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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서자는 발경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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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작품등록일 :
2022.07.13 20:58
최근연재일 :
2022.08.15 14:2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5,685
추천수 :
63
글자수 :
83,785

작성
22.07.15 18:32
조회
483
추천
5
글자
11쪽

도련님이 돌아왔다.

DUMMY

마부석에서 들린 대답에 노기사, 파비르의 얼굴에 되려 의문이 떠올랐다.

이런 깊은 산중에서 그것도 그 유명한 '머둠 숲'의 길 한복판에 살아있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파비르는 믿기 힘든 얼굴로 마차의 문을 거칠게 밀었다.


문밖에는 그린트가를 상징하는 붉은 사자 문양의 깃발을 단 마차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 유력 가문에게 전달해야 할 중요한 물건이 실려있는 짐 마차였기에 마차의 주위로 말을 탄 병사들이 경계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걸친 경갑과 무기는 파비르의 갑옷과 마찬가지로 조잡한 누더기에 가까웠다.

무기가 없는 하녀와 시중들은 모두 짐 마차 안으로 숨었는지 밖에 보이는 사람의 수는 평소보다 훨씬 적었다.


마차에서 내린 파비르가 병사들을 밀치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도중에 그를 알아본 병사들이 경례하려 했지만 늘 그렇듯 무시하며 지나쳤다.

마차의 최 전열에 가까워지자 정말로 머둠 숲의 길 한복판에 누군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익숙한 실루엣이 선명해질 정도로 가까워지자 파비르의 턱이 땅끝까지 떨어졌다.


"도, 도련님?! 아니 대체 어떻게···"


행렬을 가로막고 서 있던 존재는 어제 갑작스레 실종되었던 그린트가의 삼남, 리엘이었다.

리엘은 옷만 조금 더럽혀져 있을 뿐 어제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 그 유명한 머둠 숲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게 믿기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정신도 멀쩡한지 리엘 공자는 자리에 서서 자신을 부른 파비르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파비르는 눈치를 보고 서 있는 병사들을 향해 불같이 호통쳤다.


"이봐 너희들! 대체 뭘 하고 있느냐 어서 안으로 모시지 않고!"


"아, 예! ···리엘 도련님 이쪽으로 오시죠."


*


"도련님의 상태는 어떤가?"


"그게···"


"그렇게 심각한가?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하게."


파비르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노련한 병사 하쿤이 마차 안에 모신 공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오자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파비르가 다그치듯 물었다.

상처가 없는 줄 알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공자의 상태가 평소와 너무나 달라 직접 대화를 해보니 본인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걸 알게 된 것이다. 하쿤은 파비르의 재촉에 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지만 아무래도 기억에 혼동이 있으신 거 같습니다. 본인이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하십니다."


"설마 백치가 되었다는 말인가?"


"으음,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고 지능도 멀쩡하신 것 같습니다."


그나마 지능이 퇴화한 건 아니라는 소식에 파비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쿤은 그런 파비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아닐세. 자네나 나나 할 만큼 했지. 불운이 조금 겹쳤을 뿐이야."


"저, 외람된 말씀이지만 도련님의 실종은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생각엔 카시피나 영애의 끄나풀이 한 짓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어허. 어허. 자네는 또 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그러나. 그분이 대체 뭐 때문에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돌아가신 첫째 공자님과 셋째 공녀님께 그랬던 것처럼 가주의 직위를 잇기 위해 리엘 도련님께도 수를 쓴 게 아닐런지요."


풀네임 카시피나 유리안 그린트

그린트 가문의 차녀로서 리엘 공자와는 명목상 남매 관계이지만 출생 배경부터가 남다른 귀족 중의 귀족이었다. 이름 없는 하녀의 핏줄인 리엘과는 다르게 그녀의 외가는 이웃 나라 볼트란 왕국의 후손 유리안 왕가였는데, 어릴 적부터 잔악무도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자신의 옷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시종을 때려죽이는가 하면 냄새난다는 이유로 지나가던 노인의 목을 직접 베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가문의 가주직을 잇는데 방해되는 형제자매를 그냥 둘리가 없었다. 그녀에게 죽어 나간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아무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녀의 배경은 막강했다.

비록 이제까지 리엘 공자가 견제의 대상조차 되지 못할 정도로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지만, 최근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약 이번 여행의 목적대로 리엘 도련님이 수호자 아카데미에 입학하는데 성공하신다면 가주 직위를 잇는 일말의 가능성이 생긴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리가··· 아무리 그래도 겨우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정도로 뭐가 달라진다고 그러시겠나? 자네가 과대해석하는 거 아닌가?"


"글쎄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도련님이 어제 사라지신 일은 개인의 원한으로 보기엔 너무 교묘하고 조직적인 움직임이라 생각돼서 말입니다. 아무튼 목적지인 메르카디온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크흠, 이보게 하쿤. 그렇다면 도착할 때까지 자네가 도련님의 곁에 있어주게. 나는 보다시피 늙고 힘이 없으니 자네가 곁에 있는 게 더 안전하실걸세."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도련님을 가장 후미에 하녀들이 있는 마차로 보내겠습니다. 파비르님도 누군가 수상한 자를 발견하면 제게 알려주십시오."


"알겠네. 부탁하지."


파비르는 속으로 안도하며 의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카시피나 영애의 짓이라면 그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노련한 병사 하쿤에게 모든걸 맡기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신상에 이로웠다.


*


여분의 옷으로 갈아입은 리엘 공자는 하쿤의 설명을 듣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불안을 더 가중시키는게 아닌가 걱정 했지만 리엘 공자는 일말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았다.

기억을 잃기 전보다 더 냉정한 모습이 어쩐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이라도 제 등에 업히시는게···"


"괜찮아요."


애초에 평범한 사람이라면 머둠 숲에서 절대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멀쩡할 수 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들이 후미에 있는 마차에 도착했을 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하쿤은 마차의 짐칸에 느껴지는 수많은 인기척에 쓴웃음을 지으며 뒤로 돌아가 망설임 없이 천막을 걷어냈다.


"꺄악!"


옹기종기 모여 서로를 부여잡고 떨고 있던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대부분이 나이든 여자였는데 리엘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도 한 명 있었다.


"아니 뭐예요, 놀랐잖아요 하쿤 씨!"


"크흠, 미안하군. 조금 놀리고 싶어서."


멋쩍게 웃는 하쿤을 보며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급히 물었다.


"도적들은 다 처리한 거예요? 이제 안전한 거죠?"


"안전한 건 맞는데 애초에 마차가 멈춘 건 산적 때문이 아니고 여기 이분. 리엘 도련님을 찾아서야."


"리···엘 도련님?!"


"정말이야. 도련님이 돌아오셨어!"


"맙소사. 정말 다행이야···"


그제야 하쿤의 뒤에 서 있는 리엘을 발견했는지 하녀들이 저마다 놀란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다들 안도하는 얼굴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을 때 누군가 홀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흥, 그냥 평생 돌아오지 말지."


그 소리는 매우 작았지만, 리엘이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소년은 마차의 차고 높이를 한걸음에 뛰어올라 순식간에 목소리 주인에게 당도했다.

그녀는 검은 단발머리에 붉은 눈동자를 한 유일하게 리엘과 비슷한 나이의 어린 소녀였다.

소녀와 가까이 앉아있던 하녀가 놀란 얼굴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


"너야?"


"죄, 죄송합니다, 도련님. 얘가 아직 뭘 잘 몰라서··· 보비야 어서 사과드려."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신 사죄하는 하녀의 모습에도 보비라는 소녀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리엘을 노려보고 있었다.

리엘은 다시 물었다.


"너야?"


"...뭐가요."


"나한테 독을 먹인 사람. 너야?"


주위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충격적인 소년의 질문에 아무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소녀도 놀란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리엘은 소녀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아니였네."


그러고는 조용히 혼자 마차 짐칸의 구석까지 걸어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차가 다시 출발할 때까지 짐칸의 하녀들은 놀란 마음에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


해가 떨어지자 쉴새 없이 움직이던 행렬이 정지했다.

마차의 수에 비해 실린 짐이 많아 일부 병사들은 걸어갈 수밖에 없었기에 그리 긴 거리를 이동하진 못했다. 그러나 요 며칠간 꾸준히 이동했음에도 아직도 숲의 초입을 겨우 지났을 정도로 머둠 숲은 굉장히 광활했다.

병사들이 야영 도구를 꺼내 불을 피우기 시작하자 마차의 가장 후미에 있던 하녀들도 저마다 옷을 갈아입고 하녀 장 마리네의 지시 아래 야영지에 침구류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소녀 보비를 누군가가 뒤에서 작게 불렀다.


"보비야. 보비야~"


"···?"


뒤돌아보니 빨간 곱슬머리에 주근깨 가득한 얼굴로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낮에 리엘 도련님의 앞에서 보비를 감싸줬던 동료 잔느였다.

잔느는 여기 있는 하녀들 중에서는 어린 편이었지만 보비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았다. 그녀는 평소에도 보비를 잘 챙겨줄 때가 많아 아무리 무뚝뚝한 보비라도 잔느의 말은 잘 따르는 편이었다.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보비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던 잔느가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는 보비의 귀에 나직이 속삭였다.


"아직 도련님한테 사과 안 했지?"


"···제가 왜요."


"요게. 사과하고 싶다고 얼굴에 다 써 있거든? 이거 받아. 내가 쓰려고 몰래 숨겨뒀던 솜이불. 이거 줄 테니까 도련님께 드리고 와."


"···"


보비는 복잡한 얼굴로 푹신한 이불을 건네받았다.

한동안 고집스레 잔느의 얼굴을 흘겼지만 결국 작게 한숨 쉬며 발걸음을 돌렸다. 잔느는 자신보다 큰 솜이불을 두 팔로 끌어안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보비를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짐마차의 뒤에 도착한 보비가 천막을 걷어내자 리엘 공자는 예상대로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


보비가 리엘의 앞에 서서 말없이 보고 있자 소년이 무심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지?"


"···이불 필요하십니까?"


"필요 없어."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보비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소년을 노려보다 심통이 난 얼굴로 거칠게 천막을 열고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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