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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서자는 발경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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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땅
작품등록일 :
2022.07.13 20:58
최근연재일 :
2022.08.15 14:2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5,692
추천수 :
63
글자수 :
83,785

작성
22.07.22 20:58
조회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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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위기(2)

DUMMY

갑작스레 풀숲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긴장을 풀고 있던 용병들이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호수가 주위 작은 공터를 제외하곤 주변이 모두 나무와 풀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기에 목소리의 위치를 짐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설마 거스가 날린 화살을 빗맞았다는 말인가?

카락톰의 목젖이 위아래로 느릿하게 움직였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을 경계하며 천천히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활을 든 거스가 가장 안쪽, 도끼를 든 아둠이 우측 전방, 양손에 투척용 쌍날 단검을 든 카락톰이 좌측 전방. 그들이 전투 시 가장 선호하는 위치였다.

일촉즉발의 순간, 경직된 공간 속에서 누군가가 수풀을 가르고 나왔다. 전투에 어울리지 않는 헤진 가죽 신발에 낡은 천 옷을 입고 있는 그 작은 인영은 거스의 다음 화살촉이 자신에게 향해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물론 세 사람이 아직도 가만히 있던 이유는 불청객의 정체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야 이거 누군가 했더니 우리 귀여운 귀족 나리 아니신가?"


"어유 오랜만에 긴장해서 지릴 뻔했네. 거스가 목표물을 빗맞혔다길래 또 어마어마한 녀석이라도 오는 줄 알았어."


"뭐, 아무리 거스라도 컨디션이 안 좋을 때가 있겠지. 이봐 거스, 너무 그렇게 기죽지 말라고."


"···"


화살을 날린 다음부터 거스의 상태가 이상해 보여 카락톰이 그를 격려하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나 거스는 카락톰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고 그저 눈앞에 있는 귀족 소년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에 위화감을 느꼈지만,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 도련님."


그리고 난입한 사람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 보비의 남은 희망마저 와르르 무너졌다. 지금 나타나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였다. 항상 퉁명스럽게만 대했던 도련님이 자신을 도와줄 리 만무하거니와 만에 하나 도와준다 해도 셀 수 없이 많은 전투에서 살아남은 베테랑 용병들을 상대로 그가 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문제는 지금 도련님이 전혀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바보 같긴. 설마 고용한 용병들이 자신을 따를 거라고 확신하는 걸까? 용병들은 그가 껍데기만 귀족일 뿐 사실은 그린트가에서 배척받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상상하긴 싫지만 입막음을 하기 위해 그를 해코지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어쩌면 목숨까지 위험한 상황이었다.


"방해해서 미안해요. 병사들의 빨래를 하고 있다길래 조금 거들어 주려 왔는데 이렇게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네요. 그쪽의 용병분들도 도와주러 오신 겁니까?"


"···크흐흐, 예 그럼요. 아무리 용병이지만 저희도 염치라는 게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대신에 저희가 원하는 것도 미리 받으려고 하니까 어린 귀족 나리는 방해하지 말고 좀 꺼졌으면 좋겠는데. 물론 이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시고."


하반신을 전부 노출하고 있던 아둠이 되려 당당하게 요구했다. 커다란 생식기를 흔들며 웃고있는 장면은 꽤나 희극적이었지만, 리엘의 몸보다도 큰 양날 도끼를 한 손에 들고 서 있는 모습은 상당히 위압적이었다.

일반적인 남성보다 머리 두 개는 큰 거인이 웃으면서 숨을 토해낼 때마다 전신의 근육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피부 결로 갈라지고 있었다.


"···놀랍네요. 저는 귀족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이러는 거 감당할 수 있는 겁니까?"


"크흐흐, 아하하하하! 카락톰 저 쪼그만 녀석이 하는 말 들었어? 감당할 수 있냐는데? 누가 보면 지가 아주 뭐라도 되는 줄 알겠어! 크흐하하하-"


"귀족 나리. 우리도 경고하나 하지. 괜히 객기 부리지 말고 지금 당장 떠나. 그렇지 않으면 내일 뜨는 해를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뭔가 오해하시는 거 같은데 제가 여기 오기 전에 미리 하쿤에게 말해뒀거든요. 아마, 그분 성격상 지금쯤 저를 찾아오고 있을 거 같은데요. 당신 생각은 어떤가요?"


"···쯧."


히죽이며 웃고 있던 아둠의 얼굴이 미세하게 떨렸다. 비단 아둠 뿐만이 아니라 하쿤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카락톰의 몸도 조금 주춤했다. 하쿤은 이 행렬에서 유일하게 그들이 만만히 볼 수 없는 상대였다.

오랫동안 용병으로 구르다보면 실력자에 대한 소문이 자연스레 귀로 들려오기 마련인데 하쿤은 파비르와는 달리 수많은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진짜 실력자 중 하나였다. 물론 그들도 골드 등급의 용병으로서 실력이 뒤처진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지금 하쿤과 대립하면 이득보단 손실이 훨씬 더 컸다. 굳이 하녀 한 명 때문에 일을 크게 만드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러나 드래곤 뒤에 숨은 기세등등한 고블린처럼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소년이 그렇게 거슬릴 수 없었다.


"제기랄,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구먼. 어차피 처음부터 저년이 처녀인지 알아보는 게 목적이었고 말이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하의를 챙겨 든 아둠이 두 발을 넣고 바지를 끌어 올리며 보비를 향해 입맛을 다셨다. 옆에서 잠자코 있던 카락톰은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소년을 보고 있었다. 광기로 흔들리는 눈동자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보비는 온몸이 오그라드는 공포를 느꼈다.


"아니, 아니지. 생각해보니까 어자피···"


카락톰이 손아귀에 든 단검을 현란하게 돌리기 시작했다. 손가락 사이로 칼날이 교묘하게 스쳐 지나가 공중을 휘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이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섬뜩했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몸에 잔뜩 힘을 주는 순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거스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커진 눈동자로 거스를 돌아보던 카락톰이 결국 손아귀에 들어온 단검을 허리춤에 가져갔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사고를 당했었다고 들었지.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배웠을텐데···"


카락톰이 집어넣으려던 단검을 불쑥 소년에게 던졌다.


퉁!!


"꺅!"


지켜보던 보비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지만, 단검은 정확히 리엘의 바로 옆에 있는 나무에 꽂혀있었다. 손잡이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들어간 이중 날 단검은 튀어나온 날이 반동으로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리엘의 얼굴에서 이제까지 유지하고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남은 단검을 한 손으로 현란하게 돌리며 소년에게 다가간 카락톰이 단검을 든 그 손으로 소년의 어깨를 짚었다.


"크크큭, 겁먹기는. 지금 건 일부로 빗나간 거다. 그렇게 긴장하니 이쪽이 더 미안하잖아. 설마 하는데 이 일을 누구한테도 말한다거나 하지는 않는 게 좋을 거야. 혹시라도 지금처럼 눈 먼 칼날에 찍힐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


"···"


들고 있던 칼로 소년의 뺨에 얇게 생채기를 낸 카락톰이 나무에 꽂힌 단검을 단숨에 뽑아 일행들과 함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간 뒤에도 멍하니 서 있던 리엘이 손을 들어 뺨에 난 생채기로 가져갔다. 붉은 피로 얼룩진 손을 보며 활짝 웃은 소년이 손가락에 맺힌 자신의 피를 핥았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소년의 기행을 지켜보던 보비가 걱정스레 묻자 리엘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소년은 보비를 돌아보며 가볍게 웃었다.


"난 괜찮아. 그보다 너는.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없어요."


애써 웃어 보였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팔다리가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 말해주고 있었다. 리엘이 말없이 그녀의 흔들리는 다리를 가리키자 보비가 얼굴을 붉혔다.


"조금 놀란 것뿐이에요. 괜찮아질 거예요. 그나저나 정말 운이 좋았어요. 오시기 전에 하쿤님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도련님은 물론이고 저도 끔찍한 일을 당했겠죠. 정말 드래곤의 가호가 있었어요."


"드래곤? 이 세상에 드래곤이라는 게 정말 존재해?"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애처럼. 당연히 없죠. 드래곤이 멸종한 지가 언제인데요. 그냥 비유 상 꺼낸 말이잖아요."


"호오, 원래는 있기는 했다는 말이네 신기해. ···그런데, 그 얘기 정말 믿은 거야?"


"···?"


"하쿤 씨가 내가 여기 온걸 알 리가 없잖아, 병사들 통제하느라 한창 바쁠 시간인데."


"그, 그럼 설마 아까 거짓말을 한 거예요?"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는 리엘을 보며 보비는 하얗게 질렸다. 이 사람은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는 걸까.


"제정신이에요?! 그 사람들 정말 위험한 사람들이라고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놈들인데 도련님이 거짓말한 걸 깨닫고 언젠가··· 계약이 끝나고 정말 도련님을 해코지하러 찾아오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보비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광기 어린 눈으로 날 선 무기를 장난감처럼 다루던 카락톰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신 때문에 도련님이 위험해질 거로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렇군. 그것참 무섭네. 하지만 내가 오지 않았으면 보비가 위험했을 텐데."


"그거야···! 그거야 그렇지만."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는 보비를 보며 리엘은 씁쓸히 웃었다. 감정적인 대화에는 익숙하지 않아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난감한 얼굴로 볼을 긁적이던 리엘이 호수가에 잔뜩 쌓여있는 천옷들을 가리켰다.


"일단, 남은 일은 마저 끝내야지? 더 늦으면 식사도 못 하겠네. 내가 도와줄 테니 얼른 끝내자."


리엘이 등을 돌려 호수가로 걸어가자 보비가 말없이 그를 따랐다. 그 모습이 마치 어미 새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가는 아기 새 같아 당사자 이외의 사람들이 이 모습을 봤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주인 잃은 고양이 마냥 여기저기 까칠하게 굴던 보비가 이렇게 순순한 모습은 보기 드물었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생소한 광경일 것이다.


보비는 리엘의 뒤를 따라가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분명 그도 무서웠을 것이다. 본인보다 훨씬 더 큰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위협을 당했는데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도련님은 끝까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충분히 자신을 원망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그녀를 걱정해줬다.

뺨에 난 상처를 보니 가슴이 아려왔다. 말없이 쭈그려 앉아 천 옷을 씻는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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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2) 22.07.22 367 5 11쪽
5 위기(1) 22.07.21 396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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