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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서자는 발경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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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작품등록일 :
2022.07.13 20:58
최근연재일 :
2022.08.15 14:2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5,689
추천수 :
63
글자수 :
83,785

작성
22.08.15 14:20
조회
142
추천
3
글자
10쪽

사냥(5)

DUMMY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걸까.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텁텁한 흙내음에 인상을 찌푸린 카락톰이 '퉤' 침을 뱉어냈다. 누런 가래에 흙이 섞여 나온다.

엎드린 자세로 조심스레 몸을 웅크린 카락톰이 천천히 협곡 벽면으로 기어가 기대 앉았다.


"끄윽..."


질퍽한 진흙이 상처부위로 스며들었는지 단검이 박힌 오른쪽 무릎에 엄청난 쓰라림이 느껴졌다.

마치 수많은 작은 벌레들이 생살을 갉아먹는 고통에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빠득 이 가는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공터를 울렸다. 어떻게든 참아보려 하지만 앙다문 입술 사이로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무릎에 깊이 꽂혀있는 자신의 단검을 볼 때마다 자꾸만 그 새파란 눈동자가 떠올랐다.

부욱. 천 옷의 소매를 강제로 찢은 카락톰이 천뭉치를 자신의 입 안에 쑤셔 넣었다. 공포에 잠식된 퍼런 얼굴을 하늘로 처올리니 빗방울이 눈가를 적셨다.

덜덜 떨리는 두 손을 슬금슬금 단검의 손잡이로 가져간다.


"으읍!"


천뭉치를 머금은 입에서 벌써부터 고통스런 신음이 우겨 나왔다. 양손으로 단검의 손잡이를 거세게 움켜쥐자 눈가로 핏줄이 잔뜩 돋는다.

숨을 깊게 들이 쉰 카락톰이 단숨에 단검을 뽑아냈다.


푸슈우-


"끄으으으으읍...!!"


상상하지 못한 고통에 눈이 돌아갔다. 흰자만 남은 눈으로 덜덜 경련하던 카락톰이 옆으로 쓰러졌다. 철퍽, 흙탕물이 다시금 입안에 물린 천뭉치로 스며들지만 그런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끄응, 우읍 어헉, 신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쥐어짜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흘러나온다.


움찔


경련하던 몸뚱이가 슬슬 진정되기 시작할때쯤 돌아간 눈동자도 제자리를 찾았다.

옆으로 몸을 뉘인 체 겨우 손을 들어올린 카락톰이 입에 물린 천뭉치를 빼내 상처부위를 휘감았다. 다시 걸어다닐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걸로 과다출혈로 죽을 일은 없겠지. 안심하던 사이 묘한 위화감에 눈동자를 굴린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주위가 고요하다. 분명 정신없이 도망치는 와중에도 사방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맑은 쇳소리와 용병들의 고함소리 그리고 비명소리로 온통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은 끝 없이 내리는 빗소리 이외에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레 귀를 열어 주변의 소리에 집중하니 뭔가 들리긴 했다. 툭 툭. 마치 어렸을적 가지고 놀던 공놀이 소리와 비슷하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데구르르 동그란 무언가가 굴러온다. 빠른 속도로 굴러오던 것이 점차 느려지더니 카락톰이 쓰러진 장소 바로 옆에서 턱하니 멈췄다.

멍하니 굴러온 둥근 물체를 응시하던 카락톰이 기겁을 하며 숨을 들이켰다.


"...어헉!!"


사람의 머리였다. 그러나 머리 아래부터 있어야할 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부릅 뜬 두 눈 아래로 길게 빼 낸 분홍색 혀가 너덜거린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은 검붉은 피와 흙투성이로 잔뜩 어지럽혀 누군지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몸을 일으키려다 미끄러지기를 몇 번을 반복하다, 겨우 벽면에 기대어 앉은 카락톰이 숨을 벌컥 들이켰다. 경련하듯 격렬히 호흡하던 중에 그 끔찍한 머리통이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매우 닮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한손으로 가리고 있던 눈가를 치우니 카락톰에게 매우 익숙한 아둠의 얼굴과 겹쳐 보인다. 믿을 수 없었다. 거친 손가락으로 두눈을 비벼도 눈앞에 놓인 광경은 바뀌진 않았다.

지금 그 사내를 상대하고 있어야 하는 아둠이 왜 여기서 이런 고통스런 표정으로 머리만 덩그라니 놓여있을까.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꿈이라고, 착각한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오른다리에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이, 빗방울의 차가운 감촉이 다시금 현실임을 일깨운다.

불규칙적으로 거칠게 숨을 들이키던 카락톰의 움직임이 어느순간 뚝하고 멈췄다.


칠퍽 칠퍽


빗소리에 섞여 느릿하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소리는 점점 뚜렷하게 그가 있는 곳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곧이어 어둠속으로 희미한 그림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카락톰이 경련하듯 몸을 튕겼다. 우스꽝스럽게 바닥으로 엎어진 카락톰이 헤엄치듯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애초에 그런 팔다리만 허우적거리는 의미없는 움직임으로 몸을 이동시키기엔 한계가 분명했다.


"뭐에요,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다리 하나 못 쓴다고 머리까지 퇴화하기라도 한 거에요? 절 웃기려고 한거면 성공입니다만."


어둠속에서 들리는 나긋한 음성에 카락톰의 신체가 얼어붙은 것처럼 굳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소년이 지척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완전히 해가 져버린 탓에 소년의 윤곽이 확실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 끔찍한 시퍼런 눈동자 두쌍이 아른거리는 듯 했다.

소년이 천천히 허리를 굽혀 아둠의 머리를 잡아 들어올렸다.


"동료를 버리고 도망가면 어떡해요, 카락톰. 아둠이 무척 화났어요. 봐요 이 얼굴. 화내고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특별히 화해 시키려고 데려 왔어요. 어때요?"


공포로 얼룩진 카락톰이 머리를 미친듯이 끄덕였다. '고맙, 고맙습니다, 고맙습, 고맙습니다.'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그의 망가진 모습을 재밌다는 듯 하하하, 웃고있던 사내가 돌연 정색한다. 아둠의 머리를 휙 뒤편으로 던져버렸다.


"재미없네. 그보다 한명이 보이지 않는데. 이름이 거스...라고 했나요? 그 사람은 어딨죠?"


"...모르, 모르겠습니다."


리엘이 말없이 응시하자 다급히 외쳤다.


"정말입니다! 그, 그년에게는 하쿤을 잡아두라고 명령내렸습니다. 지금까지 안 오고 뭘 하고 있는지 저도 모른다고요...!"


"...사실이군요."


리엘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다리를 굽혀 쭈그려 앉아 카락톰의 레더아머 안쪽에 부착된 수많은 단검 중 하나를 꺼내본다.


스릉.


날카로운 쇳소리에 카락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우욱. 고갤 돌려 헛구역질을 하더니 곧이어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웩 카락톰이 누런 점액질을 쏟아내든 말든, 리엘은 단검을 이리저리 여러각도에서 관찰하며 손가락으로 튕겼다. 팅. 하고 맑은 소리가 작게 울렸다. 대다수의 용병들이 들고있던 녹슨 검이랑은 재질부터가 달라보였다.

시험삼하 슥 휘둘러본다. 후웅 날카로운 검격이 바람을 찢었다. 미약한 바람이 카락톰의 얼굴에 닿을때마다 사시나무 떨듯 경련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제정신이 아닌 눈동자로 이리저리 헤엄치던 카락톰이 토해내듯 소리 질렀다.


"누, 누가 시켰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 습격의 원흉이 누군지 알고 있다는 말인가요?"


"예, 예 저는 알고 있습니다."


"믿기 힘들군요. 사실 방금전에도 당신과 같은 말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거짓말이었지만요."


그 거짓말을 한 사람이 어떻게 됬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급해진 카락톰이 버둥거리며 일어나 리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토악질로 범벅이 된 더러운 얼굴이 눈물로 씻겨진다.


"저, 정말입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제발, 믿어 주세요."


"거짓말이 아닌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나요? 저 같아도 당신같은 일개 용병한테는 사실대로 말해줄 것 같지 않은데요."


"다, 당연히 그 사람들은 숨겼습니다. 제가 알아낸 겁니다. 일이 너무 수상 쩍어서 그들의 뒤를 밟았습니다."


리엘이 흥미럽다는 듯 추임새를 넣자 카락톰이 신이 나서 입을 놀렸다.


"놀랍게도 제가 본 것은 저를 고용한 남자가 그린트 가문의 장녀 카시피나 유리안 그린트와 서로 밀담을 나누는 장면이었습니다."


"당신이 본 사람이 카시피나 그린트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무, 물론이죠. 그림으로 그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성인식을 마치기 전까지는 워낙 외부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년의 외모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하아, 예상은 했지만 어처구니가 없네요. 고작 집안 싸움에 휘말려 이딴 일을 겪어야 하다니."


리엘이 짜증이섞인 말을 내뱉으며 손에 들린 단검을 돌렸다. 손가락 사이를 교묘히 통과에 공중에서 휘도는 모습은 카락톰이 전에 리엘의 앞에서 보여준 그것과 똑같았다.

설마 그 짧은 시간에 봤던걸 흉내내고 있단 말인가? 투척술도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리엘의 손위에서 화려하게 회전하던 단검이 어느순간 멈췄다. 그의 눈이 정확히 카락톰을 응시한다.


"더 아는것은 없습니까?"


"그,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그게 다 입니다."


"다행이네요."


작게 중얼거린 리엘이 들고있던 단검으로 카락톰의 배를 급습했다.

푹 별다른 저항없이 천옷을 뚫고 생살을 꿰뚫는다. '왜, 왜' 중얼거리며 울컥 피를 쏟는 카락톰을 리엘이 감정없는 눈으로 내려본다.


"살려주겠다고 말한 적은 없어."


카락톰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배를 꿰뚫은 단검에 힘을 주어 내려치니 배가 주욱 찢어진다.

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널브러진 카락톰이 자신의 배에서 새어나오는 장기 덩어리를 보고 자지러졌다. 움찔움찔 경련하며 겁에 질린 얼굴로 어떻게든 쏟아진 장기를 담아내려 하지만 힘없는 손가락 사이로 누런 덩어리가 무참히 쏟아진다.


"너는 내 소중한 사람을 죽였어. 그래서 나는 지금 무척 분하고 억울한 상태야. 내게 만약 시간만 있었더라면 너를 이렇게 편하게 보내진 않았을 텐데."


고저없는 소년의 미성이 고요히 울려퍼졌다.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절대 내 손을 빠져나갈 수 없을 거야. 저세상에서 기다려. 곧 모두 그리로 보낼테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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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사냥(3) +1 22.08.11 169 1 9쪽
14 사냥(2) 22.08.09 183 2 10쪽
13 사냥(1) 22.08.08 189 1 13쪽
12 생존자들 22.08.02 263 3 11쪽
11 습격(2) 22.08.01 262 4 11쪽
10 습격(1) 22.07.29 314 3 11쪽
9 폭풍 전야 22.07.28 314 3 10쪽
8 전조 22.07.26 325 4 12쪽
7 그럴 리가 없어 22.07.25 358 4 12쪽
6 위기(2) 22.07.22 366 5 11쪽
5 위기(1) 22.07.21 396 5 10쪽
4 의문 22.07.18 436 5 10쪽
3 도련님이 돌아왔다. 22.07.15 484 5 11쪽
2 생존 22.07.14 577 7 10쪽
1 프롤로그 22.07.13 732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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