건틀렛)만 보호하는 용도로 쓰였으며, 건틀렛은 단기 접전에서 유일한 방패 역할을 해주었죠.



이때의 전쟁은 다른 총기가 나왔던 15세기 16세기등 지난 세기의 총보다 화력이 아주 우수했기 때문에,



옛날에는 갑옷에 총을 맞으면 반동으로 인해 튕겨나가, 쓰러지는 일이 많았지만,



이젠 총의 화력이 강력해져서 갑옷을 입으면 관통 및 대포로 인해 기병들은 더 이상 갑옷에 대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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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옷이 사라진 자리는, 더블릿이 차지하다. ]





30년 전쟁의 주요 전장은 벌판.



그래서 상황에 따라 피스톨/ 머스킷/ 검 모두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무기 무게까지 고려한다면 기병은 최대한 무게를 줄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갑옷은 점점 퇴하하다가 결국 사장되고, 빈 자리는 두터운 면직물 옷 더블릿을 입고 다녔습니다.



이 더블릿이 발전하여 현대 수트 구성의 선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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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인 투구. 버거넷 ]





16세기에 쓰이던 투구, 버거넷을 착용했습니다.



피크라고 불리는 햇빛가리개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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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버거넷. 토텐코프 ]



30년 전쟁의 주요 전장이였던 독일 지역은 버거넷에 안면부가 있었습니다.



독일의 버거넷을 토텐코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버거넷은 오래 가지 못하고, 동유럽에서 안면부를 완전히 노출시킨 투구로 바뀌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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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다른 투로는, 머리에 딱 맞게 쓰는 세크레테(secret helmet) 를 입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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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크레테 위에, 화려한 깃털 장식이 달린 플럼드 밀리터리 모자를 쓰고 다녔습니다.



이 모자는 소설이나 영화에 잘 알려져 있는, 삼총사에 등장한 친숙한 모자입니다.



헬멧도 갑옷과 같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는 증거인 셈이죠.








2. 유럽 무기의 변화





머스킷, 아퀘버스등 다양해진 총기부터.



휠락, 플린트락처럼 다양해진 장전 방식까지.



30년 전쟁에서 유럽의 온갖 방식으로 사용되는 총과 기술이 모두가 뛰어들어 나타난 전쟁의 양상이 보입니다.(대포도 말할 것도 없이 다양한 구경과 종류로 넘쳐났죠)



거기다가 아직 이 시대에는 냉병기와 열병기의 전환기로 아직까지 파이크이 있었던 시절입니다.



그럼 이 전환기속에서, 냉병기로 남아있던 병과(파이크병, 창기병등)들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열병기로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3. 기술의 변화는 진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원동력




아직까지, 이 시대에는 징집하여 모집한 병사들이 본인의 돈으로 무기를 구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돈 없고 가난한 자들은 그나마 값이 싼 창을 구입하여 파이크 병이 되었죠.





그나마 돈이 있는 사람은 아퀘버스.



부유한 평민은 머스킷을 구입하여, 해당 병과로 소속되어 참전한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징집 조건 때문에, 30년 전쟁의 17세기 초만 하더라도 총병 < 창병



창병이 총병보다 3배 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17세기 후반이 되니, 총병 > 창병으로 무려 총병이 5배 더 많아졌습니다.



30년 전쟁 전후를 따져보면, 거의 80년만에 급격히 변화를 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럼 이러한 무기 변화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30년 전쟁으로 왕과 귀족들이 총기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껴서 " 보급 " 해줬을까요?



아쉽지만 세상은 그렇게 진보에 대해 솔선수범. 아름답게(?)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변화를 절실히 느꼈던건 바로 " 창병 " 들이었습니다.



당시 군대는 각 병과마다 월급을 달리 지급했습니다.



가장 많은 월급을 받는 병과 순서 " 머스킷병 > 아퀘버스 > 파이크병 " 이었죠.




월급을 많이 주는 만큼, 곧 인기가 많은 증거였습니다.







:: 평민(일반 병사)들의 시점 ::





이 인기를 절실히 느꼈던 것이 바로 전쟁이 끝나고, 휴식으로 마을의 주점같은 곳에서 확연히 느껴졌다고 합니다.



이때 무렵 유럽에선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 파이크 병들의 한탄이나 종군 기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파이크병이 주점에 갈 때는 창이 길어서, 주점에는 갖고 오지 못하고 맨몸으로 왔습니다.



주점에 오는 군인들을 마을 처녀들은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보고 수준을 가늠했습니다.



파이크 병은 맨몸으로 와서,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총병이 되는 아퀘버스 병의 경우에는, 가슴 딱 펴고 위풍당당하게 총을 들고오면 여자들이 죄다 그쪽으로 쏠립니다.



하지만 반대로 머스킷 병이 온다면?



아퀘버스 병에게 몰린 여자들이 순식간에 머스킷 병한테 몰려다녔죠.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머스킷은 총이 무겁기 때문에, 들고 다니기 힘든 무기였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머스킷 병사라는걸 알려야 했기 때문에, 장대(지지대)를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심지어 날 보라고 장대를 빙빙 돌리며 은근히 자랑하고 다녔다고도 하네요.



월급이 쥐꼬리만한 파이크병의 더욱 서러운 점은, 일부 주점은 파이크병을 받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대접이 찬밥이었습니다.




그래서 파이크병은 밖에 자기들끼리 모여 앉아 술을 마셨습니다.



이런 대접을 받는 파이크 병의 꿈은 전쟁에 살아남아서 돈을 모아 가족들에게 보내거나, 저축을 하는게 아닙니다.



오로지, " 아퀘버스를 사자! "


아퀘버스를 사면? " 머스킷을 사자! "



이게 바로 그들의 꿈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본인들이 총병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기에, 17세기 후반이 되면 창병이 사라지는 것은 뻔한 모습이었을 겁니다.


(물론 왕과 귀족들도 전쟁이 지속됨에 따라 파이크병이 점점 불필요, 총병의 중요성을 크게 인지도 한 몫합니다.)







:: 귀족들의 시점 ::




당시 귀족들의 무기중 하나는 에스파다 로페라(레이피어)였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총이 필요한 만큼 점점 귀족들에게도 전통적으로 기사의 위상이라 할 수 있는 " 검 " 이 점차 변화되어 총기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귀족들의 기사도 정신이 투철하게 살아있는 귀족들은 이러한 시대를 대해 아주 열혈히 비판하기도 했는데,.



" 고귀한 전사들이 가장 천박하고 비열한 놈들에게 죽는 세상이 됐다 "



라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맞춰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죠.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그럼 평민들이 쓰는 무기에서 귀족들이 쓰는 무기로 바꿔 쓰면 되지 않겠냐? 라는 인식에서 비롯된게 바로 피스톨과 화려함이었습니다.



귀족들이 연회장에 갈 때, 아퀘버스같은 큰 총은 들고 갈 수 없어서 총기이면서도 작은 사이즈였던 피스톨을 휴대하고 다녔습니다.



거기다가 귀족들이 쓰는 무기인 만큼, 금칠은 기본이고 다이아몬드등 각종 보석을 박아 넣어서, 치장하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치는 돈 많고 잘사는 귀족들 한정입니다.



귀족중에도 돈 없는 귀족은 피스톨 한 자루가 없어서 그나마 가지고 다니던 것이 레이피어였죠.



당연히 연회장의 여성들은 레이피어를 가지고 다니는 귀족들을 거들떠보지 않죠.



이렇게 세상은 점점 구별하고 차별하기 시작하면서 없는 자들은 가지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 수 밖에 없었죠.



곧 그들의 욕망은 아이러니하게도 병과의 변화 뿐만 아니라 기술과 병기의 전환까지 동시에 이루어낸 셈이었습니다.







4. 사치품의 역설




위에 귀족들의 피스톨의 사치에 대해 설명했는데, 이 사치품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 있습니다.



사치품. 이 단어만 들으면 굉장히 부정적이고 향락과 타락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사치품으로 인해 많은 노예들과 평민들이 높으신분들에게 쥐어짜내어 고통을 받았겠죠.



그것에 대해 결코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치품이 정말로 그저 인간의 욕망만 충족하는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는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는 있죠.




이걸 얘기하려면 다시 한번 피스톨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야 합니다.






값비싼 피스톨이라 하면 총에 금은보석은 기본이며, 화려한 문양과 더불어,



남들 보다 더욱 특별해지고 싶어서, 장전 부품이 더욱 정교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서 비싸게 팝니다.



어떻게 보면 하등하게 쓸대 없는 부분이죠.



총이라 하면 부품을 최대한 간편하고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 생산 단가가 쌉니다.


그리고 장전 방식이 간편해지면 남보다 빨리 사격도 가능하고, 장전 빨리 하여, 종합적으로 총기 오작동이 낮아지죠.



하지만 귀족들의 피스톨의 경우에는 비효율 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바로 진보의 원동력이었습니다.





1. 아이디어



총기 제작자들은 귀족들에게 비싸게 납품 할려면 보석 치장 가지곤 어림도 없죠.



그래서 고안한게 " 남들보다 더욱 특별하게, 남들이 없는 무언가를 창조하자! " 였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더블배럴 샷건처럼 총구가 2개가 있는 피스톨이라든지, 장전 부품이 2개로 만들어서 더욱 화려해 보이도록 하는가 하면,


총 2개를 붙쳐서 만들던지...



총기 제작자들이 이른바 아이디어 전쟁으로 누가 보기엔 아주 비효율적이고 쓸대 없는 것까지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게 더욱 기술을 진화시켰다는 점이죠,





2. 초정밀 기술의 발달과 투자 증진



피스톨의 작은 총을 가지고 더욱 복잡한 기술을 만드는 것은 곧 초정밀 기술을 사용하고, 진화시켰다는 점을 의미하며



아주 정밀한 부품을 생산하려면 부품을 제조하는 기반 시설이 건설되고, 그 기반 시설의 품질도 향상되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순환이 될려면, 개인 돈으론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에 매우 전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온갖 신분과 투자자들이 모여서 투자 및 유치하였는데, 이렇게 스스로 산업을 증진 시켰을 뿐만 아니라 기술까지 진보하게 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누가보면 엉터리같고 돈 자랑밖에 안보이는 부분이 실상은 개인과 국가를 더욱 성장하는데 기여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죠.



다시 말하지만 사치품의 역설에서 결코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의 착취와 억압을 퇴색시키고자 하는 말이 아닌, 사치품이 쓸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보면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30년 전쟁에 쓰였던 무기와 갑옷들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30년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의말

이 글은 유럽 30년 전쟁에 대한 역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쓰는 글에 상당 부분이 저의 견해로 작성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해당 자료를 찾고 다듬는데 온 힘을 쓰느라, 글의 오타나 문장 흐름에 크게 신경을 못쓰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감안해서 관대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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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 1차 보헤미아 - 팔츠 전쟁 : 백산(빌라호라) 전투 21.01.09 81 3 30쪽
3 구교와 신교. 누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될 것인가? 21.01.08 95 4 18쪽
» 30년 전쟁에 쓰였던 무기와 갑옷. 그리고 기술의 변화들 21.01.07 152 5 18쪽
1 중세에서 부터 이어진 전쟁의 서막 +8 21.01.06 385 5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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