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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re1972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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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1972
작품등록일 :
2022.01.14 09:53
최근연재일 :
2023.09.23 14: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448
추천수 :
3
글자수 :
15,351

작성
22.03.18 06:00
조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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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쪽

단편소설-너를 위해-1

언제 어디서나




DUMMY

아침마다 암송을 했다.

그 전에 우리는 밥과 더불어 국과 김치를 먹어야 했다. 깨끗이 비운 그릇을 확인하고 나란히 소파에 앉아 손유희를 마치면 병설유치원과 학교로 데려다줬다. 그렇게 바쁜 아침 일정이 지나 평온하고 떠들썩한 학교가 끝나면 초조하게 어둠이 다가왔다.

집이 거북해서 친구들과 놀다가 갔다.

그 달의 문제집을 풀어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으나 전부는 아니었다. 보고 싶은 것이 많아져서 TV를 켜고 싶어도 규칙에 따라야 했다. 정해진 시간을 벗어나서는 안됐다. 에니메이션에 취해서 주제가를 한참 흥얼거릴 정도였기에 주어진 자유는 야박하기만 했다. ebs의 유아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때는 주말 낮뿐이었으므로 그 애는 나보다 더한 쟁탈을 꿈꿨을 것이다.

"물티슈 쓰지 마라."

유일한 경고에 미더운 반응을 보이자 손바닥을 맞았다. 여러 번의 신경전으로 몇 주가 지났다. 그러고도 그치지 않던 그것으로 폭력은 가속되었다. 멍이 든 곳을 화장으로 가리고 유치원에 다니던 때도 막을 내리고 집에 있어야 했다. 그래도 나는 학교에 갔다.

"엄마!"

거실에서 머리 위로 들어올린 손을 내리더니 작은 방으로 데리고 가서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자라는 말을 했다. 나의 작은 외침으로 그쳐질 수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가장 치열한 목격이 화장실에서 있었다. 아이는 변기에 머리를 박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조근조근 쑥덕이던 소리가 그치고 현관문을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은 가셨고 해방의 날이 가까웠음을 느꼈다. 만남보다 나은 이별이 온 것이다.

가을은 좋았다. 그러나 여름의 기억을 다스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가을을 즐길 수 있었다. 서너 잔의 커피로 몸을 깨우고 조깅으로 정신을 깨웠다. 바람이 차가워지기 전의 가을을 환절기라 부르던 엄마가 과일과 양배추를 보냈다. "공복에 과일을 먹어야 건강하다." 그러나 나는 커피를 마신다. 아무렇게나 해도 별 이상이 없었으므로 어떻게든 괜찮았다. 공복과 오후 그리고 저녁과 수면 전, 언제든지 상관없는 일이었다.

혼자 살면서의 불편함은 귀찮은 일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떠넘길 사소한 일들로부터 손대기 싫은 일들까지 스스로 해내곤 한다. 밑반찬을 주시고 옷정리와 청소를 하시는 이따금의 들름이 말할 나위 없이 반갑다. "내가 할 수 있으니 신경 쓰지 말고 건강 챙겨요."란 거짓말이 들통날 때 미안하지만은 않다. 사라진 할 일로 인해 쾌적한 한 때를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12월 초 Y4 공모전이 있다.

신인과 기존 등단인들 모두 참여할 수 있어 기대되는 자리다. 수상금은 천만원부터 오백만원까지이며 당선작은 출판된다.

"엄마, 출품할 소설에 엄마가 거북하게 여기는 일이 들어갈 건데 괜찮겠어요?"

엄마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엄마?"

"..."

"괜찮겠어요? 싫으면 다른 이야기 쓸게요."

"괜찮지는 않지만 괜찮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거 같다. 다 쓰면 보여 줘."

가까스로 허락을 받았지만 요모조모를 따지고 가려내서 추리니 작업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잠시동안을 지낸 아이의 결말을 내리긴 싫었다. 엄마의 그것 역시 넣지 않았다. 그래서 동거한 며칠의 사건과 감정선만을 후벼팠다. 지루할 수 있는 스토리였어도 내게는 사랑하는 사람의 실수를 폭로한 것이므로 조금의 불안과 불면을 겪어야 했다. 아이를 보낸 후 엄마는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과 상종하는 일이 없었다. 극도의 예민함이 아빠와 나 그리고 외할아버지에게 미칠 때면 조용히 외출을 시도했다. 호전되는 속도는 더뎠으나 결국 안정화되었다. 입양과 파양은 임신과 유산과 같았다. 단발의 기쁨, 초조로 이어지는 기간과 숨길 수밖에 없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의 일색이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길이 최선이므로 그렇게 파양을 했다.




나를 우선하는 사랑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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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신호 23.04.08 8 0 1쪽
22 변신 22.10.10 9 0 1쪽
21 외로움 22.10.04 10 0 1쪽
20 장 마 22.06.27 13 0 1쪽
19 기 준 22.06.20 12 0 2쪽
18 결 론 22.06.13 11 0 1쪽
17 고독한 캡틴 22.06.06 12 0 3쪽
16 고치기 22.05.30 45 0 1쪽
15 앱솔루트 22.05.23 12 0 2쪽
14 역 량 22.05.16 14 0 2쪽
13 할 수 있는 것 22.05.09 14 0 2쪽
12 혼자 22.05.02 13 0 2쪽
11 황홀한 이별 22.04.15 16 0 2쪽
10 22.04.08 13 0 1쪽
9 구름에게 22.04.01 12 0 1쪽
8 단편소설-너를 위해-2 22.03.25 13 0 3쪽
» 단편소설-너를 위해-1 22.03.18 17 0 4쪽
6 오만한 자신감 22.03.11 15 1 1쪽
5 감정 22.03.04 16 1 1쪽
4 기 쁨 22.02.25 24 1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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