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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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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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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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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6.02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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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98화 영웅

DUMMY

598화 영웅


“방금 소리는 대체 뭐냐!”


배 위에 있던 지순왕 상가희가 크게 놀라서 물으나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 있던 이들도 상황을 모르기는 매한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당장 알아봐!”

“예!”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모를 수는 있으나 대답도 하지 못하면서 그저 우물쭈물 눈치만 살피는 꼴에 대번 열이 오른 상가희는 윽박을 질렀고 수군들은 혼비백산하여 달려갔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던 상가희는 달려간 이들이 오래지 않아 돌아오는 걸 보고 무언가 일이 크게 터졌다는 걸 직감했다.


빠르게 돌아온다는 것은 이리저리 살피고 묻고 할 필요도 없이 상황이 보인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전하! 명나라 군사들이 불을 지른 모양입니다!”

“목벽이, 목벽이 타고 있습니다!”


불을 질렀다.


목벽이 타고 있다.


그리고 방금 들었던 굉음.


이러한 사실들을 조합한 상가희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다급히 물었다.


“배는? 배에도 옳겨붙었더냐?”

“그, 그건 아닙니다.”

“소인들이 보기에 적어도 불길이 배에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 여긴 상가희는 곧장 다음 명령을 내렸다.


“당장 저쪽 해안에 접한 배를 움직여라!”

“예? 저, 전하! 그리하면 내린 이들이 고립됩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팔기들도 건너기 시작하고 있으니 위험합니다!”

“이대로 있으면 다 위험하다!”


이 말은 그저 자기 보신을 생각한 반사적 대응이 아니라 그가 방금 들은 정보들을 기반으로 내린 냉정한 판단이었다.


‘방금 소리, 분명 화약이었다.’


나무가 불에 타는 것이 이치라고 하나 아무리 그래도 소리가 들리고 불이 붙기까지 시간이 너무 짧았다.


여기에 굉음이 일었음을 고려하면 답은 분명했다.


“명나라 놈들이 화약을 터트렸다! 이대로 주변 삽시간에 배에도 영향이 올 것이다!”

“하, 하지만 아군이-.”


수군 하나가 용기를 내어 말하자 상가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보았다.


그에 수군은 크게 움츠러들어서 고개를 숙였는데, 이어진 말은 그에게는 매우 다행스럽게도 의견을 일부 수용한 말이었다.


“빌어먹을, 그랬지. 그랬어. 당장 팔기들을 되돌려라! 불길이 잦을 때까지 도하는 잠정 보류다! 말을 듣지 않겠다고 하면 내 명령이라고 해!”


배를 홀라당 태워버리느니 다음을 노림이 낫다고 여긴 상가희는 이를 악물고 이어서 명했다.


“회순왕에게도 전해서 내려간 놈들 모두 다 올라오게 해라! 그리고 성친왕께도 이 사실을 전하고!”



***



“으으으.”


다급히 뛰어가다가 운 없이 폭발에 휘말린 회순왕 경중명은 간신히 눈을 떴다.


이윽고 주변을 살핀 회순왕 경중명은 그저 그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는 사방을 휩쓴 열기를 목격하고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허, 허허, 허허허.”


그렇게 잠시 동안 헛웃음을 흘린 그는 두 눈에 핏발을 세우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목벽은 불타고 있으며 배다리 입구를 지키던 병사들 반절은 혼비백산하여 얼이 빠졌고 나머지 반절은 열기에서 피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미친놈들. 대체 화약을 얼마나 넣은 거야?”


봇짐 크기가 작지 않기는 했지만 드러난 참상은 그가 본 정도로 끝나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내에 경중명은 그걸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며 외쳤다.


“뭣들 하고 있어! 당장 불을 꺼!”

“아악!”

“응?”


명령에 돌아오는 것이 대답이 아니라 비명이라니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경중명은 고개를 돌려서 비명이 들린 곳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 몸에 불이 붙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명나라 병사들을 말이다.


“······이게 명나라 병사라고?”


그간 알던 세상이 크게 뒤틀리는 감각에 경중명은 아연실색하며 무어라 더 말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기껏해야 수십에 불과하며 다른 명나라 병사들은 빠르게 도망하고 있었다.


“그래, 저게 정상이지.”

“한간아, 죽어라!”


멀리서 자신을 향해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오는 이를 본 경중명은 눈을 스산하게 빛내며 손짓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수군 몇몇이 정신을 차리고 다가오니 경중명은 그들에게 명했다.


“화살.”


짧은 명령으로도 충분하다고 하듯 병사들은 그대로 활을 겨누어 다가오는 이를 노렸다.


“쏴라.”


명령과 함께 화살들이 날아가니 달려들던 자는 그대로 전신에 화살을 박히고 쓰러졌다.


“제법 용감했다. 하지만 시간만 조금 벌었을 뿐이다.”


나직이 이른 경중명은 불길을 헤집고 달려든 다른 놈들 역시 거의 제압되었음을 확인하고는 쓰러진 이에게, 자신에게 달려들던 이에게 다가갔다.


“장수군.”


자신을 알아보았다는 점에서 일개 병졸은 아닐 거라고 여겼지만 그 복색이 예전에 지겹도록 보던 명나라 장수의 것임을 안 경중명은 그를 발로 세게 찼다.


“쿨럭.”

“오오, 살아있었나? 난 내가 시체에 분풀이나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말이야.”


빈정거리며 말한 경중명은 시선을 내려서 버둥거리는 명나라 장수의 모습을 보다가 그가 여전히 칼을 잡고 있음을 알고 싸늘한 얼굴로 발을 들었다.


“그러면 쓰나.”


뿌득


“아악!”

“그래, 그래. 명나라 놈들은 그래야지. 비참하고 볼품없이 굴어야 한다고. 그래야······.”


돌연 입을 꾹 닫은 경중명은 돌연 신경질적인 얼굴로 말을 바꾸었다.


“고생했다. 제법이야. 하지만 시간이 조금 늘어났을 뿐이다.”

“회순왕 전하! 지순왕 전하께서 잠시 물러나시길 권하고 있습니다!”


경중명의 말에 이어서 상가희가 보낸 이가 다급히 외치는 소리가 울렸다.


그 말을 들은 경중명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당장은 그래야 하겠지. 하지만 불길이 조금만 잦아들면 그걸로 끝, 네놈들은 우리를 막을 수 없어.”

“······다.”

“응?”


잘 들리지 않는 말에 경중명은 어디 한번 말해보라고 하듯 바라보니 명나라 장수는 남은 힘을 쥐어짜서 다시 말했다.


“막을···수 있···다.”

“하.”


확신이 있는 말이나 동시에 근거가 없는 확신이기도 했으나 경중명은 그러한 점을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이름은?”

“······윤이.”


생애 마지막 순간을 맞은 명나라 장수는 작고 힘없지만 또렷하게 말을 이었다.


“하윤이다. 너와는 달리 명나라에서 태어나 섬기다 죽는 사람이다.”

“!”


평상시에는 들으면 오히려 비웃을 말이나 지금은 이상하게도 열이 오르니 경중명은 거의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명나라 장수 하윤이의 목을 날리고자 했다.


그러나 이내에 미동도 하지 않는 하윤이를 보며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음을 안 경중명은 침을 탁 뱉었다.


“퉷. 거적때기 집에서 사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오늘이 가기 전에 우리는 이길 것이니, 그때 술자리에서 네 이름을 알려주마. 어리석어 제 목숨을 헛되이 버린 이라고 말이다.”

“저, 전하!”

“뭐냐? 배에는 지금부터 오를 거다.”


재촉하는 말인가 하여 짜증 내며 대답한 경중명이나 이어진 말에 그는 두 눈을 부릅떴다.


“강에서 올라오는 배들이 있습니다!”



***



“왜? 대체 왜!”

도무지 몇 번을 외쳤고 중얼거렸는지 모르던 말을 다시금 입에 담은 하남 수군 총병 좌량옥은 환장하겠다는 얼굴로 외쳤다.


“부관!”

“예!”


이제는 부관이 아니라 부총병이지만 옛 습관도 그렇고 아직은 더 익숙한 호칭이라 하남 수군 부총병 황주는 군말 없이 대답하며 다가왔다.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건가?”

“전투를 보고 계십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조금 늦은 거 같습니다.”

“······이런 젠장.”


조금 늦었다.


보통 좌량옥은 그 말을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대부분 그는 기다리게 하는 쪽이지 기다리는 일은 드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때로는 기다리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은 일도 있으니 지금 상황이 딱 그러했다.


이대로 전투가 끝나서 수세, 더 나쁘게는 패배로 끝난다면 좌량옥의 관직생활은 끝이었다.


아니, 관직만이 아니라 목도 함께 날아갈 게 분명했다.


‘이대로 내뺄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배를 돌려서 아예 도착하지 못한 것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건 죽고 싶어서 환장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 좌량옥은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웠다.


하남 수군이며 하남 수군 총병은 대체 불가능하지 않다.


전력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지위라는 의미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싸워야 한다. 책임이 돌아오지 않을 정도로 싸워야 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전해야 해.’


터무니없는 조건에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 불러들인 답답함에 머리를 싸매던 좌량옥의 귓가에 황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인, 적 수군이 배다리를 만들고 있던 모양입니다.”

“배다리?”

“아군에서 저지하고자 한듯합니다만 성공인지 실패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배들이 줄지어서 강을 막듯이 늘어서 있다면 그 의도는 너무나도 뻔했다.


더불어서 아군 깃발이 있는 쪽 강변에 불길이 이는 것이 보이니 전체적인 전세가 어떠한지는 잘 몰라도 적들이 배다리를 만들고자 하였고 그걸 아군이 저지하고자 했다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다만 황주가 말한 것처럼 알 수 있는 것은 거기서 그쳤으니, 실패인지 성공인지는 판단하기다 어려웠다.


그러나 좌량옥은 이내에 그것이 상관없음을 알았다.


‘저거다!’


딱 적당한 목표가 있음을 아니 좌량옥은 곧 자신만만하게 황주를 불렀다.


“부관, 아니 부총병!”

“예!”

“화포를 준비해라! 적들의 배를 노린다!”

“아군이 성공했다면 의미 없는 공격이 될 수 있습니다.”


황주가 우려하여 말하자 좌량옥은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실패하였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성공하였다고 한들 저들은 우리가 쫓던 청나라 도적들이니 응당 우선해서 적을 쳐야 한다. 아니 그런가?”

“그렇긴 합니다만.”


딴에는 맞는 말이기는 한데, 이곳이 급하지 않다면 차라리 다른 곳을 도움이 마땅하지 않은가 싶었던 황주는 아리송한 얼굴로 주저했다.


그런 황주를 보며 좌량옥은 다시 한번 재촉했다.


“어허, 수군은 수군의 일이 있는 법이다! 당장 내린다면 어디를 내리며 어디를 공격할지 불분명하지 않더냐!”

“그, 그렇지요.”

“그러면 당장 확실한 목표를 노리는 게 맞아! 그리고 화포를 쏘면 적아를 가리지 않고 우리가 여기에 있음을 알리는-.”


말을 하다 말고 좌량옥은 이 일이 자신들이 여기에 있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닫고 안색을 흐렸다.


허나 방금 말한 것들을 뒤엎어서 없던 걸로 하기에는 체면이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크흠, 아무튼 그렇게 함이 옳다! 당장 화포를 준비하고 적 수군을 노려라!”

“예!”


좌량옥이 재차 강하게 주장하자 황주는 더 무어라 하지 않고 명령을 전했다.


“화포를 준비하라! 적 수군을 노린다!”

“화포 준비!”

“적 수군을 노린다! 화포 준비!”


명령이 퍼지며 대장선은 물론이고 따르던 다른 배들도 준비하니 이들은 이내에 강에서 배다리를 이룬 청나라 배들을 노리고자 했다.


“준비되었으면 기다리지 말고 쏴라! 더 접근할 필요는 없다!”


얼추 눈대중으로 거리가 되었음을 안 좌량옥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는 접근하지 않도록 말하며 공격을 명했다.


물론 그런다고 하여 배가 바로 멈추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빠르게 나아가 백병하여 제 목숨 위험하게 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거리를 두며 발포하라!”

“발포하라!”

“발포!”


다행히 황주가 그러한 말을 조금 더 단순하고 그럴듯하게 꾸몄고, 이내에 사방은 포화 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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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4 ageha19
    작성일
    24.06.02 21:48
    No. 1

    편을 갈아탄 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경중명과 그걸 비웃으면서 죽음에의 공포를 이겨내고 목숨을 버려가며 임무를 수행한 하윤, 혈기에 휩쓸리지 않고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병력을 철수시키는 결단을 내리는 상가희와 지각하여 대계를 망가뜨릴뻔한 것을 숨기려고 또 전공을 꾸미는 좌량옥... 양쪽 모두 훌륭한 자와 졸렬한 자가 각각 한명씩 존재하는 게 묘하네요.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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