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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중세에서 근세로. 유럽 30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1.06 16:45
최근연재일 :
2021.02.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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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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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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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쪽

30년 전쟁의 종결(완결)

DUMMY



지난 편에서 불과 2편 전만 하더라도 구교의 세상으로 보였던 유리한 전세.





그러나 프랑스가 개입하면서 모든 것이 불리하게 돌아간 구교.




결국 리턴 매치. 브라이턴 펠트 전투에서 스웨덴에게 패배하며 보헤미아 입성까지 눈앞에 둔 상황.





과연 구교는 30년 전쟁에서 어마어마한 돈과 피를 흘린 댓가에 보상을 받지 못한 채 패배할지...





30년 전쟁의 마지막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 전쟁의 쇄기를 박으려는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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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끝장을 보자! ]






프랑스는 이제 생각합니다.





" 구교는 지쳤다. 더 이상 전세를을 바꿀만한 저력은 없다. 이제 끝내기 위해 거대한 임펙트 하나만 있으면 끝이다 "





라고 생각하면서, 전격적으로 네덜란드와 동맹을 맺게 됩니다.





프랑스-네덜란드 연합군은 이제 거의 얼마 남지 않는 네덜란드 남부의 스페인 잔존군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 공세에 들어섭니다.







2.png



만약 남부 네덜란드를 모두 몰아내게 된다면,





이제 스페인은 유럽의 회랑을 잃어버리며, 신성 로마 제국으로 가는 모든 길목이 차단되고 결과적으로 스페인의 거대한 야망이 사라지는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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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3년 5월 19일 스페인 vs 프랑스, 로크루아 전투 ]






스페인은 최후의 공격을 감행하여, 로크루아를 포위하게 되자,





프랑스는 콩데 공작 루이 2세를 지휘관으로 보내어 상대하게 되고, 스페인 군 지휘관 프란시스코 데 멜로가 최후의 일전을 벌이게 됩니다.









2. 건곤일척의 마지막 승부처, 로크루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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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크루아 전투 배치도 ]






:: 프랑스 군 ::



- 보병 : 17,000 명



- 기병 : 6,000 명



- 대포 : 14문




:: 총 병력 : 23,000 명 ::





:: 스페인 군 ::



- 보병 : 19,000 명



- 기병 : 8,000 명



- 대포 : 18 문




:: 총 병력 : 27,000 명 ::





이제 최후로 남은 에이스들끼리의 전투가 벌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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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교전에서, 스페인이 먼저 선점을 취합니다.





프랑스 중앙 보병대가 먼저 공격을 하지만, 역시나 원조의 테르시오 국가였던 스페인이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좌익의 스페인 군대가 돌격하여 승리를 보면서, 언덕 위에 있던 프랑스 포대를 스페인이 점령한 것이었죠.





그러나 프랑스는 강력한 기병 예비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기병대는 활약보단 실수를 저릅니다.





앙갱 공작은 가지말라고 했지만, 명령을 거부하고 좌익 기병대가 무너진 좌익을 지원하러 왔지만 되래 패배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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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현장 지휘관중 한명이던 앙갱 공작은 집중을 포기하지 않고, 가만 보니 스페인 우측이 비교적 약한 것을 보고 돌격을 감행합니다.





이때 스페인 우익에는 독일, 왈론, 이탈리아등 여러 각지에서 모은 훈련 수준이 낮은 부대가 모여 있었기에 군대 질이 형편 없었습니다.





형편 없는 군대를 향해, 프랑스 기병대를 이끌었던 장 드 가시옹은 스페인 우익을 완전히 격멸시키고, 그 기세로 통과해 후미로 스페인 중앙부를 공격하며, 스페인을 말 그대로 쑥대밭으로 만듭니다.





우익과 중앙이 무너진 스페인은 결국 도망치지만, 프랑스는 여기서 스페인을 반신불구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아주 악착같이 추격하여 궤멸시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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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 결과 지도 ]






:: 프랑스 군 ::




- 사망자, 부상자 및 포로 : 4,000 명





:: 스페인 군 ::




- 사상자 및 부상자 : 7,000 명



- 포로 : 8,000 명





이 전투로 스페인은 유럽에 대한 원대한 야망 바람과 함께 사라지며, 더 이상 재기하지 못하게 되고, 지금 우리가 아는 유럽의 끄트머리의 국가로 전락하고 맙니다.








2. 이제 정말 최후의 최후의 최후까지 도달한 유럽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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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려 30년. 30년 동안이나 전쟁이 벌어지면서 모든 유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






스웨덴은 브라이턴 펠트.





프랑스는 로크루아.





두 전투로 결정적인 승리의 쇄기를 박은 신교.





두번의 전투로 인해 이제 모든 유럽은 남아나는 군대가 없어졌습니다.





구교는 졌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신교는 왜?





물론 이기긴 이겼지만 로크루아 전투때도 보면 나름 피해 규모는 컸습니다.





즉 승리를 하긴 했어도 모두가 상처 입은 승리와 패배였죠.





프랑스는 여기서 더 확전했다간 덴마크와 스웨덴 꼴이 나니까 더 확전을 시키지도 못했고, 또 네덜란드와 스웨덴에 자금 지원도 계속 해주느라 돈도 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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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고마해라.... 마이 무었다 아이가... ]






이젠 유럽 전역은 남아나는 재정도 없고, 싸울 힘도 없어진 것입니다.





이제 모두가 말 그대로 하얗게 불태워, 지쳐 쓰러졌죠.





계속 하고 싶어도, 그만 할 수 밖에 없는 한계치에 도달한 유럽.





결국 이제서야 진짜 휴전을 하게 됩니다.





전에는 강경파 온건파로 찬/반이 나눴지만, 이제는 더 이상 모두가 힘들어서 그런거 없고, 그냥 이제 쉬자! 라고 한 것이죠.





이렇게 1644년. 유럽은 본격적인 휴전 모드로 들어서게 되면서 각자 전쟁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협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근데 또... 뭐 이제 또 라고 뭐하긴 하지만... 협상이 금방 될리가 없죠? 쉽게 협상 됐으면 30년 전쟁이 일어날리가 없었죠.





휴전 협정을 하는데만도 무려 4년이나 질질 끌게 됩니다.





그 사이, 안카우 전투등 구교의 극적인 승리도 있긴 있었지만, 그럼에도 전세는 뒤집을 수 없었고 결국 보헤미아 수도 프라하가 신교에 포위가 되는등





4년의 협정 시간동안 계속해서 독일은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3. 드디어 전쟁이 끝나다. - 베스트팔렌 조약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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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버지와 다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자. ]






페르디난트 3세는 협상 과정에서 융통성있게 진행합니다.





지금 30년 전쟁이 신교와 구교라는 큰 카테고리를 넘어서 이젠 여러 국가와 영주들끼리 워낙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서 아주 복잡한 관계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센 선제후가 스웨덴과 개인적인 협정으로 서로 보상 문제와 영토 분할등 얘기 나눴는데, 이게 작센 뿐만 아니라 전 독일 영주가 다 개인마다 각 국가마다 협정을 한 일이 워낙 많다보니 이걸 판가름하기가 쉽지 않은 거죠.





거기다가 페르디난트 2세 처럼, 힘도 없고, 능력도 없는 주제에 토지반환령 처럼 힘으로 " 이거 해! " 라고 강요하면, 누가 말을 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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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트 3세는 아버지와 달리,





" 어차피 하나로 의견 통합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각자 합의합시다. "





" 내가 모두에게 자율권(외교권)을 줄테니, 서로 알아서 마음에 충족되도록 협상합시다. "





훗날의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은 이런 페르디난트 3세를 " 줏대가 없다. " , " 황제의 그릇이 작다 " " 아버지는 배포는 컸는데... " 라며 폄하합니다.





왜냐하면 합스부르크 사람들 눈에는 황제의 권력을 아무런 댓가 없이 희생했다고 생각한 것이죠.





자기들에게 이권을 남기도록 조치를 해야 하는데, 노터치. 알아서 해결하시오 하니까 본인에게 남은 이익이 없는 것이죠.





근데 이건 훗날 사람들의 편한 소리일 뿐입니다.





지금 당장을 보면, 힘으로 안되니까 30년 전쟁이란 사단이 터진건데,





또 여기서 힘으로 되지도 못할 거. 차라리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이라도 버릴 건 버리고 남는 것이라도 최소한 챙기자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은 단 하나의 이익이 손해가 나면, 자기가 불리하더라도 쓸대 없는 고집으로 더 큰 구렁텅이에 빠지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게 그나마 덜 손해보는 것을 모르고, 뒤늦게 " 차라리 그때 할걸... " 후회하는 사람들.





어떻게 보면 30년 전쟁에 욕망은 지금의 우리와도 전혀 연관이 없는, 무려 4세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이나 그때나 인간은 결국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아닐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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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간의 개별적인 협상을 통하여, 모든 것이 종합하여 베스트팔렌 조약이 합의되다. ]






긴 4년 동안의 협상을 통해, 결국 지금의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베스트팔렌 조약이 이렇게 탄생하게 됩니다.





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사실상 신성 로마 제국은 해체, 명목상으로만 남았습니다.(단 여전히 신롬과 제후국입니다.)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로는 그 누구도 신성 로마 제국이라 부르지도 않았죠.





또한 베스트팔렌 조약은 최초의 근대적 협상의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본격적인 현대적 의미의 종교의 자유가 발현됩니다.





그 전의 종교의 자유는 그 지방을 통치하는 영주의 종교에 따라 결정되었다면, 이 조약으로 인해 개인이 알아서 종교를 믿도록 하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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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를 기점으로 가톨릭 종교는 더이상 세속적으로 전쟁이나 민족, 문화의 요소에서 영향을 크게 상실합니다.


(물론 아직 남아있으며, 타 종교는 여전히 이런 부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대표적 이슬람등))





어째든 드디어 30년 전쟁이 시작될 때에 발생했던 문제가 이제서야 해결됐다는...





참 간단한 방법도 있었을 텐데...





30년 동안 피터지게 싸워서 모두가 더 이상 싸우지 못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서야 왜 이제서야 그걸 깨닫고 뒤늦게 해결하려고 할까요... 정말 슬픈 일입니다.








4.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으로 남긴 참상은 끔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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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모든 도시는 약탈당하고, 시민들은 군대와 도적들에게 학살 당했다. ]






30년 전쟁에서 독일은 엄청난 큰 피해를 받았습니다.





인구수만 해도 무려 30% 사라질 정도로 아주 심각했습니다. 이것도 최소로 잡았을 때의 가정입니다.


(1차, 2차 세계대전도 독일인 인구수가 최대 10% 사라졌다는 것을 볼 때, 독일 역사상 가장 참혹한 역사)





특히 전쟁의 피해가 많았던 독일 남부(팔츠/바이에른등)은 더욱 심각합니다.





주요 격전지였던 바이에른은 인구가 70%가 사라졌죠.(죽거나, 이민으로 인구 유출)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1세는 30년 전쟁이 터지기 전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20년 재정을 가지고 있는 풍족한 사람이었는데,





너무 많이 전쟁하고 사방이 격전지다보니 협상을 하여 결국 모든 돈이 소지되어 알거지가 되고 맙니다.





바이에른 외에도 모든 영주들도 전부 다 피해를 보게 되죠.





또한 국가가 너무 쪼개진 나머지 일반 백성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각자 외교권을 부여했기에 각 나눠진 영지마다 개별적인 관세가 붙어버린 것이죠.





이것 때문에, 또 어떤 필자는 상업이 뒤쳐져서 독일 통일이 늦어졌다라고도 하는데... 뭐 이런게 역사의 과정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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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형제의 백설 공주, 헨젤과 그레텔등 ]






또한 30년 전쟁 이후로 미신을 믿는 사람이 크게 증가했고, 각종 미신이 담긴 이야기가 퍼져나갔습니다.





미신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잘 아는 많은 세계 동화(백설 공주등)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림 형제의 그림 동화는 잔혹하기로 유명하죠.





그런데 그림동화의 잔혹한 것이 사실은 당시 떠돌던 이야기를 순화시켜서 만든 것이고, 그걸 또 순화해서 우리들에게 접해진 것이죠.





그런 잔혹한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독일에서 하도 군수품 징발이라는 명목으로 식량이고 뭐고 죄다 약탈해가자, 배고파서 식인을 했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시신들에 부검 기록에는 사람 이빨 자국이 검출되었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습니다.





그림 형제의 잔혹한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픽션은 현실을 능가하지 못한다라는게 여기서도 작용되네요.








5. 30년 전쟁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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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번 30년 전쟁을 찾아보면서 느꼈던 것은,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혹하고, 냉혈과 추함을 보여준게 아닐까 합니다.





처음은 종교 전쟁이라는 미명 아래에서 시작됐지만, 결국은 각자 영토 욕심과 너무나 잃은게 많은 울분으로 인간의 온갖 욕망의 절정으로 끝난 것.





그리고 용병이 얼마나 독일에 해악을 끼친 것. 그 이상으로 정부가 본인들의 통제를 다하지 못할 정도로 방치하면 얼마나 피해를 끼치는 지.





그리고 돌이켜보면 간단한 해결을, 왜 모두가 피를 흘리고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되서야 깨닫을까요





심지어 이 피의 교훈은 고작 몇 십년을 가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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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전쟁의 최후의 승리자는 사실상 프랑스와 설계자 리슐리외 추기경의 외교 승리 ]






프랑스는 30년 전쟁으로 인해 라인강 동쪽 영토를 확보하여 영토 확장을 이뤘고,





그 꿈을 더 확장시키기 위해 한창 포르투갈과 싸우고 있는 스페인에 대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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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전성기 시작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몰락 ]





결국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가문을 내쫒고, 프랑스 왕가 사람이 스페인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서,





부르봉 가문이 프랑스 + 스페인 모두를 통치가 하게 됩니다.(스페인이 남아 있지만 사실상 지배를 받음)





이로써 프랑스 왕국은 유럽 최강국 지휘를 획득하였고, 합스부르크 가문은 몰락하게 됩니다.





프랑스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리슐리외 추기경이라 생각해보면, 전 유럽을 보고 대전략을 세워서 외교로 대응함으로써, 이것이 바로 외교다 라고 몸소 느끼게 만든 사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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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도 간신히 승전국에 올랐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






스웨덴도 프랑스와 함께 싸웠기 때문에 승전국에는 올랐지만, 이미 스웨덴은 잃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군대. 돈. 무엇보다 스웨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구스타프의 죽음.





베스트팔렌 조약이 탄생하기 까지, 정말 어마어마한 전쟁의 물결이 전 유럽을 집어삼켰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국가와 영주 재정이 파탄나서 집안과 국가가 풍비박산이 났죠.





하지만 세계사의 전쟁은 한단계 더 발전했습니다.





총의 비약적인 기술 발전과 대포의 폭 넓은 활용도와 열병기 무기를 통한 전술 발전.





유럽은 수 많은 피를 흘려 싸운 전쟁을 통해, 한층 더 강해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마한 피로 흘린 전쟁의 교훈과 발전을 토대로 아프리카와 인도, 동남아, 동양, 신대륙까지 미친듯이 뻗어나가며,





강력한 힘의 토대로 저항 세력들을 모조리 격파시켜, 우리가 아는 유럽 제국들의 모습이 된 것은 결국 유럽에 흘린 피로 꽃피운 발전은 애꿎은 타 대륙의 사람들까지 흘리게 만드는 현실의 비극까지 닿고 말았네요.








한편 30년 전쟁 초~중반부까지 활동했던 영국이 갑자기 소식이 끊겼습니다. 왜일까요?










20.jpg

[ 1639~1651년. 영국 내전 발발 ]






1639년 영국에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전쟁이 터진 것이죠. 후대에는 이걸 영국 내전 혹은 삼왕국 전쟁(War of Three Kingdoms) 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유럽사를 다시 한다면, 흥미로운 영국 내전에 대해서도 한번 알아보고 싶네요.












지금까지 30년 전쟁 이야기를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일지, 아니면 다시 뵐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만약 다시 시작한다면 꼭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ㅎㅎ;;)





모두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__)(--)(__)





작가의말

공지의 완결 소감문을 끝으로 30년 전쟁의 이야기를 끝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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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9 텅바팬더
    작성일
    23.09.16 10:31
    No. 1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30년 전쟁에 대하여 알고 싶었는데 이렇게 상세하고 재미있게 서술한 컨텐츠는 처음인것 같습니다. 저술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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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史] 중세에서 근세로. 유럽 30년 전쟁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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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스웨덴의 영혼의 한판, 뇌르틀링겐 전투와 후반부의 서막이 울리다. +2 21.02.14 36 0 17쪽
30 구 세대와 신 세대들의 세대 교체 21.02.13 37 1 8쪽
29 발렌슈타인의 처참한 몰락 21.02.12 32 2 10쪽
28 대 격돌! 제 6 라운드 뤼첸 전투(完) 21.02.11 39 2 11쪽
27 대 격돌! 제 6 라운드 뤼첸 전투(3) 21.02.10 36 0 15쪽
26 대 격돌! 제 6 라운드 뤼첸 전투(2) 21.02.09 35 1 11쪽
25 대 격돌! 제 6 라운드 뤼첸 전투(1) 21.02.08 33 1 11쪽
24 30년 전쟁 역사상, 대 전투의 개막 21.02.07 34 2 15쪽
23 발렌슈타인의 복귀와 틸리의 항전 21.02.06 28 2 11쪽
22 유리한 분위기 속에 불안한 스웨덴 21.02.05 28 1 11쪽
21 발렌슈타인의 선택 그리고 치명적인 단점 +3 21.02.04 30 2 8쪽
20 스웨덴의 군사 개혁과 브라이턴 펠트 전투 이후 상황 21.01.31 39 2 15쪽
19 라이프치히를 탈환하라! 제 5 라운드, 브라이턴 펠트 전투(1631년) 21.01.30 34 0 17쪽
18 구교. 한 순간에 대세가 뒤바뀌다. 21.01.29 28 1 11쪽
17 스웨덴 전쟁(1630~1635) 21.01.28 37 2 13쪽
16 다시 한번 거대한 전쟁이 몰아치다. 21.01.27 38 1 14쪽
15 승승장구 하는 구교. 폭주하는 페르디난트 2세. 21.01.26 50 2 14쪽
14 제 4 라운드, 틸리 vs 크리스티안 4세의 루터 전투 21.01.22 36 2 16쪽
13 몰락하는 자와 떠오르는 자. 만스펠트와 발렌슈타인 21.01.21 36 1 10쪽
12 제 3 라운드, 데사우 다리 전투 21.01.20 50 2 14쪽
11 새로운 신교 세력에 맞서기 위해, 구교의 새로운 인물 등장 21.01.19 76 2 20쪽
10 전쟁 중반부의 시작. 외국의 개입 : 덴마크 전쟁(1625~1629) +4 21.01.18 65 2 13쪽
9 환장의 조합, 신교 군대(2) - 크리스티안의 발악. 슈타트론 전투 +1 21.01.17 43 3 13쪽
8 환장의 조합, 신교 군대(1) : 만스펠트의 만행 21.01.16 63 2 8쪽
7 구교의 무적에 진영. 테르시오 진영 21.01.15 48 2 16쪽
6 구교 vs 신교. 제 2 라운드. 빔펜 전투(1622년 5월) 21.01.11 55 2 9쪽
5 제 1차 보헤마아 - 팔츠 전쟁 이후, 독일과 유럽의 정세 21.01.10 76 2 15쪽
4 제 1차 보헤미아 - 팔츠 전쟁 : 백산(빌라호라) 전투 21.01.09 83 3 30쪽
3 구교와 신교. 누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될 것인가? 21.01.08 96 4 18쪽
2 30년 전쟁에 쓰였던 무기와 갑옷. 그리고 기술의 변화들 21.01.07 160 5 18쪽
1 중세에서 부터 이어진 전쟁의 서막 +8 21.01.06 394 5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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