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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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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작품등록일 :
2022.07.13 20:58
최근연재일 :
2022.08.15 14:2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5,683
추천수 :
63
글자수 :
83,785

작성
22.07.29 20:14
조회
313
추천
3
글자
11쪽

습격(1)

DUMMY

간밤에 습기가 높아진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 온몸을 끈적끈적 달라붙는 불쾌한 기분에 고개를 쳐드니 먹구름이 온통 하늘을 덮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뚝하는 굵은 빗방울이 소년의 이마에 부딪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아직은 쏟아질 생각이 없다는 듯 하늘은 여전히 침묵한다.

배급받은 육포 조각을 한입 베어 물자 역한 누린내가 입가에 번졌다.


"으웩, 이거 제가 만들었지만, 진짜 맛없네요."


몸을 어느 정도 회복해 슬슬 걷고 있던 소년의 뒤에서 잔느가 헛구역질을 해댔다. 평소라면 잔느도 마차 안에서 편안히 가고 있었을 테지만 오늘은 습기가 높아 답답했던 모양인지 소년의 뒤에서 따라 걷고 있었다.


"오늘은 왜 음식을 만들지 않는 건가요?"


"그 말은 도련님이 지금 먹고 있는 건 음식도 아니라는 소린가요?"


"···"


리엘의 침묵에 잔느가 그를 지긋이 노려본다. 리엘이 슬쩍 시선을 피하자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사실 저도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이건 실패작이에요. 정말 맛없거든요."


"제가 궁금한 건 왜 마차를 세우지 않고 이런 간단한 요깃거리로 때우냐는 겁니다."


"아아, 그거 말이죠. 저기 하늘 어두운 거 보이시죠? 아무래도 오늘 저녁쯤에 쏟아질 것 같아서 서두르는 거예요. 잘하면 오늘 내로 마을에 도착할 수도 있다고 들었어요."


눈이 확 떠지는 희소식이다. 슬슬 리엘도 밖에서 자는 게 지겨워진 참이었다. 제대로 된 지붕이 있는 실내에서 쉬고 싶었다.

바로 그때, 옆에서 마차를 몰고 있던 벤자민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오오! 저곳이 바로 머둠 협곡이로구나! 정말 장관이구먼, 장관이야!"


입꼬리가 광대 너머로 활짝 올라가고 눈가로 자글자글한 주름이 잡혔지만, 그 눈에서 느껴지는 활기만은 젊은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리엘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마차 옆으로 다가가 망설임 없이 굴러가는 바퀴 축을 디딤돌 삼아 훌쩍 뛰어올라 마부석 위로 올라섰다.


"허허, 도련님 안 본 사이에 몸이 정말 날쌔지셨군요?"


옆에서 벤자민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리엘의 눈은 눈앞으로 펼쳐진 거대한 협곡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기나긴 행렬이 전부 보일 정도로 먼 경치가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넓은 길이 점점 좁아지며 양옆으로 급격한 바위산이 솟아 경사 지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봤을 땐 그게 마치 양쪽으로 솟아오른 거대한 바위벽이 짐승을 아가리처럼 서로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입구가 굉장히 좁아 보였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보면 사람 수십 명이 들어가도 공간이 남을 게 틀림없었다. 옆에 늘어선 나무가 손톱만큼 작게 보일 정도로 먼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장관이지 않습니까, 도련님? 실제로 눈앞에서 보게 되니 심장이 멎을 것 같군요. 제 평생 이런 경치를 볼 수 있다니 꿈만 같습니다. 역시 사람이 아무리 대단해도 자연 앞에서는 조막만 한 자갈돌과 다를 게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는 거 같습니다, 허허."


"도련님, 뭐 보이는 거라도 있으세요?"


아래에서 잔느가 물어오자 경치에 홀려있던 리엘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협곡이 보여요."


"정말요? 우와, 잘하면 진짜 오늘 안에 마을에 도착할 수도 있겠네요. 하쿤 님이 머둠 협곡만 통과하면 오솔길이 지나서 금방 목적지에 도착할 거라고 하셨거든요!"


방방 뛰는 잔느의 발랄한 움직임에 벤자민이 껄껄 웃어댔다. 마차 뒤편에서도 머둠 협곡을 지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곧 소란스러워졌다.


*


"파비르 님, 곧 협곡을 지나는데 병사들을 앞뒤로 포진하는 편이 더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마차 밖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걸걸한 목소리에 파비르가 급히 마차 문을 열었다.

키가 작은 남자가 묘한 미소를 띠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마을이 가까울수록 재물을 약탈하려는 도적들이 많은 법이지요."


"흠··· 알겠네. 그럼 자네··· 이름이 뭐였지?"


"카락톰 입니다. 파비르 님."


"그래 카락톰, 이제 기억나는군. 골드 등급의 용병이었지. 그렇다면 자네가 용병들을 편성해서 뒤쪽으로 가주게. 우리 병사들은 앞쪽에 두겠네."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아, 그리고 혹시 하쿤 님을 잠깐 빌려도 되겠습니까? 숲에서 수상한 자를 목격했다는 정보가 들어와서 노련한 추적자의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그건 자네 알아서 하게."


카락톰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곤 물러갔다. 고개를 돌리면서 잠깐 보인 새까만 눈동자의 음울한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으스스한 느낌에 팔 부근에 닭살이 돋았지만 파비르는 고갤 흔들어 떨쳐냈다.


*


가는 빗방울 하나가 소년의 볼 가를 스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게 시작이었을까. 하나둘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어느새 셀 수 없을 만큼 떨어져 내린다.

쏴아아 -

굵은 빗줄기가 하늘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자 메마른 땅이 순식간에 진흙탕이 되었다. 질퍽한 진흙이 숭숭 뚫린 천 신발 사이로 흘러들어왔다. 순식간에 쫄딱 젖은 소년의 몸에 천 옷이 달라붙어 비쩍 마른 그의 몸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도련님! 뭐 하고 있어요! 어서 이리 들어오세요!"


보비가 마차 천막에서 고갤 내밀고 다급히 불렀다. 어느새 들어갔는지 잔느도 그녀의 옆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리엘은 급히 뛰어가 마차에 올라탔다.


"정말, 다 젖었잖아요. 빨리 안 타고 뭐한 거예요."


마른 수건으로 리엘의 흠뻑 젖은 몸을 닦고 있던 보비가 주변에서 느껴지는 묘한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수많은 하녀와 마부 벤자민이 훈훈한 눈으로 그 장면을 만끽하고 있었다.


"뭐, 뭘 그렇게 봐요! 도련님이 다 젖어서 악화하기라도 하면 우리가 힘들어질 게 뻔하니까 그런 거잖아요!"


"우리가 언제 뭐라고 했니 보비야? 그냥 본 거야. 왜 혼자 흥분하니?"


잔느가 음흉한 미소를 띠며 놀리자 보비의 볼이 크게 부풀었다. 흥, 하고 콧방귀를 뀐 보비가 소년에게 걸레를 던지고 마차 구석으로 가서 앉아 벽만 쳐다봤다. 몇몇 연륜 있는 하녀들이 보비를 살살 달랬지만 쉽게 풀릴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나저나, 저 용병들 정말 이상하네. 와서 비 좀 피하라 해도 대꾸도 없이 기분 나쁘게 웃기나 하고."


잔느가 뚱한 얼굴로 천막 입구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하늘을 전부 가린 먹구름 탓에 어둑어둑한 시야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수십의 용병들이 저 멀리서 거리를 두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린트가 행렬의 선두 마차가 협곡 입구를 통과하면서 뒤쪽으로 자리를 옮긴 용병들이었다. 듣기로는 파비르의 명령으로 전투가 가능한 사람들을 전부 앞뒤로 포진한 모양이었다.

잔느가 벌린 천막의 얇은 틈 사이로 수십의 그림자가 질퍽해진 땅을 박차고 있는 게 보인다. 그런데 조금 묘했다. 아까부터 뒤쪽에서 그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와 질퍽한 흙을 지르밟는 소음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는다. 방금까지만 해도 시끄럽게 떠들던 용병들은 모두 침묵하고 묵묵히 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하녀 마차까지 협곡 입구를 지나는 순간, 짜인 것처럼 그들의 걸음이 일제히 멈췄다.


"···뭔가 이상해."


"저 사람들 왜 안 오는 거야?"


마차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는데 수십의 용병들은 모두 제자리에 서서 그들이 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졌을 때, 일제히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품 안에서 꺼낸 길쭉한 그림자가 모두 이쪽으로 향한다. 리엘이 다급히 외쳤다.


"모두 고개 숙여!!"


쉭 하는 바람 새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무언가가 천막을 찢고 마차 안을 침투했다.

퍽 고깃덩이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진득한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다급히 뒤를 돌아보니 가운데 있던 하녀 한 명의 머리가 화살에 관통되어 쓰러진다.

두 눈을 부릅뜬 채 쓰러지는 몸. 주위에 있던 하녀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녀를 돌아본다. 곧 그들의 얼굴은 경악으로 일그러진다, 놀란 얼굴에 공포가 뒤섞였다.


꺄아아아아아악!!


하녀들이 질러대는 비명을 기점으로 다시금 쉭 하는 복수의 바람 소리가 순식간에 하녀들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리엘이 타고 있는 마차의 천막은 수십 개의 화살에 이리저리 찢겨 넝마처럼 변해간다. 찢긴 천막 사이로 세찬 빗소리가 하녀들의 비명 음을 먹어간다.

겨우 위험을 인식한 하녀들이 리엘의 경고에 따라 몸을 숙였지만, 위에서 찢고 들어온 화살들은 여지없이 그들의 급소를 꿰뚫었다.


아으으아아아악! 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소년은 눈앞으로 쳐들어온 화살을 모두 잡아채며 멍하니 앉아있는 잔느의 뒷덜미를 잡고 끌어당겼다.


픽!


잔느가 있던 자리에 꽂힌 화살이 부르르 떨렸다. 잔느의 눈가에 공포가 어렸다.


"정신 차려!"


리엘의 일침에 잔느가 멍하니 소년을 바라본다. 그러나 떨리는 눈동자는 여전히 초점이 맞지 않았다. 칫, 혀를 찬 소년이 무심결에 보비가 있는 쪽을 훑었다.

리엘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하녀장 마리네가 보비를 끌어안고 날아오는 화살을 전부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고슴도치처럼 수많은 화살을 받아낸 마리네의 등에 다시 한번 화살이 꽂힌다. 고깃덩이가 터지는 파열음과 함께 끈적한 피가 사방으로 만개했다. ‘흐으읍!’보비는 새어 나오는 비명을 자신의 손으로 틀어막으며 몸을 더 작게 웅크렸다.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잔느! 제가 밖에 나가서 주의를 끌 거에요! 그러니 잠깐만 여기서 보비랑 같이 있어요!"


그러나 떨어지는 빗줄기와 하녀들의 비명으로 인해 소년의 목소리가 먹먹하게 묻혀버린다. 리엘은 날아오는 화살을 다시 잡아채며 옆에 있던 잔느를 걷어차 보비가 있는 곳으로 밀어냈다. '꺅!' 공포에 질려있던 잔느가 넘어져 짐칸 바닥에 널브러진 하녀들의 시체 더미 사이를 굴렀다. 이미 흠뻑 젖어있던 그녀의 옷이 죽은 사람들의 피로 물든다. 두 팔을 허우적거리던 잔느가 구석에서 떨고 있는 보비를 발견하곤 엉금엉금 기어가 그녀를 감싸안고 오열했다.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잔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마침내 리엘과 눈이 마주쳤다.


"보비랑 거기 숨어 있어요! 내가 시선을 끌 테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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