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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중세에서 근세로. 유럽 30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1.0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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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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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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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구교의 무적에 진영. 테르시오 진영

DUMMY



전편의 빔펜 전투를 통해 구교의 승리는 매우 값진 것이었습니다.





이제 막 전운이 감도는 전쟁에서 구교는 2번이나 완벽하게 승리했다는 것은, 시대의 대세를 크게 좌지우지 할 만 한 대단한 사건이었죠.





그리고 구교의 군대가 승리하게 할 수 있도록, 큰 힘이 되어준 테르시오가 중심에 있었습니다.





제가 한동안 다시 글을 작성하게 위해 조사를 하던 도중에, 몇 분께서 테르시오에 대해 질문을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들이 아시는 테르시오 진영과 제가 서술한 테르시오의 모습에 괴리감과 여러 궁금했던 사항과 테르시오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없는지 여쭸더군요.





질문들을 보니, 제가 이 중요한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30년 전쟁 이야기를 다루기 전, 테르시오에 대한 자세한 설명. 그리고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에피소드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1. 테르시오의 역사







1.jpg

[ 근세에 벌어진 전쟁 속, 테르시오 진영 ]






테르시오 진영의 창안자는 곤살로 데 코르도바라는 스페인 장군이 창안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장군이 테르시오를 창안하게 된 배경은, 프랑스의 이탈리아 침공에 의해서 입니다.




2.png

[ 이베리아 반도의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 훗날 두 국가는 합쳐져 스페인 통합 왕국이 된다. ]

3.png

[ 아라곤 연합 왕국의 영토.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는 아라곤 왕국이 다스렸다. ]







당시 카스티야 왕국은 아라곤 왕국과 동군 연합(결혼)으로 묶어져 있었는데, 1494년에 프랑스가 이탈리아에 대한 확장을 하게 되면서, 아라곤 왕국이 소유하고 있던,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도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짐으로써,





아라곤과 동군 연합으로 묶여있던 카스티야 왕국도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원정군의 사령관으로, 곤살로 데 코르도바 장군이 임명됩니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테르시오와 비슷한 유형의 진영 있었는데, 이것을 좀 더 보완하고 체계적으로 개혁하여, 테르시오 진영의 원형을 완성합니다.






하지만 다른 기록에 의하면 1509년 " 자무디오 " 가 창안했다고 하긴 하는데, 이쪽에는 큰 주목은 받고 있지 않습니다.





어느쪽이 확실히 100% 맞다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임펙트가 곤살로 데 코르바가 높고, 당시 이탈리아 전쟁으로 많은 주목과, 큰 활약이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정설로는 이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2. 테르시오 진영의 원형





4.jpg






초기의 테르시오 진영 구축에 필요한 숫자는 약 1만 2천 ~ 1만 5천 정도의 병력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30년 전쟁의 2개의 전투를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구교 군대가 신교 군대보다 병력이 많은, 2만 5천의 군대였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이 숫자가지고 고작 해봐야 완벽한 테르시오 1개, 숫자도 미처 못채운 하나의 테르시오로 총 2개 밖에 짤 수 없었죠.




그래서 이 테르시오 진영이 등장 한 후 부터, 1만명에서 8천명, 6천명, 5천명까지 숫자는 점점 축소하면서 더욱 체계적이고 조직력있게 변해갑니다.





또한 제가 테르시오 진영을 묘사 할 때, 마치 거대한 사각형 하나가 테르시오 진영 처럼 설명해서 오인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테르시오 진영의 사각형 대형은 여러개이며, 그 여러개 사각형 대형이 하나로 묶어서, 테르시오 진영이 됩니다. 제가 묘사를 제대로 작성하지 못해서 오해를 이르켰는데,





위의 이미지에서도 여럿 사각 대형이 모인게 바로, 테르시오 진영이라고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테르시오 진영은 진형과 대형이 아닙니다. 진영입니다. 이 점을 꼭 염두하셔야 합니다.





테르시오 진영이 진형과 대형이 아닌 이유는, 테르시오 진영은 단지 사각형 형태로 밖은 창. 안은 총병으로 원리만 제공할 뿐 입니다.




이 테르시오 진영의 원리를 가지고 적을 어떻게 상대 할 지, 적이 포진된 배치와 지형을 보고, 대형을 짜는 것이 바로 진형과 대형이죠.












5.jpg



알기 쉽게 설명하면, 전 편의 빔펜 전투에서 틸리 백작이 프리드리히(바덴)의 마차 바리게이트와 박격포를 상대하기 위해, 틸리 백작이 작은 구경의 대포 진영을 즉석에서 배치한 것.




즉 적의 방어를 보고, 테르시오 진영에서 적을 상대하기 위해 임기응변으로 포병을 새로 투입등 하는 행동이 바로 테르시오 진영을 활용한 대형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3. 횡대 테르시오. 무엇이 그렇게 만들어 졌는가?







7.png

[ 당시에는 위의 사진 처럼, 앞 열은 짧게, 뒤는 길었다. ]








위의 사진을 보시면, 앞에 열은 짧고 뒤는 긴 종대 대형이었습니다.(나중에는 횡대 대형)





이러면 앞 열이 짧아서 적과 직접적으로 마주치는 면적은 줄이면서, 파이크로 긴 창으로, 뒤에 있는 병사도 충분히 가격할 만 한 리치가 가지고 있었죠.




아군의 피해는 줄이면서 동시에, 뒤의 병사들은 어느정도 안전권과 공격 인원 확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존재했습니다.




앞서 전 편들의 글에서, 이미 30년 전쟁은 총기의 발달로 전투 한번 할 때 마다, 많은 희생자를 발생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 만큼, 계속 신병들이 충원되면서 군대의 질이 떨어지죠. 바로 이 종대 대형이 그것을 보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은 직접적인 전투를 하는 경우가 없죠. 그리고 그 뒷 열에서 신병들은 전투를 체험하며, 경험치를 쌓고, 최전방 열에는 숙련된 병사들이 앞에서 싸웠습니다.





단, 어느 부대는 다소 기록이 틀린데, 신병과 고참이 섞인 최전방과 뒷 열로 골고루 섞은 부대도 있었다고 하고,





또 아니면 창병들 중에, 갑옷을 입은, 일종에 탱킹이 가능한 병사가 앞에서 싸우는등 어느 국가와 부대마다 기록은 다소 틀리다는 것을 염두해두시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종대 대형의 골자, 계속해서 충원되는 신병들이 전투 경험이 낮고, 엉성하긴 하지만 따라다니며 훈련이 된다는 기회가 있고, 이 점 때문에, 30년 전쟁에서의 테르시오 진영 대부분은 이런 긴 횡대 형태가 됩니다.










4. 테르시오의 지휘 체계







8.jpg

[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테르시오의 각 사각형 진영마다 부사관들이 배치했습니다.




이들이 존재한 이유는, 겁먹고 주저하여 안 싸우거나, 도망치려는 병사들을, 뒤에서 핼버드등 창으로 그들을 찌르거나, 부대 통제를 원할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미 이 부분은 30년 전쟁 무기 설명에서 했기 때문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이 부사관 혹은 장교에 대해 얘기 할 것이 있습니다.




30년 전쟁에서 테르시오 지휘관들은 누가 함부로 임명하고 지정해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황제 및 왕이 믿을만한 심복들에게 추천을 받으면, 이 추천서를 의회에 의제를 던져, 승인을 받아야 했던, 아주 까다로운 심사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이들 지휘 체계는 " 지휘관 - 소.중령 - 대위 - 중위 - 부사관 " 형태의 오느날 군대 지휘 체계와 매우 흡사한 형태였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옛날엔 장교나 부사관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놀랍게도 이때의 부사관의 기록이 심심찮게 계속 발견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부사관들이 왜 많은가에 대해서는 이들의 보상 심리가 중요했다고 하네요.








9.jpg

[ 현대 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든 군인에게는 언제나 달콤한 혜택이 필요하다. ]







이 시기에 병사들에게 국가 충성심. 종교의 신앙심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시대에는 당연히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자원한 사람이 많죠.





그래서 이들이 계속 부대에서 탈영하지 않고, 적에게 끝까지 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보상이 필요했습니다.





근데 군인에게 주는 보상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 계급 진급과 월급 인상 " 밖에 없죠.





간혹 외국 계급 번역을 보면 무슨 상등병 이라고, 한국에는 없는 별별 계급이 많은 걸 여럿 매체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을 겁니다.





이것들이 사실은 병사들을 높혀주기 위함이었죠. 단순히 사병으로만 하면 별 볼일 없고, 하찮게 느껴지기만 하죠.





그러나 사병들 중에서, 베테랑이면 상병이라든지, 하사관들중에도 일등 하사관, 이등 하사관.





이들의 사기를 계속 유지하고 질을 높힐려면,



" 월급을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지급 "



" 1년 내내 상비군(징병제X) "





두 가지만 상시 유지되면 군대의 사기는 높고, 병사 명령 체계는 확고하고 끈끈해지죠.





그리고 이것을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오랜 전쟁으로 국가 재정은 파탄나고, 민생은 궁핍하겠죠. 이걸 유지할려면 국가 내치를 잘한 나라 밖에 안되고, 그래서 백전 백승. 무적이며 정예 군대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입니다.












5. 테르시오 진영의 공략






10.jpg

[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이 강력한 테르시오를 무너트리기 위해, 많은 나라에서 파훼법을 찾게 됩니다.




그 중에 네덜란드가 해법을 찾아냈죠.




네덜란드는 스페인군과 독립 전쟁 중이었는데, 스페인군이 앞서 설명했듯이 테르시오를 처음 만든 국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11.jpg

[ 대대(battalion)을 처음 창안한 네덜란드 ]








네덜란드는 500~600명의 인원을 모아, 새로운 부대를 짜게 되는데, 그게 현재에 부대 조직중에 하나인, 대대(battalion) 입니다.





네덜란드가 부대를 운용하면서, 병사를 집단으로 운영하면서 관리하기 편하고, 지휘관이 명령하는대로 빠르게 대형을 펼치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이 5~600명 가량인 것을 알게 되어 활용합니다.





네덜란드의 대대 2개가 합치면 1개 여단(brigade)이 되는데, 여기서 여단도 네덜란드가 처음 사용하게 됩니다.





대대는 정사각형 형태의 다이아몬드 대형을 일렬 및 바둑판, 쇄기 모양등 다양한 형태로 대형을 구성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테르시오는 수 천명이나 되는 만큼, 간단하게 오른쪽, 왼쪽등 방향 전환만 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대대는 빠르게 테르시오의 양 옆구리를 시도때도 없이 치고 빠지며 공격할 수 있어서, 대응이 느린 테르시오가 당하게 됩니다.




12.jpg



대대를 운용하다보니, 움직임이 테르시오보다 빠르자, 네덜란드 군은 또 다른 변화를 하게 됩니다.





" 어차피 적보다 빨리 움직이는데, 왜 아퀘버스를 가지고 다니지? "





적보다 빠른 기동성으로 덕분에, 머스킷 병이 이동중에는 사격하기 힘들긴 해도, 충분히 적의 사거리 밖에 대대가 움직여서 재장전 후, 다시 발사하면 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네덜란드는 보병의 총병을 전부 머스킷 병으로 교체하고, 아퀘버스 총을 기병에게 줍니다.




14.jpg

조약한 피스톨로 쓰는 기병은 보병에게 큰 위협을 가하지 못했지만, 이젠 아퀘버스라면 충분히 보병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습니다.

15.jpg

[ 용기병. 이제 전열 보병들과 맞서 싸우기 위한 기병의 진화 ]





네덜란드에서 비롯된 기병에게 화력 좋은 총을 준 것은, 훗날 용기병(드라군)의 등장에 시초가 됩니다.










6. 여담. 당시 전쟁에선 부대마다 이동 명령을 어떻게 하였을까?






16.jpg

[ 총이 격발된 후, 퍼지는 사격 연기.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30년 전쟁에서 총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전장에는 뿌연 연기가 가득 메웠죠.





위의 이미지를 보시면 대강 짐작이 가실 겁니다.





고작 몇 백명도 아니고, 양측 군대를 합치면 수 만명의 군대가 격발하는 총의 숫자를 생각해보면, 정말 앞이 아주 깜깜했을 것이고, 실제로 종군 기록에서 이러한 연기에 대한 기록이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연기 때문에 지휘관이나 부사관들이 안보여서 통제가 힘들었고, 병사들은 사격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진게 너무 두려워서, 심지어 사격 도중에 탈영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시야에서 안보이니, 마치 고립되어 있다는 환각과 바로 앞에 적이 오고 있어서, 갑자기 칼들고 적이 뛰어 올지도 모르는등 사방에서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압박감에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고 하네요.





이 전장의 화약 연기는 지휘관이 전장을 이끄는데 매우 힘든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지휘관은 전장의 지형을 파악하는게 제일 우선이었죠.





그리고 이 전장의 지형을 통해 각 부대마다 명령을 내릴 때, 현대 사람들은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17.jpg

[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사극이나 소설에서 보면 좌군은 어디가고, 우군은 어디가서 신호를 주면 공격하고, 어느 골자기에 적을 보냈다가 적당히 들어오면 쳐라.....




이렇게 생각하고 부대 명령을 하달한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다릅니다.




18.jpg

[ 그림을 보면 어느 방향에서 병력이 충원 되고, 어디에 산과 강, 마을이 있는지 한 눈에 보인다. ]






종군 기록사가 높은 언덕에서 지형, 배치된 대형을 전부 그려서, 지휘관이 말하는대로 이동 방향을 전부 그려서, 전령을 통해 전달해주는 방식으로 부대 지휘관들에게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지휘관들이 받은 지도는 장교부터 해서, 부사관, 말단 병사들까지 보여줘서 인지시킨 후, 부대를 이동시켰다고 하네요.




이는 곧 부대에게 자율의 영역을 제시해준 것.




즉 테르시오 글의 맨 앞에서 설명했듯이, 테르시오 진영은 단지 진영일 뿐, 적의 배치와 지형에 따라 수시로 형태가 변하는 것이 테르시오 였다고 말씀드렸죠.




그것은 곧 부대 스스로 자율적인 행동이 필요하고, 그 자율 행동을 제시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도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국군은 보헤미아부터 팔츠등 독일 전역에서 다른 지형과 다른 적군과 상대를 해야하다 보니, 수시로 변하는 상황에 맞춰 적응을 할 수 있는 융통성을 발휘해야한다는 입장에서 볼 때, 대단했다는 점이죠.





아, 그리고 제국군에게만 비유했는데, 이것은 제국군 뿐만 아니라 스페인, 네덜란드, 스웨덴등 많은 국가에서 이러한 장점을 보고 전부 다 흡수해서 사용했습니다.




특히 이런 부분을 더 효율적으로 이용한 나라는 네덜란드와 스웨덴이었죠.






저는 솔찍히 이 부분에서 정말 놀랐습니다. 현대에서나 볼 법한 현장 재현도나 사진을, 30년 전쟁에선 아직 기술력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시각적 표현을 위해 그림으로 그려서 명령을 내렸다는 점.





또한 전쟁에서 군인만 온 게 아니라, 종군 기록사를 신분으로 참여한 화가들이 대거 기용.





그리고 단지 사진만 줘서 이동만 하라는 일차원 적인 행동이 아니라, 다각화된 시각을 알려주고, 부대 상황을 지휘관만 아는게 아니라, 말단 병사들까지 공유했다는 점.





저는 이 기록을 찾아보며, 17세기에 전쟁의 운용과 판단이 매우 선진적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서, 제가 동양사를 비하하려는 목적은 아니지만, 동아시아 기록에서 보면 이러한 전투 배경이 매우 빈약한게 느껴집니다.




당시 군대 대형은 어떻게 짰고, 패배 이유도, 단순히 수장에서 죽였다든지 매우 단순한 형태 밖에 없고, 보급은 어떻게 이루어졌고, 보급이 안되면 왜 잘 안됐는지, 당시 병사들의 심정은 어땠고, 해당 전투에서 어떻게 전투가 벌어졌는지 전술 지도는 없고...




이런걸 종합해보면 동양사의 기록이 서양에 비해 너무 빈약해서, 동양사를 제일 싫어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결국 결과만 남고, 과정이 없어서, 없는 과정은 본인의 생각에 들어가야한다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형태로 될 수 밖에 없는게 좀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테르시오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해보았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다시 30년 전쟁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의말

최대한 빨리 돌아오기 위해 빠르게 준비해서 왔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립니다.




본 글은 유럽 30년 전쟁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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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구교. 한 순간에 대세가 뒤바뀌다. 21.01.29 27 1 11쪽
17 스웨덴 전쟁(1630~1635) 21.01.28 36 2 13쪽
16 다시 한번 거대한 전쟁이 몰아치다. 21.01.27 37 1 14쪽
15 승승장구 하는 구교. 폭주하는 페르디난트 2세. 21.01.26 47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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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교의 무적에 진영. 테르시오 진영 21.01.15 47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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